고양 원더스

구단 엠블럼
고양 원더스
Goyang Wonders
창단년도 2011년 9월 15일
창단식 2011년 11월 11일
해체년도 2014년 9월 11일
해체 당시의 구단프런트
(2014년)
연고지 경기도 고양시
구단주 허민
사장 이종한
단장 하송
감독 김성근
홈구장 고양 야구장
(1,200석)
홈페이지

Contents

1. 개요
2. 특징
3. 목적
4. 구단 구성
5. 각종 기사 모음
6. 논란
7. 해체
8. 코칭 스태프(해체 당시 기준)
9. 선수단
9.1. 투수
9.2. 포수
9.3. 내야수
9.4. 외야수
10. 퇴단한 선수들
11. 명예의 전당
12. 이야깃거리
13. 관련 항목


1. 개요


경기도 고양시를 연고지로 하는 국내 첫 독립야구팀.
본격 구단주가 타 구단에서 선수로 뛰는 구단

KBO에 속하지 않은 독자적인 구단이며, 고양시와 (주)원더홀딩스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계약을 함으로써 창단되었다.

2014년 9월 11일, 퓨처스리그 정규편성이 이루어지지 않는 등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해, 해산을 발표했다.

2. 특징

홈 구장은 고양종합운동장 부속야구장인 고양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이며, 2012년부터 한국프로야구 퓨처스리그 팀들과 경기를 가진다. 총 48경기를 치뤘고, 모두 번외경기로 공식 기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KBO에서 심판위원이나 기록원을 배치하는 등의 지원을 해줄 계획이다.[1]

엄연히 월급이 나오는 구단이며, 최저 연봉은 2천만원 선[2]이라고 알려졌으나 2011년 12월 18일자 KBS1 취재파일4321 방송 및 여러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선수 연봉은 1천만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거라도 주는게 어디냐 할 정도로 비프로리그에선 유일하게 월급을 주는 팀이라서 깔 수도 없고, 2천만원으로 연봉을 맞추려 했던 것이 다른 프로구단들 쪽에서 자기 팀 연습생이나 신고선수들이 원더스의 연봉 수준을 보고 팀에서 이탈(…)해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려하여 딴지를 건 결과 타협점 삼아 연봉을 낮추게 되었다는 카더라도 있어서 무작정 연봉 짜게 준다고 깔 수만은 없는 현실이다.

3. 목적

이 구단의 목적은 갈 곳 없는 방출된 선수, 신인 드래프트에 지명되지 못한 신인 등, 재기를 꿈꾸는 선수를 강훈련을 통하여 프로 수준에 맞추어, 1군 무대로 보내주는 일이다. 감독도 김성근이니 상당히 공포의 외인구단스럽다. 김성근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각 구단이 요청만 한다면 곧바로 보내줄 수 있다고 하며, 실제로 보내주고 있다. 선수를 원하는 구단은 선수와 연봉 계약만 체결하면 되며, 선수 영입에 대한 이적료는 내지 않아도 된다. 이는 프로 구단에서 고양 원더스 선수들을 데려가는 데에 생길 수 있는 장벽을 조금이라도 없애려는 취지.

4. 구단 구성

감독 선임에 앞서 김광수두산 베어스 감독대행이 수석코치로 선임되었고, 2011년 11월에는 김광수 수석코치의 주도하에 공개 선수모집을 통하여 선수를 뽑았다. 12월에는 감독으로 김성근SK 와이번스 감독이 선임됨과 동시에 신경식 두산 타격코치, 박상열 전 SK 투수코치, 곽채진 신일고 코치[3], 코우노 타카유키 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종합코치, 조청희 전 한화 이글스 트레이너를 영입했고, 2012년 1월에 추가로 일본 독립리그팀인 에히메 만다린 파이어리츠의 코치를 맡았던 오키 야스시[4]를 배터리 코치로 영입하며 여타 프로팀의 1군 코칭스태프 못지 않은 코치진을 구성하게 되었다.

2012년 2월에는 일본인 투수 코바야시 료칸[5]을 영입했다. 김성근 감독의 말로는 외국인 선수를 영입함으로써 팀의 전력 보강차원 및 경기에 이김으로써 기존 원더스 소속 선수들에게도 이기는 방법을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또한 코바야시 외에도 1~2명 더 외국인선수를 영입하겠다고 했으나 고양 원더스가 독립구단이라서 코바야시 같은 저니맨이 영입대상이 될 듯하다. 뒤이어 영입한 타일러 럼스덴은 미국 마이너리그와 대만에서 활동했고, 센디 레알은 2006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42경기에 등판한 적이 있지만 그 후에는 마이너리그, 미국 독립리그, 멕시칸리그를 거쳤다.

다만 허민 대표의 과거 이력 및 이미지[6], 끝까지 자금 동원 능력이 갖추어질 것인지 등의 이유로 여전히 회의적인 시선이 남아 있기는 하다. 그리고 결국 이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5. 각종 기사 모음

2012년 2월 기준 일본 실업팀들과의 경기에서 5연승을 거뒀다.#[7]

2012년 3월 8일 쿠바를 이긴 세계최강 LG 트윈스 2군 과의 경기에서 5-4 역전승으로 이겼다.

3월 12일 텍사스 레인저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서 방출되었던 남윤희가 합류했다. 남윤희는 부상에 발목이 잡혀 메이저리그행을 포기했고 일본에서 받은 테스트에서도 낙방했는데, 2년 동안의 복귀 유예 기간 동안 원더스에서 재기를 모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영일과 마찬가지로 군 미필이라는 것이 걸림돌이다. 이름을 남윤성으로 개명했다.

7월 6일 이희성 선수가 LG에 복귀한 날 다음 시즌 운영에 먹구름을 띄우는 기사가 났다. 기존 구단 중 다수의 구단이 고양과의 번외 경기에 부담을 느껴 거부를 표한다는 것.# 다행히 2012년은 KBO와 구단들 사이에서 합의되었던 대로 48경기를 치러 48전 20승7무21패(승률 0.487)로 시즌을 마쳤다.#

비선수 출신들을 대상으로 한 트라이아웃도 열렸지만 정작 정식으로 입단한 경우는 1건도 없었다.

6. 논란

2013년부터 경기 일정을 두고 KBO측과 갈등을 빚었다. 퓨쳐스리그 정식팀이 될 문제를 두고 논란이 거세진 상황에서 또 2012년 처럼 번외경기만 할 예정이다. 여러가지 대응책으로 3군리그로 별도 경기를 가진다는 기획도 나오고 있다.

또한 10번째 구단으로 참가하게 되는 KT가 코칭스태프 선임과정에서 고양 원더스와 김성근 감독에게 상의도 없이 무단으로 고양 원더스 코칭스태프를 빼가 논란을 빚었다. 상의를 하고 정중히 스카우트하고 싶다고 요청했다면 모를까 말도 없이 빼갔으니 김성근 감독과 고양 원더스 입장에서는 KBO와의 갈등도 그렇고 심기가 불편할 것이다.[8]

7. 해체

이런 저런 어려움으로 결국 해체를 통보했다는 기사가 나왔다.링크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게 2∼3개월 월급을 더 지급하고, 프로구단 입단 테스트를 위한 지원까지 해주겠다고 하지만, 프로에 올라가지 못한 선수들의 최후의 보루인 원더스가 없어지는건 여러모로 아쉬운 상황. 김성근 감독도 "야구계가 고양 원더스를 버렸다"면서 강하게 아쉬움을 토로했다. 관련 기사 댓글란에도 대부분 KBO를 성토하는 분위기.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정황이 두드러진 기사들이 계속 나오면서 KBO와 기존 구단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기사들과 여론이 고양 원더스 자체의 한계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외면한 상태에서 지나친 비판을 가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현재 고양 원더스의 높은 승률은 여러 구단에서도 지적한대로 외국인 선발진을 갖추고 있는 유일한 팀이기 때문인 측면이 크다. 절대적 지표인 이닝 수에서도 외국인 선수에 대한 심각한 의존도가 잘 드러나는데, 2014년 원더스 투수들의 교류전 총이닝은 715.2 이닝. 이 중에서 무려 552이닝을 외국인 선수가 던졌다. 독립구단이 외국인 선수를 쓰는 것이 어떠냐는 반론이 있지만 원더스가 일반적 독립구단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데다 구단주와 감독의 슬로건인 야구 발전에 대한 기여라는 항목을 충족하는지 의문점이 들 수 밖에 없다. 구체적인 수치를 보면 더욱 심각한데 프로 팀에 입단한 선수들의 경우 최현정이 9경기 12.2이닝, 김동호가 7경기 13.1이닝, 김성한이 2경기 1.2이닝에 불과하고 다른 국내 투수들 중 10경기 이상 등판한 투수가 불과 5명(그나마 1명은 프로 통산 112승 투수인 김수경)뿐이며 그 외에는 끽해야 1, 2경기밖에 등판 기회를 잡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원더스가 프로로 진출시킨 투수 대다수는 불펜 투수들이고 그나마 프로에서 제대로 던지는 선수도 거의 없다.

고양이 진출시킨 선수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원더스에서 올려보낸 선수 중 팀의 전력에 도움이 되는 선수는 2014년 이 시점에서 안태영과 황목치승이 전부다. 그나마 안태영은 14시즌 50경기도 못나왔고 수비가 안 되어서 지명타자로만 출전하는 등 활용 폭이 제한되어 있으며 황목치승은 30경기 남짓 나와서 OPS가 6할 턱걸이다. 프로에서 신고선수로 인생역전신화를 쓴 김현수, 서건창, 이종욱같은 선수들을 살펴보면 프로 초년병때 고생을 하긴 했으나 아마추어 시절에는 상당히 기대받던 유망주였다.[9] 스포츠가 다 그렇지만 야구도 타고난 자질의 영향을 받는 종목이고 원더스 출신 선수들 역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안태영은 2004년 드래프트 출신(전준우와 같은 라운드)이며 황목치승도 아마추어 시절 각광받던 유망주였다. 처음 프로진출 시도할때부터 낮은 평가를 받았고, 신고선수 출신이거나 프로경험이 일천한 나머지 선수들은 1군 붙박이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출전 기회를 잡은 선수도 거의 없으며 1명은 아예 일찌감치 방출되었다. 원더스에서 아마추어 시절에 보여준 모습 이상을 보여준 선수는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일찍이 NC 다이노스의 창단 과정에서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NC의 경우 트라이아웃을 통해 22명에 이르는 많은 선수를 선발했으나 정성기, 김진성, 최금강, 류동호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방출되었다.[10] 트라이아웃을 통해 원석을 건지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NC의 경우를 반면교사로 삼은 KT는 단 7명만을 트라이아웃에서 합격시켰다.[11] 고양 원더스에게 KBO는 빚을 졌다고 김성근 감독은 소리높여 말했고 여론은 고양 원더스가 야구 발전을 위해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하나, 고양 원더스가 야구 수준에 도대체 뭘 기여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KBO의 졸속 행정과는 별개로 매겨져야한다.

해체 직후 하송단장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KBO의 퓨처스리그 참가 거부가 해체의 이유는 아니였다고 밝힘에 따라 실질적으로 또 다른 이유로 인해 해체가 된게 아닌가 하는 의견이 분분하다.

8. 코칭 스태프(해체 당시 기준)

등번호 이름 직책 부임년도 선수시절 포지션
38 김성근 감독 2012 투수
47 이상훈 투수코치 2013 투수
70 이시미네 카즈히코 타격·수비코치 2013 외야수
71 아베 오사무 타격코치 2013 외야수
72 박상열 투수코치 2012 투수
74 야마나카 키요시 배터리코치 2013 포수
99 김광수 수석코치 2012 내야수
80 박철우 타격코치 2013 내야수
강성인 트레이닝 코치 2013 내야수
홍남일[12] 트레이닝 코치 2013 내야수

9. 선수단

프로야구팀 활동 경력이 있는 선수는 프로 경력을, 그외에는 입단 전 소속팀을 기준으로 기재한다. 역시 해체 당시 기준.

9.1. 투수

등번호 이름 입단년도 투타 입단 전 경력
11 최향남 2014 우투우타 영흥고-해태(1990~1996)-LG(1997~2002)-KIA(2004~2005)-버팔로 바이슨스(2006)
-롯데(2007~2008)-앨버커키 아이소토프스(2009~2010)-롯데(2011)-KIA(2012~2013)
12 왕민수 2012 우투우타 군산상고-호원대
15 박병우 2013 우투우타 제물포고
16 홍성혁 2014 우언우타 효천고-동의대 중퇴
20 데럴 마데이 2014 우투우타 미국 마이너리그
21 루이스 곤잘레스 2013 좌투좌타 미국 마이너리그-슝디 엘리펀츠-요코하마
29 최민국 2014 우투우타 진흥고
30 오시리스 마토스 2013 우투우타 미국 마이너리그-멕시코 독립리그
35 신정윤 2014 우투우타 유신고-세계사이버대(중퇴)-넥센(2013)
45 김재현 2013 우투우타 공주고-대불대
51 김수경 2014 우투우타 인천고-현대(1998~2007)-넥센(2008-2012)
55 강우찬[13] 2013 우투우타 장충고-중앙대
63 박성범 2013 우투우타 제물포고-송원대
64 김민형 2013 우투우타 야탑고-경희대 중퇴
66 김승현[14] 2014 우투우타 동성고-홍익대-코리아해치-KIA(2013)
99 디오니 소리아노 2013 좌투좌타 광동 레퍼즈-히로시마 카프-퉁이 라이온즈
-- 멕시모 넬슨 2014 우투우타 주니치 드래곤즈

9.2. 포수

등번호 이름 입단년도 투타 입단 전 경력
25 김호연[15] 2014 우투우타 선린인터넷고-넥센(2011)
27 김지호 2014 우투좌타 공주고-호원대-삼성(2009~2010)
32 정규식[16] 2014 우투좌타 교토국제고-오사카가쿠인대
37 홍권민 2014 우투우타 원주고
42 김정남 2014 우투좌타 청원고-성균관대-SK(2009~2011)

9.3. 내야수

등번호 이름 입단년도 투타 입단 전 경력
2 안형권 2012 우투양타 미국 세인트토마스고
3 김남훈 2013 우투우타 경주고-강릉영동대
6 김선민 2014 우투우타 대구고-삼성(2010~2011)
7 정유철 2014 우투양타 선린인터넷고-계명대
13 이성엽 2013 우투좌타 상원고-강릉영동대-경찰-NC(2012)
31 이강혁 2014 우투좌타 대구고-삼성(2010)
50 신성현 2014 우투우타 교토국제고-히로시마(2009~2013)
62 박선호 2013 우투우타 청원고-호원대

9.4. 외야수

등번호 이름 입단년도 투타 입단 전 경력
4 이용균 2014 우투우타 청원고-홍익대
10 이병용[17] 2013 우투우타 서울고-삼성(2007)
14 오무열 2014 우투우타 휘문고
33 최승원 2013 우투우타 동성고-고려대
39 채기영 2014 우투좌타 선린인터넷고
49 설재훈[18] 2012 우투우타 진흥고-서울해치
65 임도현 2014 우투우타 경동고-원광대-LG(2008~2013)

10. 퇴단한 선수들

선수단 개편이 상당히 잦아 많은 선수들이 중도탈락했다. 탈락사유는 강훈련을 견디지 못했거나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거나 군 입대를 준비하거나 등이다. 특히 시즌 도중 퇴단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아무래도 아직까지 안정적이지 못한 팀 운영에 미래를 맡기기 어려워서인 듯하다. 2014년에 퓨처스리그 교류전이 전년도 48경기에서 90경기로 대폭 늘어나면서 여건이 조금이나마 나아지는가 했지만 밑에 퇴단자 명단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벌써 중도 탈락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2012년 4월 14일 KBO 소속 구단들이 유예기간을 들어 정영일남윤성의 퓨처스리그 출전을 불허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KBO는 5월 4일 두 선수의 퓨처스리그 출전 불가 결정을 내렸다. KBO에서는 해외파 낙오자들이 원더스를 발판삼아 유예기간을 넘긴다면 에이전트의 탈을 쓴 브로커들이 이를 무기삼아 고교 선수들의 무차별 미국행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김성근 감독은 독립리그 팀에게만 지나치게 제한을 가하는 독소조항이라며 반발했고 KBO가 이 과정에서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두 선수의 예를 든 것에 대해서 지나친 비유라는 비판이 일었다.

해외파 복귀 선수들의 2군 경기 출장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정영일은 어쩔 수 없이 원더스를 떠나 공백기를 거쳐 일본 독립리그에서 반년을 뛰었고(실전 등판은 4경기뿐이었지만), 2014년 신인지명에서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19]

그리고 남윤성도 2013년 3월에 조용히 퇴단했으며 7월에 군에 입대했다.

그 외에 퇴단한 선수들 명단은 아래 참조.

  • 2012년 퇴단
    • 김민수, 김응규, 백승권[20], 박철우[21], 윤지훈, 이경태[22], 이승엽[23], 조용호, 최천수, 허동민[24](2012년 초)
    • 강민욱, 김영수, 김영원, 김진웅[25], 나용훈[26], 서창만, 윤성웅, 최용훈, 최종협, 황필선 (2012년 봄)
    • 김경택, 김상웅, 김민 [27], 랜디 키슬러, 샌디 레알, 안신태, 유세영, 이동호, 이호진, 임태환, 임현국, 채하림[28], 최석, 타일러 럼스덴, 한희준(9월)
  • 2013년 퇴단
    • 박진영, 윤현진[29], 이승주, 최성현(1월)
    • 김경열, 김동영[30], 김민찬, 송일출, 이한별(6월)
    • 정재우[31](8월)
    • 김우재, 이제우, 이충희(9월)
    • 강정민, 김현석, 손명기, 이상훈, 장성희, 정윤혁, 조성원(10월)
    • 최성락(11월)
  • 2014년 퇴단
    • 고바야시 료칸(1월)
    • 금동현(2월)
    • 강진형, 김인성, 박대원, 유형모, 최봉천(3월)
    • 강태훈, 미겔 산플레어, 조나단 알바라데호, 황건주(4월)
    • 로버트 웨이테, 박태균, 이재율(개명 전 이왕기)(5월)
    • 강대진(6월)

11. 명예의 전당

고양 원더스의 창단 취지가 프로무대에서 방출된 선수들의 기량을 키워 프로무대에 복귀시키는 것이었던 만큼, 프로에 복귀·진출한 선수들을 명예의 전당으로 기린다. 물론 이 중에는 프로 경력이 전혀 없는 선수도 있다.(김영관, 강하승, 윤병호, 이원재)

다만 선수들의 프로행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는 신중론도 약하지만 조금씩 제기되고 있다. 프로로 간 선수들이 기회를 제대로 부여받지 못하거나 받더라도 살리지 못한다면 프로로 간 의미가 약해진다는 것. 물론 이들의 대부분이 프로로 아예 가지 못했거나 기존 팀들에서도 2군 급의 선수들이어서 한계를 넘지 못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1군 무대에서 꾸준히 기회를 얻은 선수는 안태영황목치승 2명 뿐이며 이희성, 김영관, 이승재, 송주호 만이 1군 무대를 잠깐 맛보았을 뿐 나머지 선수들은 2군이나 3군에 머물러 있다. 심지어 강하승은 2013시즌이 끝난 뒤 방출되면서 이럴 거면 왜 데려갔느냐는 반응이 나왔을 정도.

고양 원더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10번째 구단인 KT를 제외하고 가장 사람을 많이 보내어 고양 원더스 선수들에 대해 알아보는 구단은 삼성 라이온즈라고 한다. 출처는 2014년 6월 9일 네이버 라디오볼.있는집이 더하다

이름 입단년도 포지션 투타 입단 전 경력 프로 복귀·진출 팀 복귀·진출일시
이희성 2012 투수 좌투좌타 대구고-성균관대-넥센 LG 2012.7.10
김영관 2012 내야수 우투우타 선린인터넷고-한양대 LG 2012.8.21
강하승 2012 외야수 우투우타 진흥고-동국대 KIA 2012.8.22[32]
안태영 2012 외야수 우투좌타 선린인터넷고-삼성 넥센 2012.8.24
홍재용 2012 내야수 우투우타 강릉고-단국대 두산 2012.9.7[33]
김용성 2013 투수 우투우타 덕수정보고-두산 NC 2013.5.31[34]
이승재 2012 포수 우투우타 마산고-경희대-롯데 NC 2013.5.31
윤병호 2012 외야수 우투우타 세광고-대불대(중퇴) NC 2013.5.31
이원재 2012 외야수 우투좌타 청원고-호원대 NC 2013.5.31[35]
송주호 2013 외야수 우투좌타 중앙고-삼성 한화 2013.5.31
김정록 2012 내야수 우투좌타 선린인터넷고-일본 키비국제대 넥센 2013.6.7
오현민 2013 투수 우투우타 선린인터넷고-동국대-경찰-NC KT 2013.9.23
채선관 2013 투수 우투우타 광주일고-한양대-상무 KT 2013.9.23
김종민 2012 포수 우투우타 대전고-단국대-넥센 KT 2013.9.23
황목치승 2013 내야수 우투우타 교토국제고-아세아대 LG 2013.10.2.
오두철 2012 포수 우투우타 교토국제고-오사카대(중퇴)-서울해치 KIA 2013.11.2.
여정호 2013 투수 좌투좌타 개성고-제주한라대-동국대-NC 두산 2013.11.8.
김동호 2013 투수 우투우타 대구고-영남대-한화 삼성 2014.5.5.
김성한 2013 투수 우투우타 인창고-제주산업정보대 삼성 2014.5.5.
최현정 2014 투수 좌투좌타 대전고-두산-넥센 KIA 2014.6.20.
이용욱 2013 외야수 우투좌타 부경고-대불대 삼성 2014.7.2.
김진곤 2013 외야수 우투좌타 동산고-제주산업정보대-SK KT 2014.7.24.

2014년 9월 22일에 롯데 자이언츠가 외야수 이병용과 내야수 안형권을, 넥센 히어로즈가 오무열을, KT 위즈가 김선민을 영입했으나 고양 원더스 해체 이후의 일이므로 명예의 전당에는 표기하지 않는다.어차피 이미 명예의 전당이라는 말은 무색해졌으니

12. 이야깃거리

  • 허민 대표의 첫 회사였던 네오플의 모토가 "We make price""We make wonder"였다. 그리고 허민 대표는 고양 "Wonders"를 만들었다.
  • 2012년 4월 1일에 한명숙 당시 민주통합당 상임선대위원장이 방문했다.



  • 2013년 8월 8일에 전설적 너클볼러 필 니크로[36]가 방문했다. 허민 구단주가 너클볼을 배우기 위해 필 니크로를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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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2시즌을 앞둔 현재 KBO의 공식 입장.
  • [2] 참고로 이는 프로야구 최저연봉선이며 프로축구는 종전 1200만원이었으나 이게 너무나도 적어서 결국 리그 승부조작이 벌어졌다는 비난과 지적이 있자 2400만원으로 올렸다.
  • [3] 2012년말 언북중학교 감독으로 옮겼다.
  • [4] 여담으로 외야수로 선수생활을 시작해 포수와 내야수를 거친 멀티플레이어였다.
  • [5] 1998년 일본 치바 롯데 마린즈에 입단한 것을 시작으로 MLB 산하 트리플 A팀 캘거리 바이퍼즈, 대만리그 슝디 엘리펀츠, 멕시코리그 엔서나나 마린스 등 4개국에서 야구를 한 경험이 있다.
  • [6] 허민 구단주가 기업인으로서의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야구에 대한 열정이 크기 때문에 대놓고 이를 말하지 않을 뿐.
  • [7] 실업팀이라고 해서 한국의 사회인 야구를 생각하지 말자. 프로야구 출범전의 실업 야구를 생각하면 된다.
  • [8] KT는 그 외에도 다른 팀들의 코칭스태프들에게도 접근해 빼가는 시도를 하여 역시 논란을 빚었다. 3월이면 구단들이 정규시즌을 위해 한참 준비하느라 바쁜데 이런 행동은 예의에 어긋난다는 비판들이 크다.관련기사기사 작성자가 영 신뢰하지 못할 인물이라는 것이 좀 변수
  • [9] 김현수는 이영민 타격상 수상겸 청대출신이고 서건창은 광주일고 황금사자기 우승에 일익을 보탰다. 이종욱도 청대 출신에 현대에 2차 2순위로 지명받고 대학을 갔다온 후 입단까지 했다. 조성환처럼 아마때도 별볼일 없다 용된 케이스도 있지만 조성환도 유명세 타기 전에 이미 1군 풀타임 뛰며 3할까지 쳐본 타자였다.
  • [10] 그나마 정성기는 2014년 5월 9일을 마지막으로 퓨처스리그 등판조차 없고 근황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상태이며 류동호는 여전히 신고선수 신분이다.
  • [11] NC와 KT 모두 트라이아웃과는 별개로 신고선수를 다수 영입했으나 1, 2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이들도 대부분 정리되었다.
  • [12] 강성인, 홍남일 트레이닝 코치는 SK의 재활 시스템의 핵심이던 코치들이며 본래는 병원 쪽으로 가려고 했지만 김 감독의 부름을 받고 원더스행을 결정했다.
  • [13] 강민구에서 개명
  • [14] 김재호에서 개명
  • [15] 2012년 초 퇴단했다(군 입대 때문인 듯) 2014년 재입단.
  • [16] 2015년도 신인 2차지명에서 LG 트윈스에 2차 4라운드에 지명되었다. 왜 그 전에는 프로 팀들이 데려가지 않았느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외국에서 고등학교 이상을 나왔기 때문에 규약에 따라 신인 2차지명을 먼져 거쳐야 했기 때문. 황목치승도 이런 이유로 전년도에 2차지명에 응했으나 지명받지 못했고 뒤에 LG가 신고선수로 데려갔던 것이다.
  • [17] 삼성에 있을 때는 투수였다.
  • [18] 2012년 9월 퇴단했다가 2013년 봄에 재입단.
  • [19]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거나 원더스의 훈련강도를 버티지 못하고 나가 떨어졌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신인지명 후 정영일 본인이 '김성근 감독의 훈련량 자체는 버틸만 했지만 경기 출장이 불가능해져서 이대호의 큰형인 이차호 씨의 주선을 통해 일본행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 [20] 송호대 야구부 해체 후 제주관광대 편입
  • [21] 2013년 제주국제대 편입
  • [22] 2012년 강릉영동대 입학
  • [23] 전 두산 외야수 이승엽
  • [24] 2012년 세계사이버대 유급
  • [25] 2012년 말 넥센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가 2013시즌 도중 퇴단.
  • [26] 나용훈은 군복무를 위해서 원더스를 나왔다고 하는데 이전 소속팀이었던 한화와 군복무 후 다시 입단하기로 합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런데 정작 군 입대를 2013년 말에 했다(...)
  • [27] 군 복무를 위해 원더스를 나왔다. 2012년 말 상무 서류전형에는 합격했지만 최종합격에는 실패. 2014년 삼성 라이온즈 신고선수로 입단.
  • [28] 2013년 제주관광대 입학. 현행 대한야구협회 선수등록 규정상 군팀을 제외한 프로팀에 속했던 선수는 다시 아마추어에서 뛸 수 없게 되어 있으나, 협회에서 원더스를 정식 프로팀으로 간주하지 않았기에 대학 입학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 [29] 2014년 인천재능대 입학.
  • [30] 퇴단 후 KT 위즈 트라이아웃에 합격했으나 2014 퓨처스리그 개막 직전 퇴단.
  • [31] 퇴단 후 KT 위즈 트라이아웃에 응했으나 탈락.
  • [32] 2013년 정식으로 KIA 유니폼을 입었으나 시즌 종료 후 방출됐다.
  • [33] 야구 시즌이 거의 다 끝날 쯤에 입단해 정식으로 두산 유니폼을 입는 건 2013 시즌부터.
  • [34] 2013년 11월 22일 실시된 2차 드래프트 때 KT로 이적. 2014년 6월 17일 김건국으로 개명했다.
  • [35] 2014시즌 퓨처스리그 종료 후 선수단에서 제외. 군 입대 여부는 미확인.
  • [36] 부연설명을 하자면 명예의 전당은 당연히 입성한 전설 중의 전설이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너클볼러이다. 너클볼러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300승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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