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유럽연합의 27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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Ελλάδα (그리스어. 엘라다)
Greece (영어)
Griechenland (독일어)
Grecia (에스파냐어, 루마니아어)
Grécia (포르투갈어)
Greqia (알바니아어)
Гърция (불가리아어. Gărtsiya)
Греция (러시아어. Gretsiya)
یونان (페르시아어. Yunan)[1]
Yunanistan (터키어)
اليونان (아랍어. Al-yunan)
希腊 (중국어. Xīlà)
Hy Lạp (베트남어)
Hi-lia̍p (대만어)
ギリシャ (일본어. 기리샤)[2]

Contents

1 개요
1.1 역사
1.2 군사
1.3 경제 위기
1.3.1 그리스는 왜 아픈가?
1.4 국가
1.5 이야깃거리
1.6 그리스에서 주의해야할 문화 및 풍습
1.7 그리스 특유의 미신들
1.8 그리스의 전통복장
1.9 그리스의 음악
1.10 외교관계
1.11 그리스 국적, 출신의 캐릭터

1 개요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6/60/Location_Greece_EU_Europe.png/330px-Location_Greece_EU_Europe.png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e/e4/Greece-CIA_WFB_Map.png

국장 http://www.ngw.nl/int/gri/images/greece.jpg?width=150
공식명칭 그리스 공화국(Η Ελληνική Δημοκρατία)[3]
면적 131,990㎢
인구 1,078만 7,690명 (2011년)
수도 아테네
시간대 UTC +2(서머타임 시행)
정치체제 공화제, 의원내각제
국가원수 대통령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정부수반 수상 (파나기오티스 피크라멘노스)
명목 GDP 3,054억 달러(32위. 2010년 IMF 기준)
PPP GDP 3,180억 달러(37위. 2010년 IMF 기준)
1인당 GDP(명목) 27,302 미국달러
1인당 GDP(PPP) 28,434 미국달러
공용어 그리스어
국교 동방정교회
화폐단위 유로 (€)
실업률 21.7%(2012.1)
국가신용등급 B-(피치), C(무디스), CCC(S&P)

남유럽잔디를 사랑하는 국가. 남유럽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중해에 접해 있다. 모든 유럽 문명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발칸 반도 남쪽 끝의 나라. 수도는 여러모로 유명한 아테네. 국기에 흰색과 푸른색으로 교차된 9개의 가로줄은 '자유냐 죽음이냐'의 그리스어 문장인 'Ελευθερία ή θάνατος'(엘렙쎄리아 이 싸나토스)의 음절 수(9개)를 상징한다.[4]

공식 국명은 '그리스 공화국(Ελληνική Δημοκρατία, 엘리니키 디모크라티아)'이다. 원래 이름은 헬라스이며 기원은 그리스 신화에서 대홍수[5] 이후 살아남은 그리스인의 시조 헬렌(참고로 남자)에서 따왔다. 헬레니즘 문화가 '동방에 전파된 그리스 문화'인데 '그리키즘'이 아니라 헬레니즘인 것은 이런 이유. 한자 가차자로 그리스를 '희랍(希臘)', 그리스어를 '희랍어'라고 하는 것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

그리스라는 이름은 로마인들이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 설치된 아주 강성했던 그리스 식민도시인 '그라이코스'를 보고 그 지역(이탈리아 남부 그리스 식민도시들)을 大 그리스(마그나 그라이키아)라고 불렀는데, 그것이 전체 그리스를 지칭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그 전까지는 라코니아, 아티카, 테살리아, 에페이로스 등등의 아주 많은 지역들을 나눠서 지칭했지만[6], 로마인들이 뭉뚱그려 지칭하기 시작하면서 전체 땅이 그리스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터키와는 서로 앙숙이다. 오죽하면 터키가 EU에 가입하려고 할 때 그리스가 적극적으로 방해할 정도이니까 말이다. 터키의 아르메니아 학살을 가지고 가장 따져드는 것도 그리스이다. 하지만, 나부코 송유관이라든지 터키와 유라시아 자원 영향 확대를 무시할 수 없는 유럽 나라들 사정이라든지 그리스도 러시아의 가스 잠가라 공격에 타격을 받으면서 그들도 언제까지나 터키의 EU가입을 막을지 불투명하다.

화폐 단위는 2002년까지 드라크마를 사용하였다. 그 이전에는 오스만 제국의 악체(akçe), 파라(para)은화를 사용했고, 비잔티움 제국 시절에는 노미스마 금화를 썼다. 드라크마는 - 그리스어로는 드라흐미(Δράχμη) 복수는 드라흐메스(Δράχμες) - 고대시절에 은의 무게를 다는 단위로 사용되던것을 근대 그리스에서 언어정화과정과 더불어 재도입한것. 이전에는 터키의 리라금화와 같이 리라를 화폐단위로 쓰기도했으며 키프로스에서는 2008년까지 키프로스 리라화를 사용했다. 2002년 유로의 도입으로 현재는 유로화가 공용 화폐이다. EU 회원국이면서 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 중 유일하게 미국 사증 면제 프로그램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나라였으나 뒤늦게 가입하였다.

공용어로 그리스어를 사용한다. 알파벳은 수학이나 물리에 등장하는 알파, 베타, 감마, 델타...[7] 물론 그리스 알파벳은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알파벳의 원형인 것이고,[8] 러시아에서 사용하는 키릴 문자 또한 여기에서 기원한다.

올림픽의 발원지이기도 하며, 이런 까닭에 올림픽에서는 개막식에 제일 먼저 입장한다. 하지만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두 번 입장한 적이 있는데, 제일 먼저 입장할 때는 기수만 입장하였고, 개최국 자격으로 맨 마지막에 입장할 때에는 모든 참가 선수들이 입장하였다. 또 올림픽 폐막식에는 언제나 제일 먼저 계양되는 국기 역시 그리스 국기이다(그 다음 순서는 올림픽 개최국의 국기, 마지막 순서가 다음 올림픽 개최국의 국기가 게양된다).

섬이 많고, 그리스에 접한 에게 해는 언제나 푸른 빛깔을 띄는 바다이다.[9] 이 바다에는 유명한 섬인 산토리니, 미코노스, 사모스, 크레타 등의 아름다운 섬들이 있다.

1.1 역사

사실 '그리스'라는 개념은 무척이나 애매하다. 본래 고대 그리스는 다양한 부족들로 이루어진 여러 도시국가들의 연합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란 땅 자체가 산이 많아 교통이 불편하여 도시간의 독립성이 컸던 이유도 있고, 민족 자체가 독립성이 강한 이유도 있었다.

페니키아인과 더불어 타고난 해양민족으로 항상 대립해왔다. 이 대립구도로 인해 후에 지중해 서쪽은 페니키아, 동쪽은 그리스로 양분한다.

고대부터 무역으로 번성했으며 인본주의적인 신화와 철학이 유명하고 그 점이 아니더라도 여러 면에서 고대세계의 선두주자. 국내에도 익히 잘 알려진 인물만 꼽아도 아르키메데스, 유클리드, 피타고라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히포크라테스...많기도 하다.

간단한 컴퓨터를 발명하였으며[10], 기계식 시보 장치, 자동 병기, 동력 장치, 기관총[11], 이동식 탑 등을 만들어 냈고 증기기관[12]을 발명했으나 당시에는 노예 노동력만으로 충분히 놀고먹을 수 있었기에 폐기되었다. 무서운 놈들 또는 노예 노동보다 연비가 나빠서 안 썼다는 말도 있다. 이밖에 증기로 여는 자동문[13]성수 자동판매기[14]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기원전에.

역사는 초기 아카이아계 그리스부터 시작인데, 신화로 널리 알려져 있는 배경이 바로 이 그리스다. 트로이 전쟁의 주체도 아카이아계 그리스인데 재밌는 것은 이 트로이 전쟁으로 인하여 국력이 쇠퇴했고, 이 때문에 북쪽에서 온 도리아인들을 막지 못해 대부분의 폴리스들이 멸망했다. 사실 신화에 나오는 스파르타와 역사에 나오는 스파르타가 다르다. 역사의 스파르타는 도리아계에 의하여 뒤집힌 스파르타다. 참고로 이 격변에서 유일하게 아테네만 살아남아 아카이아계 폴리스로 명맥을 유지한다.

최근에는 도리아인들의 남하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청동기 시대 도시들간의 반목, 가뭄, 질병, 지진 등이 청동기 시대 도시들이 더 막장으로 치닫게 되는 원인이라는 설이 더 유력시되고 있다.

이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대두로 델로스 동맹이 형성되고, 괜히 건드렸다가 페르시아에게 멸망할 뻔한 페르시아 전쟁에서 이 델로스 동맹을 중심으로 필사적으로 개겨서 살아남는다. 이것은 최초로 그리스 폴리스의 연합작전이었고, 최후의 폴리스 연합작전이었다. 하지만 페르시아 전쟁 이후 아테네는 역으로 이를 기회로 삼아 에게해 일대에 자신들의 제국을 만들어 전성기를 누리나, 이를 고깝게 여긴 스파르타와 이를 중심으로 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난다. 전쟁 과정에서 지도자였던 페리클레스가 사망하고, 중우정치로 몰아가기 시작하면서 막장화, 결국 펠로폰네소스 동맹에게 패한다. 아테네는 맹주 스파르타의 휘하에 들어가고 스파르타는 그동안 아테네의 뒷공론에 대한 보답으로 아테네에 귀족정을 세워버렸지만, 딱 1년만에 아테네는 복귀하고, 스파르타가 자신들을 푸대접한다 여긴 기존의 스파르타 동맹국(테베, 코린토스. 여기에 적국이었던 아르고스 포함)들과 힘을 합처 다시 들고 일어난다. 스파르타는 이들을 제압하고 그리스 전체를 휘어잡을 힘이 없었고, 테베의 사선밀집진형에 완전히 발려버리면서 멸망한다. 하지만 테베 역시 그 능력이 달리는 것은 마찬가지라서 결국 내전의 길로 접어든다.

그리고 북쪽에서 바르바로이라 멸시당하던 마케도니아[15]냅더적하고 날름 그리스를 먹어버린다.

이후 그리스 역사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끌던 마케도니아를 따라서 헬레니즘의 원류가 된다. 이후 알렉산드로스 제국은 디아도코이 전쟁으로 분열하여 아시아의 셀레우코스 왕조, 그리스-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왕조, 이집트프톨레마이오스 왕조로 나뉘었다. 이 때부터 로마의 이집트 정복까지를 헬레니즘 시대라고 한다. 그 뒤로 본토는 마케도니아에 속하게 되었고, 알렉산드로스와 그 후계자들에 의해 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의 그리스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당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이집트는 헬레니즘의 중심지로 영화를 누렸으며, 수도 알렉산드리아는 그 부와 높은 학문적 명성으로 유명했다. 이후 헬레니즘 세계는 서방을 재패하고 부유한 동방에 침을 흘리는 로마 손에 의하여 먼저 본토가 병합된 후,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 여왕이 지배하던 이집트 또한 로마에 병합되면서 헬레니즘 시대는 종말을 고한다.

이후 역사는 로마 제국의 일부일 뿐. 그리스 본토의 문화와 학문은 여전히 선진적이었지만, 본토는 전략적으로는 그다지 중요한 땅은 아니었다. 본토보다는 오히려 그리스화한 시리아와 이집트가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였다. 또한 기독교 발흥 이후에는 유대인들 이외에 최초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그리스인이기도 하다.

로마의 멸망 이후에는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로 동방정교회의 중심지로서 영화를 누렸다.[16] 사실상 비잔티움 제국의 정체성은 "중세 그리스 제국"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제국의 공용어 또한 그리스어였으며, 비잔티움의 근거지인 트라키아, 마케도니아, 소아시아(지금은 터키와 다른 나라들의 영토)는 고대부터 그리스화가 완전히 이루어진 그리스 지역이었다. 그러나 비잔티움 제국은 국내의 봉건화로 인한 재정 적자와 중앙권력의 약화, 셀주크 왕조와의 대결, 세르비아불가리아의 득세, 기타 온갖 잡부족의 침입 등에 시달리다가 제4차 십자군 전쟁에서 십자군에게 콘스탄티노플이 털리는 사태를 맞으면서 나라가 기울었다. 이후 트레비존드 제국, 니케아 제국 등으로 쪼개졌고, 1261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복함으로써 잠깐 살아났다. 그러나 이후 세 세대에 걸친 내전과 오스만 제국의 발흥, 발칸 반도의 어지러운 정세에 맞물려 세력이 쇠하였다. 결국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면서 전 그리스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는 동안 그리스인들은 제국 최고의 골치거리로 악명을 떨쳤고, 오스만 제국의 그리스 통치 또한 가혹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오스만 투르크를 관대한 이민족 정책의 선구자[17] 정도로 보고 있지만, 사실 오스만 투르크는 철저한 착취와 피지배 민족간의 반목 도모로 피지배 민족들을 지배했다. 여기서 그리스 정교회는 그리스인뿐만 아닌 다른 정교회를 믿는 민족들까지 책임지고 오스만 제국에 충성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맡았다. 훗날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등 다른 민족들이 그리스어를 버리고 각자 민족어를 사용하게 된 것도 바로 이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 오늘날 발칸 반도의 분쟁의 뿌리도 사실 알고보면 오스만 제국 시대의 민족정책이 큰 원인이다. - 피지배 민족 간 반목을 유도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들이 정체성을 유지하고 살아남았다는 것이 옳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찌되었건 오스만 제국은 게토를 만들어 그리스인들을 집단 거주시켰고, 그리스인에 대한 대우는 노예 바로 다음이었다. 그리스인들이 공식적 자리에서 기독교를 믿는 행위를 하면 그 자리에서 처형당했다.[18] 그리스인들이 살아남은 이유는 오스만 제국의 관대한 통치 덕이 아니라, 오랜 전통에 따른 확고한 정체성과 타고난 상업적 재능 덕분이었다. 실제로 그리스인들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들을 보면 다수가 오스만 제정에 의해 폐위, 처형, 감금, 신체 절단 등의 형벌을 밥 먹듯 당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17세기 이후 서방국가와의 외교교섭 등에 그리스인들이 많이 필요해지면서 오스만 제정은 기독교도인 그리스인들을 관료직에 쓸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파나리오티스(Φαναριότης)'라는 이름의 관료집단이 형성되었다.[19] 그리스 독립을 비밀리에 지원하는 등의 활동도 하였으나 오스만 제국의 민족간 불화 정책[20]에 따라 불가리아세르비아인들과는 반목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이 막장화되기 시작하자 1821년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며 이듬해 1월 독립선언과 함께 독립전쟁을 시작했다. 다민족 국가였던 오스트리아는 그리스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으며 주변국을 압박하였으나 당시 그리스인 학살로 국내여론이 굉장히 시끄러웠던 영국러시아, 프랑스를 움직여 1827년 나바리노 해전에서 오스만 제국해군을 박살내버리면서 1830년 결국 독립하였다.

그러나 독립을 강대국들이 거저 시켜준 게 아니었다. 크레타 섬을 비롯한 여러 섬은 영국 및 다른 나라들에게 빼앗겼으며, 또한 많은 항구 이용권리를 넘겨줬고, 독립 이후 강대국들의 임시 신탁 통치로 3년동안 지배받다가(한국과 비슷하다) 1833년 그리스와 전혀 무관한 독일인 오토 1세가 겨우 18살 나이로 국왕에 올랐다. 이 또한 강대국들이 독립 조건으로 마음대로 앉힌 국왕이었으나 아무런 불만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골수 가톨릭인 오토 1세와 정교회가 대다수인 그리스인들은 시작부터 갈등을 빚었고 오토 1세는 그리스어를 전혀 하지못해 통역을 통해 이야길 들어야 했다.

오랜 갈등 끝에 오토 1세는 후계자는 정교회 신자에게 물려준다는 양보를 해야했으나, 그 뒤로도 많은 갈등을 일으켜 왕당파 및 비왕당파 민주 세력의 갈등은 오랫동안 그리스를 어지럽혔다. 거기에 백성들에게 인기가 없던 오토 1세는 유달리 '비잔티움 고토의 회복'을 표방하며 크레타섬과 과거 비잔티움 영토를 두고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일으켰다. 그런데 하필이면 크림 전쟁 당시 영국, 프랑스와 손잡고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는 오스만 제국 뒤통수를 치려다가 분노한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의 대대적 공격으로 그리스 여러 곳이 점령되어 많은 사상자를 내고 휴전과 같이 양국에 막대한 보상금 및 여러 굴욕적인 조건을 들어줘야 했다.

결정적으로 이탈리아 독립전쟁 당시 오스트리아(오토 1세 고향이 오스트리아였고 오스트리아에 많은 지인들이 살았기에 친오스트리아 정책을 취했다)를 돕다가 패배하면서 그리스는 또 많은 피해를 겪어야 했고, 결국 1862년 혁명을 일으켜 오토 1세를 퇴위시켜 추방했다.

하지만 차기 국왕을 두고 여러 갈등 끝에 이번에도 그리스와 무관한 덴마크인 왕족 빌렘이 겨우 17살 나이로 새로운 왕으로 제위하게 된다(게오르기스 1세). 이 또한 영국·프랑스·러시아에 의한 강압적인 조치였기에 그리스는 그냥 외국인 왕족을 왕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거기에 덴마크 출신의 귀족 스폰네크 백작이 왕이 어린 탓에 섭정으로 와서 그리스를 마음껏 지배했으며 이번에는 개신교 종파 중 하나인 루터복음교 골수 신도인 스폰네크의 강압 정책으로 정교회와 또다른 갈등을 일으킨다. 그나마 게오르기스 1세가 결혼하면서 아들(콘스탄티노스 1세)을 얻고 스폰네크를 추방하면서 안정을 되찾게 된다. 우선 게오르기스 1세는 정교회를 믿었으며 입헌 정책으로 그리스계의 입지를 많이 생각해주는 정책을 취하여 비로소 백성들의 믿음을 얻게된다.

그런데 게오르기스 1세 시대에 세르비아, 불가리아가 독립하면서 마케도니아 지배권 및 영토분쟁으로 그리스 및 오스만 제국 서로가 계속해서 마찰을 빚다가 2번의 발칸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국왕 콘스탄티노스 1세가 친독 정책을 취하다가 연합국의 강압으로 퇴위하여 둘째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1세가 제위하여 친연합정책으로 연합군에 참전하여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이즈미르 지역을 빼앗았으며 당시 오스만 제국 및 독일 제국과 손잡은 불가리아로부터도 트라케 지역을 손에 넣게 된다.

그러나 이걸로 만족하지 못하고, 쫓겨난 왕 콘스탄티노스 1세와 국왕 알렉산드로스 1세 및 큰 아들 게오르기스 2세와도 갈등을 빚을 때 1920년 거짓말같이 국왕 알렉산드로스 1세가 기르던 원숭이에게 물린 상처가 덧나 갑자기 죽는 일이 벌어졌다. 암살이란 주장으로 엄밀한 조사가 이뤄졌으나 조사 결과는 자연스러운 패혈증이었다. 결국 다시 콘스탄티노스 1세가 제위하면서 그는 떨어진 인기를 만회하기 위하여 무리하게 아나톨리아에 쳐들어갔다가 무스타파 케말이 이끄는 터키군에게 참패를 당하고 빼앗은 이즈미르를 비롯한 1차대전으로 이겨서 얻은 땅 대다수를 잃고 물러나 결국 국왕이 비난 속에 퇴위하여 큰 아들 게오르기스 1세가 자리를 이어받는다.

이 당시 그리스가 트라브존과 여러 곳에서 벌인 학살이 국제적으로 욕을 먹으면서 비난을 받았으며 터키 안에 살던 150만이 넘는 그리스인들은 추방당해서 그리스로 와야 했는데 또 이들이 그리스 안에서 골치가 되었다. 그리스인이지만 오랫동안 터키에 살았고 말투와 여러가지가 낯설었기에 이들이 차별을 받으면서 나중에 반정부세력을 이뤄 내전에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1936년에는 얀니스 메탁사스(Ιωάννης Μεταξάς)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국왕을 허수아비로 앉혀놓았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세기의 막장군대 이탈리아군의 침공을 간단히 물리치고 이탈리아가 지배하던 알바니아까지 역습하면서 영토 확장(이 덕분에 알바니아와 원수지간이 된다)을 꿈꿨으나 독일의 참전으로 금방 발려서 점령당했다. 전쟁 막바지로 넘어가면서 왕당파와 공화파, 군부와 공산 게릴라 사이의 충돌로 거의 내전 상태가 되어버렸고, 공산주의 세력 확대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이 개입하여 겨우 왕당파가 승리하였다.

그러나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왕정은 1967년 요르고스 파파도풀로스( Γεώργιος Παπαδόπουλος) 장군을 주축으로한 군부 쿠데타로 무너져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1968년부터 1973년까지 그리스는 이른바 '대령들의 7년'이라는 군사독재를 겪었는데, 당시 미국은 '반공 성향'인 군사독재정부를 뒤에서 지원했다. 이마저도 국정불안과 사람들 반발, 이를 마구잡이로 막는 독재화를 겪다가 1974년 터키와의 키프로스 분쟁 당시 패하면서 정권을 내놓고 공화국으로 재탄생되었다.[21]

이 이후로 그리스에서는 이스탄불행 항공편이 없다고 한다. 대신 콘스탄티노플행 항공편이 있다. 그 밖에 이즈미르나 트라브존 같은 터키 이름을 쓰지않고 자기들 이름으로 쓴다.

참고로 2000년대 와서 30여년동안 해외 망명해있던 전 국왕 콘스탄티노스 2세가 다시 왕위를 노린다고 나서서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1.2 군사

1.3 경제 위기

찬란한 문화유산을 가진 나라이지만 그리스는 그밖에 다른 산업이 없다고 해도 된다. 과거 세계적 규모를 자랑하던 무역이나 해운업은 꽤 빛을 잃었고, 침체된 경제로 인해 서유럽에서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았으며 이를 타파하고자 추진했던 2004 아테네 올림픽은 상징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개최과정에 벌어진 각종 문제와 테러위협으로 시끄러웠고, 그나마도 적자를 기록한데다 때마침 터진 대규모 산불로 국토를 상당부분 손실하는 피해를 겪었다.

한때나마 발달한 해운업과 관광으로 그럭저럭 기본빵은 하며 발칸 국가와의 교역 증대로 국민소득이 3만불에 육박하기도 했으나 회복세는 일시적인 현상이었고, 나라 사정은 점차 나빠지고 있다. EU 평균의 두 배가 넘는 실업률에, 젊은이들은 이른바 700유로 세대(Η γενιά των εφτακόσια ευρώ - 이 예니아 똔 엡따꼬시아 에브로)라 불리며 저임금 문제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겪고 있다. 덕분에 사회불안으로 인한 과격 시위가 자주 발생하고 있으며, 2008년 12월 6일 경찰이 발포한 총에 15세 소년이 사망하면서 촉발된 시위는 특히 심각했다. 거리가 거의 분쟁지역 수준으로 파손된 곳이 속출하자, 총리가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내무장관이 사임하는 엄청난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공직자 몇명 교체한다고 근본적인 경제위기가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결국 당시 시위 이후 2년만에 그리스는 EU 전체를 붕괴시킬지도 모르는 암적 존재로 지목되기에 이르렀다. EU는 그리스를 살리기 위한 자금지원책 마련에 고심했고[22], 그리스 정부는 세계 각국에 자국 국채 매입을 희망했다. 그게 여의치 않아 중국에까지 요청했지만, 중국은 그리스 최대 민간은행인 그리스 국민은행(NBG)의 주요 지분 확보를 조건으로 내걸었고 이 때문에 수포로 돌아갔다. 왠지 쌍용자동차가 떠오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어.

결국 버티지 못한 그리스 정부는 2010년 5월 7일, IMF의 구제금융을 받아들이기 위한 재정긴축정책을 의회에서 의결해 다음달에 통과시켰다. EU는 환호했지만(…) 국민들은 정부가 시민들에게 고통을 떠넘긴다며 또다시 분노했고, 시위대에 반역의 개가 등장했으며 그나마 시위를 무릅쓰며 추진하던 그리스 정부의 긴축정책은 1년만에 참담한 실패로 끝나며 GG쳤다.

그리스의 상황은 성장하라는 경제는 안 성장하고 EU의 암에서 전세계 경제를 날려버릴 핵폭탄으로 성장해 버렸다. 사실상 그리스는 유로존 국가들의 산소호흡기 덕분에 생명연장을 하는 상황이며(하지만 주변 가입국들은 그리스를 버리고 싶어한다, 국민투표도 검토 중), 그리스 디폴트 선언을 어떻게든 막기 위해 국채매입을 거부한 중국까지 개입했으나 깜깜한 앞날에 손털고 나와버렸다.

점점 커지는 그리스의 부채에 괴로운 건 국제 금융시장과 그리스의 국민들이다. 심지어 이런 음모론도 돌고 있다.

결국 2011년 10월 EU가 부채의 50%를 탕감해주고 2차 금융 지원을 하기로 결정되었지만, 그리스 국민들은 EU의 수장인 독일메르켈 총리를 나치라 비난하는 등, 거세게 반발 하고 있다. 이는 금융 지원에 필연적으로 따라 붙게 되는 긴축 요구 때문이다.# 그리스인의 58%가 이 긴축안에 반대하고 있으며 대통령과 관료들은 반역자라고 불리고 있다고 한다(...). 증세불복 시민운동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심지어 이 운동엔 일부 공무원까지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2011년 11월에 들어서자마자 그리스 정부는 유로존 탈퇴 및 디폴트 선언에 대한 국민투표를 진행하겠다'고 나섰다.# 이판사판 같이 추락하자 이거지 그리스 국민 대다수의 여론은 디폴트 선언을 요구하고 있다고, 이렇게 될 경우 유로존은 그야말로 안드로메다 저 멀리 갈 공산이 커지고 그리스는 말 그대로 파르테논 신전같은 돌덩어리 빼고는 국내 외 자산을 죄다 털리게 된다. 어쩌면 파르테논 신전 기둥도 가져갈지도 당장 유럽증시는 그야말로 '으아아아~내려간다~!'를 외치고 있으며 미국이나 아시아 증시의 하락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돌발 상황에 전 세계 주식이나 금융쪽에 관련된 투자자나 종사자는 죄다 그리스를 욕하는 상황.

일부 몇몇 사람들은 경제위기에 시달리는 그리스를 보고는 멕시코아르헨티나, 우루과이 같이 예전에 국내 경제위기로 인해 경제적으로 망한적이 있었던 몆몆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처럼 그리스도 파산을 선언 하거나 한번 망하고 다시 새로 시작하는게 낫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하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 국가들은 석유나 천연가스,석탄,은,철광석,구리등의 지하자원들도 있었고 국내적으로 망해도 자급자족도 가능한 나라들이었다.거기다 어느정도 경제력도 있었지만 현재의 그리스는 경제력도 취약한데다 지하자원도 빈약하고[23] 구제 금융이라도 받지 않고는 기사회생 할 수 없는 위험한 상태다.[24]거기다 파산을 선언할 경우 다른 유로존내 재정위기 국가들도 동요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25]또한 이들 국가들은 자국 화폐를 가지고 있어 화폐 금리를 낮추고 올리고 하는 화폐 절상,절하가 가능하지만 그리스는 현재 유로화,유로존에 경제적으로 종속되다시피한 상황이어서 이 마져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결국 프랑스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긴축안 없이는 단 한푼도 지원해 줄 수 없다고 사실상의 최후 통첩을 날렸다.# 유로존 각국 정상들도 대체로 비슷한 의견.#

2011년 11월 3일, 그리스는 국민투표일이 12월 4일(한국시간 12월 5일)이라고 고시했다. 2012년이 되기 전에 알아서 멸망해 주겠다는 그리스의 배려 그리고, 같은 날 유럽연합에서는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 80억 유로송금을 취소했다.

구제금융 송금 취소라는 협박에 가까운 권고 이후에야 국민 투표는 무산되었고, 현 그리스 총리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가 연립정권 수립 이후 퇴진을 조건으로 연임에 성공했다. 이러한 국민투표를 강행하려던 의도는 경제 위기 초래의 책임과 이후의 강도 높은 경제 긴축에 대해 여야 및 국민과의 연대책임을 강요하려던 것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사실 그리스의 경제위기 사태는 그리스의 주된 사업이었던 해운업 등의 악재로부터 서서히 찾아왔다고 볼 수 있으나 1980년대에 등장한 사회당의 존재도 그리스의 여러가지 악재와 더불어 그리스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갔다고 볼 수 있다.

사회당은 그리스 경제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던 1980년대에 등장을 했는데. 이때 각종 복지정책을 내세우며 민중의 압도적인 지지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복지부분에 큰 힘을 쓰게 된다.

하지만 그리스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1980년대 이후, 동아시아 시장에 많은 것을 빼앗기게 되면서 점차 사그라들었고 그리스의 많은 국민들이 관광업에 종사하게 되면서 사회당의 복지정책은 오히려 그리스 경제에 독이 되었다.

국민의 약 10%에 가까운 수가 공무원에 종사하고 있으나 그리스 정부는 법상 공무원들을 해고할 수가 없다. 또한 그리스라는 국가의 특성상 연금에 대한 대비가 철저하다고는 하나 공무원의 노동력에 비해서 턱없이 높은 '연금 수준'과 그와 함께 엄청난 수를 기록하는 '공무원'은 그리스 정부에게 큰 독이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 그리스 위기론에 그리스 정부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으로 극적인 상황 타개를 노렸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고 그리스의 경제는 점차 악화 된다.

최근 국내 상황이 묘하게 그리스와 비교를 해야하는 상황이 찾아오면서 여야를 비롯해서 많은 언론들이 그리스가 복지부분 때문에 망했다와 안 망했다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때문에 그리스 항목에 대한 판단은 개인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1980년대부터 이루어진 그리스의 복지부분 확대는 그리스 위기론이 본격적으로 실체화를 들어낸 시점까지도 축소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 위기의 해결을 위해 그리스 정부는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데, 이중엔 대규모 부동산 매각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스 국유지의 3분의 1 가량이 매물로 나와 있을 정도이다.

2012년 5월, 실업률이 사상 최악을 기록했다. 특히, 15∼24세 청년층의 실업률은 무려 54%. #

비슷한 시기 그리스에서 활동하는 영국 회사들이 벌어들인 돈을 모두 본국으로 송환하기 시작하였다. 원래부터 송환했지만 다른 점은 이제는 무려 매 저녁마다("every evening.") 보낸다는 것. 여기에는 그리스 이동통신시장 점유율 30%에 달하는 보다폰도 포함되어 있고.. 우리나라로 치면 KT가 설비투자는 커녕 번 돈을 모두 보낸다고 생각하면 ㅎㄷㄷ하다. 세계 2위 제약사인 글락소는 아예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에 남아 있는 현금이 없다고 발표하였다. 상황이 여기까지 왔다는건 현재 유럽에선 그리스가 무너진다면 정말 하룻밤 사이에 무너질거라고 예상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1.3.1 그리스는 왜 아픈가?

그 원인을 꼽자면 유로 가입시 부채문제[26]와 정부의 무능으로 인한 재정정책의 실패(공공부문을 포함한 거대한 지출)과 정부부패가 원인이다.

또한 아래에 국민성 파트에 서술되어 있다시피 생산성의 부재(일하는 시간은 유로존에서 많은편에 속하는데 생산성은 최하치를 찍는다), 생산성의 저하는 설렁 설렁 문화 및 공무원의 범람(선심성으로 공무원은 많이 뽑는데 공무원 해고는 100년 전 법에 의해 불가능하다)이 문제로 큰 정부, 작은 정부 차원이 아닌 누가 봐도 필요없는 공무원 숫자가 너무 많다.[27]

앞서 서술되었든 해운업, 농업, 관광업이 주산업이었던 그리스는 1980년대까지는 버틸 수 있었다.[28]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와서 이 해운업이 아시아 국가들에게 밀리기 시작하고 임금상승과 물가 때문에 제3국으로 이전하면서 나머지 산업인 농업과 관광업에 경제비중이 쏠리기 시작한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보수정당이 집권하면서 금융산업을 내걸지만 이마저 실패, 엎친데 덮친격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까지 작용했다. 돌아온 건 물가상승률과 높은 실업률이었다. 상황을 더 최악으로 만든건 정치가들도 한몫을 하는데, 나날이 늘어만 가는 부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손가락만 빨면서 완전히 유로존에 자국 문제를 일임해 버렸다.

뒤늦게 긴축정책을 펴려고 해 봤자 위에 서술된 거대한 공공부문이 교묘하게 '시민 세력'에 들어가 절대 반대를 외친다. 현재 그리스의 어느 계층이든 자신이 질 책임이나 치뤄야 할 희생 따위 안중에 없는 듯 하다. 총체적 카오스.

이런 노래도 등장했다. 민요풍으로 만들어진 노래로 EU국가들의 욕심과 그리스의 경제위기에 대해선 전혀 책임지려하지 않는 정치권과 부자들에 대한 분노를 담은 노래다. 그리스어로된 리플들도 이 노래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다.



2011년 한국에선 무상급식 논란의 여파로 그리스의 복지정책이 도마에 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엄밀히 따져 둘을 평행선에 놓고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규모 자체도 비교가 안 되는데다가 그리스의 경우 OECD 평균(GDP 19.3%)을 넘은 복지 지출(21.3%)에 정책 실패와 정부의 무능, 광범위한 부패가 더해졌기 때문이다.[29]

1.4 국가

그리스의 국가는 자유의 찬가(Ύμνος εις την Ελευθερίαν)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독립전쟁시기에 지어진 곡으로, 무척이나 비장하다. 터키의 독립행진곡과 비교되는데, 둘다 서로의 침공에 저항을 위해서 애국심을 고취시키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노래이기 때문에 장난 아니다! 158절이나 되는 것도 더더욱 장난아니다

특히 그리스가 1896년 올림픽 개최국 및 올림픽의 발상지이기 때문에 매번 동계와 하계 올림픽 폐막식에서 행하는 올림픽 주최국 및 차기 개최국 국기 게양식 때 그리스 국기 게양과 함께 그리스 국가가 연주된다.[30]


Ύμνος εις την Ελευθερίαν
Διονύσιος Σολωμός / Νικόλαος Χαλικιόπουλος Μάντζαρος

Σε γνωρίζω από την κόψη
του σπαθιού την τρομερή,
σε γνωρίζω από την όψη
που με βία μετράει τη γη.

Απ' τα κόκαλα βγαλμένη
των Ελλήνων τα ιερά,
και σαν πρώτα ανδρειωμένη,
χαίρε, ω χαίρε, Ελευθεριά!

나는 알아보노라 그대를
그대가 들고있는 굳건한 검의 날로부터,
나는 알아보노라 그대의 광채를
지구를 내려다보는 그대의 권능을.

성스러운 전장에서 되살아나는
오래전에 사망한 조상들처럼, 그리스인들이여
과거와 같이 용감하라,
만세, 오 만세, 자유여!

1.5 이야깃거리

축구농구에 환장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새벽에도 축구한다. 리그인 수페르리가 엘라다는 중상위급으로 인정받긴 하지만 국대 축구팀은 그다지 특출한 면을 보여주지 못했다. 1994 미국 월드컵에 처음으로 나왔으나 3전전패 0득점 10실점으로 조 꼴지로 탈락했다. 그런 그리스였기에 2004년 포르투갈 유로컵 우승은 세계적인 이변이었으나 한 때의 꿈이 되어버렸다. 2010년 역대 2번째로 진출한 월드컵에선 나이지리아를 2:1로 이기며 첫 월드컵 승을 거뒀지만 한국과 아르헨티나에게 2:0으로 졌고 한국 1승 겸 16강 제물이 되어버리면서 유로컵 우승의 영웅 오토 레하겔 감독이 사임했다.

자국 리그에서 올림피아코스파나티나이코스아테네가 오랫동안 리그 우승을 다투고 있다. 이 중에서도 올림피아코스의 인기가 절대적이라 그리스 인구 절반은 여길 응원한다고 한다. 2010~11년 시즌에서도 우승했다. 파나티나이코스는 70~71시즌 유러피언컵(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우승은 AFC 아약스가 2:0승)까지 거두면서 리그 최고 클럽대회성적을 가지고 있다.

농구에선 꽤 유럽 강호이다. 비록 러시아나 스페인, 세르비아 같은 강호에게 좀 밀려있긴 해도 유럽 농구 상위권 강호로서 라이벌인 터키에겐 농구에선 좀 더 알아준다. 리그도 엄청나서 2009년에는 NBA 현역 스타인 조쉬 칠드러스를 거액으로 스카웃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경제적 위기로 몸값이 비싼 해외 선수들은 돌려보내야 했다.

종교로는 정교회가 인구 90% 이상을 차지하며, 소수 이슬람인들도 살고 있다. 터키에겐 국부인 아타튀르크가 태어난 집이 그리스에 있어서 터키 정부 협조로 보호받고 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믿는 종교도 있다. 자기들이야말로 그리스인들의 신이자, 그리스인들의 종교라고 자부하는 이들인데, 예전에는 그리스 정교회 측이 겉으로는 이단시하면서도 과거 찬란한 그리스 시대를 떨칠 수 없기에 꾸준히 존재하도록 방치해왔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신들중에서 동방정교회의 성인으로 은근슬쩍 끼어든 이들도 있다. 가령 성 일리아스(Ο Άγιος Ηλίας)는 이름부터가 '태양'을 뜻하는 그리스어 Ηλίος(일리오스)에서 파생되었다. 일리오스는 곧 태양신 '헬리오스'를 의미한다. 성인들의 이름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는데, 성 디미트리오스(Ο Άγιος Δημήτριος - 고대발음은 '데메트리오스')는 '데메테르', 성 디오니시오스(Ο Άγιος Δύονισιος)는 '디오니소스'신과 관련이있다. 이외에 '아폴로니오스(-> 아폴론)', '이라클리오스(-> 헤라클레스)'같은 이름들도 여전히 쓰이고 있다. 일부 성인들은 고대신의 속성까지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가령 산타클로스로 잘 알려진 '성 니콜라스(Ο Άγιος Νικόλας)'의 경우 헤르메스신의 속성을 그대로 가져와서 어린이, 상인, 여행자, 도둑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이웃한 마케도니아와는 그 명칭부터 시작해서 영토문제로 정말 시끄럽게 싸우고 있다.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지금 고구려 땅에 항상 치고박았던 중국인들이 "고구려"라는 나라를 세운 것과 비슷하다. 게다가 지금의 마케도니아인은 당시 마케도니아인들과는 전혀 다른 남슬라브족이라 그렇다.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불가리아어와 의사소통이 될 정도로 가까운 언어이다.

컴퓨터 게임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었는데 다른 EU 국가들이 시끄럽게 구는 바람에 결국 금지가 풀렸다고 한다. 흠좀무. 근데 이거 웃어 넘길일이 아닌게, 국내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터키를 골초 나라고 비웃지만 정작 자신들은 터키 이상으로 골초 나라로 알아주며 폐암 발병률은 터키를 압도할 정도이다. 이를 두고 터키는 자신들이 유제품을 많이 먹어서 그리스보단 덜하다고 여기는데 자세한 건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터키와 같이 고양이/길고양이들에게 천국인 나라로도 꽤 유명하다.

한국전쟁UN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당연히 대한민국 정부는 휴전 후 최우선 수교대상국으로 지정. 1949년 합법정부 승인. 1961년 수교. 한국전쟁 때는 철천지 원수인 터키도 대한민국 정부를 도우러 왔는데, 어찌 보면 같이 싸운 셈(...)

충격과 공포스럽게도, 어떤 한국 대통령은 이 나라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리스 요리는 건강식으로써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허나, 아주 제대로 된 그리스 음식은 한국의 과메기, 홍어, 청국장과 같이 매우 토속적인 향이 강해서 멋모르고 시켰다가는 큰 낭패를 겪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식 요구르트는 매우 시다. 물론 정통으로 옛날방식으로 만든 요구르트는 일반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 파는 것 보다 보통 다 시지만, 이건 그 정도를 넘어 이 걸 읽는 위키러가 상상하는 이상의 맛.[31] 또한 주식(!)인 절임 올리브, 페타 치즈같은 치즈류 역시 겁나게 짜면서 시다.[32]

사실인즉슨, 위에 언급한대로 그리스는 육식위주의 식단이라 기름이 질질 흐른다.[33] 그런 기름기진 텁텁한 입 맛을 신 맛으로 중화시키기 위한 것. 우리가 고기를 먹을 때 기름기를 중화시킬려고 김치를 먹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고기(양, 닭등등)요리를 내놓을 때 거의 반드시 피타빵, 올리브, 페타 치즈 그리고 신선한 야채가 섞인 샐러드를 같이 내놓는다.
여기서 걸작인 건 아까 언급한 신 요구르트에 고기를 발라 먹는 건데악!내혀퇴갤 의외로 둘이 궁합이 잘맞아서 맛이 괜찮다. 이 걸 피타빵에 올리브, 치즈, 신선한 야채류를 얹어 먹으면 그리스의 패스트 푸드 기로스케밥완성.[34]

그리스 본토에서 가 볼만 한 곳은 아테네[35]정도이고 나머지는 그냥 한적한 섬만 있는줄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리스는 나라 전체가 유적 투성이이다. 당장 아테네 주변인 아티키 지방만 해도, 땅 전체크기는 서울시와 인천을 합친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테세우스와 검은 돛단배의 신화가 내려오는 수니온 곷의 포세이돈 신전과, 지금은 아테네시의 통근권이 된 살라미스 섬과 오늘날까지 옛 분위기가 남아있는 에기나, 이드라 섬이 있고, 그리스 제2의 도시인 테살로니키, 크레타섬, 산토리니 섬과 미코노스 섬, 낙소스 섬 등 키클라데스 제도와 중세 십자군의 흔적이 남아있는 로도스 섬, 신비로운 분위기의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메테오라 등등 가볼만한 곳이 상당히 많다. 에게해의 많은 섬들 가운데 한국에 제일 널리 알려진 섬은 산토리니 섬[36], 그외에도 수백개의 섬들이 있고, 그 섬들을 돌아다니는 페리 여행, 또는 지중해 크루즈 여행 등이 있지만, 가서 볼만 한 것은 몇몇 섬들에 있는 유적지, 광고에 나온 흰 집, 바닷가 풍경 정도이다. 사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몇개의 섬들을 제외하면 그냥 한마디로 어촌이다. 하지만 유럽에서 온 휴가객들은 이런 어촌들을 오히려 선호한다. 물가도 싸고, 사람들이 매우 친절하기 때문이라고. 특히 신혼여행객들이 그리스를 자주 찾는데 에게해의 석양을 바라보면서 결혼식을 올리는 낭만적인 경험도 할 수 있다.

위의 국가항목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리스인과 터키인은 세계에서 알아주는 앙숙관계다. 괜히 그리스 사람 앞에서 터키 이야기해서 신경 건들지 말 것. 오랫동안 터키의 지배를 받아서인지 터키와 터키인에 대해 생각 이상으로 적개심이 크다. 최근 키프로스 내전으로도 한바탕 붙은 적이 있기 때문에 양측 정부가 화해를 위해 노력한다고는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반응은 글쎄...

그러나 국제적으로 워낙 터키에 대한 것으로 더 알아주기 때문에(사실, 터키 식민지로서 그리스 문화들이 남은 게 많다) 케밥에서 여러 음식까지도 그리스는 자기들 이름으로 따로 부른다. 유럽에서도 그 이름에 대하여 낯설어하는 게 불만일 듯.[37]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이나 유럽이 터키에게 관심을 집중하면서 그리스 불만이 커지고 있다. 미국에겐 이스라엘 생명줄인 물과 에너지 자원에 영향이 크며 이라크 및 아랍 전진기지로 지리적 중요성이 크면서 석유와 가스자원 개척지 격인 유라시아 이슬람 나라들에게 형님 격인 터키를 신경쓸 이유가 커진 반면, 냉전 종식으로 동유럽 견제기지로 그리스 가치가 사라졌기 때문.

게다가 그리스도 터키를 언제나 외면할 수가 없다. 자원 문제에선 터키 및 이슬람권 눈치를 봐야하는 유럽 경제회의 눈치도 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악보세이킬로스의 비문 이 고대 그리스 문명의 산물이다(다만 발견되기는 현대의 터키 땅에서 발견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정밀기계이자 유이하게 인정된 오파츠안티키테라 기계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이물건의 제작 년도는 고대 그리스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흠좀무.

그리스의 뉴스채널에서는 언제나 한두가지 사건에 대한 토론을 보여준다. 가령 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시행한다고 했을때 정부측 대변인과 여야당 당수 혹은 대변인, 해당 사건에 대해 의견을 갖고있는 지식인 혹은 일반 시민들을 여러 화면으로 동시방영하면서 이들이 서로 토론을 하도록 만드는것. 대체로 30분정도 걸린다. 물론 그리스인이라고 딱히 이성적인 사람들은 아니기때문에 가끔 격하게 논쟁을 벌이다가 싸우는 경우도 생긴다. 이럴땐 아나운서가 개입해서 말리거나 심지어 아예 방송을 끊어버린다. 2009년 2월에 정부의 농업보조금 축소안에 성난빡친 농부들이 도로를 점령하다못해 아예 아테네의 문턱이라 할 수 있는 피레아스 항구를 점거해서 모든 선편의 운항을 막아버린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농민대표와 그리스 사회당 당수와 욕설을 주고받으면서 수십분동안 배틀을 벌인적도 있었다. ㄷㄷ

그외에도 그리스인들은 사회 아젠다나 정치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은 편이다. 카페나 식당에 가면 항상 시사에 대해 논쟁하는 그리스인들을 볼 수 있으며, 외부인들이 와서 자기들 이야기에 불쑥 끼어들어도 대체로 좋아한다.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이기 때문.

1.6 그리스에서 주의해야할 문화 및 풍습

1. 제스처에 주의한다.
그리스의 제스처는 다른 나라들과 여러모로 다르다. 가령 한국에서 흔히 하는 손을 흔드는 동작은 지옥에나 가라!라는 뜻의 큰 욕이 되며, 미국인들이 'OK'할때 사용하는 검지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모아 고리를 만드는 동작은 'Fxxx You'와 같은 욕으로 쓰인다. 검지, 중지손가락으로 V자를 만드는 것과 엄지손가락을 한 손만 들어올리는 것도 마찬가지로 욕(...). 일례로 한 일본인 관광객은 손을 흔들어 버스를 세우려했지만 그가 손 흔드는걸 본 운전기사들이 빡쳐서 그냥 지나가는 바람에 네번째에야 버스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그리스인들은 버스나 택시를 잡을때 오른손 검지, 중지 손가락만 편 채로 위아래로 흔들어서 잡는다.

또한 그리스인들은 아니오라고 말하고자 할때, 턱을 위로 치켜들며 '쯧'하는 소리를 낸다. 터키인과 같다. 마찬가지로 고개를 가로젓는 동작은 '모른다'는 의미이다.

2. 동성, 혹은 이성 간의 스킨쉽에 대해 오해하지 말 것.
그리스인들도 다른 지중해 지역 사람들처럼 굉장히 요란하게 인사한다. 특히 양 볼에 키스하는 동작은 친근한 사이라면 누구나 하는 인사로 동성간에, 이성간에도 할 수 있다. - 오히려 어느정도 친해졌는데도 키스인사를 안 하면 섭섭해한다.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괜히 오해를 할 수 있지만 그리스에서는 극히 일반적인 일이다. 마찬가지로 커플이 함께 초대받았을 때에도 가까운 사이라면 친구의 아내 혹은 여자친구에게도 서슴치않고 키스를 하는 것을 보고 경악할지도 모른다. 오해 말 것.

3. 피하지 말 것.
그리스인들은 상대방이 친해졌다고 생각하면 가까이 가서 붙는 경향이 있다. 가령 서로 절친한 친구사이인 두 남자는 서로 침이 튀면 얼굴에 묻을 것 같은 거리로 딱 붙어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여기서 몸을 피하면 그리스인들은 '이 사람이 날 경계하는건가?' 하는 오해를 할 수 있다.

4. 식당, 카페에서 합석은 일반적이다.
성경에서부터 언급하지만, 그리스인은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매우 즐긴다. 카페나 식당에 들어가서도 모르는 사람을 보면 합석을 청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한국과 달라 합석이 일반적인 문화이니 이해하자. 오히려 그리스어를 잘 못하더라도 영어&몸짓발짓 섞어가면서 이야기하면 정말 좋아한다.

5. 확실히 거절하지 말 것.
그리스에는 한국처럼 채식주의가 아직 정착하지 않았다. 이탈리아나 다른 유럽국가에선 '토마토 스파게티'에 고기를 넣지 않지만, 그리스에서는 맛을 내기 위해 고기를 갈아넣는다(...). 만약 당신이 채식주의자라면 이 음식들을 대접받았을 경우 거절할 수도 있지만, '예의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들을 수 있다. 식당에 들어가서나 집에 초대받았을때 자신이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미리 말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행동이다. 어떤 식으로든 '딱 잘라서' 긍정하거나 거절하는 행동은 그리스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6. 선물을 받았으면 확실히 답례를 할 것.
그리스 사람들은 정말로 선물을 자주 주고받는다. 그리고 선물을 받았으면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가치의 물건으로 답을 하는 관습이 있다. 이것을 통해 그리스인들은 공동체, 가족간의 유대감을 공유하며 더 나아가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물물교환'의 기능도 한다. 만약 그리스인에게 선물을 받았다면 고맙다는 말과 함께 확실히 답례를 하는 것이 좋다. 물론 선물을 거절하는 것은 선물을 받고도 답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것으로 여겨진다. "상대방이 충분히 정성을 기울이지 않았기에 마음에 안 든다."는 의사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7. 천천히 천천히
한국 사람들은 '빨리빨리'를 입에 붙이고 산다지만 그리스인들은 '시가 시가(συγά συγά)'를 입에 붙이고 산다. 해석하면 '천천히 천천히'라는 뜻이다. 그리스에서는 뭘 하든 '서두르는 사람'에 대해 천박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성급하다는 이유로 그리스인들은 열심히 이탈리아인과 터키인들을 깐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이탈리아인들이 느려 터졌다고 깐다. 어? 실제로 그리스 식당에서는 음식을 주문하면 음식이 나올때까지 거의 1시간씩 걸리는 경우도 흔하다. - 요리 자체가 복잡한 탓도 있지만 - 이럴 경우 천천히 기다리면서 담소를 나누는 것이 좋다.

8. 식당에 들어가면 절대로 웨이터를 소리쳐서 부르지 말 것.
앞의 '시가 시가'와도 연관있는 내용이다. 그리스에서는 웨이터가 돌아다니면서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계산도 테이블에서 그대로 한다. 절대로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웨이터를 소리쳐서 부르지 말자.

9. 팁을 주자.
사실 그리스에서는 어떤 식당을 가든 '빵값'을 받는다. 식사를 주문하면 테이블당 빵 한 바구니가 무조껀 따라오며, 보통 50렙타에서 1유로 정도로 '자릿세'로 해석하면 된다. 식사를 마쳤으면 웨이터가 계산서를 가져다 주는데, 그때 음식값을 계산 하고나서 팁을 테이블 위에 두고가면 된다. 팁에 대해서는 미국처럼 몇% 줘야한다는 불문율은 없다. 줘도 그만 안줘도 그만이지만 푼돈 한 푼이라도 주는 편이 여러모로 좋다. 그리스에서도 파트타이머의 시급은 쩔어주게 낮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들은 주로 팁으로 먹고 산다.

마지막 10. 대화 화제에 주의할 것.
앞 문단에서 이야기했지만, 그리스 사람들은 터키를 싫어하다못해 증오하는 사람들이 많다. - 특히 나이드신 분들은 - 마찬가지로 키프로스도 가급적이면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 그리스인과 우정을 유지하는데 여러모로 좋다. 젊은 세대들은 터키에 대한 적개심이 상대적으로 덜 하고, 점차 허물어져가는 추세이긴 하다.

1.7 그리스 특유의 미신들

그리스인들도 터키인처럼 푸른 눈을 경외하는 미신을 갖고 있다. 무언가에 대해 좋은 일, 가령 아이를 출산했다거나,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다거나 새로운 집을 구입했다거나 하는 일들을 누군가에게 말하면 그것을 집안의 악령이 들어서 그 당사자를 골탕먹인다는 미신이 널리 알려져있는데, 그 때문에 푸른 눈 모양의 유리부적을 여기저기에 걸어둔다. 이 미신은 의외로 고대부터 존재해서 로마 시대에도 이러한 형태의 부적이 있었다 한다.

그리스인들은 무언가 고민이 있거나 걱정이 있거나, 혹은 심심하면 꼬뽈로이(κομπολόι)라는 염주 비스무리하게 생긴 물건을 만지작거리거나 휘휘 돌리면서 논다. 관광지에서는 기념품으로도 파는데, 싼것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1~3유로부터 비싼 것은 흑요석 등으로 만든 수백유로짜리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다. 단 이 꼬뽈로이는 오로지 남자사람 전용이다. 여자에게는 팔지도 않을 뿐더러 사용도 금기시 되어있다. 터키 사람들은 이것 비슷한 도구를 '테스비흐(Tesbih)'라고 부르고 기도용으로 쓴다. 분명 터키인들을 통해 소개되었을 것 같은데, 사용방법은 이렇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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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뽈로이의 모습

이렇게 가지고 논다.

1.8 그리스의 전통복장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의 전통의상을 여전히 토가같은 통짜옷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과거 크리스마스 씰로 세계 전통의상 시리즈가 나왔을때 그리스와 이집트의 전통의상은 각각 키톤이라는 고전기 그리스의 옷과 파라오 복장(...)이었다. 하지만 이 키톤은 로마시대를 거쳐서 비잔티움 제국시절에는 포데아(ποδέα)라는 형태의 망토가 달린 긴 옷으로 진화했다. 동방정교회 사제들이 평상시에 입고다니는 옷이랑 같은 옷이다. 이것이 발칸 반도, 특히 알바니아인의 복식의 영향을 받아서 오스만 제국시기에 이르면 푸스타넬라(Φουστανέλα)라는 옷으로 개량되었는데, 그리스인의 전통복장은 바로 이 푸스타넬라이다. 한편 여자들의 전통복장은 키톤에서 분화되어 다른 동유럽지방의 복식과 비슷하게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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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톤(χιτών) 입는법. 물론 고대 그리스인들은 속옷따위 입지 않았다. 특정 부분에 안구가 자극된다면 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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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짧은 키톤도 있었다. 또한 오른손을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 이 조각에서처럼 오른쪽 매듭을 짓지 않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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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현대 그리스의 전통의상인 푸스타넬라이다. 알바니아인들도 같은 옷을 입는데, 그리스쪽이 좀 더 컬러풀한편. 그리스 독립전쟁 당시에 항쟁하던 전사들이 푸스타넬라를 애용한데서 오늘날 아테네 신다그마 광장 뒤편에있는 무명용사의 비에서 경계를 서는 위병들의 복장도 푸스타넬라인데 사진속의 사람들은 이 위병들.

하지만 이 푸스타넬라는 그리스 본토만의 풍습이고 섬지방에서는 입지 않는데, 가령 크레타같은 경우 터키인의 복식과 흡사하다. 아니 거의 같다. 그리스인 남성들은 전통복장을 입을때 항상 허리띠에 단검을 꽃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남자다움과 용맹을 상징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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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이 크레타인의 복식.

1.9 그리스의 음악

현대 그리스 음악은 터키 음악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영향을 받았다. 사실상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그냥 터키나 중동쪽 음악으로 느껴질 정도. 이러한 현상은 비잔티움 제국 시절부터 이미 시작되었으며, 특히 15세기 이후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면서 꾸준히 터키문화의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에 비롯되었다. 그리스를 대표하는 민족악기인 부주키(Μπουζούκι)도 터키의 부죽(Buzuk)이라는 악기를 개량한 것이며[38], 반주로 자주 이용하는 산두리(Σαντούρι)와 다르부카(Νταρμπούκα)도 각각 '산투르' 라는 이란의 현악기와 같은 이름의 터키의 전통 북을 개량한 것이다. 크레타 섬에서는 리라(Λύρα)를 주로 연주하는데, 고대 그리스 시절에 있던 동명의 악기와 달리 터키의 케멘체(Kemençe)나 호궁처럼 활로 현을 켜서 연주하는 구조를 갖고있다.

오늘날 그리스에서 유행하는 음악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심지어 록에서도 전통 그리스의 리듬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터키에서 추방된 소아시아 출신 그리스인들의 애환을 담은 렘베티카(Ρεμπετικά)라고 불리는 음악장르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 '저항'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한국의 민중가요와 동일시되면서 오늘날까지도 널리 불리는중.

옆나라인 터키 음악의 보편적인 코드가 '삶의 애환'이라면 그리스 음악의 코드는 바로 '흥'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노래나 춤판이 벌어지면 반드시 들리는 소리가 바로 "Ώπα!" 오빠!(...) 라는 소리인데, 우리말로 풀면 '아싸!' 정도의 추임새로 쓰인다. 그리스의 노래들은 대체로 활발하고 명랑한 편이며 정말로 슬픈 상황을 그리는 가사에서조차도 "씨파 이렇게 된 이상 술이나 마시고 여자나 만나면서 즐겁게 이겨내자!" 같은 메시지를 담는다(...) 현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문학이라 할 수 있는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가 갈탄광산이 폭싹 망하고 나서 낙심해있는 주인공을 일으켜 세워서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는것도 이와같은 그리스인들의 인식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크레타의 전통춤인 뻰도잘리(Πεντοζαλι). 이 춤은 전사들의 춤으로, 한명의 리더와 여러명의 춤꾼들이 박력있는 동작을 똑같이 재현해내는데에 포인트를 준다.

그리스 정교회의 전통 크리스마스 성가, <그리스도 영광 속에서 나셨네 - Χριστός γεννάται δοξάσατε>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음악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작곡하고 마리아 파란두리가 부른 노래. 오 작은 북풍아 (Του μικρού βοριά)

1948년에 작곡되어 오늘날까지 널리 불리는 렘베티카 곡 <아라비아의 꽃 - Αράπικο λουλούδι>

1.10 외교관계

터키하고는 당연히 앙숙이다. 오스만 제국 시기 터키에게 400년간 지배를 받다 독립한 역사가 있고 독립 후에는 제1차 발칸전쟁, 제1차 세계대전, 그리스-터키 전쟁 등 서로 전쟁을 벌인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오스만 지배 기간 동안 이슬람교를 믿었던 터키에게 동방정교를 믿었던 그리스인들이 종교적 박해를 받기도 했다.터키 외에도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등 다른 주변국가들과도 역사적,정치,외교적인 이유로 사이가 좋지 않다.

공식적인 대외 외교 노선은 친서방, 친미노선을 표방하고 있지만 [39] 반서방국가인 러시아와도 종교적, 정치적으로 친하게 지내기도 한다. 종교적으로 그리스와 러시아는 같은 동방정교 계열의 종파를 믿으며, 정치적으로는 그리스와 러시아 사이의 터키를 견제하기 위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 실제로 그리스군내에서도 BMP-1 장갑차나 쥐브르 공기 부양정같은 러시아제 무기를 쓰기도 한다. 거기다 최근 그리스 공군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서 SU-35 등 러시아제 전투기 획득이 점쳐지고 있는 상황.

한국과의 관계는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 그리스가 UN군에 참전해 한국 전쟁에 군대를 파견하면서 시작되었다.1953년 휴전 협정 이후 한국 정부는 그리스 최우선 수교 대상 국가로 지정하였고 1961년 4월 5일 한국과 수교를 맺으면서 완전한 국교 수립이 이뤄졌다.

1.11 그리스 국적, 출신의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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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 페르시아인들이 최초로 만난 그리스인들이 이오니아 출신자들이었는데, 이를 페르시아어로 쓴 야우나(Yauna)가 그리스의 대명사가 되었다. 여기에 다른 스탄 돌림자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의 땅"이라는 뜻인 스탄이 붙으면서 '유나니스탄'이 된 것이다. 근데 어감이 좀... 이 야우나가 그리스를 뜻하는 말로 널리 퍼진 것 같다. 불경 미린다경에서 박트리아의 그리스인들을 요니카인이라 적고있다.
[2] 포르투갈어가 어원이라고 한다. 한국어 발음만 믿고 그냥 "그리스"(グリース)라고 썼다가는 윤활유(구리스)가 된다.
[3] '이 엘리니끼 디모끄라띠아 라고 읽는다.' 그리스어 특성상 항상 정관사를 붙인다.
[4] Ελ-ευ-θε-ρί-α ή θά-να-τος이다. 라틴알파벳으로 옮기면 el-ef-the-ri-a i tha-na-tos
[5] 인류 공통 신화 모티브 중 하나.
[6] 물론 헬라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는 자기네가 헬렌의 자손인 헬라스라는 의식은 가지고 있었다.
[7] 그래서 처음 그리스에 간 사람들은 그리스 사람들은 수학이나 물리를 잘 하겠구나 하고 착각하기도. 물론 고대 그리스에는 유명한 수학자나 과학자가 수도 없이 많았다.
[8] 정확하게 말하면 알파벳은 페니키아인이 발명했다. 그리스인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던 페니키아 문자의 방향을 오늘날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꾸고 페니키아 문자에는 없는 모음을 표기할 수 있는 글자를 만들어냈다.
[9] 그리스인들은 스스로 '바다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같은 고대문헌에서부터 "소금물가에 자리잡힌 마을이라면 으레 그리스어가 통한다."라는 표현이 보인다.
[10] 용도를 알 수 없었던 매우 복잡한 기계장치였으나 해와 달의 운행을 계산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퍼페츄얼 캘린더?!
[11] 결국 실패했지만
[12] 기계공학 올숙 찍은 공학자 헤론(Heron)의 공(aeolipile).
[13]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이 만들었다고 한다. 다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노예가 넘쳐나기 때문에...
[14] 이것도 헤론이 만들었다. 역사상 최초의 자동판매기이다.
[15] 이들의 민족구성은 불확실하다. 일단 왕가는 그리스계가 맞는 것 같지만 기록 자체가 적어 피지배민들까지 그리스인들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마케도니아 지역의 선사시대 유적은 그리스보다는 지금의 터키 영토인 아나톨리아 지역의 유적들과 유사하다고 한다.
[16] 유럽에서 가장 먼저 그리스도교화 된 지역이 바로 키프로스와 그리스 지역이다. <사도행전>을 참고하시라. 그 외에도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는 연관성이 크다.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묵시록>은 사도 요한이 파트모스 섬으로 유배되었을때 그곳에서 쓴 책이다.
[17] 그게 이전에는 이슬람 세력의 지배, 약탈로 가혹하게 지배했다고 오랫동안 교과서에서 서술했다가 기독교측은 진출이라고 쓰고 이슬람은 무조건 약탈, 학살이라는 건 이슬람권에 대한 편견과 반감이라는 지적으로 바뀐 것이다. 이전 교과서에선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꾸란. 이게 교과서에 나왔다. 두 손에 칼을 쳐든 기독교의 침략은 생략
[18]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정부의 정책일 뿐 민간인들은 그딴거 없었다.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도 언급하지만 알렉시스 조르바스는 터키인 사부로부터 산두리(악기 이름)를 배웠으며, 터키어 노래도 서슴치않고 부른다. 또한 18세기 그리스를 방문한 유럽인에게 터키인들은 자신들을 소개하면서 "우리는 성모 마리아를 믿는 무슬림입니다."라고 소개할 정도로 두 민족은 완전히 섞여있었다. 부활절날 터키인들이 그리스인 마을에 놀러가고, 라마단이 끝나고 3일간 계속되는 축제기간에 그리스인들이 터키인 마을에 놀러갈 정도로 이들은 사이좋게 잘 지냈다.
[19] 이스탄불의 '페네르' 지역에 주로 거주한 상인계층으로 이런 별칭이 붙었다. 20세기 전까지만 해도 이스탄불에 거주하는 인구의 약 40%는 그리스인이었다.
[20] 그런데 이 정책은 식민지를 가진 나라 대다수가 써먹던 방법이다. 근현대로 와서 영국이니 미국이니 프랑스, 일본 죄다 이 방법을 썼다. 한국인도 일부가 동남아에서 일본인 대신 포로 관리 및 현지인 관리를 맡으면서 일본인 이상으로 증오를 받았던 2차대전 당시의 역사도 그 방법.
[21] 여담이지만 요르고스 파파도풀로스는 이후에 공화국의 적으로 기소되어 종신형을 받았고 1999년 감옥에서 죽었다. 근데 그는 죽을때까지도 자기가 빨갱이들로부터 조국을 구했으며 결국 빨갱이들한테 패배해서 이런 신세가 되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참고로 그는 마리아 파란두리, 미키스 쎄오도라키스 같은 음악가들을 자신에게 반대한다며 추방시키고 자신의 반대자들은 모조리 공산당으로 몰아서 섬에 유배시키고 고문하고 죽인 인물이다.
[22] 독일에서 이 자금지원책에서 가장 큰 비율을 할당받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독일 언론에선 그리스에게 정 돈이 없으면 조상들 유물이라도 팔아서 벌라며 얻어먹기만 하는 그리스를 비꼬기도 했다.
[23] 그리스 이 나라가 그렇게 지하자원이 아예 없을 정도로 척박한 황무지는 아니다.철광석,보크사이트,납 같은 지하자원들이 있고 에게해 타소스섬에 석유매장지도 있다.
[24] 거기다 멕시코,아르헨티나,우루과이 모두 과거 경제대국이었던 역사가 있다.
[25] 이탈리아라든가 아일랜드라든가 스페인이라든가...
[26] 과거 유로 단일통화권 가입시, 스왑계약을 이용 부채를 숨기고 가입했다. 이 문제로 유럽연합은 계약내용을 공개하라고 그리스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27] 예로 니코스 헬레파스 아테네 대학 교수는 "어떤 공무원은 문서 도착 여부를 기록하는 일만 하고 있다. 다들 이메일을 사용하는 세상에 미친 짓"이라고 NYT에 전했다라는 말이 있다.
[28] 어디까지나 현 상황보다는 좋았다는 이야기다. 위기설은 그리스가 가입할 때부터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었다.
[29] 복지 부분에 돈은 돈대로 쓰면서도 실효성은 없는 것이 그리스 복지다. 줄어드는 수입에도 무리하게 복지분야에 재정 지출을 했으나 제대로 복지가 돌아가지 않는다.
[30] 2004년 아테네 하계 올림픽 때는 그리스가 주최국이었기 때문에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 모두 그리스 국가가 연주되었다.
[31] 물론 그리스 사람들도 요즘은 그렇게 시게는 안 먹는다.
[32] 이것 역시 올리브, 치즈를 주식으로 하는 남부유럽의 공통된 식단. 근데 이게 저렇게 신가...? 개별적인 차이가 있는듯.
[33] 건강식이라고 푸성귀투성이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가령 한식의 경우 탄수화물 비중이 단백질, 지방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데다가 염분도 많기때문에 썩 건강한 음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반면에 그리스식 식단은 미국식보다는 풍성한 채소를 사용하고, 또한 치즈, 요구르트 같은 유제품을 통해 상당한 단백질을 보충받고있기 때문에 균형잡힌 식단이라고 하는 것이다.
[34] 참고로 이 요리를 수블라키(Σουβλάκι)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수블라키는 돼지고기 숯불꼬치구이(쉬쉬케밥 참조)를 의미하고, 위에 설명한 요리는 기로스가 맞다.
[35] 도시관광과 외곽의 유적지 등을 둘러보는 코스가 있다.
[36] 손예진이 나온 포xx광고 촬영지
[37] 한국인 여행자가 그리스인 친구를 만나서 그리스 음식을 이야기하자 그 친구는 자신이 벨기에를 놀러갔는데 수블라키나 그리스 음식을 사진으로 보여주자 벨기에 사람들은 죄다 케밥이나 터키 이름으로만 알았다고 불만을 표한 바 있다. 그러나 실은 그리스 음식 상당수도 터키 식민지 시절에 전수받은 것이라고 터키는 비웃고 그리스는 아니라고 반론하고 있다. 이를테면 터키인들의 국민주 라크도 그리스는 자기들 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38] 사실 터키의 '부죽'도 비잔티움 시절 널리 쓰이던 악기인 판두라스(Παντουράς)를 개량한 것이다. 결국 역수입된 셈(!)
[39] 그리스 해방을 위해서 미군이 처음 상륙했고 치열한 격전후 그리스를 해방시켰다.또한 영국군은 하늘에서 공수부대를 보내 해방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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