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코

Contents

1 남코와 닌텐도 관계
2 NAMCOT
3 그리고 이후의 남코
4 애니메이션
4.1 관련항목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en/2/25/Namco_logo.png?align=right
반다이 남코 게임스 일본 공식 홈페이지

일본게임회사 중 하나.

이름인 NAMCO는 NAkamura Manufacturing COrporation 의 약자라고 한다.

삼성이 영어권에선 샘성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남코도 영어권에선 냄코로 불린다.

원래 목마를 제조, 판매하는 회사였다. 당연하지만 연방그거는 아니었는데, 그거 만드는 회사합병되면서 어떻게 보면 맞는말이 되기도 하였다. 굴지의 게임회사로 성장한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창립 초기에는 회사의 사무실이 빌딩 옥상(!)에 있었다고 한다. 이래저래 안습의 역사.

세가와 함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별의 별 장르를 다 개척한다. 다만 세가는 도전정신이 좋은의미와 나쁜의미가 혼재해 있어 게임의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뉜다면 남코는 안정적으로 기존의 장르에 다른 장르를 합쳐 색다른 장르를 개척하는 경우가 많다.


게임쪽 산업의 경우는 초기 아타리의 일본 수입원으로 시작했으나, 이후 오락실 게임기로 제작한 갤럭시안이랑 팩맨, 갤러그, 제비우스 등의 게임이 빅 히트를 치면서 남코 황금기를 열게 되었다.

그러나 80년대 중후반에는 80년대 초반 같은 포스는 별로 내지 못한 채, 범작 게임들만을 만들었었다. 특히 슈퍼패미컴, 메가드라이브, PC엔진이 경합을 벌이던 16비트 전쟁시대에는 솔직히 지금만큼 파괴력 있는 브랜드가 아니었다. 거의 흑역사에 가까운 졸작도 많이 내놓은 바 있다.

그나마 80년대 중후반에 나온 유명 게임으로는 패밀리 스타디움(패미스타) 정도. 후에 슈퍼패미컴으로 갈아타면서 슈퍼 패미스타를 내게 되지만 후발주자로 나온 코나미가 낸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에 밀려 캐버로우당하게 된다. 특히 닌텐도64로 나온 패미스타 64는 한마디로 흑역사.

그 후 90년대 후반 CD게임과 3D게임들의 시대가 오면서 철권이랑 릿지 레이서 등의 명작 3D게임을 통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는 소니의 전폭적인 지원에서 가능했던 것. 세가의 버파에 맞설 아케이드->게임기이식 카드를 찾던 소니가 파트너로 선택한 것이 남코였고, 그래서 PS와 완전 호환인 기판인 SYSTEM 11의 개발로 남코를 적극 후원했다. 물론 철권 1 시절에는 버파의 아류작이란 오명을 벗지 못했지만, 시리즈가 점차 진행되면서 독자의 노선을 확보하여 지금은 그렇게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PS2시기까지 남코와 소니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철권만큼은 PS독점이라는 공식이 계속 성립되었으나, 철권 6은 XBOX360으로의 이식을 발표한 상태.

96년 슈퍼패미콤 말기에 테일즈 오브 판타지아를 통해서 RPG도 잘 만든다는 것도 입증했다. 이것은 그 뒤에 테일즈 시리즈로 계속 이어지기도...

가끔 구작중에 사명이 NAMCOT라고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남코의 도쿄지부[1] 혹은 NAMCO가 PS1 참여 이전까지 닌텐도에서 제조한 콘솔 이외의 기기에 자사의 게임을 이식할때 사용한 브랜드이다. 자세한건은 하단 참조.



1 남코와 닌텐도 관계


닌텐도가 패미컴을 출시했던 초창기. 하드웨어 자체는 여타 경쟁기들에 비해서 걸출한데 마땅한 킬러 소프트가 없었다. 아직 마리오도 젤다도 없던 그 시절 그런 패미컴을 살린 구세주가 바로 남코였는데, 자사의 인기 아케이드 게임(특히 제비우스)들을 패미컴으로 이식하여 하드웨어의 판매량을 견인했었다.

초창기에는 남코와 닌텐도 사이에 좋은 관계가 유지되었다. 남코는 아케이드 시장과 따로 가정용 게임기라는 시장에서 돈을 벌게 되었고, 닌텐도는 남코의 우량 게임들로 하드웨어 점유율을 올릴 수 있었다. 당시 닌텐도는 남코를 거의 '퍼스트 파티' 혹은 '사업상 파트너'에 준하는 대접을 해주었는데, 단적으로 패미컴에 게임을 발매할때 거두어들이는 라이센스비도 다른 회사들과 다르게 남코만 유리하게 별도로 계약되어 있는데다가 남코의 자체제작 소프트는 자체적으로 롬팩을 생산 가능하게 하는 특혜[2]를 줄정도로 위상이 대단했다.


허나 남코는 이 특혜를 악용하여 닌텐도 몰래 편법으로 자사제작이 아닌 게임들을 자사제품이라고 속여 발매한 전적과 함께 결국 중단했었지만 당시 닌텐도가 특별대우를 해주던 당시 몰래 게임기를 몰래 개발한 사실이 들통나면서 골이 깊어지고 결국 시간이 흘러 그 첫 5년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서 서드파티로 격하된다.

그리고 남코는 80년대 초반의 빛을 잃어버리고, 80년대 중반부터 이렇다할 히트작이 없어 회사 내부적으로도 조금 힘든 시기였는데 그런 상황에 닌텐도가 재계약 시점에서 확실히하게 보복했는데 바로 계약 사항 변경. 남코의 대우가 다른 서드 파티들하고 같아져 버린거다. 일종의 강등. 이미 닌텐도의 패미컴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던 시점이라 닌텐도는 굉장히 우월한 지위에 있었고, 남코는 난처한 상황일때 양자택일 밖에 없었다.

당시 특별취급이 당연했다고 여겼던 남코는 결별하고 싶어도 예전에 한짓도 있고 거기에 내놓으면 적어도 몇십만개는 팔리는 시장을 포기하고 손가락만 빨거나[3].

지금처럼 3자 구도는 커녕 2강 체제도 아니었던 당시. 남코로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그 계약 사항을 수용하여 계약을 갱신할 수 밖에 없었다[4].

이 원한 때문인지 후에 닌텐도 기종으로 나오는 게임들(특히 테일즈시리즈)을 소니 게임기에서 완전판을 내놓고 남코에서 개발했던 마리오카트AC와 스타폭스어썰트의 퀄리티를 개쪽으로 냈다는 소문이 들긴 하다.

2 NAMCOT



사실 NAMCO가 멀쩡한 NAMCO를 놔두고 굳이 NAMCOT을 사용한 이유는 닌텐도 패미컴의 서드파티 계약 내용에는 타사의 콘솔로 게임을 발매할 수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계약 사항이 존재했는데, 이게 남코의 발목을 잡아서 NAMCOT같은 브랜드도 만들어 같이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천하의 닌텐도가 남코가 NAMCOT라는 척봐도 눈에 보이는 브랜드로 타사의 콘솔에 게임을 발매하는걸 어떻게 생각했을까? 사실 닌텐도로서는 분명 눈에 거슬리는 행동이었겠지만, 그래도 남코니까 그 정도는 봐주었다는게 중론이다. 아마 다른 듣보잡 서드파티가 그런짓을 했다면 당장 계약 파기로 이어졌을거라고...[5]

아무튼 그렇게 닌텐도에 염증을 느낌 남코는 PS1으로 전격 참여하면서도 철권에 NAMCOT 브랜드를 사용한걸 보면 그래도 여차하면 닌텐도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던거 같은데, 닌텐도가 이적 행위를 절대로 용서하지 못한다는 초강경 자세[6]를 보이면서 결국 남코는 완전히 PS진영에 둥지를 틀게 되고 '릿지 레이서', '철권', '에이스 컴뱃' 같은 주옥같은 타이틀로 PS의 3D 능력을 만천하에 알리는 대표적인 회사가 되어버린다[7].

이 NAMCOT라는 표기를 가끔 남코의 짭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철권만 해도 초기엔 NAMCOT 상표로 나왔었다. 철권 1의 PS판이 마지막으로 NAMCOT 상표로 낸 게임인 것 같지만 확실하게 기억이 안나니까 수정바람.

3 그리고 이후의 남코

2005년 5월 반다이와의 경영 통합을 발표하고, 이후 두 회사는 한지붕 두가족시대를 열다가 2006년 3월 31일 최종적으로 합병되어 '반다이 남코 게임스'가 된 상태.

합병 이후 기존 남코의 브랜드는 대형 오락실 브랜드인 남코 랜드의 운영만 남게 되고 전부 반다이 남코 게임스로 이동되었다.

합병 이후의 개발 행적에 대해서는 반다이 남코 게임스의 항목을 참조.

4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도 제작한 경력이 있는데 아이돌 마스터 제노그라시아는 로봇팬과 아이돌 마스터 팬에게 동시에 외면당했고 그 전에 만든 테일즈 오브 이터니아 애니메이션판은 원작의 초반도 넘기지 못하고 끝났다.[8] 그나마 테일즈 오브 판타지아 애니판도 제대로 만들면 장편일 게 뻔한 것을 달랑 4화로 만들었다. 제노사가 애니판은 달랑 13화만 만들고 끝..... 이정도면 마가 끼인 게 아니라 남코 쪽이 무성의할 정도.

그나마 아이돌 마스터 제노그라시아는 재평가받는 중이지만 아이돌 마스터 2가 아니었다면 이런 것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것 외의 것은 재평가가 사실상 불가능 수준이다. 이유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지만 아이돌 마스터 제노그라시아 외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납득이 갈 것이다.

4.1 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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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나미의 KCET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이쪽은 약간 복잡한 사정이 있다.
[2] 닌텐도는 자사 이외의 회사에서는 자사 게임기에 들어가는 롬팩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출하량 제어나 이익 면에서 닌텐도가 매우 유리해지며, 이것은 닌텐도64에서도 롬팩을 고집한 이유로 꼽힌다.
[3] 당시 패미컴의 황금기 시절엔 아무리 허접해도 몇십만개는 팔리는게 기본이었다
[4] 몇년이 지난 후 인터뷰한 내용에서도 이 얘기를 하면서 관계자가 잠시 침묵했다고 한다
[5] 그런데 메가드라이브가 제네시스로 미국에서 SNES를 앞지르자 코나미, 캡콤등도 메가드라이브용 게임을 내놓기 시작했다. 아직 이 당시에는 닌텐도에도 여유가 있었고, 하드웨어 판매량 자체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영향력있는 회사에는 그렇게 타이트한 압력을 가하지 않았던거 같지만... 차세대기 전쟁이 벌어지면서 상황이 틀려진다
[6] 드라이한 교토 상인이 운영하는 회사답지 않은 행동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7] 그런데 그때 만약 남코가 세턴으로 갔으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ㄷㄷㄷ
[8] 게임도 스토리에 문제가 있었는데 애니는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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