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역대 우승경력[1] ¶
- 센트럴리그 우승 : 1978, 1992, 1993, 1995, 1997, 2001
- 일본시리즈 우승 : 1978, 1993, 1995, 1997, 2001
3 구단명 변천사 ¶
코쿠테츠 스왈로즈(1950-1965)
산케이 스왈로즈(1965)
산케이 아톰즈(1966-1968)
아톰즈(1969)
야쿠르트 아톰즈(1970-1973)
야쿠르트 스왈로즈(1974-2005)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2006- )
산케이 스왈로즈(1965)
산케이 아톰즈(1966-1968)
아톰즈(1969)
야쿠르트 아톰즈(1970-1973)
야쿠르트 스왈로즈(1974-2005)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2006- )
4 홈구장 : 메이지진구구장(明治神宮球場) ¶
1926년에 완공한 구장. 사실 야구장뿐만 아니라 주위에 종합 스포츠 스타디움이 몇개 더 붙어 있는 형태로, 초기부터 사용목적은 대학 및 아마추어 운동 시설로 계획하고 만들었다. 20-30년대가 정확히 일본에서 학생계몽운동등으로 학생들에게 좋은 시설을 주자 라는 시류에 편승하여 지어진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한신 코시엔 구장 다음으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구장. 우리나라의 동대문야구장격이랄까.
이 때문에 그 땅값 비싼 하라주쿠 일대에 있는 구장. 지금 구장 만든다고 쳐도 저런 노른자위같은 땅에 짓기는 애초에 무리였을정도로 입지가 좋다.
프로 구단이 쓰기 시작한것은 원래 본거지였던 구장이 헐리면서(...) 떠돌이 신세가 된 토에이 플라이어즈(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전신)가 1962년에 임시로 사용하면서부터였다. 실은 몇년만 쓰고 나갈 예정이였고 실제로 토에이는 2년만에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쓰던 고라쿠엔 구장을 같이 쓰기로 합의하면서 나갔으나, 갑자기 갑툭튀한 코쿠테츠 스왈로즈, 그러니까 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진구구장을 쓰겠다고 선언하고 짐싸서 들어와버렸다(...). 물론 2년동안 토에이가 쓰는것조차 꼽게 보던 대학 야구회측에서는 맹반대를 했고, 이에 코쿠테츠 측에서는 들어가는 대신에 노후화 된 시설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증축까지 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간신히 합의하여 눌러 앉게 된다.[2]
그리고 3년 뒤, 코쿠테츠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규모 증축공사를 시행하여 현대적인 구장으로 탈바꿈 시켰다. 그리고 이 진구구장을 사용하는 프로팀은 계속해서 진구구장을 아마야구인들을 위해 개보수 하는 의무를 지게되어, 가장 최근에는 07년도 시즌 종료후에 다시한번 리폼을 거쳐, 아마와 프로가 함께쓰는 구장이면서도 상당히 깔끔하고 편한 구장상태를 유지하는 중이다.
5 역사 ¶
1950년에 고쿠테츠(=국철) 스왈로스라는 팀명으로 창단하였으나 1965년의 산케이 스왈로스, 1966~1968년의 산케이 아톰스, 1969년의 아톰스, 1970~1973년의 야쿠르트 아톰스를 거쳐 1974년 야쿠르트 스왈로스로 바꿨다. 2006년부터 연고지 명을 구단의 공식명칭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팀명의 스왈로스(Swallows)는 '제비'라는 뜻으로, 1950년대 일본국철이 메인스폰서였을 당시에 도카이도 본선 도쿄-오사카를 달리던 특급열차의 이름인 츠바메(=제비)에서 따 온 것이다. 참고로 저 열차 이름 "츠바메"는 아직도 큐슈 신칸센에서 쓰고 있다.
일본시리즈에서 5회, 센트럴리그에서 6회 우승하였다. 2000년까지 팀 통산전적은 2,962승 3,481패 233무, 승률 0.460이다. 1950년 일본국철이 노사단결 차원에서 고쿠테츠 스왈로즈로 창단하였으나, 프로 출신 선수가 한 명밖에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이후 전설적인 대투수인 카네다 마사이치가 입단하였으나 카네다 마사이치 원맨팀이라는 약팀 이미지가 강했다. 저 당시 A클래스에 들은 적은 손에 꼽을 정도. 정부가 관리하는 일본국철의 한계 때문에 선수영입이 원활하지 못했고, 결국 산케이신문·후지TV의 후지산케이 그룹에 1965년에 인수했지만 여전히 약체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긴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1970년 야쿠르트사로 인수된 이후 1978년 히로오카 타츠로 감독의 관리야구로 일본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했다.[4] 에이스 마츠오카 히로무, 스왈로즈 사상 최고의 리드오프 와카마츠 츠토무, 스왈로즈 역사에 길이 남을 핵타선 클린업 오스기 카츠오-찰리 매뉴얼-스기우라 토오루가 이 당시의 주요 선수였다.
1980년대에 저 황금세대가 은퇴하여 다시 약체가 되었으나, 이후 1990년 노무라 카츠야 감독이 취임하고서 특유의 ID야구로 1990년대 인기팀으로 성장했다. 강속구 투수 아라키 다이스케, 神算 후루타 아츠야, 비운의 에이스 이토 토모히토[5]와 마무리 투수인 미스터 제로로 불리던 타카츠 신고,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공격형 유격수 이케야마 타카히로와 히로사와 히로미, 토마스 오말리의 클린업 등 전력이 강해져 일본시리즈에서 3회나 우승(1993년, 1995년, 1997년)왠지 한국의 쌍둥이팀을 보는듯 하다.을 차지하며 스왈로즈 황금시대를 일궈냈다. 그리고 2001년에도 다시 통산 5번째로 우승하였다. 그러고보니... 첫 우승인 1978년을 제외하면 홀수해에만 우승한 게 특징인데 징크스로 봐야 하나(...).
징크스라면 징크스일 수도 있는 것이 2011년 한때는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었으니... 그러나 막판에 주니치에게 밀려 2등에 그쳤고, 퍼스트 스테이지에서는 요미우리에게 2승 1패로 힘겹게 이겨 올라갔지만, 클라이맥스 파이널 시리즈에서는 주니치에게 어드밴티지 포함 2승 4패로 패퇴했다.
6 인기 ¶
같은 연고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비해 팬수가 많이 없는것으로 유명하며 구단원정온 팬들이 더 많다고 한다. 인기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와 더불어 센트럴리그 구단중에선 인기가 없는 편에 속한다. 특히 한신 타이거즈전에서는 아예 그냥 한신 홈구장처럼 되어 버린다.[6] 하지만 지금은 홋카이도로 구단을 옮긴 과거 도쿄돔에 있을때 닛폰햄 파이터즈 보다야 훨신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다만 진구구장에 한신 굿즈샵이 먼저 들어왔다는것은 좀 잘못 알려진 사실. 정확히는 진구구장 내에는 어느 구단의 굿즈 샵도 없다. 이는 진구구장 자체가 야쿠르트 구단 소유의 구장이 아닌 아마야구 목적으로 만들어진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게 하기 위해 특정 구단의 굿즈샵 입점을 금지시켜놓았기 때문. 한신 굿즈삽 얘기가 와전된 것은 진구구장 길목에 한신 팬클럽 소유의 점포가 있는데 이게 진구구장에서 제일 가깝고, 처음에 코쿠테츠 시절에는 공식 굿즈삽을 운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
그래서 야쿠르트 구단에서 구단 공식 굿즈를 판매 하는것은 시합 시작 4시간전부터 종료후 1시간까지 임시 천막 세워서 판다. 혹은 경기장 내에도 응원도구 파는 곳은 있는데 여긴 야쿠르트 구단 상품 중심이긴 하지만 전구단 다 취급하고 굿즈샵 이름도 그냥 baseball shop 으로 어떤 특정구단 어필은 들어가 있지 않다.
팬들이 응원할때는 득점을 하거나 7회 럭키세븐 응원에서는 우산을 펴서 응원을한다. 아래 항목에서 민요노래에 맞춰서 우산을 흔드는 식으로. 여기에는 수가 적은 홈팀 관중 수를 많아 보이게 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설과, 비싼 응원도구를 살 필요 없이 누구나 쉽게 응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7 응원가 : 도쿄온도(東京音頭)[7] ¶
응원가는 도쿄온도(東京音頭). 특이하게 타령조 민요를 응원가로 쓰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 응원가로 제작된 것은 아니고 원래 니시조 야소(西條八十:1892~1970)이 1933년 작곡한 유행가였는데, 1978년부터 스왈로즈의 응원가로 쓰였다. 이전 롯데 오리온즈가 1960년대 도쿄를 홈구장으로 쓸때는 롯데의 응원가였다. 그리고 현재 J리그에서도 도쿄를 본거지로 쓰는 FC도쿄의 응원가이기도 한다.
이게 좀 웃기는게 전주랑 간주 부분에 "くたばれ読売~ くたばれ読売~ (죽어라[8] 요미우리...)"하는 추임새를 넣는다. 당연히 정식 응원가 가사도 아니고 공식 응원단에서는 저거 넣지 말아달라고 하는데 그래도 부를 사람들은 꿋꿋히 부른다.[9] 그리고 요미우리 외의 다른 팀(특히 한신)과의 진구구장 경기에서 7회말에 이 노래가 나오게 되면 저 부분만은 양팀 팬들이 일제히 합창을 한다. 한신 팬들이 더 크게 부르는 거 같기도 하고
가사
ハァ 踊り踊るなら チョイト
東京音頭 ヨイヨイ
花の都の 花の都の真中で サテ
ヤットナ ソレ ヨイヨイヨイ
ヤットナ ソレ ヨイヨイヨイ
8 한국인 선수 ¶
우리나라 선수인 임창용이 뛰는 팀이기도 하다. 임창용은 08년부터 마무리 투수로 활약 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2009년에는 타테야마 쇼헤이 등 선발진들이 활약하고, 임창용이 7월까지 0.00의 평균자책점을 유지하면서 잘 나가다가 임창용이 2군으로 내려간 후 한때 5위까지 미끄러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임창용이 다시 1군으로 승격한 이후 팀 분위기가 살아나면서 다시 재역전하여 2009년 10월 9일에 있었던 한신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임창용이 1.2이닝 1볼넷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따내며 승리, 센트럴리그 3위를 확정,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하였다. 근데, 최종성적은 71승72패1무. 승률이 5할도 안된다. 흠좀무.
임창용만 등판하면 2ch 야쿠르트 스레드는 '임'으로 도배가 된다. 다른 팀 팬들이 스레드에 들어와보고 놀라기도 한다. 대단한 활약 때문에 일본내 별명은 부처님인데 '임'의 일어인 イム를 붙이면 佛의 약자가 나오기 때문.
9 이모저모 ¶
- 유니폼의 경우 히로시마처럼 빨간색 줄무늬를 위주로한 유니폼으로 했으며 감청색과 빨강색을 이룬 유니폼을 썼다가 2009시즌부터는 40주년 유니폼을 선보였는데 유니폼에 제비 이미지를 살리면서도 여러모로 완벽하게 좋다. 단 유니폼의 윗 단추 버튼에 빨강색이라서 일장기와 흡사판 평이 있다. 그래서 임창용과 이혜천은 애국심이 있었는지 몰라도 일부러 빨강 단추 유니폼을 안 꿰매차고 있는 것.
- 마스코트는 현재 제비인 츠바쿠로[10], 츠바미[11], 엔타로[12]마스코트이며, 산케이 아톰즈일때는 데츠카 오사무의 아톰을 팀캐릭터로 썼었다.
- 이 구단의 대표적인 팬으로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 산케이 아톰즈 시절부터 팀을 응원했고, 이 팀 소속 외국인 타자였던 데이브 힐튼이 2루타를 치는 순간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으며, 그의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진구구장 외야석에서 반년 동안 썼다고 하니 대단한 열성팬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등단한 해(1978년)에 야쿠르트는 구단사상 첫 우승을 했다. "선수들이 모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하고 있으니,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소설을 썼다"고 후일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 또한 H2로 유명한 아다치 미츠루도 스왈로즈의 팬으로서 구단공식홈페이지에 가보면 아다치 미츠루의 그림을 종종 볼수 있으며, 각종 일러스트에서도 야쿠르트 관련 일러스트를 볼수도 있다. 그리고 H2나 크로스게임에서 나오는 인물을 자세히 보면 야쿠르트선수들을 베이스로 모티브한 캐릭터가 있으며, H2에서 히로의 친구인 포수로 나온 노다 아츠시는 야쿠르트의 전설적인 포수인 후루타 아츠야를 모티브해왔으며, 크로스게임에서는 이름은 안나오지만 아예 특정 선수가 언급되는걸 나온다. 그 선수 이름은 이가라시 료타이며, 일본인 최초로 당시 최대 속구인 158Km를 찍은 강속구선수이다. 하지만 이가라시 료타가 2008년 부상으로 빠지면서 그 자리를 임창용선수가 메우게 됐다. 현재 불펜요원으로 활약중.
- 일본 성우인 카와스미 아야코 또한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팬이다. 스케쥴이 없는 날은 꼬박꼬박 챙겨보러 다닌다고.
- 영구결번은 없지만, 1번과 27번을 명예번호로 사용한다.
와카마츠 츠토무의 등번호인 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할 예정이었으나, 그 상징성을 높이 사서 팀을 짊어지는 선수들에게만 물러주는 식으로 사용하도록 바꾸었다. 참고로 이케야마 타카히로가 91년부터 2001년까지 사용하다가 반납, 이후 이와무라 아키노리에게 1번을 물려 받고 계속 사용하다가 메이저리그로 진출, 3년 간 결번 상태였다가 다시 2010년부터 아오키 노리치카가 이 1번을 달기 시작하였다.그리고 아오키가 메이저리그로 간 이후 누가 1번을 차지할 것인가?
27번의 역시 후루타 아츠야의 은퇴와 함께 명예번호로 처리됐다. 1번과 마찬가지로 팀을 짊어질 정도로 뛰어난 선수가 나올 때까지는 계속 결번이 되는 번호이다. 본래 2009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서 FA로 이적해 온 아이카와 료지에게 이 등번호를 물려 줄 예정이었으나 부담감 때문인지 본인이 거절하는 바람에 현재는 결번 상태. 더불어 27번은 89년 용병 투수가 사용했던 해를 제외하고는 역대 야쿠르트 스왈로즈 주전 포수들이 쭉 착용했던 번호이기도 하다.
9.1 대표적인 선수들 ¶
- 현역(2010년 기준/등번호기준)
- OB
- 구단 출신 메이져리거
- 이가라시 료타 (뉴욕 메츠)
- 이와무라 아키노리 (탬파베이 레이스→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일본복귀 후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즈)
- 아오키 노리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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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대리그로 재편된 1950년 이후부터[2]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78년 일본시리즈의 야쿠르트 홈경기는 고라쿠엔에서 벌어졌다. 이유는 3만에 못 미치는 관중석 때문. 이후 지속적인 보수공사로 3만 이상의 경기장으로 증축됐다.
[3] 코시엔의 도쿄 예선은 전국구 레벨로 치열하다.
[4] 만년 꼴지였던 스왈로즈의 우승은 그 밖에도 여러 에피소드를 낳았다. 그 중 소설가 에비사와 야스히사의 대표 소설인 '야구감독'은 스왈로즈의 우승을 소설화 했다.
[5] 변화가 크고 빠른 고속 슬라이더로 야쿠르트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나, 혹사로 인하여 33살의 나이로 2003년도에 은퇴를 하였다. H2에서 쿠니미 히로가 후반부에 고속 슬라이더를 마스터 하는 장면은 이 선수의 오마쥬로 추정된다.
[6] 우스갯소리로 요코하마 스타디움과 오릭스 버팔로스의 홈구장 오사카 교세라돔도 한신전이 있는 날에는 한신 팬들의 숫자가 더 많아서 한신 홈구장이 되어 버린다. 인기가 많았지만 홈구장이 작았던 브라질 축구클럽 코린티안스도 비슷한 처지였으나 2014년 새 구장이 생기면서 같은 처지 탈출.
[7] 온도(音頭)는 일본 전통민요로서 2/2 박자를 가진다. 한국의 "타령"정도로 생각하면 될듯 하다.
[8] 좋게 번역해서 '죽어라'이지 실제 어감을 살려서 번역하면 '뒈X라','X먹어라'에 가깝다. 영어의 F○○○ YOU를 일본의 영어사전에서는 뜻풀이를 이 말로 할 정도이다. '공식' 응원단에서 넣지 말라고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9] 응원단에서는 저 부분에 東京ヤクルト, 즉 '도쿄 야쿠르트'를 넣어 부를 것을 권장한다
[10] 등번호는 이름에서 따온 2896. 연봉은 야쿠르트 터프맨 무제한 제공, 1만엔+성과급.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도아라와 쌍벽을 이루는 4차원 캐릭터이다.
[11] 등번호는 이름에서 따온 283.
[12] 등번호는 야쿠르트에서 따온 8960.
[13] 現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감독 그 매뉴얼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