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Contents

1 개요
2 일대기
2.1 출생 당시 환경
2.1.1 부족
2.1.2 메카의 상황
2.2 어린 시절
2.3 청년기
2.4 각성
2.5 헤지라(회교;이슬람 기원)
2.6 성전(聖戰)
2.7 귀환
2.8 정복 이후 죽음까지
2.9 사후
3 얘기거리
4 아랍 남성 이름

1 개요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b/b5/Miraj_by_Sultan_Muhammad.jpg?width=600
<여행의 밤: el-miraj>16세기 페르시아 세밀화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5/50/%D9%86%D9%82%D8%B4_%D9%85%D9%87%D8%B1.jpg?width=200

아랍어, 페르시아어, 우르드어: محمد
영어: Muhammad, Mohamad, Mohamed, Mohammad, Mohammed, Muhamad, Muhamed, Muhamet, Muhammed, Muhammet, Mahammad
라틴어: Mahometus, Machometus
히브리어: מוחמד
아람어: ܡܘܚܡܕ
아제르바이잔어: Məhəmməd
아르메니아어: Մուհամմեդ
보스니아어: Muhammed, Muhamed, Mehmed, Meho
알바니아어: Muhameti, Muhamat, Mehmet
불가리아어: Мохамед
벵골어: মুহাম্মাদ
힌디어: मुहम्मद
디베히어: މުޙައްމަދުގެފާނު
타갈로그어, 말레이어, 인도네시아어: Muhammad
풀라어: Muhammadu, Mamadou
만딩카어: Mohamed, Mohammed
베르베르, 월로프어: Muhammad
소말리어: Maxamed, Muxamed
스와힐리어: Muhammad
쿠르드어: Mihemed
터키어: Muhammed, Mehmet
타타르어: Мөхәммәт
카자흐어: Мұхаммед
키르기즈어: Мухаммед
카라칼파크어: Muxammed
투르크멘어: Muhammet
우즈벡어: Mohammad, Muhammad
위구르어: مۇھەممەد
러시아어: Мухаммед
일본어: ムハンマド
중국어: 穆罕默德

아부 카심 무함마드 빈 압둘라 빈 압둘 무탈리브. 570.4.22~632.6.8. 이슬람교의 실질적인 창시자. 그러나 이슬람교 기준으로는 무함마드가 종교를 '창시'한 것은 아니므로 이슬람교 신자는 결코 저런 식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무슬림과 이야기할때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1]

'코끼리의 해'에 탄생하였다고 하며, 570년인지 571년인지 미상이지만 570년을 유력하게 본다. 태어난 해의 별명인 '코끼리의 해'는 코끼리 부대의 침공을 받아서 코끼리해라고 한다. 그런데 무함마드가 태어난 해는 그의 친할아버지도 모른다고 한다.(…) 저쪽 사람들 문화 자체가 태어난 해에 대해서는 그리 신경을 쓰지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쓰는 기준보다 나이가 한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두자.

오래전만 하더라도 이슬람권의 무지로 서구식 표기인 '마호메트'라고 표기하기도 하고, 국립국어원에서도 두가지 표기를 다 인정한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마호메트'라는 표현에는 그를 악마(Mahound)로 여기는 서구의 경멸적 시각이 담겨 있다고 여긴다. 유럽 쪽의 악마 바포메트가 무함마드의 이름이 약간 변형된 것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가 보기엔 그게 그거일 수도 있겠으나, 무슬림에게는 굉장히 실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는 두자. 예수악마를 동일한 존재로 볼 때, 그냥 참고 넘길 기독교도가 얼마나 되겠는가와 비슷한 의미라고 보자(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기독교는 예수를 삼위일체로 보고 이슬람교는 무함마드를 그냥 위대한 선지자로 보고 있으니까 좀 다르다). 일단 이 놈들은 갖다 버려두고(...)

참고로 이슬람교를 숭상하는 모든 문화권에서는 무함마드의 초상화나, 그의 동상 같은 것은 일절 찾아볼 수 없다. 위 그림과 같이 무함마드가 등장하는 그림이더라도 얼굴은 묘사되지 않는다. 이것은 무함마드의 우상 숭배를 금지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교에 대한 영화를 보아도 무함마드는 화면에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영화인 The Message(한국판 제목은 '예언자 마호메트' 다만 DVD에선 메세지란 원제로 나왔다. 1976년 작)에서는 카메라맨이 무함마드인 것 같은 연출을 사용한다. FPS 화면에 직접 드러나지는 않지만, 등장인물들이 카메라를 바라보는 것으로 무함마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식이다.

다만, 종종 무함마드라고 하는 이미지들을 볼 수 있기는 한데, 이것은 거의 대부분 이슬람교를 비하하는 목적으로 무함마드를 이상하게 그려놓는 그림들이다. 오해하지 말자.

2 일대기

2.1 출생 당시 환경

2.1.1 부족

아랍의 역사에서 개인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부족이다. 아랍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씨족(부족)에 속하게 되며, 이에 속하지 못하면 보호받지 못한다. 사막이라는 환경에서 혼자 살아남기는 거의 불가능하니.

무함마드는 상어를 토템으로 삼은 쿠라이시 부족의 하심 씨족으로 태어났다. 가계도는… 하심이 압둘 무탈리브를 낳고, 무탈리브가 압둘라를 낳고 압둘라가 무함마드를 낳았다(족장의 직계혈통이다. 물론 큰 의미는 없다).

무함마드의 아버지 압둘라는 메카의 으뜸가는 미남이었다. 이 외모를 무함마드가 이어받은 듯하다. 그러나 아머지는 요절했다. 안습. 미인박명도 아니고. 그리고 '아미나'가 빛으로 아이를 잉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빛으로 태어나는건 예언가의 필수요소인 듯 싶다. 예수를 두고 라틴어로 lumen de lumine(빛에서의 빛), nata lux de lumine(빛에서 난 빛)이라 일컫기도 하는 것을 보면.
그리하여 무함마드의 어머니 '아미나'는 시아버지 압둘 무탈리브에게 보호를 요청했다.

그리고 무함마드가 11살에 할아버지가 죽고 '압둘 미나프(무함마드의 숙부)'(후에 아부 탈리브로 불린다[2])가 족장이 된다.

이슬람측에선 다윗의 멀고 먼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예수랑 멀고만 사촌이란 이야기. 사실이라고 증명할 수도 없고 거짓이라고도 증명할 수도 없다(…). 아브라함교 신자들을 포섭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냐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2.1.2 메카의 상황

당시 메카의 인구 구조는 소수의 거상과 절대 다수의 노예(…)가 있었다. 해방 노예라도 사실상 주인이 있는 어쨌거나 노예인 자들이 많았다. 그 외에도 장사 혹은 용병일을 목적으로 온 여러가지 목적의 기독교인(외국인), (가난한)장인들, 그리고 고아와 과부들이 있었다.

한마디로 거상과 그지들밖에 없단 소리다. 그리고 이 틈을 타 몇몇 여성들이 상업활동에 뛰어들어 거상이 되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가 성령을 보내겠다고 선포했는데, 이를 이슬람교도는 무함마드라고 한다. 꾸란에 따르면 전대의 선지자가 무함마드를 예고했다고 한다.

2.2 어린 시절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죽었고, 6살엔 어머니가 죽었고, 11살엔 할아버지가 죽어 직계혈통이 끊어져버렸다. 완전 사망 플래그. 직계혈통이 없는 고아라서 족장인 숙부에게 맡겨진다. 상인인 숙부를 따라 아랍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기독교의 성지에서 한 수도승이 무함마드가 성경에서 나온 성령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여기서 라술 알라(신의 사도)란 별칭이 붙은 듯 싶다. 그리고 당연히 이야기를 들은 당시엔 깔끔히 무시된 듯하다(…). 이래저래 돌아다니며 무함마드는 말의 중요성을 배우게 되는데, 이게 아마도 '꾸란'이 성서면서 마치 시와 같이 된 까닭일듯 싶다.

2.3 청년기

가난한 무함마드는 나이가 무려 25살이 되도록 결혼을 못했다. 사촌에게 청혼한 적 있지만 퇴짜맞았다. 당시 기준엔 이상적인 결혼이다. 하지만 그가 일하고 있는 상단의 주인 하디자와 가까운 사이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하디자는 부유한 미망인이었으나 40대라 무함마드랑 워낙 나이차가 많이 나기 때문에, 무함마드의 씨족은 이 결혼을 반대했지만 결국 누님 하디자의 적극적인 구혼에 넘어갔다.

그녀와의 결혼 이후 무함마드의 인생은 고속도로를 피게 된다. 다만 대를 이을 아들은 없었다(아들을 낳긴 했지만 일찍 죽었다). 대신 양자를 들여 잇게 했다고 한다.

2.4 각성

하디자의 후원 하에 명상에 전념하게 된 무함마드는 610년에 메카 교외의 하리산의 동굴에서 천사 지브릴(가브리엘)의 계시를 받는다.

그리고 정말 갑자기 개종운동에 뛰어들었다. 나이 40대의 아저씨가 되고 난 뒤에. 우선 아내인 하디자(55세), 두 양아들, 소유한 가족같은 노예(제이드), 친구 아부 바크르 등 우선 가까운 사람부터 포교했다. 그의 포교정신은 부자, 명문가의 딸, 가난뱅이 등 가리지 않았으나 자신의 씨족만큼은 제대로 포교할 수 없었다. 그가 포교하지 않으면 돈을 주겠다고 제안할 정도였다. 그래도 숙부는 키운정인지 무함마드를 씨족 단위로 지켜주었다. 사람들이 탄압을 하려고 할 때마다 니네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 하심 가문이 단체로 일어설거임!라고 무함마드를 커버해줬다.

그리고 그가 이슬람교를 이야기하는 동안, 공공의 적이 되어 아내와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이 파산하였다. 당시 순례는 상인들의 짭짤한 소위 대박상품이었다. 그런데 이슬람교가 우상 숭배를 금하면서, 당시 성행하고 있던 수많은 다른 종교의 우상 숭배와 순례행위를 규탄했으니 당연히 이슬람교는 탄압 대상일 수 밖에.

거기에 아내 하디자가 향년 65세로 죽고, 이틀 후 숙부 아부 탈리브가 죽었다. 즉, 무함마드는 이틀만에 2명의 강력한 후원자를 잃어버린 셈. 그리고 아브라합이 족장이 되었는데 이 사람은 그다지 무함마드에 호감을 가지지 않았다. 결국 무함마드는 씨족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현대 기준으로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말.

2.5 헤지라(회교;이슬람 기원)

야스리브라 불리는 땅이 있다. 비옥하고 기름진 이 땅은 아라비아에 토착한 히브리인, 아라비아 부족 등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당장 내일을 보장할 치안이 없었다. 당장 같은 아랍부족들끼리도 전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회의 끝에 이슬람의 무함마드를 중재자로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를 초대했고, 이것이 헤지라이다.

출발날 당일 밤에 무함마드의 침대가 습격받았지만, 무함마드 측은 이미 이를 예상해 무함마드를 대피시킨 상태였다. 습격 당시 침대엔 무함마드의 사촌동생이자 양자인 알리가 죽음을 무릅쓰고 대신 누워있었다. 습격자들은 낚였다는 걸 알고는 분노했지만 알리를 죽이진 않았다.
알리의 희생과 여러 친구들 덕분에 무함마드는 야스리브의 반대쪽으로 도망가는 낚시를 했으나, 메카인 역시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아 그들을 추격했다. 그러나 그들이 숨은 동굴 입구에 거미줄을 쳐준 거미, 그들이 숨은 곳에 둥지를 튼 비둘기 등의 여러 기적 덕에 메카인들로부터 간신히 탈출해 야스리브에 정착하였다.
이때 타고 입성한 낙타의 이름인 '카스바'(뜻은 '귀의 1/4이 잘린')까지 역사에 남았다.

그곳에서의 삶도 험난했는데, 이슬람교도인 척하는 위선자들(무나피쿤) 등이 여러가지 암적요소로 작용했다. 유대인이라고 해서 딱히 차별하지도 않았으나 이것이 결국...

2.6 성전(聖戰)

비록 메카로부터 탈출해 땅을 얻었으나, 원주민들에게도 갑자기 증가한 인구는 부담이었다. 게다가 그들에게 갑자기 줄 땅이 땅에서 솟아날리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굶어야 했다. 결국 선지자 무함마드는 특단의 조치약탈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곧 메카인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625년 봄 3,0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원정을 온 것이다. 메디나 근처 산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무함마드가 1,000명 정도의 병력으로 대항했다. 그러던중 위선자 300명이 탈영해 버렸지만 기세로 메카인들을 몰아넣었다. 그러나 재물에 눈이 팔려 진영이 무너졌고 역공당해 패배했다.

결국 메디나에서의 입지까지 위험해져 버렸다. 유대인, 위선자, 이민족 등이 노골적인 적대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 시인은 메카에 항복하고 무함마드의 목을 팔자고 대놓고(…) 말하기까지 했다.

627년 메디나를 향해 온 메카의 1만명의 원정부대와 3천의 무함마드의 부대가 참호전을 펼쳤고, 기적의 모래바람 덕분에 승전했다. 기적이다. 기적.

그리고 반역자 청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전투중 메카의 편을 든 1,000여명의 유대인, 메카에 항복하자고 말한 시인(2년전 일이었는데!) 등을 철저히 응징하였다.

628년엔 도망간 유대인들을 추격해, 덤으로 유대인의 도시에서 조공을 받게 된다. 유대인 입장에서는 과거엔 베두인족에게 바치던 것을 이슬람교인들에게 바친 걸 볼 때 이거나 저거나 큰 차이는 없는 모양.

2.7 귀환

628년 무함마드는 메카에 '순례'를 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메카와의 협상끝에 3일동안의 메카 체류를 허락받았다. 그 다음해인 629년엔 자신의 씨족과 화해하였고(아브라합이 죽은 터라 수월하였다), 630년엔 이슬람교도의 죽음을 이유로 1만 군대를 이끌고가 메카를 무혈 정복하였다. 그 후 모든 우상을 파괴하였다.

무함마드는 통치자가 되었다.

2.8 정복 이후 죽음까지

귀족들에게 이슬람을 믿지 않으면 귀족자리도 없다고 협박한 끝에, 귀족들이 모두 이슬람교도가 되었고, 소위 이슬람 법전이라 할만한 신앙고백, 기도, 지즈야, 순례, 금식 등 이슬람 기본 5개조를 포함한 규칙을 공포했다.

그는 메카 정복 이후 신의 사도라는 지위를 빌려 인간위에 군림하는 초월적 존재나 절대군주가 될 수 있었으나, 오히려 평범한 지도자이기를 자처했다. 그는 왕관을 쓰지 않았으며, 옥좌 대신 마룻바닥에 앉아 통치했고, 스스로 옷과 신발을 고쳐 입었으며, 대추야자와 보리빵을 즐겨먹는 소박하고 겸손한 인간으로 남기를 원했다. 그에 대해서는 근대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많은 부분이 왜곡되어 탐욕스럽고 호색하며 편협하고 잔인한 혹세무민의 정복자 정도로 폄하되었으나, 현대에 들어서는 사회개혁 운동가로서의 면모와 박애주의, 인자, 중용, 인내, 용맹 등을 겸비한 인격자로서 재평가받고 있다.

다만 종교의 창시자답게 다소 독선적인 면은 있어서, 유대인들과의 종교논쟁에서 여러 번 논파당하자[3] 예루살렘을 향해 절하던 규칙을 메카 방향으로 바꾸는 등의 땡깡은 좀 있었다.

그는 자신이 공포한 규칙과 법의 수호자였다.

그러나 632년 후계문제를 거론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승천-죽음을 맞이했다.

2.9 사후

누가 알았겠는가. 그의 신자들이 중세 최고의 제국을 만들 줄. 그의 사후 이슬람교칼리프 통치 체제가 되었고, 우스만 이븐 아판의 사후엔 시아파수니파로 나눠지게 되었다.

무함마드는 고작 20여년만에 그 방대한 아라비아 반도를 손에 넣었고, 이것은 전설이 되었다. 그 손에 의해 중세 최고의 제국이 태동하였다.

시아파아바스 왕조 항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알리의 사후엔 무함마드의 후손에게 정통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타나며 무함마드의 혈족 하심 가도 이를 주장한 세력 중 하나였다. 오스만 제국 이후에도 이들은 종교적인 힘을 갖고 있었고, 그 덕분인지 근대에 영국에 의해 세워진 이라크, 요르단의 국왕은 하심 가의 일원이다.

3 얘기거리

저서로는 23년간 하나님께 받은 계시들을 기록한 책인 꾸란이 있다.

꾸란의 시적 구조 덕분에 그는 종종 시인이냐는 질문을 받았고 그때마다 아니라고 했다. 꾸란은 아랍이 낳은 최고의 문학 중 하나라고 한다.

꾸란은 종종 서양인들에게 악마(…)라고 까이곤 한다. 물론 깐사람은 이슬람교도에게 까인다.

단테신곡에서는 기독교를 분리/내분시켰다는 이유로 지옥에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단 지옥에 있는게 아니라 사기 지옥에 있다는 것. 이런 서술로 볼 때 그 당시엔 이슬람교도 기독교의 연장으로 보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의 아내는 2자리 수이며, 그의 아내사랑은 당시 아랍의 모범(!)이었다. 공평히 사랑했다나 뭐라나. 철저히 평등의 이름 아래 매일밤 한명씩의 여자와 잤다(…). 역시 킹왕짱 선지자.

꾸란의 의하면 4명의 아내만을 가지라 했지만 정작 선지자는 4명이 훨씬 넘는 아내를 가졌다(…).

0.첫아내 하디자 : 사이가 좋았던 걸로 유명. 무함마드는 그녀의 생전엔 다른 아내를 두지 않았다.
1.사우다
2.아이샤
3.아프사, 과부 움 살라마
4.의붓아들의 부인(!) 자이나브
5.유대인 정ㅋ벅ㅋ중 얻은 유대인 여자 사피야
6.조바이라야
7.움아비바
8.삼촌의 처제 마이무나.

그 외 동거녀, 기독교도 마리아, 라야나 등이 있다. 과연 킹왕짱(…). 하지만 애정 때문에 했다기보다는 죽은 남편으로부터 한푼도 못받은 불쌍한 과부들과 정치적 결혼, 규율 등에 의해 결혼한 것이 많았다.

기존 아랍의 전통을 깨고 부인을 딱 4명까지만 가지라 하였고, 여성의 유산상속권을 허락했다. 이는 현재까지 이슬람교의 규칙으로 남아 있다.

그외 법으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반복을 금지했고, 이자 금지, 간음에 대해서는 4인의 증인을 요구하는 등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법이 많았다. 그리고 간통을 했다고 돌팔매로 여자를 죽이는 당시의 관습(이건 아직도 하는 곳이 있다... 것도 종교의 이름으로)과 다르게 아니라 그냥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고 말하며 히잡을 씌웠다는 일화도 있다.

또한 무하마드는 생전에 퓌에자란 이름의 고양이를 대단히 아꼈다고 한다. 기도를 하던 도중 퓌에자가 와선 옷자락 위에서 잠이 들자, 고양이를 깨우고 싶지 않다며 옷자락을 잘라내곤 자리에서 일어설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성향 때문인지 현재까지도 이슬람 교도들 중 상당수는 고양이를 애호하는 경우가 많다.

4 아랍 남성 이름

그의 이름은 아랍세계에서 사람들에게 붙이는 가장 인기 있는 이름이다. 보통 장남은 대부분 이 이름이다.(...) محمد라고 쓰며 정확힌 무함마두, 무함맏이라고 읽는데 가운뎃자 '함'은 kham 발음이다. 쉽게 예시를 들자면 가래뱉을 때 내는 '카' 소리를 'ㅋ'이 아닌 'ㅎ'라고 해보면 안다. 정 모르겠으면 EBS 제2외국어 아랍어를 들어보면 된다.

이 이름으로 유명한 사람은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 총재 무함마드 유누스, 전 복싱선수 무함마드 알리, 스파이였지만 유능한 학자인 무함마드 깐수(정수일), 셰이크 무함마드 두바이 국왕, 탈레반 최고 지도자 물라 무함마드 오마르('물라'는 이름이 아니라 이슬람 성직자에게 붙는 칭호다), 모하메드 압둘 등이 있다.

혹자는 세계에서 가장 흔한 이름이라고도 하지만 진위여부는 알 수 없다. 아랍세계에서 제일 흔한 이름인건 맞다. 50~60개 남짓한 이름이 아랍 남자 이름의 전부라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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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슬람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무슬림은 아담하와이다. 성경에 따르면 낙원에서 추방된 이후로 아담과 하와는 아라비아에 정착했으며, 특히 메카는 주요 예언자들이 다녀간곳으로 여겨진다. 가령 메카 근방에 있는 '잠잠'이란 샘물은 모세가 지팡이로 땅을 내리쳤을때 생겨났다는 전설이 있으며, 메카의 중심부인 카바 사원에 있는 검은 돌은 아담과 함께 내려온 운석이라고 여겨진다.
[2] 아랍사람들의 아들사랑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예이다. ~~의 아버지란 뜻의 아부(ابو) 뒤에 자신의 아들 이름을 넣는다. 즉 "탈리브 아범"이라는 의미.
[3] 유대인 율법학자들 시선에선 '웬 아랍인이 요상하게 변형한 유대교'를 상대하느라 좀 잔인하게 찍어눌렀을 것이긴 하다. 게다가 무함마드는 유대교 교리에 그다지 박식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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