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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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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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gs of our Fathers: Heroes of Iwo Jima
작가 제임스 브래들리의 아버지 존 브래들리 해군 의무하사[1]와 함께 "깃발을 세운 평범한 전우들"을 중심으로 기록한 논픽션.

태평양 전쟁이오지마 전투 당시의 격전과 함께 전투후 "평범했던 그들"이 영웅이 되고, 과분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괴로워하는 과정이 담겨있다. 저자의 아버지 존 브래들리를 제외하면 다른 전우들은 사실상 파멸한 인생을 살며 허무하게 죽었으며, 존 브래들리 하사는 영예로운 "해군 십자 훈장"[2]을 받았음에도 죽을 때까지 그것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참고로 깃발을 세운 것 때문에 훈장을 받은 게 아니라, 그 이후의 전투에서 의무병으로서 거둔 전과 때문에 받은 것이다.).

기본적으로 "영웅으로 만들어져 선전활동에 쓰이다 버려진" 인물들을 초점으로 진행되지만, 치열했던 이오지마 전투 당시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 ‥ 제28해병연대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는 동안 하늘을 날던 해군 정찰기들은 산속에서 한떼의 일본군들이 몰려나와 공포의 만세 돌격을 준비하기 위해 집결 중인 것 같다고 보고했다 ‥ 전투기들이 날개를 흔들며 사라진 후 잠시 동안 전장에는 무시무시한 정적과 긴장이 감돌았다. 고요를 깬 것은 전선 좌익에 있던 제2소대와 마이크 스트랭크 병장이었다. 이 체코 출신 해병은 뛰어 일어나 소리쳤다. ‥" 저 호로새끼들에게 진짜 만세 돌격이 뭔지 한 번 보여주자! 이지중대, 돌격! "‥ 고함과 함께 뼛속까지 피곤하고 전투로 인해 겁에 질렸던 해병들은 다시 한 번 불의 장막속으로 뛰어들었다 --- "

라든가,

"‥한 일본군 장교는 미군의 전선을 돌파하려고 일본도를 휘두르며 돌격했다. 이는 엄청난 실수였다. 나흘 동안의 공포와 두려움에 맞서 싸우며 분노하던 한 해병은 맨손으로 일본도의 날을 잡고 칼을 빼앗아서 그 일본 장교를 난도질 해버렸다. 해병은 손을 크게 다쳤지만 대신 일본도를 기념품으로 간직했다.‥"

라는 후덜덜한 장면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이오지마 전투 당시 "미군은 물량만으로 승부한다."라는 교육을 받고 있던 일본군으로서 포화를 뚫고 초인같이 전진하는 미군의 기세는 대단한 충격이었다고 한다.

한국어판은 황금가지 출간

2 영화


같은 제목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전쟁영화. 유명한 전사 사진이자 아예 동상으로 만들어져 국회 앞에 세워진 '그 장면'의 뒷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원래 제목은 <아버지의 깃발>이지만, 국내판에선 그냥 아버지의 깃발로 번역했다. 영어의 소유격과 복수/단수 다 살려서 한국어로 번역하면 그것도 은근 웃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최대의 격전지중 하나였던 이오지마 전투 당시 미합중국 해병대가 수리바치산 정상에 성조기를 꽂는 장면을 찍은 사진에 관한 이야기다. 사진의 포즈가 너무나도 드라마틱 했던데다 전쟁에서 거의 이겨가고 있음을 확신하게 해주는 메시지를 전달할수 있었기에 정치적인 의도로 많이 사용되었다. 당연히 사진의 주인공들은 영웅이 되었고, 미국 본토로 소환되어 이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국을 돌며 국민들의 성원(과 자발적인 모금)[3]을 독려하는 상징이 된다.

그런데, 사실은 저 사진이 찍힌 시점에서도 전투는 한창 계속되는 중이었고, 저 성조기도 사실 2번째로 올라간 거다. 맨 처음 새워진 성조기는 전투가 계속되다가 급하게 올리느라 좀 작은 것을 사용했는데, 전투를 참관하다가 이걸 본 제임스 포레스탈 미 해군장관[4]은 그 성조기를 자기가 가지고 싶어했다. 그러나 깃발을 세운 해병대 대대장은 해군장관의 말을 무시하고, 원래 있는 성조기를 대대 금고에 반납, 대대 소유물로 보관하고 대신 더 큰 성조기를 달자!라고 해서 2번째로 성조기를 세우다가 사진이 촬영된 것. 거기 얽힌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남아 선전에 동원된 이들은 영웅대접을 받지만 내면으로는 심각한 PTSD에 시달린다. 전쟁의 참상을 미화하는 교묘한 선전사진의 마술과 정치가들의 놀음인 전쟁에 끌려가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돌아와서도 PTSD에 시달리는 젊은이들. 두 소재가 이 영화를 관통한다. 그래서 넓게보면 반전 영화로도 볼 수 있다.

이 중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인 아이라 헤이즈는 PTSD가 너무 심해져서 젊은 나이에 알콜중독에 걸렸다가 객사했다.

전투신을 촬영할때 실감나는 전투를 표현하기 위해 제작진들은 배우들에게 폭약이 터지는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감독이 찍은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와는 같이 촬영한 자매작이다. 여기 얽힌 이야기가 또 재밌는데, 원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버지의 깃발'만을 찍으려고 했는데 당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일본군인들의 수기와 편지를 읽다가 문득 당시 이오지마에서 싸우던 일본군의 시점에서 본 전쟁은 어떠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당시 일본군 지휘관인 쿠리바야시 타다미치 중장의 편지를 묶은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라는 책도 있었다. 쿠리바야시 장군은 편지에 전쟁의 참상이나 군인정신 이야기보다는 본토에 있는 어린 아들에게 오히려 즐거운 이야기나 기쁜 이야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특히 쿠리바야시 장군이 주미대사관 무관으로 미국 생활을 한 적도 있는 것이 밝혀져 아예 이참에 아버지의 깃발을 찍기 위해 가져온 필름과 물자, 세트, 배우들을 '그대로' 활용하여 제작한 영화가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인데 일본 관객들에게도 자기네 과거 이야기를 남의 나라 감독이 굉장히 리얼하게 다루자(…) 복잡 미묘한 감정으로 다가온 듯하다.


인터뷰 기사 2편.(#), (#)

스파이크 리 감독이 이 영화와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보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에게 엄청나게 화를 냈다.
스파이크 리는 이오지마 전투에 흑인들이 참전한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데 이를 전혀 다루지 않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흑인 미군들의 역할을 깔아뭉개 역사에 먹칠을 했다 라고 공격했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리가 도대체 역사를 제대로 배웠는지 궁금하다. 이오지마의 수리바치산 정상에 성조기를 꽂은 군인들 중에는 흑인이 없었다 라며 만약 내가 성조기를 꽂은 군인들 사이에 흑인을 포함시켰더라면 사람들이 날 미쳤다고 여겼을 것이다. 리는 입을 닥쳐라!고 크게 화를 냈다.

그러자 스파이크 리는 내가 거짓말은 하는게 아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라며 맞받아 쳤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두 감독 다 맞는 말을 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당시는 철저하게 흑백분리 원칙이 지켜지던 때라서 흑인들로만 구성된 상륙부대가 7~900명 정도 이오지마 전투에 참전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수리바치 산에 성조기를 꽂은 사람들은 전원 흑인이 아닌 인종[5]으로써 어떻게 보면 두 감독 다 맞는 말을 가지고 싸운 것이다. 참고로 영화 중간에 보면 상륙작전이 시작되기 전 병사들을 갑판에 모아놓고 브리핑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 보면 흑인 해병대원들도 나온다(…).


번역은 박지훈으로 전체적 번역은 우수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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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후술할 두 번째 국기 게양에 참가했다. 해군 의무부사관이 왜 해병대의 전장에 있었는지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의무병 항목 참조.
  • [2] Navy Cross. 명예 훈장 바로 다음 등급으로, 군인이 받을 수 있는 훈장 중 서열 2위. 육군과 공군에도 동급의 십자 훈장이 존재하며 해병대와 해안 경비대도 이 훈장을 받는다.
  • [3] 이 중에는 양키 스타디움에 수리바치산 세트를 만든 뒤, 거기에 성조기를 꽂는 퍼포먼스를 행하는 행사도 있다.
  • [4] 전후 육군/해군부를 총괄하기 위해 창설된 국방부의 초대 장관이었지만 해군과 공군의 갈등이 심화되며 자살했던 그 포레스탈이다. 포레스탈급 항공모함 참조.
  • [5] 엄밀히 말하자면 6명 중 5명이 백인이고 1명은 아메리카 원주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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