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

| 아이티의 국가정보 | ||
| 국기 | | |
| 공식명칭 | 아이티 공화국(République d'Haïti, Repiblik Ayiti) | |
| 면적 | 27,750㎢ | |
| 인구 | 971만 9,932명(2011) | |
| 인구밀도 | 350명/㎢(2011) | |
| 수도 | 포르토프랭스 | |
| 정치체제 | 공화제, 준대통령제 | |
| 대통령 | 미셸 마르텔리(Michel Martelly) | |
| 명목 GDP | GDP | 66억 $(2010) |
| 1인당 GDP | 673$(2011) | |
| GDP(PPP) | GDP | 114억 $(2011) |
| 1인당 GDP | 1,164$(2011) | |
| 수출 | 4억 달러(2008) | |
| 수입 | 20억 달러(2007) | |
| 선진국여부 | 개발도상국 | |
| 지니계수 | 0.592(2001) | |
| 실업률 | 2/3 이상(2002) | |
| 공용어 | 프랑스어, 아이티 크레올어 | |
| 종족구성 | 흑인 95%, 물라토 5% | |
| 국교 | 없음[1] | |
| 국가(國歌) | 드살린의 노래(La Dessalinienne) | |
| 모토 | 자유, 평등, 박애(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 | |
카리브해의 중앙에 있는 히스파니올라 섬 서부에 위치한 국가. '아이티'는 히스파니올라 섬의 선주민인 타이노인 말로 '산이 많은 땅'이라는 뜻이며, 이름 그대로 국토의 3/4이 산이다. Haïti라는 국명도 이를 불어식으로 옮긴 것이다. 수도는 포르토프랭스(Port-au-Prince)로, 프랭스 호(Le Prince)라는 배가 정박한 항구라는 뜻이다.
미국을 제외하고 아메리카 최초의 비백인종(흑인)이 주도한 한 최초의 독립국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오랫동안 외세의 간접적인 지배를 받았고, 지금은 남북아메리카의 최빈국으로 국민소득이 세자리수인 유일한 국가이다.
2 자연 ¶

서인도제도에서 두 번째로 큰 히스파니올라섬을 도미니카 공화국과 공유하면서 육지로 국경을 맞대고 있다. 카리브해 국가 중에선 육상국경을 맞대고 있는 몇 안되는 사례. 섬의 서쪽 1/3과 인근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지리적으로 작은 나라에 산지가 많고 열대산림이 우거져 국가 기반 산업이 벌목 산업일 정도였으나, 고산과 삼림으로 인한 다양한 생물의 서식이 확인 되어 국제 환경단체에서 환경보호에 열심히 노력 중이다. 벌목산업을 관광산업으로 바꿔가라 한 것은 국가 경제 지표도 어느정도 올라가고 한 면에선 좋은 모습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메리카 전체에서 문맹률이 가장 높은 나라라 성공적이진 않다고 한다. 거기에 글을 아는 사람도 잘 아는 것도 아니라 UN에서 준 에너지 바[2]의 제조일자를 유통기한으로 착각해 기한이 지났다면서 버리라고 난리쳐서 사람들이 못먹고 심지어 밟아버리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숲이 파괴되기를 거듭해 전 국토의 2%에 불과하다.
3.1 근대사 ¶
원래 히스파니올라 섬에는 토착민인 타이노족이 살았으나 에스파냐가 16세기 점령한 이후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고, 이후 프랑스가 히스파니올라 섬의 서반부를 차지하여 생 도맹그(Saint Domingue, Santo Domingo)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18세기에 현재의 도미니카 공화국은 평방킬로미터당 인구밀도가 5명 남짓했을 정도로 인구가 희박했으며 주민들은 소(동물)떼를 쳐서 소가죽을 수출하는 안습한 동네였으나 아이티는 노예만 70만 명에 이르렀고 인구는 지금의 도미니카 공화국의 7배에 달했으며, 사탕수수 농장을 기반으로 한 경제로 인해 번성해 프랑스 국부의 4분의 1을 조성할 정도의 부유한 식민지였다. 물론 섬 인구의 90%에 해당하는 노예들은 그냥 노예일 뿐이었고 부는 오직 프랑스로 돌아갔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독립 분위기가 일찍 불거졌고 투생 루베르튀르(Toussaint Louverture)라는 걸출한 흑인 독립운동가의 노력으로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군을 무찌르고[3] 후계자인 장 자크 드살린(Jean-Jacques Dessalines)에 의해 1804년에 독립하였으며 이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 다음으로 가장 빠른 것으로, 흑인이 수반이 되어 흑인정부가 구성된 것으로서는 최초의 사례.
다만 독립후에도 막장 상태가 끝나지 않은 것이 큰 문제. 드살린이 나폴레옹을 흉내내어 황제를 참칭하다 동지였던 공화파에 의해 암살된 후 정치도 혼란에 빠져들었다. 알렉상드르 페숑(Alexandre Pétion)이 이끄는 공화파에 의해 역시 사상 최초의 흑인 공화정부(지금의 아이티 공화국)가 수립되었으나 공화파 내에서도 자기가 왕이라고 하며 분리 독립한 자도 있어 제대로 된 통일은 1820년에나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시몬 볼리바르의 재기를 결정적으로 도와 남아메리카의 독립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허나 정작 자신들이 독립국임을 인정하는 나라가 어디에도 없었기에 결국 프랑스의 압력에 굴복, 배상금을 줄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없는 것이나 다름 없는 국가 제정을 한 세기 이상 탈탈 털어갔으며[4] 이로 인한 농업의 몰락, 경제 피폐, 정치 혼란(이후에도 황제를 참칭하는 작자들이 잊을만하면 등장했다.)과 이로 인한 내분, 대국들의 압박 등은 아이티 사람들의 등골을 휘게했다. 1843년부터 1915년까지 22명의 대통령이 재임했는데 이 중 21명이 암살당하거나 쫓겨났다.
3.2 현대사 ¶
이후로도 막장국가의 수난은 계속된다. 긴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고 반세기 만에 문민대통령으로 당선된 프랑수아 뒤발리에는 집권 초기에는 선정을 펼치며 국가 발전과 안정에 기여했다. 그러나 몇년 되지않아 손바닥을 뒤집듯 돌변, 이디 아민 뺨칠 정도의 최악의 독재자. "파파독(Papa Doc)"이 되어 나라를 철저히 거덜냈다. 옆나라의 라파엘 트루히요도 뒤발리에와 비슷하게 독재정책을 감행했으나 트루히요가 도미니카를 개발했다면 뒤발리에는 그것도 아니고 그냥 독재일 뿐이었다. 뒤발리에 독재정권은 아들에게까지 세습되었고 장끌로드 뒤발리에가 민중 봉기로 쫓겨나는 1986년까지 계속되었다.
1991년, 좌파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Jean Bertrand Aristide)가 선거로 집권했다. 그러다 반년 만에 군사 쿠데타에 쫓겨났으나 UN과 미국 지원을 받아 돌아와서 1년 동안 국정을 수행했다. 그 뒤 2002년에도 선거로 집권, 군부를 억누를 목적으로 군을 해체했으며 다국적 기업의 횡포를 견제하고 IMF의 차관(및 그에 따라오는 신자유주의 정책 경제식민지 패키지)제의를 거부했다. 결국 2004년 반정부 무장 세력의 쿠데타가 일어나(상당수는 바로 그 해체된 국군) 아리스티드는 2년만에 다시 해외로 쫓겨났다.[6]
수상한 게 이 나라에 현재 뒤발리에가 돌아와 있는데, 정작 아리스티드가 돌아오는 것은 허용되지 않고 있다. 아아티를 지배하고 있는 강대국들한텐 뒤발리에가 아리스티드보다 더 낫다는 것일까? 물론 뒤발리에도 오자마자 고소당한 상태긴 하지만 아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있는 아리스티드보단 정치적인 면에서 사정이 나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털어봐야 털릴 것도 없는 철저한 몰락 끝에 결국 UN이 나서서 평화유지군이 투입되어서야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고 지금도 브라질군이 주축이 된 UN 아이티 안정화작전(United Nations Stabilization Mission in Haiti/MINUSTAH)이 계속되고 있다. 미 국무부가 북한을 넘는 파탄국가(failed state)로 선언한 지 오래이다.
설상가상으로 2010년에는 대규모의 지진이 국토를 강타했다. 2010년 아이티 지진 문서 참고. 덕분에 잠시 아이티의 인지도는 올라갔지만... 그 답이 없는 참상도 금방 잊혀버렸다..
2011년 3월 20일, 오랜 망명 생활 끝에 아리스티드가 돌아왔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남아공 대통령 주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리스티드를 아이티에 돌려보내면 안 된다고 했으나 주마는 이를 무시하고 아리스티드를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표들과 함께 아이티로 돌려보냈다. 일부 미국 역사가들이 민중봉기로 쫓겨났다고 주장하는 전 대통령 아리스티드는 공항에서 아이티인 수만명의 대환영을 받았다(그러나 아리스티드를 지지하는 정당은 선거 참여가 여전히 금지되어 있다!). 과연 아리스티드의 귀환은 제다이의 귀환이 될 수 있을까? 지켜 볼 일이다.
3.2.1 아리스티드에 대한 논란과 의혹 ¶
아리스티드 지지자들은 아리스티드 축출 쿠데타 뒤에 미국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티드는 그가 쓴 <가난한 휴머니즘>(한국어판도 나와있음)에서 자신이 IMF 정책을 따르지 않고 그를 비판 한것이 강대국의 미움을 샀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아리스티드가 세웠던 의과 대학은 아리스티드가 쫓겨난 뒤 "미군" 기지로 바뀌었다고(...) 아리스티드 귀환을 다룬 기사
반면 쿠데타 정부는 아리스티드 본인이 쓴 '가난한 휴머니즘'이라는 책과는 달리 아리스티드 자신은 전혀 가난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아니, 가난하기는 커녕 수천만달러의 자금이 예치된 역외은행의 비밀계좌를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고 한다. 실제 계좌를 추적해서 드러난 사실이라고도 주장한다. # 더불어 이런 엄청난 재산이 정상적인 대통령 월급으로 채워졌을리는 만무하고, 부정축재와 기금횡령으로 거둬들인 재산이며 그가 쓴 책과는 달리 얼마나 아이티인들을 위한 정치가였는지는 의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옹호자들은 이런 의혹은 정작 앞에서도 말했듯이 쿠데타 세력이 일으킨 정부가 발표한 것이며, 그걸 밝힌다고 미국에 넣은 소송은 2006년에 중지되었다고 말한다. [7] 한 마디로 "밝혀진 것" 없다는 주장. #
물론 쿠데타 세력은 아리스티드 정부시절 받은 수표와 계좌가 밝혀진 것은 사실이라고 아직도 주장한다. 그 사진은 다음과 같다.

아리스티드의 옹호자들은 이 수표는 왜 비밀도 아니고 훤히 드러나는 아이티국립은행 것인가에 의혹을 제기한다. 그것도 수천만달러가 아니라 60만달러.단지 저 수표에 서명을 했다는 것만으로 그것이 바로 부정축재 증거가 된다고 보기엔 적혀 있는 내용이 너무나 간략하다. 출처
반면 현 정부 옹호자들은 스위스 은행에서는 아리스티드의 자산을 동결했다고 밝혔고, 프레발 대통령은 아이티 경제가 어려워지자 이 동결을 해제하여 현금화할 것을 고려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므로 스위스 은행가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아리스티드의 자산을 만들어내서 아이티에 지원할 만큼 천사들은 아닐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연합뉴스 [8][9]
고로 판단은 알아서.
6 경제 ¶
건국 이래로 빚이 많았던 듯. 그래서인지 국민의 반수 이상이 미국의 원조식량에 의존하고 있으며 때문에 농산물 가격이 급락, 농업인구가 계속 줄고 있다. 그렇다고 원조를 줄이면 당장 대량기아가 발생하는 판이라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7 아이티 출신 인물 ¶
독재자 프랑수아 뒤발리에가 유명하다.
록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의 멤버인 레진 사샤뉴[10]하고 퓨지스의 와이클레프 쟝[11]정도? 또한 미드 히어로즈의 캐릭터 중에는 통칭 헤이션, 즉 아이티인(Haitian)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본명은 불명이고 그냥 이게 이름이다. GTA 바이스 시티에서도 아이티계 갱단이 등장하는데, 돌려 말하지 않고 대놓고 미션목표에 아이티인들을 죽여라! 하고 써버려 락스타에게 거대한 고소크리를 안겨주었다.[12] 이 가운데 와이클레프 장은 최근 아이티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지만 국적상 미국인이라서 불가능.
아이티인은 아이티 밖에 상당히 많이 거주하고 있다. 미국에는 120만 명, 캐나다에 20만 명, 그리고 도미니카공화국에는 100만에서 200만 사이의 수가 거주하고 있으며 프랑스에도 9만 명이 거주하며, 바하마에도 8만 명이나 거주한다. 특이하게 캐나다에도 많은데 퀘벡에 상당수가 거주하고 있으며 레진 샤사뉴와 캐나다의 전 총독이었던 미카엘 장(Michaëlle Jean)이 퀘벡 아이티인이다. 아무래도 같은 프랑스 문화권이고 미국에 대한 반감 때문에 차선책으로 캐나다로 많이 이주한듯. 한편 도미니카 공화국에선 아이티인에 대한 인종주의가 팽배하다고 한다.
9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비교 ¶
하긴 같은 섬을 공유하는 경제적으로 그다지 안 좋은 이웃 도미니카 공화국조차 아이티를 우습게 본다. 아이티 사람들이 거기로 가서 일하는 게 많기 때문이다. 경악스럽게도, 가히 도미니카와 아이티의 변화는 남한과 북한의 상전벽해를 방불케 할 정도다. 프랑스 식민지 부국 + 인구 7배의 최초의 독립국 vs 소 치는 스페인 식민지 에서 미대륙 최악의 헬게이트 vs 그럭저럭 살만한 나라가 되어버렸으니..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는 20세기 후반에 있었다. 70년대, 80년대 독재정권하의 부실한 산림 관리 정책으로 그나마 있던 산림마저 모두 베어버려 암반이 노출될 정도로 심각한 토양 유실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아이티의 식량생산은 급감하여 1991년부터 2002년 사이엔 무려 30% 이상이 감소했다. 이러다보니 기후가 바로 옆나라 도미니카 공화국에 비해 강수량이 적으며, 더욱이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는 옆나라 도미니카 공화국과 달리 숲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기본적인 땔감까지 부족한 실정이다.
보수적 사회학자들은 혼혈국가 정체성을 강조한 도미니카와 대비해 뒤발리에 등이 옹호했던 "흑인국가" 주의 역시 아이티를 망쳤다고 주장한다. 오죽하면 도미니카에서는 국적을 가진 혼혈(물라토)나 흑인은 "원주민"으로 규정되지만 아이티에서 넘어온 이들은 "흑인"이라고 분류하여 차별한다고 한다. 뭐 이건 이것대로 막장이지만 그나마 그래서 나라꼴이라도 유지하고 산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는건 사실이다. 도미니카에서는 스스로를 스페인어와 가톨릭 국가, (상대적인) "백인국가"라고 규정하고 백인 우위의 현실을 인정하는게 그나마 (아이티와의 상반되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도미니카의 국민통합과 사회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역설인 것이다.
10 외교 관계 ¶
남북한 모두와 수교국이지만 현지교민은 몇 안 된다.
그렇게 열악한 나라이기에 주한 도미니카 대사는 "제발 스스로 식사문제 등 개인적인 것을 해결 할 수 있는 분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지만 졸지에 언론의 왜곡보도로 귀찮게 하지 말라는 식으로 둔갑했다. (정정보도까지 한 사항이다.) 이분은 지난 피랍사태 때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고생하신분. 안습.
----
[1] 가톨릭이 80% 가량 차지하고 있다. 기독교도 비중은 96%에 달한다.[2] 오래 보관 가능하고 비타민 등등이 보강된 과자
[3] 그러나 투생은 어처구니 없게도 프랑스군의 비열한 함정에 걸려 프랑스로 끌려가 옥사했다. 프랑스군 사령관이 투생에게 협상을 제안하자 투생은 우리 힘을 보여줬으니 프랑스도 협상을 제대로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프랑스군 진영으로 갔다가 이런 지경이 되버린것. 대단히 비열한 짓거리이지만, 투생이 흑인이라서 인지 비난하는 여론은 없었다.
[4] 한마디로 프랑스 농장주들의 재산인 농장과 흑인 노예를 상실했으니, 그 댓가로 배상금을 내놓으라는 소리. 이건 뭐…. 이 경제 압박은 심지어 흑인에 의한 흑인 노예제 부활이란 희대의 병크까지 불러왔다. 배상금은 미군정기 미국 정부가 프랑스의 개소릴 생까고 나서 유명무실해졌지만 정식으로 무효화한 건 1947년에 이르러서 였다.
[5] 더욱 기가 찬 것은 미국이 침공 이유로 내세운게 아이티의 대미 채무 불이행 이었다는 것이다. 진짜 이유는 중남미에서의 독일 세력 견제. 건국후 한 세기 반 가까이를 빛쟁이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한 개막장급 사례이다.
[6] 아리스티드는 미 해병대와 CIA가 쳐들어와 자신을 납치했다고 한다. 미국인 역사학자 스키드모어는 미국 국무부 설명을 충실히 따라 아리스티드가 국민봉기로 쫓겨났다고 주장한다. 반면 아이티에서 NGO 및 자선 의료 활동을 했던 의료인류학자 폴 파머(현재 하버드 대학 사회의료대학 석좌교수 겸 학장)에 따르면 미국의 공화당 세력이 쿠데타 뒤에 있었다고 한다(관심 있으면 '권력의 병리학'이란 책을 참고하라.).
[7] 다른 나라 이야기지만 칠레에서 1973년에 쿠데타로 집권한 피노체트 정부는 아옌데의 인민연합 정부가 Z계획이라 하여 당일 예정된 신임투표에서 친위쿠데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제는 미국 극우들도 인정 안하는 이야기다.
[8] 반박 : 다만 이 기사는 프레발 대통령이 아리스티드 대통령의 동결된 재산을 가져오려 하겠다고 "말했다고" 스위스의 '한 TV'가 말한 것을 전한 것이다.
[9] 위 링크에 나온 취재기자 Lucy Komisar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이 기자는 아이티 쿠데타에 찬성한 아이티의 거물 부로 집안(Boulos family)과 미국 우파 단체 Haiti Democracy Project (HDP)의 고용원으로 일한 사람이다. 한 마디로 쿠데타정부와 한 편이라는 주장. (아이티 주간지의 기사). # Lucy Komisar가 증언자의 말을 왜곡했다는 기사도 있다. # 다른 아이티 소식지 또한 아리스티드가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
[10] 가족이 아이티인이였는데, 뒤발리에의 폭압 때문에 캐나다로 망명했다고 한다. 아케이드 파이어의 1집에 수록된 'Haiti'는 이를 다룬 곡이다("내 태어나지 않은 사촌들은 한밤중에 뒤발리에에게 사냥당했다").
[11] 아이티 난민이며 미국 흑인들에게 차별받은 경험이 주요한 음악적 원천이 됐다고 한다.
[12] 이 이후로 비디오 게임에선 특정 국민이나 세력을 죽이라는 말을 단 한마디도 넣지 않게 된다. 제일 쉬운 예는 모던 워페어 2의 No Russian.
[13] 쿠바는 확실히 아이티에 견주면 천국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여긴 굶주려 죽는 이는 없다. 적긴 해도 배급이 나오고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업으로 식량을 자급자족하며, 국민 모두에게 개인주치의를 배정한 무상의료체계로 미국보다 오히려 영유아사망률이 낮다. 오랜 경제봉쇄로 경제침체 상태에 언론통제와 비밀경찰의 일당독재국가이긴 하지만 진흙 쿠키 따위 먹을 일은 없다. 애초에 진흙 쿠키는 아이티 이웃국가에선 찾아볼 수도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