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카리브해 지역의 국가
루케이언 제도
바하마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대(大)앤틸리스 제도
도미니카 공화국 아이티 자메이카 쿠바
케이맨 제도 푸에르토 리코
소(小)앤틸리스 제도
과들루프 그레나다 네덜란드령 카리브 도미니카 연방
마르티니크 몬트세랫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바베이도스
생마르탱 생바르텔레미 세인트 루시아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세인트 키츠 네비스 신트마르턴 아루바 앤티가 바부다
앵귈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퀴라소 트리니다드 토바고

Contents

1. 개요
2. 자연
3. 역사
3.1. 근대사
3.2. 현대사
3.2.1. 아리스티드에 대한 논란과 의혹
4. 문화
5. 사회
6. 경제
7. 스포츠
7.1. 축구
8. 아이티 출신 인물
9. 기타
10.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비교
11. 외교 관계

1. 개요


아이티의 국가정보
국기
공식명칭 아이티 공화국(Republic of ITRépublique d'Haïti, Repiblik Ayiti)
면적 27,750㎢
인구 971만 9,932명(2011)
인구밀도 350명/㎢(2011)
수도 포르토프랭스
정치체제 공화제, 준대통령제
대통령 미셸 마르텔리(Michel Martelly)
명목 GDP GDP 66억 $(2010)
1인당 GDP 673$(2011)
GDP(PPP) GDP 114억 $(2011)
1인당 GDP 1,164$(2011)
수출 4억 달러(2008)
수입 20억 달러(2007)
선진국여부 개발도상국
지니계수 0.592(2001)
실업률 2/3 이상(2002)
공용어 프랑스어, 아이티 크레올어
종족구성 흑인 95%, 물라토 5%
국교 없음[1]
화폐단위 아이티 구르드(Gourde haïtienne, G)[2]
국가(國歌) 드살린의 노래(La Dessalinienne)
모토 자유, 평등, 박애(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

IT 강국이 아니다
북한, 소말리아, 콩고민주공화국, 아프가니스탄과 더불어 전세계에서도 몇 안되는 현세에 구현된 생지옥 중 하나. 그리고 소말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콩고 민주공화국이 내전과 외세의 침입으로 그런 헬게이트가 되었지만 아이티는 북한과 더불어 내부 독재 문제라든지 그러한 문제로 지옥이 되어버린 차이가 있다.

카리브해의 중앙에 있는 히스파니올라 섬 서부에 위치한 국가. '아이티'는 히스파니올라 섬의 선주민인 타이노인 말로 '이 많은 땅'이라는 뜻이며, 이름 그대로 국토의 3/4이 이다. Haïti라는 국명도 이를 불어식으로 옮긴 것이다. 수도는 포르토프랭스(Port-au-Prince)로, 프랭스 호(Le Prince)라는 가 정박한 항구라는 뜻이다.

미국을 제외하고 아메리카 최초의 비백인종(흑인)이 주도한 한 최초의 독립국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오랫동안 외세의 간접적인 지배를 받았고, 지금은 남북아메리카의 최빈국으로 국민소득이 1000달러가 안 되는 유일한 국가이자 소말리아, 북한, 짐바브웨, 콩고민주공화국, 아프가니스탄 등과 더불어 세계 최악의 생지옥이다. 이런 국가라고 볼 가치가 있나 의문인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리 막장성이 짙은 국가라 해도 아이티와 비교하면 화낼 정도.

2. 자연


서인도제도에서 두 번째로 큰 히스파니올라섬을 도미니카 공화국과 공유하면서 육지로 국경을 맞대고 있다. 카리브해 국가 중에선 육상국경을 맞대고 있는 몇 안되는 사례. 섬의 서쪽 1/3과 인근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지리적으로 작은 나라에 산지가 많고 열대산림이 우거져 국가 기반 산업이 벌목 산업일 정도였으나, 고산과 삼림으로 인한 다양한 생물의 서식이 확인 되어 국제 환경단체에서 환경보호에 열심히 노력 중이다. 벌목산업을 관광산업으로 바꿔가라 한 것은 국가 경제 지표도 어느정도 올라가고 한 면에선 좋은 모습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메리카 전체에서 문맹률이 가장 높은 나라라 성공적이진 않다고 한다. 거기에 글을 아는 사람도 잘 아는 것도 아니라 UN에서 준 에너지 바[3]의 제조일자를 유통기한으로 착각해 기한이 지났다면서 버리라고 난리쳐서 사람들이 못먹고 심지어 밟아버리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숲이 파괴되기를 거듭해 전 국토의 2%에 불과하며, 옆동네 도미니카와의 삼림 비교를 통해 저개발국과 중진국을 비교할 때 흔히 쓰이기도 한다.[4]

아이티 출신 애완동물인 이놈들은 어쩌다가 우리나라에 수입되어서 헤이티안이라는 괴상한 이름으로 초월번역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5]

3. 역사

3.1. 근대사

원래 히스파니올라 섬에는 토착민인 타이노족이 살았으나 에스파냐가 16세기 점령한 이후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고, 이후 프랑스가 히스파니올라 섬의 서반부를 차지하여 생 도맹그(Saint Domingue, Santo Domingo)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18세기에 현재의 도미니카 공화국은 평방킬로미터당 인구밀도가 5명 남짓했을 정도로 인구가 희박했으며 주민들은 소(동물)떼를 쳐서 소가죽을 수출하는 안습한 동네였으나 아이티는 노예만 70만 명에 이르렀고 인구는 지금 경계상의[6] 도미니카 공화국의 7배에 달했으며, 사탕수수 농장을 기반으로 한 경제로 인해 번성해 프랑스 국부의 4분의 1을 조성할 정도의 부유한 식민지였다. 물론 섬 인구의 90%에 해당하는 노예들은 그냥 노예일 뿐이었고 부는 오직 프랑스로 돌아갔다.

하지만 미국 독립전쟁프랑스 혁명[7]의 영향으로 독립 분위기가 일찍 불거졌다. 미국 독립 전쟁 당시 자유 흑인들은 프랑스군에 입대하여 미국 독립을 위해 싸웠다. 하지만 자유 흑인들은 군에서 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지위가 계속 떨어지는 것을 눈뜨고 지켜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프랑스 혁명 초기 혁명주의자들이 만든 국회에 아이티도 의원을 보내게 되자, 자유 흑인들은 자신들도 더 많은 정치적 영향권을 요구, 백인 농장주들과 백인 빈곤층들과 대립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혁명이 시작하기도 전에 자유 흑인 vs. 백인 농장주(들과 그들이 소유한 노예들) vs. 백인 빈곤층이 내전을 일으킨다. 그리고 결국 이를 배경으로 노예들도 불만이 폭발하게 되고 본격적인 혁명이 시작된다. 거기에 프랑스 혁명정부, 그리고 1899년 이후는 나폴레옹과 전쟁중이던 영국과 스페인군도 자메이카와 산토 도밍고(현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아이티를 침략, 자유 흑인, 백인 농장주, 백인 빈곤층, 프랑스군, 영국군, 스페인군이 진흙탕 전쟁을 시작한다. 흥미롭게도 이 세력들은 딱히 국가/인종에 기초한 대립구도가 있던 것은 아니였다. 영국과 스페인은 필요할 때는 아이티 혁명군과 손을 잡고, 아닐 땐 싸웠다. 그리고 위에 백인 농장주와 백인 빈곤층도 마찬가지. 게다가 자유 흑인들과 흑인 노예들도 자주 싸웠다. 그리고 노예들끼리도 싸울 때도 있었고. 나폴레옹이 대군을 보내 "모든 흑인(자유인, 노예 상관없이)을 모조리 죽이고 다시 시작하자"라는 제노사이드를 선언하고 나서야 힘을 합치게 된다.

혁명중 투생 루베르튀르(Toussaint L'Ouverture)라는 걸출한 흑인 독립운동가의 노력으로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군을 결국 무찌르고[8][9] 후계자인 장 자크 드살린(Jean-Jacques Dessalines)에 의해 1804년에 독립하였으며 이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 다음으로 가장 빠른 것으로, 흑인이 수반이 되어 흑인정부가 구성된 것으로서는 최초의 사례.

다만 독립후에도 막장 상태가 끝나지 않은 것이 큰 문제. 드살린이 나폴레옹을 흉내내어 황제를 참칭하다 동지였던 공화파에 의해 암살된 후 정치도 혼란에 빠져들었다. 알렉상드르 페숑(Alexandre Pétion)이 이끄는 공화파에 의해 역시 사상 최초의 흑인 공화정부(지금의 아이티 공화국)가 수립되었으나 공화파 내에서도 자기가 왕이라고 하며 분리 독립한 자도 있어 제대로 된 통일은 1820년에나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시몬 볼리바르의 재기를 결정적으로 도와 남아메리카의 독립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허나 정작 자신들이 독립국임을 인정하는 나라가 어디에도 없었기에 결국 프랑스의 압력에 굴복, 배상금을 줄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없는 것이나 다름 없는 국가 제정을 한 세기 이상 탈탈 털어갔으며[10] 이 경제 압박은 심지어 흑인에 의한 흑인 노예제 부활이란 희대의 병크까지 불러왔다.[11]

결국 배상금은 미군정기 미국 정부가 프랑스의 헛소리를 묵살해 버리고 나서[12] 유명무실해졌지만 정식으로 무효화한 건 1947년에 이르러서 였다. 이로 인한 농업의 몰락, 경제 피폐, 정치 혼란(이후에도 황제를 참칭하는 작자들이 잊을만하면 등장했다.)과 이로 인한 내분, 대국들의 압박 등은 아이티 사람들의 등골을 휘게 했다. 1843년부터 1915년까지 22명의 대통령이 재임했는데 이 중 21명이 암살당하거나 쫓겨났다. 물론 그 동안 아이티는 있는 것도 다 말아먹고 최빈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1915년부터 1934년까지 미군이 점령해서 군정 통치를 했고,[13] 그 시절에 어느정도 재정이 안정되고 국가 체제 정비와 산업화는 이루었지만 쿠데타와 군부 독재라는 혹도 덤으로 딸려왔다. 그리고 산업화도 얼마 가지 않아 완벽하게 붕괴되어 사실상 나라 자체가 존재할 가치가 있는지나 의문인 최빈국으로 전락. 때문에 지금도 미국과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그렇게 사이가 좋진 않다. 미국과 영토분쟁중인 몇 안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3.2. 현대사

이후로도 막장국가의 수난은 계속된다. 긴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고 반세기 만에 문민대통령으로 당선된 프랑수아 뒤발리에는 집권 초기에는 선정을 펼치며 국가 발전과 안정에 기여했다. 그러나 몇년 되지않아 손바닥을 뒤집듯 돌변, 이디 아민 뺨칠 정도의 최악의 독재자. "파파독(Papa Doc)"이 되어 나라를 철저히 거덜냈다. 옆나라의 라파엘 트루히요도 뒤발리에와 비슷하게 독재정책을 감행했으나 트루히요가 도미니카를 개발했다면 뒤발리에는 그것도 아니고 그냥 독재일 뿐이었다. 뒤발리에 독재정권은 아들에게까지 세습되었고 장끌로드 뒤발리에가 민중 봉기로 쫓겨나는 1986년까지 계속되었다.

1991년, 좌파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Jean Bertrand Aristide)가 선거로 집권했다. 그러다 반년 만에 군사 쿠데타에 쫓겨났으나 UN과 미국 지원을 받아 돌아와서 1년 동안 국정을 수행했다. 그 뒤 2002년에도 선거로 집권, 군부를 억누를 목적으로 군을 해체했으며 다국적 기업의 횡포를 견제하고 IMF차관제의를 거부했다. 결국 2004년 반정부 무장 세력의 쿠데타가 일어나(상당수는 바로 그 해체된 국군) 아리스티드는 2년만에 다시 해외로 쫓겨났다.[14]

수상한 게 이 나라에 현재 뒤발리에가 돌아와 있는데, 정작 아리스티드가 돌아오는 것은 허용되지 않고 있다. 아아티를 지배하고 있는 강대국들한텐 뒤발리에가 아리스티드보다 더 낫다는 것일까? 물론 뒤발리에도 오자마자 고소당한 상태긴 하지만 아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있는 아리스티드보단 정치적인 면에서 사정이 나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털어봐야 털릴 것도 없는 철저한 몰락 끝에 결국 UN이 나서서 평화유지군이 투입되어서야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고 지금도 브라질군이 주축이 된 UN 아이티 안정화 작전(United Nations Stabilization Mission in Haiti/MINUSTAH)이 계속되고 있다. 미 국무부가 북한을 넘는 파탄국가(failed state)로 선언한 지 오래이다. [15][16]

설상가상으로 2010년에는 대규모의 지진이 국토를 강타했다. 2010년 아이티 지진 문서 참고. 덕분에 잠시 아이티의 인지도는 올라갔지만 그 답이 없는 참상도 금방 잊혀버렸다. 사실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아이티에서 내전이 벌어져 몇백만이 죽건 어떻게 되건 국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게 가장 크다.

2011년 3월 20일, 오랜 망명 생활 끝에 아리스티드가 돌아왔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남아공 대통령 주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리스티드를 아이티에 돌려보내면 안 된다고 했으나 주마는 이를 무시하고 아리스티드를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표들과 함께 아이티로 돌려보냈다. 일부 미국 역사가들이 민중봉기로 쫓겨났다고 주장하는 전 대통령 아리스티드는 공항에서 아이티인 수만명의 대환영을 받았다(그러나 아리스티드를 지지하는 정당은 선거 참여가 여전히 금지되어 있다!). 과연 아리스티드의 귀환은 제다이의 귀환이 될 수 있을까? 지켜 볼 일이다.

3.2.1. 아리스티드에 대한 논란과 의혹

아리스티드 지지자들은 아리스티드 축출 쿠데타 뒤에 미국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티드는 그가 쓴 <가난한 휴머니즘>(한국어판도 나와있음)에서 자신이 IMF 정책을 따르지 않고 그것을 비판한 것이 강대국의 미움을 샀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아리스티드가 세웠던 의과 대학은 아리스티드가 쫓겨난 뒤 "미군" 기지로 바뀌었다고(...) 아리스티드 귀환을 다룬 기사

반면 쿠데타 정부는 아리스티드 본인이 쓴 '가난한 휴머니즘'이라는 책과는 달리 아리스티드 자신은 전혀 가난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아니, 가난하기는커녕 수천만달러의 자금이 예치된 역외은행의 비밀계좌를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고 한다. 실제 계좌를 추적해서 드러난 사실이라고도 주장한다. # 더불어 이런 엄청난 재산이 정상적인 대통령 월급으로 채워졌을리는 만무하고, 부정축재와 기금횡령으로 거둬들인 재산이며 그가 쓴 책과는 달리 얼마나 아이티인들을 위한 정치가였는지는 의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옹호자들은 이런 의혹은 정작 앞에서도 말했듯이 쿠데타 세력이 일으킨 정부가 발표한 것이며, 그걸 밝힌다고 미국에 넣은 소송은 2006년에 중지되었다고 말한다. [17] 한 마디로 "밝혀진 것" 없다는 주장. #

물론 쿠데타 세력은 아리스티드 정부시절 받은 수표와 계좌가 밝혀진 것은 사실이라고 아직도 주장한다. 그 사진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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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51.99 KB)]

아리스티드의 옹호자들은 이 수표는 왜 비밀도 아니고 훤히 드러나는 아이티국립은행 것인가에 의혹을 제기한다. 그것도 수천만달러가 아니라 60만달러.단지 저 수표에 서명을 했다는 것만으로 그것이 바로 부정축재 증거가 된다고 보기엔 적혀 있는 내용이 너무나 간략하다. 출처

반면 현 정부 옹호자들은 스위스 은행에서는 아리스티드의 자산을 동결했다고 밝혔고, 프레발 대통령은 아이티 경제가 어려워지자 이 동결을 해제하여 현금화할 것을 고려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므로 스위스 은행가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아리스티드의 자산을 만들어내서 아이티에 지원할 만큼 천사들은 아닐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연합뉴스 [18][19]

고로 판단은 알아서.

4. 문화

사용하는 공용 언어는 프랑스어와 크레올어. 하지만 프랑스어가 많이 섞인 크레올어가 주 생활 언어이다. 이 심히 괴이한 프랑스어의 변형은 발음은 프랑스어와 비슷한데 쓴 걸 보면, 예를 들면 Bonjour을 Bon ju 라고 쓴다. 네덜란드어에서 파생한 아프리칸스어와 비슷하다 생각하면 된다. 스페인어도미니카 공화국과 접한 국경에서 쓰이고 있다.

부두교좀비가 이 나라에서 유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5. 사회

한마디로 말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 보통 하위권 선진국이나 개도국 서민들이 살기 힘들 때 비유적으로 말하는 지옥이 아니라 진짜 지옥으로, 폭동, 무장 단체들의 납치사건, 강도 살인이 자주 발생하는 나라이며, 시중에 진흙 쿠키[20]가 일반적인 주식으로 쓰일 정도로 중남미 뿐만 아니라 북중남미 통틀어 가장 경제 수준이 열악한 나라. 사실상 국가기반 산업이라곤 전무한 상태. 기초적인 농업조차 제대로 유지되지 못할 정도로 사회 인프라가 무너져 있어 쌀의 3, 4모작까지 가능한 열대지방이면서도 식량 자급률이 겨우 45%에 불과하며 대책 따위는 물론 존재하지도 않는다. 사실 말이 열대지방이지 삼림이 거의 황폐화된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실질적으로는 기후 빼면 화성이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21]

평균 수명은 41.2살, 북중미에서 최저를 자랑하며 전세계적으로도 최하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도 이 정도로 막장스러운 국가는 극히 드물 정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의 평균수명이 깎이는 가장 큰 이유는 에이즈고 그게 없는 나라는 다 50대 중반에서 60대 초반인데 아이티는 에이즈 문제가 아프리카 급으로 심각하지 않음에도 이 정도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감옥의 수용가능 인원대비 실제 수감인원 비율도 세계 최고인데, 무려 417%다. 이는 수용인원 1000명인 감옥에 4170명이 수감되어 있다는 뜻이다. 물론 감옥이 초과상태인 국가는 굉장히 흔하지만[22] 아이티의 경우는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고 할 수 있겠다.

6. 경제

건국 이래로 빚이 많았던 듯. 그래서인지 국민의 반수 이상이 미국의 원조식량에 의존하고 있으며 때문에 농산물 가격이 급락, 농업인구가 계속 줄고 있다. 그렇다고 원조를 줄이면 당장 대량기아가 발생하는 판이라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정부 인사라는 자들은 하나같이 답이 안 나오는 무능력을 자랑하며, 그게 잘못된 줄도 모르는 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거기에다 2008년에는 폭풍 4개가 나라를 갈아 엎고 지나가는 바람에 진흙쿠키가 나돌 정도로 식량난이 고조되고 있다. MBC 프로그램이던 W에선 한국인 취재진이 아이티 보건부장관한테 국민들이 진흙쿠키를 주식으로 먹는다는 사실을 물어보자, 건강에 진흙쿠키가 유해하다는 증거는 없으며, 앞으로 그런게 외국인들 눈에 보일 경우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다가 기생충이 많은 진흙에 대하여 이야기하자 말문이 막히는지 바쁘다면서 얼른 퇴장해버렸다. 이나라 높으신 분들이 얼마나 통치 부적격자인가를 말해주는 좋은 사례.

7. 스포츠

7.1. 축구

2013년 1월에 피파 랭킹 38위까지 올라가 사람들이 놀랐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축구 잘하는 나라는 아니다. 몇달 안가 피파 랭킹이 60~70위권으로 내려갔으며 2014년 4월까지도 77위를 지키고 있는 수준이다.

70년대에 잘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북중미 수준에서 잘했다 뿐이다. 북중미 대륙 챔피언십(CONCACAF Championship,골드컵 전신)에서 1973년 자국 대회 우승를 하고 1971, 1977년 대회를 준우승 한적이 있으며, 카리비안컵전신인 CFU 챔피언쉽에서 1979년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1974년 서독 월드컵에도 참가했으나 3전 전패를 당하고 탈락했다. 1974년 월드컵에서 당시 1142분 무실점 기록을 이어가던 이탈리아의 디노 조프의 기록을 깬 것도 아이티의 스트라이커 에마뉘엘 사논이다.[23] 이후에는 강호에 속했다가 말았다가를 반복한다.

2007년에는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개최된 카리비안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했긴 했지만 이 대회는 중미 대회에서 중하위 나라들이 참가하는 대회이기에 아이티의 우승이 대단한 것도 아니다. 참고로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최다 우승 8번이며, 자메이카가 5번 우승했고 축구랑 거리가 먼 쿠바마르티니크도 아이티처럼 1번은 우승했던 대회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은 일치감치 예선 탈락했지만 2013년 스페인[24], 이탈리아와의 평가전에선 각각 1:2, 2:2로 선전했다.

하지만 2013년 7월에 열린 골드컵에선 온두라스, 트리니다드토바고, 엘살바도르와 맞붙어 1승 2패를 거두며 조 꼴지로 토너먼트에서 탈락했다.

2013년 9월 6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홍명보호)와 평가전이 성사되었다. 유럽과 남미 팀들이 여전히 월드컵 예선 진행중이라 대진 상대를 구하기 힘든 상태에서 축구협회는 이란, 쿠웨이트와 평가전을 추진했으나 모두 불발되고 결국 나름 강팀을 상대로 선전을 보인 아이티를 상대로 잡은 듯. 항간에는 축협의 무능을 탓하기도 했지만 같은 시기 일본 역시 대진 상대를 못 구해서(...) 과테말라와 친선전을 가졌다. 결국 아이티는 한국에게 1:4로 패했다.

역시 언어적으로 같은 프랑스에서 아이티 선수들이 여럿 뛰고 있으며 거기서 뛰는 유망주들이 많다. 프랑스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카옌의 수비수 장-자크 피에르,낭시의 제프 루이스와 르망의 켈벵스 벨포르 등이 아이티 선수이다.

8. 아이티 출신 인물

독재자 프랑수아 뒤발리에가 유명하다.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을 쓴 알렉상드르 뒤마(아빠)의 친아버지가 아이티섬 출신이다. 뒤마의 친할아버지는 프랑스 출신의 귀족이었고 친할머니는 흑인 몸종이었다. 뒤마의 아버지는 원래대로라면 노예가 됐어야 하나 출생 이후에 부친을 따라 프랑스로 건너가 자유인이 되었고 프랑스군의 첫번째 흑인 장교가 된다. 즉 뒤마(아빠)의 아버지가 아이티 출신의 물라토이고, 뒤마(아빠)는 1/4가 흑인인 셈이다. 결국 뒤마(아빠)의 아들인 춘희를 쓴 뒤마(아들)는 1/8이 흑인이다.

그 와 록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의 멤버인 레진 사샤뉴[25]하고 퓨지스의 와이클레프 쟝[26]가 유명하다.

픽션에서는 미드 히어로즈의 캐릭터 중에는 통칭 헤이션, 즉 아이티인(Haitian)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본명은 불명이고 그냥 이게 이름이다. GTA 바이스 시티에서도 아이티계 갱단이 등장하는데, 돌려 말하지 않고 대놓고 미션목표에 아이티인들을 죽여라! 하고 써버려 락스타에게 거대한 고소크리를 안겨주었다.[27] 이 가운데 와이클레프 장은 최근 아이티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지만 국적상 미국인이라서 불가능.

아이티인은 아이티 밖에 상당히 많이 거주하고 있다. 미국에는 120만 명, 캐나다에 20만 명, 그리고 도미니카공화국에는 100만에서 200만 사이의 수가 거주하고 있으며 프랑스에도 9만 명이 거주하며, 바하마에도 8만 명이나 거주한다. 특이하게 캐나다에도 많은데 퀘벡에 상당수가 거주하고 있으며 레진 샤사뉴와 캐나다의 전 총독이었던 미카엘 장(Michaëlle Jean)이 퀘벡 아이티인이다. 아무래도 같은 프랑스 문화권이고 미국에 대한 반감 때문에 차선책으로 캐나다로 많이 이주한듯. 한편 도미니카 공화국에선 아이티인에 대한 인종주의가 팽배하다고 한다.

9. 기타

론리플래닛으로 유명한 토니 휠러는 이 나라를 여행한 다음, 여기에 견주면 쿠바천국[28]이며 다른 나라들도 최소 선진국이라고 썼다.

아이티 어린이들의 삶과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다면 UNICEF에서 만든 다음 게임을 해보자.#

10.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비교

하긴 같은 섬을 공유하는 경제적으로 그다지 안 좋은 이웃 도미니카 공화국조차 아이티를 우습게 본다. 아이티 사람들이 거기로 가서 일하는 게 많기 때문이다. 경악스럽게도, 가히 도미니카와 아이티의 변화는 남ㆍ한과 북한의 상전벽해를 방불케 할 정도다. "프랑스 식민지 부국 + 인구 7배의 최초의 독립국 vs 소 치는 스페인 식민지"에서 "세계 최악의 헬게이트 vs 그럭저럭 살만한 나라"가 되어버렸으니. 게다가 아이티는 체제만 갈아 엎으면 살 길이 열리는 북한[29]과 달리 꿈도 희망도 없다.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는 20세기 후반에 있었다. 70년대, 80년대 독재정권하의 부실한 산림 관리 정책으로 그나마 있던 산림마저 모두 베어버려 암반이 노출될 정도로 심각한 토양 유실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아이티의 식량생산은 급감하여 1991년부터 2002년 사이엔 무려 30% 이상이 감소했다. 이러다보니 기후가 바로 옆나라 도미니카 공화국에 비해 강수량이 적으며, 더욱이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는 옆나라 도미니카 공화국과 달리 숲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기본적인 땔감까지 부족한 실정이다.

보수적 사회학자들은 혼혈국가 정체성을 강조한 도미니카와 대비해 뒤발리에 등이 옹호했던 "흑인국가" 주의 역시 아이티를 망쳤다고 주장한다. 오죽하면 도미니카에서는 국적을 가진 혼혈(물라토)나 흑인은 "원주민"으로 규정되지만 아이티에서 넘어온 이들은 "흑인"이라고 분류하여 차별한다고 한다. 뭐 이건 이것대로 막장이지만 그나마 그래서 나라꼴이라도 유지하고 산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는건 사실이다. 도미니카에서는 스스로를 스페인어와 가톨릭 국가, (상대적인) "백인국가"라고 규정하고 백인 우위의 현실을 인정하는게 그나마 (아이티와의 상반되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도미니카의 국민통합과 사회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역설인 것이다.

11. 외교 관계

남북한 모두와 수교국이지만 현지교민은 몇 안 된다. 정부도 가급적 아이티에 거주하지 말 것을 권하는 판이고, 사실 교민들이 뭔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정도로 낙후되었기 때문이다. 소위 현세에 구현된 고대 사회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게 열악한 나라이기에 도미니카 주재 한국대사는 "제발 식사문제 등 개인적인 것을 스스로 해결 할 수 있는 분이 왔으면 좋겠다" 라고 말했지만 모 기자의 욕심 때문인지 귀찮게 하지 말라는 식으로 편집, 왜곡되었다.[30] 어쨌거나 나중에 이 부분이 논란이 되어 정정보도 되었긴 했다. 참고로 이분은 지난 피랍사태 때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고생하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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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가톨릭이 80% 가량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개신교가 16%로 기독교도 비중은 96%에 달한다.그러나 미묘한게,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도 부두교와 관련된 주술을 행하거나, 주술사를 찾거나 관련 비밀결사에 가입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즉, 이에 따르면 아이티 최대의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부두교로 봐야 한다는 의견.
  • [2] 아이티 크레올어로는 Goud ayisyen.
  • [3] 오래 보관 가능하고 비타민 등등이 보강된 과자
  • [4] 참고로 이건 1980년대 이후 대한민국과 북한의 비교도 마찬가지. 한국의 경우 196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삼림 복원 운동을 펼치고 국민 소득도 끌어올려 숲이 울창한 편이지만, 북한은 말 그대로 민둥산 천국이다.
  • [5] 이건 아이티의 영문 발음인 '헤이티'에서 왔을 가능성이 있다
  • [6] 인구는 당시 인구로 비교함.
  • [7] 아이티 혁명은 흔히들 같은 시기에 있었던 또 다른 혁명의 스핀오프로 많이들 알고 있지만, 사실 프랑스 혁명과는 아예 근본이 다르다. 자코뱅들보다도 더 극좌계열이 있었으며, 아이티의 특이한 정치 상황 때문에 프랑스 혁명이 없었어도 내전이 일어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무엇보다 자유주의적이였던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과는 달리, 아이티는 탈식민지주의에 더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알제리 전쟁이나 1차 인도차이나 전쟁과 더 비슷하다.
  • [8] 그러나 투생은 어처구니 없게도 프랑스군의 비열한 함정에 걸려 프랑스로 끌려가 옥사했다. 프랑스군 사령관이 투생에게 협상을 제안하자 투생은 우리 힘을 보여줬으니 프랑스도 협상을 제대로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프랑스군 진영으로 갔다가 이런 지경이 돼버린것. 대단히 비열한 짓거리이지만, 투생이 흑인이라서 인지 비난하는 여론은 없었다.
  • [9] 그리고 아이티 혁명군 수뇌부들도 자신들과 달리 투생이 아이티의 완전한 독립을 바라지 않아 (당시 식민주의와 노예제가 가장 극렬한 곳이 카리브해였다. 이런 곳에 갑자기 노예들이 주축인 흑인 독립군이 탄생된다면 근처 열강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실제로 혁명중 아이티 혁명군은 스페인군과 영국군과도 싸웠다.) 어느정도 대립하는 상황이라 함정인걸 알면서도 프랑스군 진영에 가는 걸 안 말렸다.
  • [10] 한마디로 프랑스 농장주들의 재산인 농장과 흑인 노예를 상실했으니, 그 대가로 배상금을 내놓으라는 소리. 당시 유럽 제국주의가 얼마나 악독했는가를 말해주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
  • [11] 사실 노예제 부활은 투생 시절이였다. 프랑스군을 몰아내긴 했는데 영토 안에 제대로 돌아갈만한 경제적 인프라가 설탕수수 농장들뿐이였고, 설탕수수 농장들은 엄청난 양의 노동자들을 필요로 했다. 결국 노예제란 단어만 안썼지, 강제노동법을 만들게 된다.
  • [12] 이 시점에 이르면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아메리카에 대한 개입 여력 자체를 상실한 지 오래였다. 그나마 끝까지 남아 있던 스페인도 19세기 말에 미국과 벌인 전쟁에서 패하여 추방됐다.
  • [13] 더욱 기가 찬 것은 미국이 침공 이유로 내세운게 아이티의 대미 채무 불이행 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진짜 이유는 중남미에서의 독일 세력 견제. 건국후 한 세기 반 가까이를 빚쟁이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한 최악의 사례이다. 다만 미국의 경우 다른 국가와 달리 빚 받으려고 아이티를 두들겨 패거나 하는 짓은 안 했고, 오히려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의 빚쟁이 놀이를 막았기에 평가 면에서 유럽 국가들보다는 좀 낫다.
  • [14] 아리스티드는 미 해병대CIA가 쳐들어와 자신을 납치했다고 한다. 미국인 역사학자 스키드모어는 미국 국무부 설명을 충실히 따라 아리스티드가 국민봉기로 쫓겨났다고 주장한다. 반면 아이티에서 NGO 및 자선 의료 활동을 했던 의료인류학자 폴 파머(현재 하버드 대학 사회의료대학 석좌교수 겸 학장)에 따르면 미국의 공화당 세력이 쿠데타 뒤에 있었다고 한다(관심 있으면 '권력의 병리학'이란 책을 참고하라.).
  • [15] 2014년 취약국가지수도 120점 만점에 104.3점으로 9위를 기록했다. 이게 얼마나 높은 거냐면, 이라크가 102.2점으로 13위를 했고 북한이 94.0점으로 26위를 했다. 전쟁도 없이 (그래서 집단간의 갈등과 치안유지력 지수는 각각 7.0과 7.5로 상대적으로 낮다.) 이라크보다도 높은 걸 고려하면 이 나라 경제와 정치가 얼마나 막장인지 알 만 하다.
  • [16] 게다가 지진이 반영된 2011년 (왜 2010년이 아니냐 하면, 2010년에 '일어난' 지진이 2011년 지수에 '반영된' 것이다.)에는 108.0점으로 5위를 기록했고 아프가니스탄보다도 높았다.
  • [17] 다른 나라 이야기지만 칠레에서 1973년에 쿠데타로 집권한 피노체트 정부는 아옌데의 인민연합 정부가 Z계획이라 하여 당일 예정된 신임투표에서 친위쿠데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제는 미국 극우들도 인정 안하는 이야기다.
  • [18] 반박 : 다만 이 기사는 프레발 대통령이 아리스티드 대통령의 동결된 재산을 가져오려 하겠다고 "말했다고" 스위스의 '한 TV'가 말한 것을 전한 것이다.
  • [19] 위 링크에 나온 취재기자 Lucy Komisar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이 기자는 아이티 쿠데타에 찬성한 아이티의 거물 부로 집안(Boulos family)과 미국 우파 단체 Haiti Democracy Project (HDP)의 고용원으로 일한 사람이다. 한 마디로 쿠데타정부와 한 편이라는 주장. (아이티 주간지의 기사). # Lucy Komisar가 증언자의 말을 왜곡했다는 기사도 있다. # 다른 아이티 소식지 또한 아리스티드가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
  • [20] 말 그대로 진흙으로 만든 쿠키. 마가린과 소금을 적당히 섞은 뒤 햇볕에 말리면 완성되는데 정상적으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데다 기생충과 세균 덩어리인지라 그걸 먹는 사람들의 결말은 대부분 비참하기 짝이 없으며 이마저도 식량 가격이 오르는 바람에 그야말로 먹고 죽을래도 힘들게 되어 버렸다.
  • [21] 실제 구글어스로 아이티를 보면 왜 화성 취급을 받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물론 이건 북한도 마찬가지.
  • [22] 당장 대한민국만 해도 교도소는 포화 상태를 넘어 정원보다 6% 가량이 더 많다. 게다가 사회 전반적으로 엄벌주의가 득세하는지라 더 늘어날 것이다.
  • [23] 이 골과 역시 사논이 아르헨티나 전에서 기록한 한 골이 아이티가 월드컵에서 기록한 골의 전부이다. 다시 말해 사논은 아이티에서 유일하게 월드컵에서 득점을 기록한 선수였다.
  • [24] 대결 이유가 재미있는 것이 컨페드컵에서 같은 조의 타히티와 대결하게 되자, 약팀을 상대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 대진을 추진했다고 한다.
  • [25] 가족이 아이티인이였는데, 뒤발리에의 폭압 때문에 캐나다로 망명했다고 한다. 아케이드 파이어의 1집에 수록된 'Haiti'는 이를 다룬 곡이다("내 태어나지 않은 사촌들은 한밤중에 뒤발리에에게 사냥당했다").
  • [26] 아이티 난민이며 미국 흑인들에게 차별받은 경험이 주요한 음악적 원천이 됐다고 한다.
  • [27] 이 이후로 비디오 게임에선 (실존하는) 특정 국민이나 세력을 죽이라는 말을 단 한마디도 넣지 않게 된다. 제일 쉬운 예는 모던 워페어 2의 No Russian.
  • [28] 쿠바는 확실히 아이티에 견주면 천국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여긴 굶주려 죽는 이는 없다. 적긴 해도 배급이 나오고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업으로 식량을 자급자족하며, 국민 모두에게 개인주치의를 배정한 무상의료체계로 미국보다 오히려 영유아사망률이 낮다. 오랜 경제봉쇄로 경제침체 상태에 언론통제와 비밀경찰의 일당독재국가(다만 이는 외국인 관광객에겐 치안상 유리하다는 점도 된다. 정부가 통제력을 상실해 강도, 납치, 폭동, 반군등이 있는것에 비하하면)이긴 하지만 진흙 쿠키 따위 먹을 일은 없다. 애초에 진흙 쿠키는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는 존재하지도 않지만.
  • [29] 그게 남북통일이건, 북중합병이건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질 것이 분명하다.
  • [30] 정확히 말하면, 유엔에서도 그런 말이 나왔다고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했는데 앞뒤를 잘라 그 대사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왜곡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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