יהודי (Yehudi, 읽자면 예후디) - 히브리어
ייִד (Yid, 이드) - 이디시어 [1]
ג׳ודיו (Djudio, 주디오) - 라디노어 [2]
猶太人(유태인) - 한자
The Jews - 영어
유대인 -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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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의 상징, 다비드의 별(다윗의 별이라고도 하고 다윗의 방패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유대교 전통의 모자 '키파'를 쓴 유대인들.

아랍계 주민들과 흥겨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스라엘 유대인들
1 개요 ¶
BC 20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이스라엘의 민족. 유태인이라고도 한다. 조롱 섞인 별명으로 랍비라고 부르곤 한다. 사실 랍비는 유대교에서 말하는 선생 중의 선생이란 뜻의 말이다.
사실 그 구분은 너무 애매하다. 디아스포라로 그 씨가 세계로 퍼져 전 사회에 뿌리박혔기 때문에 단순히 어떠한 특징만 가지고 이 사람은 유대인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덧붙여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란 바빌론 유수 이후 팔레스타인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살게 된 유태인들을 일컫는 말. 이처럼 민족이나 문화로 유대인을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유대인 집단에서도 스스로를 다른 민족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준은 다름아닌 유대교를 믿느냐 아니냐 한 가지뿐이다.
물론 피부색같은 특징으로 인한 차별이나 배척이 없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유대교로 개종하는 순간 민족이나 혈통같은 건 무시하고 '우리는 한 조상을 모시는 가족'이라는 개념으로써 받아들여준다고 한다. 속인주의나 속지주의에 비할만한 속교(敎)주의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의 외모가 로스차일드 가문이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등의 예와 같은 백인의 모습으로써 대변되기에 그냥 백인계열의 한 민족으로만 알려졌을 뿐 유대인이라는 민족은 어디까지나 아랍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중국의 황인종[3]이나, 흑인 중에서도 스스로를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또한 소수 존재한다.[4]
유대인 중에서도 우리가 제사도 지내고 점도 보고 교회에도 가고 하듯이 근본주의적인 전통을 고수하며 살지 않고 적당히 다른 종교나 문화도 누리며 평이하게 살거나 혹은 개종하여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많긴 한데, 이들도 편의상 유대인으로 분류하고는 있지만 일부수구꼴통랍비들은 인정 못할 것 같다.
참고로 유대인 하면 키파에 히브리어를 쓰고 이상한 복장에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평범한 복장에 다른 민족들처럼 살고 히브리어가 아닌 자국어로 대화힌다.
유대인 중에서도 우리가 제사도 지내고 점도 보고 교회에도 가고 하듯이 근본주의적인 전통을 고수하며 살지 않고 적당히 다른 종교나 문화도 누리며 평이하게 살거나 혹은 개종하여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많긴 한데, 이들도 편의상 유대인으로 분류하고는 있지만 일부
참고로 유대인 하면 키파에 히브리어를 쓰고 이상한 복장에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평범한 복장에 다른 민족들처럼 살고 히브리어가 아닌 자국어로 대화힌다.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그 자식은 유대인으로 인정이 된다. 즉 모계사회이다. 그러나 모계사회라고 해서 여성의 지위가 딱히 높은 것은 아니다. (모계사회 항목 참조) 물론 지금은 현대사회인 만큼 여성의 권리도 남자 못지 않지만...
유명한 유대인 농담 중 하나로 이런 것이 있다. 어느 유대인 여성이 세계적인 업적을 세워 상을 받는 자리에서 객석에 앉아 있던 그녀의 어머니가 옆사람에게 말했다. "참 자랑스러워요. 저 애의 오라비가 의사이거든요.'사'자 직업의 위엄......
아버지가 유대인, 어머니가 타민족이라면, 유대사회의 심사를 받아 유대인인가 아닌가 판단하게 된다. 보통 랍비를 통해 심사를 받는다. 유대인이 같은 유대인인 누군가에 대해 험담을 할 때의 단골 레퍼토리가 어머니가 유대인이 아니라는 소문이나 (남성의 경우) 비유대인 여성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다.
유명한 유대인 농담 중 하나로 이런 것이 있다. 어느 유대인 여성이 세계적인 업적을 세워 상을 받는 자리에서 객석에 앉아 있던 그녀의 어머니가 옆사람에게 말했다. "참 자랑스러워요. 저 애의 오라비가 의사이거든요.
아버지가 유대인, 어머니가 타민족이라면, 유대사회의 심사를 받아 유대인인가 아닌가 판단하게 된다. 보통 랍비를 통해 심사를 받는다. 유대인이 같은 유대인인 누군가에 대해 험담을 할 때의 단골 레퍼토리가 어머니가 유대인이 아니라는 소문이나 (남성의 경우) 비유대인 여성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다.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유대민족에도 갈라져 서로 구분되는 다수의 분파가 존재한다. 이중 다수의 구성비율 혹은 정통성을 유대인을 대표하는 분파는 아쉬케나짐, 세파르딤, 미즈라힘의 셋인데, 이중 세파르딤과 미즈라힘은 같은 계열로 간주하는 시각도 있다. 아쉬케나짐은 주로 동유럽에 거주하던 유대인들로, 유대인 중 백인과 가장 유사하며 흔히 우리가 유대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세파르딤은 이베리아 반도(스페인 및 포르투갈)을 중심으로 북아프리카 등지에 퍼져있는 유대인들을 말한다. 미즈라힘은 중동이나 중앙아시아, 코카서스 일대에 사는 유대인들을 말한다.
이중 아쉬케나짐의 기원에 대해서는 팔레스티나에서 살던 민족이 아니라는 설이 있다. 흑해와 카스피 해 연안의 국가 하자르(khazars)가 국교를 유대교로 정한 뒤 나라가 멸망하자 그 국민들이 동유럽에 대거 유입되어 아쉬케나짐이 되었다는 설로 하자르 기원설이라고 한다. 아서 쾨슬러라는 어느 영국 작가가 주장한 설인데, 역사적 기록이라든가 유대인 교회당 같은 구체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아서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반박이 있어 논쟁이 뜨겁다. 그러나 아쉬케나짐 반대파의 경우 이 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는데, 일례로 세파르딤과 아쉬케나짐의 반목이 심해졌을 때 세파르딤 쪽에서 "가짜 유대인은 흑해로 돌아가라!"고 까대기도 했다.
이중 아쉬케나짐의 기원에 대해서는 팔레스티나에서 살던 민족이 아니라는 설이 있다. 흑해와 카스피 해 연안의 국가 하자르(khazars)가 국교를 유대교로 정한 뒤 나라가 멸망하자 그 국민들이 동유럽에 대거 유입되어 아쉬케나짐이 되었다는 설로 하자르 기원설이라고 한다. 아서 쾨슬러라는 어느 영국 작가가 주장한 설인데, 역사적 기록이라든가 유대인 교회당 같은 구체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아서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반박이 있어 논쟁이 뜨겁다. 그러나 아쉬케나짐 반대파의 경우 이 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는데, 일례로 세파르딤과 아쉬케나짐의 반목이 심해졌을 때 세파르딤 쪽에서 "가짜 유대인은 흑해로 돌아가라!"고 까대기도 했다.
2 유대인의 역사 ¶
고대 이스라엘의 구성 민족인 '헤브라이(히브리)' 인은 이집트 국내에 거주중이던 외부 유입민들의 집합에서 시작된다. 성경에서 말하는 시조는 형제들에 의해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다가 능력을 발휘해 고위직에 오른 요셉이 이후 친지들을 불러들인 것에서 시작된다고 말하는데, 이후 모세에 의해 이탈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구성 변화가 있었으리라고 추측 가능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동남아 노동이민자들에 비유될 만한 사람들.
이들이 집단 의식을 발전시키는 것과 함께 수가 지나치게 팽창하자 이집트 당국에서도 억제 정책을 펼치게 되고, 이에 대한 돌파구로서 집단 이탈을 제시한 것이 이집트 왕족이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헤브라이 인에서 찾은 인물인 모세. 유태인들에게 아브라함이 단군 수준의 위인이라면 모세의 위치는 가히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합친 것 쯤은 된다. 이들에게 최초로 집단적 주권의식을 주입시키고 자립의 길을 처음으로 이끈 인물이기 때문. 이들은 모세의 지휘 하에 이집트에서 이탈하여 자신들이 정착할 만한 지역을 탐색하는 것과 동시에 이동 경로에 있는 토착 세력들과 경쟁을 펼치며 수십 년 정도 떠돌게 된다. 그러니까 수만명 규모의 전투난민집단
(다만 유대인의 이집트 기원설 등은 신빙성이 매우 떨어진다. 아래 참조.)
(다만 유대인의 이집트 기원설 등은 신빙성이 매우 떨어진다. 아래 참조.)
여호수아가 모세 사후에 이스라엘의 각 지파를 지휘하여 가나안 일대를 침략해 정복했고(예리코의 전투 참조), 기원전 10세기경엔 익히 아는 다윗 왕과 솔로몬왕의 시대로 이스라엘의 전성기였지만, 그후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분열하여 쇠락과 부흥을 거듭하던 중 아시리아(이스라엘)와 신바빌로니아(유다)에 패망당하기도 했다.
이후 로마에 의해 합병되어 서기의 기점(실제 연도는 역산상의 오류로 조금 차이가 있지만)인 예수 그리스도의 시기에는 로마의 식민지 상태였다. 예수가 죽은 죄목 역시 명목상 '로마에 대한 반체제 책동'이었으며 실질적으로는 로마에 대해 독립을 요구하는 자주세력과 로마에 협력하는 기득 고위계층 사이의 갈등 사이에서 상대에게 타격을 주려는 기득권층의 고발에 의한 것이었음을 고려하면[5] 당시 유대인 사회 내에서 독립에 관하여 사회적 갈등이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기원후 73년 마사다 요새에서 로마군에 의해 열성당원들이 전부 전사 혹은 자결하고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로마를 상대로 두 번째로 독립전쟁을 벌였다가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개털리고 마지막 보루였던 마사다 요새에서 저항하다가 로마군이 총공세를 펼치자 독립군 전원이 자결하였다. 이후 로마는 더 이상 유대인들이 독립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유대인들을 그들이 살던 지역에서 모조리 추방하였고 이는 기원후 123년까지 지속되었는데, 이를 디아스포라라고 한다. 유대교 랍비들은 오늘날 유대인들의 전통과 정체성은 디아스포라 이후에 확립되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유대교의 기원을 토라(Tora : 유대교의 경전. 기독교의 구약성경은 이 토라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의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으로 보는 외부의 시선과 달리 오늘날 유대교의 기원은 기원후 70년대 디아스포라 이후라고 말할 정도.
로마를 상대로 두 번째로 독립전쟁을 벌였다가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개털리고 마지막 보루였던 마사다 요새에서 저항하다가 로마군이 총공세를 펼치자 독립군 전원이 자결하였다. 이후 로마는 더 이상 유대인들이 독립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유대인들을 그들이 살던 지역에서 모조리 추방하였고 이는 기원후 123년까지 지속되었는데, 이를 디아스포라라고 한다. 유대교 랍비들은 오늘날 유대인들의 전통과 정체성은 디아스포라 이후에 확립되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유대교의 기원을 토라(Tora : 유대교의 경전. 기독교의 구약성경은 이 토라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의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으로 보는 외부의 시선과 달리 오늘날 유대교의 기원은 기원후 70년대 디아스포라 이후라고 말할 정도.
그 후 중동이나 유럽으로 퍼졌는데, 대부분 이민한 사회에 녹아들어가지 않고 자신들 고유의 전통과 종교를 지키면서 살아갔기 때문에 배척을 당했다. 제대로 된 일조차 구하지 못했기에 대부분 금융업에 종사했고, 이는 고리대금업을 금하는 기독교 사회 안에서는 더욱 배척받고 미움받는 원인이 되었다. 기독교 사회였던 중세 유럽에서 유대인은 농사도 지을 수 없었고 조합에 가입할 수 없어 상업도 공업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유대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고리대금업밖에 없었다.
더욱이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을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오명하에 그들을 증오하고 멸시했다. 하지만 예수와 열두 사도들은 유대인들이었으며, 예수가 구원의 첫 대상으로 삼은 것 역시 유대민족이었다. 십자군 전쟁 때도 지나가는 길에 유대인들이 있으면 그냥 쳐죽이고 재산 빼앗는 일은 예사였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사악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 또한 이런 증오가 투영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6] 하지만 고리대금은 기독교가 더 심했었다. 기록에 의하면 유대인이 기독교인보다 더 너그러웠다고 할 정도이니(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1051849551). [7]
이슬람권에서는 박해가 덜한 편이라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이야기다. 애초에 이슬람교 발생 초기에 유대인 도시 하나를 개발살내고 약탈한 재화로 메카의 반대파와 싸울 재원을 마련한 적도 있을 정도니......[8] 그래도 능력이 출중하면 일국의 고위 관료까지도 노려볼만 했을 정도로 풀어준 시기도 있다.
사실 집시라든지 쿠르드족, 그리고 일제강점기 당시의 한국인 같은 예를 봐도 알 수 있듯, 단지 나라없는 떠돌이 민족이기 때문에 박해당한 것이지 예수를 죽였다던가 하는 건 일종의 핑계일 뿐이다.
유대인에 대한 박해는 홀로코스트를 참조하자.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아이러니한 건 나치는 유대인이 수전노에 고리대금업자라는 이미지로 선전했는데 나치 집권 후 그런 소리 들을 만큼 부자인 유대인들은 유럽을 떠났지만, 돈도 부족하고 힘없던 유대인들은 남아서 다 수용소로 끌려갔다. 돈이 웬수다
18, 19세기 들어 소위 '이성의 시대'가 열리자 유대교와 유대인에 대한 탄압은 감소했지만, 현대엔 개신교 일부와 네오 나치류의 정신병자들이 유대인을 갈구고 있다. 레파토리도 똑같다. 지겹지도 않냐? 반대로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은 유대인=기독교이란 떡밥으로 무장하여 유대인을 옹호하면서 유대인 음모론에 부채질하기도 한다.(이를테면 지금 유대인은 거의 없거나 하자르인이 유대인 시늉내면서 이스라엘 건국하고 진짜 유대인들을 박해하고 있다는 음모론)
재미있는 것은 대표적인 근본주의 개신교 국가인 미국과 한국 중 미국의 근본주의는 그렇게 유대인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자세가 아닌[9]데 반해, 한국의 근본주의 교단들에서는 현대의 유대인을 구약성서 시절의 신정국가 형태의 이스라엘와 동급으로 간주하여 극도로 숭상(?)한다는 차이가 있다는 점. 물론 1순위는 신성미연방공화국이지만
20세기초 영국은 시오니즘의 대두를 지켜보고 유대인들에게 영국령 우간다 땅을 내줄테니 거기서 나라 만들어라고 제안한 바가 있었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영국령 우간다 계획 참조.
2.1 출애굽기의 내용은 사실인가? ¶
수백, 수천년간 널리 퍼진 기독교 믿음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유태인이 이집트에 살고 있다가 탈출했다는 이야기를 사실로 믿고 있지만, 그게 사실이란 증거는 희박하다. 일단, 당시 상황을 기록한 것은 구약성서 오직 하나 뿐인데, 구약성서는 절대로 역사서가 아니다. 내용이 허황된 건 둘째치더라도, 역사서의 기본조건인 누가, 언제 썼느냐조차 불분명한 상황이다.
또한 고고학자들은 이집트에서 유태인에게 관련 된 어떠한 유물도 찾아내지 못했다고 단언한다[10]. 농담이라지만 뒷마당을 삽으로 파면 유물이 나온다는 고고학의 천국인 이집트에서 유물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성경의 신빙성을 더욱 떨어트린다.
물론 다른 문제도 있다. 아래의 두 사진을 보자.


위는 기원전 24세기경의 이집트 조각상이고 아래는 기원전 5세기경의 고대 그리스 조각상이다. 비슷하지 않은가? 문화, 특히 인접한 지역의 문화는 서로간의 동질성의 매우 짙다. 보다 발달 된 지역의 문화는 주변의 덜 발달한 지역으로 퍼져나가며, 얼마 간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다른 문화를 받아들인 지역에서 독자적인 발전을 하는 것이 문화의 기본 특성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건축 양식, 의복, 생활 약식 등의 모든 문화가 중국의 영향을 받아왔고, 현시대의 학자들은 어느 시점에 그 문화가 전달 되었고 어느 시점에 독자적인 발달을 했는지 찾아낼 수 있다. 위의 조각상에서도 볼 수 있듯, 고대 그리스는 바다 건너 고대 이집트의 발달 된 문화와 양식을 모방하였으며 그 후에 독자적인 발전을 거쳐서 그리스 특유의 문화를 이룩한 것이다(그리고 그렇게 발전한 그리스의 헬레니즘 양식은 인도와 중국을 거쳐서 우리나라의 석굴암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즉, 문화라는 것은 극히 유동적이고 전염성이 다분하다는 것인데, 고대 유태인의 유적, 혹은 생활 양식에서 이집트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가? 이집트 땅에서 수백년을 살다가 탈출해 가나안땅(현 이스라엘 지방)에 도달했다면, 이집트 지역에서 유태인의 흔적이 발굴 되었거나 이스라엘 지방에서 이집트 문화의 흔적이 발굴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양쪽다 그 흔적이 전무하다.
물론 굉장히(그것도 굉장히 긴..) 이집트 역사, 그리고 당시 유달리 폐쇄적이었던 이집트 문명과 그 보다 더더욱 폐쇄적(우상 숭배하면 킬!, 토착민족 또 킬!) 민족 정책을 폈던 당시 유대민족을 보자면 단번에 출애굽의 근거가 아예 없다고 까지 할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40년간 뺑뺑이 돌면서 모세 갈구던 1세대 올 킬 크리.. 전수받은 것들이 외부의 문화적 영향력이 그 기간동안 다 없어졌다고 해명할 수도 있을 것이고 여하튼 시나이 반도에서 야훼를 만나서 조교당한 유대민족이였으니..)
하지만 현재 구약성서에 나오는 유태인의 이집트 기원설, 출애굽기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3 이스라엘 ¶
하지만 온갖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들 특유의 생명력으로 나름 상업과 금융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등, 좀 불편한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유럽 사회에 붙어 살던 중, 아돌프 히틀러가 등장해 약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게 되자 결국 유대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강하게 원하게 되고 결국 1948년, 그들의 옛 영토였던 팔레스타인 땅을 약 2000년만에 수복하게 된다.[11] 하지만 2000년 전의 엣날 역사대로 아랍권에 집을 짓기 시작하고 그 과정으로 중동전쟁을 유발하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량 학살 또는 차별하면서 유대인의 이미지가 유대인 = 피해자에서 유대인 = 가해자로 바뀌어 버렸다. 망했어요 덕분에 모든 세계언론들이 이스라엘의 막장짓을 까고 있고, 주변국들도 이스라엘에 비협조적이 되었고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받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천조국만은 이스라엘을 지켜주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이스라엘 항목을 참조하기 바람.
4 현대의 유대인 ¶
전 세계적으로 합산해봤자 1,000만 명을 넘는 이 작은 민족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역시 미국에 사는 백인계 유대인들 때문일 것이다. 미국 인구의 약 2%를 차지하는 유대인들은 그들 특유의 수완으로 경제, 언론, 문화, 예술 각계에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앉아 있으며 이 때문에 비유대계 백인들, 특히 WASP 계층의 멸시와 증오를 받기도 하고 각종 음모론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유대인들은 그런것과는 별 관계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교육열이 높기 때문에 그들은 대부분 중산층 관리직이며, 박해받은 역사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성향이 진보적이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경우,민주당과 버락 후세인 오바마를 찍은 유대인은 80% 이상이었다. 이렇게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유대인 랍비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에 대한 군사행동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기득권은 이와 정반대이며 이스라엘 내 양심적인 유대인들은 좌파로 몰려 탄압받기도 한다. 팔레스타인과 공존을 추구하는 샬롬 악타브(히브리어로 안녕 평화여라는 뜻)같은 단체들은 극우 유대인 민병대들에게 허구헌날 두들겨 맞는 현실이다.
물론 뉴욕같은 데 가면 진짜로 검은 옷 입고 수염은 허리에 닿고 안식일에는 불도 안 켜는 골수 유대인들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부고 대부분은 평범하고 튀지 않게 살고 있으며 히브리어를 모르는 사람들도 태반수다. 말이 유대인이지 유대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고 기독교 풍습을 따라 크리스마스에 트리를 세우기도 한다.다만 미국같은 경우엔 메리 크리스마스가 특정종교 상징이라고 하여 해피 홀리데이라는 말로 대신하는 인삿말이 퍼지고 있는데 이 말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기여했다는 말도 있다. 사실 극소수 인구임에도 유대인들의 명절인 욤 키푸르는 여러 주에선 국경일인 것도 유대인들의 힘이 그만큼 크기 때문.
대부분의 대중매체에서는 십 원짜리 하나만 던져도 서로 죽을 때까지 싸우는 수전노들이나 미친 듯이 공부만 하는 범생이로 묘사된다. 전자야 인종차별에 가까운 편견인데 후자는 뭐 어느 정도 사실. 미국 유명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유대인 비율은 인구대비 압도적이다.
유럽, 특히 동유럽에서는 도시마다 존재했던 유대인들만의 격리구역인 '게토'에서 오래 살아왔기 때문에 많은 근친혼이 이루어져 유전병의 발생 빈도가 상당히 높다고 한다. 근친상간 항목 참조. 문제는 팔레스타인에서 자신들이 당했던 게토를 재현한다는 점과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탄압으로 과거 희생자이던 유대인들이 오늘날은 가해자로 인식되고 있다.
5 여담 ¶
유대인은 이미 3000년 훨씬 전부터 있어온 고대민족인데다가 당시로서는 인구가 밀집되어 많이 살았던 민족이기 때문에, 만약 그 땅에서 계속 살아왔다면 지금쯤 2억이 넘는 대민족이 되었을 거라고 한다. 만약 그랬으면 지금의 이스라엘 땅으론 다 살기에 어림도 없을 것 같다.다만 이게 꼭 맞을 수도 없는게 이걸 근거로 유대인 환빠 수꼴들이 이웃 여러 나라 영토가 우리땅이라는 개드립을 치기도 한다.
쿠란에 의하면 예언자로 보내졌던 예수(عيسى)를 오해하고 죽인 죄로 디아스포라로 퍼져 살게 되었다고 한다.
당나라 시대에는 장안에도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더불어 1054년에는 송나라에서도 유대인 학살이 벌어졌다고 한다. 동남아 각지에서도 이들은 살아가는데 6망성을 상징하는 걸개를 매달고 대대로 살아오면서 그 지역 대세인 불교나 각 지역 토속신앙을 반목했기에 여기서도 오랫동안 시달림을 받아왔다. 이들도 이스라엘 건국에 기뻐하고 이스라엘로 갔으나 되려 동남아 생활이 낫다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차별을 받으며 이스라엘 생활에 치를 떨고서는 동남아로 돌아와 그냥 예전처럼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이는 아프리카에서도 마찬가지. 에티오피아에 살던 흑인계 유대인들도 이스라엘에서 한 번에 대대적으로 받아들인 적이 있으나, 백인계 유대인들에게 멸시를 받아가던 이들도 결국 에티오피아로 돌아가는 이들이 많았다.
유대인과 관련된 비하적인 농담 중에 유명한 것으로는 식당이 더럽다가 있다. 유대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어찌나 더럽던지, 홍차를 시킬 때는 잔을 깨끗하게 씻을 것을 따로 주문해야 하고 식탁보만 봐도 그 식당의 메뉴를 한눈에 알 수 있다느니 하는 것이 대표적.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를 위시한 종북주의자들은 유대인을 매우 혐오한다. 그 이유인즉슨 유대인들의 자본이 미국을 포함한 이 세계를 쥐어잡고 있다고 믿기 때문. 물론 세계 사회에서 유대인들의 입김이 어느 정도 세고 미국은 위에 나온 대로 유대인들 입김이 엄청난 것이 사실이지만, 이 인간말종들의 주장은 북한 김씨왕조와 조선로동당이 유대 자본과 맞서 싸우는 유일한 빛이요 희망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니 그대로 믿으면 당신은 병신인 거다.
반면에 골수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을 아주 좋아한다. 유대인은 신의 자식이란 원초적인 믿음이 아직 남아있기도 하고, 미국을 위시한 기독교 서방 세계와 대립각을 세우는 무슬림들보다 유대인이 신의 도시 예루살렘을 지배하는 것을 좋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대교와 다르게 이슬람은 예수를 예언자로 인정하는데 말이지 그러나 현재 이스라엘 내 유대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증오는 이슬람 이상이다. 그들에겐 이슬람이나 기독교나 적으로 여기는 게 대다수이며 기독교 및 이슬람으로 개종한 유대인은 그날부터 유대인이 아니다. 이슬람이나 기독교로 개종시킨 유대인은 5년,개종한 유대인은 3년동안 정치수용소로 수감되며 공무원 및 군인같은 직업은 금지된다. 그럼에도 한국이나 미국 개신교 골수분리주의자들은 제대로 파악도 못한다. 심지어 이스라엘 유대인이 기독교와 비슷한 걸로 아는 사람들도 많으며 이스라엘 내 종교 탄압은 모른다. 사실 이들 예수쟁이들의 광신적인 막장행각이 유대인에 반감을 키우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러시아에는 유대인 자치주(Евре́йская автоно́мная о́бласть)가 있다. 현재 러시아의 행정구역에 남아있는 유일한 자치주로 아무르 강에 맞닿아있는 극동지역이다. 여기는 히브리어가 아닌 이디시어가 공용어. 소련 당국은 이디시어야말로 '프롤레타리아적 유대인'의 언어로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자치주는 유대인이 원해서 세운 게 아니라 스탈린이 눈엣가시 유대인을 척박한 극동으로 보내 버릴 목적으로 세운 것. 정작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이미 떠나버린지 오래인지라 오늘날 유대인 자치주의 유대인 비율은 1%밖에 안된다.
유대계 미국인 작가인 마이클 셰이본의 대체역사소설 유대인 경찰연합에서는 1948년 이스라엘이 세워졌지만 제1차 중동전쟁 때 아랍 국가들에게 패배하는 바람에 멸망당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졌다고? 대신 2차 대전 당시의 천조국 황상 미국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유럽에서 박해받는 유대인들을 가엾고 딱하게 여겨 알래스카 주의 싯카라는 도시에 유대인 특별구를 마련하고 유럽과 아랍을 떠돌던 유대인들을 싯카 특별구에 수용했다. 유대인은 이후 60년 동안 번영했지만, 2009년 1월 1일부로 알래스카 주에 주권을 양도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해 이들은 다시 전 세계를 떠돌아야 하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6 유대인 캐릭터 ¶
※ 이스라엘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는 제외한다.
-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삼은 작품의 주인공, 등장인물 대부분
- 론 스타퍼블 - 킴 파서블
- 매그니토 - X-MEN
- 윌로우 로젠버그[13] -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
- 카일 브로플로브스키 - 사우스파크
- 소블 대위 - 밴드 오브 브라더스
- 하워드 조엘 왈로위츠 - 빅뱅 이론
- 개와 공주 - 노세현[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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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슈케나짐 유대인이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언어로 히브리어의 기반 위에 주로 독일어, 슬라브어의 영향을 받았다.[2] 세파르딤 유대인의 언어로 이쪽은 스페인어의 영향이 특히 짙다.
[3] http://en.wikipedia.org/wiki/Kaifeng_jews 항목 참조.
[4] 대표적인 경우가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 사실 족보를 거슬러가다 보면
[5] 그리고 예수는 그 추종세력을 정치적으로 이끌기를 바라던 독립파의 기대와는 정 반대로 뜬구름 잡는(?) 회개와 구원 이야기만을 주구장창 주장했으므로 고발 당시 독립파의 옹호도 얻지 못했다.
[6] 현재 재정적인 문제로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지원하는 단체의 상당수가 신교 계열이다. 종교 개혁 이전에 구교에서 성서를 읽는 행위 자체를 민간에게 허락하지 않았기에 유대인들에 대한 정치적인 증오가 종교적인 옷을 입은 것뿐이다. 실제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분리시킨 신약에서도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할 것과 그들을 향한 신의 사랑과 계획이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교리적으로나 성서적으로나 기독교인이 유대인을 적대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차라리 경제적, 정치적인 이유에서 그 답을 찾는 것이 빠르다.
[7] 근데 뭐 당시 기준으로 말하자면 '기독교'란 한국에서 '검은머리'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표현이다. 극소수 유대인이나 기타 종교인이 있는 거고 기독교는 그냥 '일반 국민 기본값'인 셈. 결국 '고리대금업자는 별로 종교 가릴 것 없이 대부분 독한 놈' 이란 이야기.
[8] 하지만 그 원인을 제공한 건 유대인들의 탓도 적지 않게 있다. 당시 무함마드가 힘겹게 메카 반대파들과 싸울 때 유대인들을 일단 아군으로 받아들여주었지만(이슬람교의 교리상 유대인들을 굳이 적으로 볼 이유는 없었다), 힘겹게 이기고 나니까 유대인들이 적들과 내통했다는 사실이 들통나 무함마드는 유대인들을 적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었다.
[9] 미 정부가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것은 강력한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가진 재미 유대인 사회의 탓이 크다.
[10] http://www.nytimes.com/2007/04/03/world/africa/03exodus.html?scp=1&sq=jew egypt archaeology&st=cse
[11] 단, 정확히 말해서 이스라엘 건설 주장이 히틀러의 학살이 있고서야 대두된 건 아니다. 18세기경부터 대두된 이른바 '시오니즘', 즉 '유대 민족의 생존을 위한 독립국가 수립' 주장이 그 시초. 그러나 히틀러의 학살이 있기 전에는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시오니즘은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12] 자세한 건 이스라엘 항목 참조. 이건 이스라엘의 유대인 관광객들의 해외에서의 민폐행동으로 인한 반감이 이유이다.
[13] 종종 유대인임이 언급되긴 하지만, 나중엔 사실상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게 된다.
[14] 유태인+한국 혼혈이지만 종교는 유대교이니 유대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긴 한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