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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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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특징
2.1 정치성향 비판
3 주요 작품
3.1 장편
3.2 단편
3.3 평역서

1 개요


1948년 경상북도 영양군 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출생지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이다. 원적지가 영양군이며, 아버지가 월북 후 경북 영양으로 이사갔다가 경남 밀양시, 경북 안동시 등을 전전하였다. 이문열은 필명으로 본명은 이열(李烈)인데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입학했으나 이후 자퇴, 제대 후 대구에서 학원강사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77년 대구매일 신춘문예 입선, 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새하곡」이 당선되어 소설가로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사람의 아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젊은 날의 초상》, 《황제를 위하여》, 《영웅 시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등이 있다. 수필집으로는 《사색》 등이 있다. 80년대를 전성기로 보냈다. 80년대 그의 문명과 다양한 작품세계, 판매량을 따라갈 작가는 없었다. 각종 정치적 논쟁에 휩쓸렸던 90년대 이후의 작품은 표절시비와 정치색의 문제들로 인해 전성기보다 비교적 저평가되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

보수적 정치성향을 보여왔다. 그래서 제5공화국 때 민정당의 국회의원 공천 제의를 받은 적이 있으나 정치에 뛰어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보에 대한 거부감은 오래 전부터 밝히고 있다. 그의 초기작들에서도 그런 기색이 엿보여서 진보적인 문단에서는 80년대 초중반에 보수반동 취급을 받았었다. 다만 티비 방송에서 임수경에게 육두문자를 날렸다는 것은 오보로 이문열은 그에 대해서 사과까지 받았다.

특히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현재의 공지영 등의 행동과 유사하게 정부를 비판하였다.


2009년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인문대의 석좌교수로 임용, 세계문학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였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외대의 성향 덕분에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하였다.

2 특징

이문열은 소설을 통해 "참혹한 현실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영웅"을 모색하려 했다. 대표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잘 나타나 있는 것처럼, 그의 소설 속에서 영웅은 일그러진 존재다. 완전무결해 보이지만 실상 컴플렉스와 이루지 못한 욕망에 허덕이는 일그러진 존재들이다. 그 몰락은 누구할 것 없이 처참하다. 그들은 자신의 실책으로 인해 몰락한다. 역설적으로, 그렇다면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영웅이란 무엇이고, 그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문열은 묻고 있다.

소설에서 내보이는 그의 세계관은 한마디로 영웅 찬가다. 소설 속에 묘사되는 사회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역사를 만드는 영웅과 말만 많은 지식인, 그리고 이들에게 휩쓸려 움직이는 대중으로 이루어졌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경우, 주로 빨치산을 하다가 사살당하거나, 월북한 걸로 나온다. 이는 작가의 가족사 때문인데, 이문열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전시점령 서울대학교 농대 학장으로 임시 임명되어 북한정권에 협조하였다.[1]

이문열의 아버지는 한때 북에서도 나름대로 잘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노년엔 조그만 농장의 일꾼으로 초라하게 살았다고. 이문열은 "가족 다 버리고 북에 갔으면 거기서 잘 살기라도 할 것이지..."라고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그의 집안은 빨갱이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찰로부터 사찰을 당하고, 이웃에게서 멸시를 당하는 고통을 겪었다. 빨갱이의 가족이라는 게 동네에 소문나면 다른 동네로 이사하고, 이사한 동네에서 또 들통나면 다시 다른 곳으로 이사하고...하는 통에 그는 젊은 시절 전국 곳곳을 떠돌며 살았다고 한다. 젊은 시절 떠돌던 삶이 가문과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집착을 가져왔다는 의견도 있다. 모진 고통 속에 살았던 이문열의 모친은 남편이 북에서 새장가를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때부터 죽을 때까지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흠좀무.

이런 과거를 겪은 그의 삶과 문학 속에서 좌파에 대한 혐오감이 발견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터. 하지만 배고픈 시절을 겪어본 사람답게 천민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에 대해서도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건 마찬가지(영웅시대와 그 연작 변경 시리즈를 참조). 어떤 독자가 그의 정치적 성향에 실망했다며 그간 샀던 이문열의 책을 반품하겠다고 하자, 보내주면 기꺼이 환불해 주겠노라고 맞받아쳐서 설전이 일어났던 적도 있다.
대표적으로 홍위병에 비유하는 파문으로 몇몇 단체들은 소송과 이문열의 책을 화형한 전례가 있고, 이문열은 이에 대해 분노가 치밀었다고 했다. 그는 이후 담배를 끊었으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회고했다.[2]

그러나 이문열의 증언과 그의 발언을 인용한 이후의 언론보도와 달리, 실제로 책 화형식이 일어난 적은 없다. 2000년당시 이문열이 낙선운동을 하던 시민단체를 홍위병에 비유한 발언이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이에 항의하는 독자들이 모여 이문열이 살던 부악문원을 찾아가 책을 반환하려 했다, 이문열측이 책의 인수를 거부하였고 반환하려던 측은 책의 모의 장례식을 치룬후, 책을 거둬가 고물상에 팔았던 사건이 있었을 뿐이다.# 실제로 화형식을 했었더라면 이문열의 회고이외에 화형식 행사를 직접 취재한 기사-사진이나 인터뷰를 포함한-가 있어야겠지만, 화형식을 다룬 기사는 없다.

그리고, 이문열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논란이 한참 뜨겁던 2001년 무렵의 기사# 역시 참고할 가치가 있다. 작가가 마음에 안 들어서 책을 반품하면서 책값을 돌려받는다는 것은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법정최고이율로 이자까지 쳐서 돌려주겠으니 어디가서 내 책 읽었다고 하지 말라'고 기세등등하게 받아친 것은 이문열 자신이었다. 그러면서도 정작 책을 반환하자 책값을 돌려주기는커녕 인수도 거부하고, 자기 책이 화형되었다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언론플레이를 벌였다는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책값을 이자쳐서 돌려주겠다 운운한 부분은 감정적으로 격앙된 상태에서 한 말이니 넘어갈수 있다. 그러나 언어를 도구로 삼는 작가, 그것도 상당히 유명한 사람이 자신의 말을 스스로 뒤집으면서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도리어 거짓말로 상대를 깎아내려서 자신을 정당화 한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이렇듯 역으로 힘든 과거에 대한 피해의식이나, 마초이즘 또한 과하게 드러나는지라, 일각에서는 '아직도 월북한 아버지의 그림자에 쥐여 산다'라는 혹평을 받기도 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문열의 작품에 드러나는 아버지에 대한 컴플렉스를 비판했던 평론가 김명인이, 90년대에 그의 작품이 인기를 끈 것은 정치적 속성이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정치적 성향이 바뀐 2010년대 젊은이들이 이문열을 등지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로도 꼽힌다.

인터넷 강사 이현은 어느 한 강의에서 이문열을 신랄하게 깠다. 영상에서 나오는 '젊은 평론가'는 아마 진중권을 의미하는 듯하다. 이문열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영남 남인 집안의 거두인 이황도 '그렇게 살지 않았는데' 이문열은 타락했다며...영상을 보자. #

읽기 쉬우면서도 맛깔나는 문체로 글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며(리듬감이 좋아서 잘 읽힌다. 다만 독서호흡이 짧아진 2000년대 독자들에겐 그 가독성이 옛날같지 않다는 평도 받는다.), 이문열의 작품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이문열은 글쓰기에 악마적인 재주를 가졌다"며 이 점만큼은 인정하는 것이 보통. 또한 책의 제목을 짓는 센스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90년대 이후 나온 그의 작품에 대해 왈가왈부하지만서도 제목을 짓는 센스만큼은 여전히 인정받고 있다.

2.1 정치성향 비판

이문열은 수꼴로 비판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보수성에 대해 말했다. 그는 80년대 이후 모두가 적이라고 했다. 운동권을 비판한 쓴 말이 담긴 기사를 쓰자 온갖 비판이 쏟아졌다. 그는 그런 비판을 이겨낼 수 없었다. 그는 보수로 전향해야 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보수가 된것을 의무로 여긴 것이다. 사실 그는 이전에도 친아버지가 월북 한 전례가 있다. 어린 시절에 그가 이사가는 마을마다 그를 환영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을 뿐 아니라, 무슨 간첩 사건, 공안사건이 일어나면 이문열 집에 사람이 찾아오곤 했다고 한다. 이런 그가 보수로 전향한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이것 또한 비판의 여지가 있다.

우선 같은 출발선상에 서 있으면서도 진보와 보수 모두에 손을 뻗고 있었던 이문구 선생의 사례가 있다. 보수로 전향하는 선택지만 있있던 건 아니라는 것이다.

두번째로, 혼자 덩그러니 월북하고 남은 가족들이 어떻게 되든 신경도 안쓴 이문열의 아버지가 가장 우선적으로 비판받아야 하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빨갱이 집안으로 몰려 한국 사회에서 거의 왕따에 준하는 대우를 받으며 괴로워했던 이문열이 '월북한 아버지가 속한 좌파진영'에 대한 불신과 미움을 품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민주화 운동에 대한 불신과 냉소주의적인 태도가 용납될 순 없다.
당시 치열하게 벌어지는 민주화운동을 냉소적[3]으로 바라보거나, '이놈저놈 똑같으니 민주화되도 소용없다'라는 식의 양비론적 태도와 마지막으로 6월 항쟁 이후 양비론을 벗어나서 노골적으로 민주화운동을 까내리는 태도는, 이미 헌법 단계에서 민주공화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행위다.
단적인 일례로,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한 재판과 처벌이 이뤄졌을 당시 "이런 식으로 쿠데타 세력을 처벌하면 이 이후에 쿠데타로 정권잡은 세력들은 처벌받기 싫어서라도 죽을때까지 권력을 붙잡고 놓지 않게 될 것"이라고 평한 이문열의 발언은, 그가 민주주의를 보는 시각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보여준다. 이런 행태는 좌파, 우파의 이데올로기나 소설가라는 직업, 그리고 소위 빨갱이 아버지를 둬서 연좌제로 고생한 과거 경력을 떠나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태도다. 즉, 이문열은 민주화와 좌파에 대한 냉소와 조롱을 글로 고상하게 돌려말하고 있다 뿐이지 사실상 전 세계 어디서나 민주주의 싫다고 징징거리는 넷 우익들과 다를게 없는 것이다.

세번째, 이문열이 민주화 운동과 좌파에 대한 꾸준한 냉소와 불신의 이유로 자신의 불행한 성장배경을 내세우는 건 '한강에서 뺨 맞고 종로에서 화풀이하는' 즉, 엉뚱한 사람에게 화풀이 하는 행위로도 해석될 수 있다. 물론 앞서 설명했든 일차적으로 이문열의 아버지가 한 행동이 잘못된 것이었다 해도, 정상적인 민주사회에선 상상도 못할 연좌제에 근거한 탄압이나 따돌림 등은 좌파가 한게 아니라 그당시 독재정권과 반공을 내세워 매카시즘을 펼친 보수주의자들의 소행이었기 때문이다. 즉,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였으면 이문열이 아버지가 월북했다는 이유로 고통받을 일은 없었다는 이야기인데, 이문열은 오히려 독재정권과 매카시즘으로 부패한 보수주의자들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민주화를 비웃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간략하게 한 줄 요약하자면,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을 옹호하고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에게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비웃고 조롱한 것이다.[4]

당시 평론계에는 좌파나 진보적인 이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결국 이문열은 이들로부터 십자포화를 맞게 된다. 그리고 이문열의 양비론적 태도를 허무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파시즘의 전형에 가깝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정당성을 갖추지 못하고 폭력으로 집권한 군사독재정권, 기존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새로운 관계를 강요하는 산업자본에 대해 보인 냉소와 국민의 정부 및 참여정부 시기 현실권력의 장 안으로 진입한 운동권이나 정치적으로 돌출하는 대중에 대한 적개심, 그리고 가부장적 위계질서에 의해 유지되는 전통적인 사회상에 대한 작가의 일관적인 향수는 종합해 보면 전형적인 복고적 파시스트, 수꼴의 모습에 가깝다는 것.

종합해 보자면, 이문열의 불행한 성장과정은 물론 감안해야 한다. 남은 가족들이 어떻게 될진 생각도 안하고 이념에 미쳐서 저 혼자만 월북한 이문열의 아버지 또한 두고두고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계속 그것만 내세우며 민주주의에 대해 시종일관 부정적인 시각으로 일관하는 이문열의 행태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3 주요 작품

3.1 장편

  • 사람의 아들
  • 황제를 위하여
  • 선택
    조선 선조 때 출생하여 광해군, 인조, 효종, 현종 때까지 살아간 정부인(貞夫人) 장계향(張桂香)[5]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소설로, 장계향은 뛰어난 재능이 있었지만 가정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과감히 버리고 헌신했다는 내용이다.

    특히 서문에서 이문열이 문단의 여성 작가들을 은연 중에 비난한 것 아니냐며 논란이 일었다. 공지영의 작품명(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을 들먹이면서 개인적 행복추구에만 몰두하는 현대 여성을 힐난했다.(공지영을 힐난한 것은 아니다.)[6][7]

    내용은 이러하다. 비범하게 태어나 주위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자라나 큰 일을 할 것 같았지만, 감히 재능을 드러내지 않고 시부모 공양, 남편 내조, 자녀 양육에만 헌신하고 희생한 여성이었던 장계향에 대한 미화와 찬사. 그리고 요즘 여성들은 그렇게 안 한다는 비판에 더해서, 이것이 나의 조상이라는 자랑질 겸 사자후.[8][9]

    이에 대해 이문열은 "허무감에 젖어 있는 여성들을 위해 쓴 소설이었으나, 결론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하고 글을 썼다"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
  • 호모 엑세쿠탄스
  • 젊은 날의 초상
  • 우리가 행복해지기 까지
    고종이 감동적인 연설을 남기고 1919년에 자결하고, 일본냉전 시기 동서로 분열 되는 등(서일본은 북한과, 동일본은 대한민국과 거의 99% 같은 역사를 밟는다.) 일제강점기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내용을 뒤집어서 표현하고 있으나 그다지 잘 팔리지 못했으며 헌책방에서나 가끔 보인다. 인터넷에서 평가도 거의 없는 수준. 대체역사소설이란 말이 있으나 역사의 중요 장면을 비틀어 봤을 뿐이지 대체역사소설이라고 보긴 힘들다. 굳이 말하자면 역사풍자소설이다. 사실 이 작품도 개작전 단편은 해방까지였고 그것은 볼만 하지만 일본 분단기 부분은 노골적인 좌파 비난이다. 비명을 찾아서열폭하고 썼다는 설도 있긴 있으나 글쎄?
  • 불멸
    안중근 의사의 생애에 대하여 쓴 소설. 조선일보에서 연재를 마친 후에 발간되었다. 그의 최근작 중에서 꽤 괜찮다는 평가를 받는 소설. 실존 인물을 다룬 소설중에 걸작임.(시인 연작은 사실 작가의 성장 소설이 짙다.)
  • 이문열 창작 초한지
    이문열이 2000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사기》를 읽고 구상한 작품. 평역인 《삼국지》와 다르게 이문열의 오리지널 작품이니, <삼국지>에서처럼 내러티브를 해설로 끊는다고 비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연재된 후 출간되었다. 보통 초한지가 항우의 자결이나 한신의 최후에서 끝맺는 경우가 많은데 이문열 초한지는 여후가 죽고 주발진평이 여씨 일족을 토벌하는 것까지 나온다.
  • 리투아니아 여인
    중앙일보에서 연재를 마친 뒤에 출간된 작품. 리투아니아계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여성 예술가의 삶을 그렸다. 모델은 음악감독 박칼린. 이문열이 극본을 쓴 뮤지컬 '명성황후'(박칼린이 그 뮤지컬의 음악감독)의 해외공연길에 동행하면서 알게 된 박칼린에게서 그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후 쓰게 된 소설. 작품 자체는 90년대에 이미 쓰일 계획이 잡혔지만 본격적으로 집필이 시작되었을 때 박칼린이 매스컴을 타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서, 이문열은 시류에 편승해 쓰인 소설로 보이길 원하지 않았는지 중앙일보에서 연재를 끝마친 뒤에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에 책으로 엮어내었고, 한 인터뷰에서는 박칼린의 이름을 지면에 노출시키지 말아달라고 기자에게 당부한 일도 있었다. 이문열은 이 작품이 <시인>이나 <금시조>를 쓰던 비교적 초창기의 작품 세계로 회귀하여 쓰인 작품이라고 자평했고, 독자층에서도 이에 부응했는지 베스트 셀러에 올랐다. 하지만 작품 말미에 주인공 여성 예술가가 진보진영의 악의에 찬 인신공격을 당해 좌절하는 내용[10]이 나오는 점을 들어서 이념성의 흔적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견해도 있다.
  • 변경
    이문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국전쟁 후부터 유신정권 초기까지의 우리나라 사회상을 3명의 시점을 통하여 그려낸 대하소설. 해방후 한국전까지를 무대로 좌익인사 이동영의 이야기를 그렸던 전작 영웅시대의 속편으로, 영웅시대의 주인공이 월북한 이후 남겨진 가족들이 겪는 남한 현대사의 이야기이다. 어머니와 2남 2녀의 다섯 가족이 나오는데, 장남 이명훈은 아버지가 월북한 후 갖은 고생을 하면서 어떻게든 집안을 일으키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뒷골목 인생을 벗어나지 못하고 최후를 맞는다. 장녀 이영희는 일찌감치 가출하여 술집 작부에서 강남 복부인으로 성공하게 되며, 둘째 아들 이인철은 이문열 자신의 페르소나로써 어렸을 때 부터 글과 이야기에 뛰어난 재주를 보이며 고학으로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하게 된다. 막내딸 이옥경은 대체로 존재가 희미하나 나중에 여공이 되어 노동운동과 연루되게 된다. 이외에도 해설역으로써 당대의 대학생이나 지식인들이 조연으로 등장하는데, 주로 명훈이 이들과 연루되어 4.19, 5.16, 6.3, 광주 대단지 사건등 남한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겪게 된다. '변경'이라는 제목은 한반도를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제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변경지대로 규정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주인공 가족들이 월북한 아버지때문에 고초를 겪으며 남한 현대사를 헤쳐나가는 것은 조정래의 한강과 매우 유사하나 한강에 비해서는 시대적 배경이나 등장 인물의 범위가 협소한 것이 사실이다.
  • 아가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산업화시기에 걸쳐 지방 소도시(또는 촌락)를 배경으로 지적장애와 신체장애를 가진 당편이라는 여주인공의 삶을 그려낸 1권짜리 장편소설. 2000년대 이후 작품으로써 현실정치를 은유하는 장치를 삽입하지 않고 씌여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후기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다만, 작가의 사회관에 관한 논쟁이 꽤나 격하게 벌어진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옹호파들은 근대화-산업화 이후 실종된 전통적 순수성에 대한 그리움이 이 작품의 주제의식이라고 주장하지만, 비판적 시점에서는 작은 사회의 내부적 억압을 정이나 순수성이라고 포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뭐, 이것도 작가의 정치관 논쟁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특정 작품의 특정 인물을 두고 이게 현실의 특정인을 지목해서 디스걸고 있는거냐 아니냐를 두고 피터지게 싸우는 것 보다는 훨씬 생산적인 논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 작가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가문공동체가 중심이 되는 지방사회이고, 주인공 당편이와 사회가 관계하는 방식을 가문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사회의 해체에 따라 설명했다는 점에서 작가의 사회관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다만, 작중 외지인 노동자가 성폭행하기 위해 당편이를 산으로 유인하여 옷을 벗기기까지 했으나 중도에 그만두었고, 이 사건에서 당편이의 울음을 '여자 취급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 서러워서 운 것이 아닐까'라고 묘사하는 장면이 들어가서...호되게 까이고 흑역사화 해 버렸다.

3.2 단편

  • 금시조
    서예의 정상인 석담(스승)과 고죽(제자)의 일대기를 다룬 단편이다. 두 주인공은 각각 전통적 예술론과 순수예술론을 대변한다. TV 문학관에서 신구와 김흥기의 연기 대결이 볼만하다. 오리엔탈리즘 덕분인지 유럽에서 제법 인정받은 몇 안 되는 한국 소설 중 하나.
  • 들소
    잭 런던의 "Before Adam"과 같은 선사 시대 SF. 변우민 주연으로 영화화될 뻔했다.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사로잡힌 악령
    한 시인(고은이 모델이라고 한다)의 7~80년대 동안의 행보를 다룬 소설. 법조계에 종사하는 인물인 서술자에게 '악령'이라고 지칭되는 그 시인은 일상 속에서 망나니나 다름 없이 행동하면서도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대외적으로는 진보적인 지식인으로서의 페르소나를 갖고 행동한다. 그러는 와중에도 기회가 올 때마다 주변에 있는 여자들을 건드리고 다니는 등 추잡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고, 결국엔 스스로 진보운동을 펼친 사람이었으면서도 더 이상 진보 인사로서 자신을 포장할 필요가 없어지자 사회의 안정적인 기득권이 되어서 여생을 보낸다.
    이문열은 '이 작품을 보면 어떤 시인의 행보가 연상되겠지만 그를 개인적으로 공격하는 작품이 아닌 80년대의 시대상을 담아내는 작품으로 봐달라'고 했지만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항의가 들어오자 결국 이 작품을 자신의 작품 목록에서 내려놓는다. 원래는 이문열 중단편 전집 5권(표제작은 '아우와의 만남')에 수록되어 있었지만 지금 유통되고 있는 저 단편집에서는 이 작품이 실려있지 않다. 이문열은 나중에도 어느 지면에서 '나는 그 시대의 한 특이한 개성을 소설적으로 형성화했을 뿐, 특정 인물을 공격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항변했다.
    다만, 이 소설에 대한 비판중에는 특정인물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이문열의 항변이 오히려 더 큰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작중 등장인물에서 고은을 연상한 독자가 소수였던 것도 아니고, 심지어 작가 자신조차 '특정 인물(고은)이 연상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 상태에서 특정 인물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당당하게 고은에 대한 비판이라고 인정할 일이지, 상대를 비웃음거리로 삼고 있다는 것이 뻔히 보이는 글을 써 놓고 특정인물을 공격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또는 변명)하는 것은 비겁하다는 것. 특히, 이런 식으로 특정 인물을 공격할 의도는 없었다고 논쟁을 회피하는 것은, 공격 대상이 된 인물이 반론을 통해 자신을 방어할 권리마저 빼앗는다는 점[11]에서 지극히 비열한 인신공격의 수법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 달아난 악령
    90년대 후일담 문학이 횡행하는 와중에 문학계가 잘 다루지 않았던 운동권의 부정적 실상을 폭로한 작품. 진보 세력에 대한 비판이라는 면에서는 그럭저럭 봐줄 만한 점이 있으나 반대로 보수 세력을 옹호하는 논리는 병맛스러운 점이 많다. '사로잡힌 악령'과 혼동되는 경향이 있지만 별개의 작품이다.
  • 아우와의 만남
    남한의 교수인 화자가 중국북한 접경 지역에서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이복 아우를 만난다는 내용으로 유교적 방법론에 의한 남북 화해와 통일을 모색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렇게만 보면 이문열답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지극히 이문열다운 보수성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특히 백두산의 한국 여행객의 모습을 비판한 대목. 엄밀히 말하면 보수성이라기 보다는 엄숙주의에 더 가깝다. 신 TV 문학관에서 김흥기, 이희도 주연으로 극화했다.
  • 익명의 섬
    '나'는 처녀 시절, 시골에서 교사 생활을 했었는데, 시골 아낙네들의 성적 쾌락을 채워주는 깨철이의 존재를 알게된다. 그리고 담담히 서술하는 형식. 1982년에 임권택 감독이 <안개마을>이란 제목으로 영화화, 그리고 깨철이 역할은 안성기 씨가 했다. 교사는 정윤희.
    미국의 시사 교양지 뉴요커즈에 전문이 게재되었다. 한국 작가로서는 처음이라고 한다.

3.3 평역서

  • 이문열 평역 삼국지
  • 이문열 평역 수호지
    초회판의 1권의 책머리에는 대략 수호지의 판본 중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그 중에는 양산박의 영웅들이 조정에 귀순해서 충신으로 죽는 내용도 있다는 설명을 하면서 108영웅이 모이는 내용까지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라는 말과 함께 도적은 도적다워야 한다 라고 써 놓았고 6권으로 완결이었는데(이판은 70회 김성탄본이다.), 곧 조정에 귀순하는 과정과 그 이후의 이야기(120회 양정견본)를 다루어서 7~10권이 나왔다. 그리고 10권의 뒤에는 진침의 수호후지 줄거리(...라고 하기에는 긴)와 양산박 기행문을 추가했다. 어른의 사정인가...?[12]
    삼국지와는 달리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등장 인물에 대한 평가를 내리거나 하진 않는다. 하지만 여러 대목에서 이야기의 변형이 가해졌기 때문에 번역이 아닌 평역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이문열은 2011년에 개정판을 내면서 그 자잘한 번안들을 원본에 맞게 고칠 것인지 유지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다가 자신의 판본이 지닌 고유성으로 여기기로 하고 고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거의 모든 수호지 번역본과 마찬가지로 송강의 반역시를 제외한 원작의 시(詩)와 사(詞)가 대부분 삭제되어 있어 작품 특유의 맛을 느끼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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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물론 진짜 서울대는 대한민국 정부의 피난과 함께 이동하여 1951년까지 부산에 임시캠퍼스를 차렸다. 인민군 점령하의 서울대학교는 말 그대로 괴뢰(?) 국립대학. 따라서 서울대학교는 인민군 점령하의 서울대학교를 완전히 부정한다.
  • [2] 출처 : http://www.homfree.com/kimseye3/?p=9395
  • [3] 우리들의 일그어진 영웅에서 엄석대 체제가 붕괴한 이후 주인공 한병태가 새로운 변혁에 보여주는 태도가 대충 1980년대의 이문열의 스탠스와 일치한다.
  • [4] 위 세가지 비판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는 삼인출판사의 '레드 콤플렉스'에서 기초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90786
  • [5] 경상북도 안동의 명문가인 재령 이씨 집안에 시집온 여인. 학식이 깊기로 당대에 유명했으며, 현종이 집권한 1670년 음식디미방 등의 귀중한 저서를 남겼다. 바로 이문열이 재령 이씨 석계공파 후손이다.
  • [6] 작품을 읽어보지도 않고 신문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 제목을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 [7] 그런데, 이문열의 작품 속에서 명백하게 특정 인물을 연상시키는 표현을 공격적으로 사용하여 상대를 힐난하거나 웃음거리로 만든 뒤, 그에 대한 반박이나 비판을 받으면 '그 인물을 직접적으로 공격할 생각은 없었다'고 회피한 경우는 이 사건이 처음은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 이문열을 남을 깔때는 신나게 까다가 상대가 반론하면 문학적 은유 뒤로 도망치는 비겁한 인간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으니 판단에 참고할 것. 아니, 이걸 보아서는 그런 가능성이 높다.
  • [8] 장계향은 시 짓기, 글 짓기, 그림, 각종 학문에 두루 능통하여 몇 가지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고, 나름대로 조선시대 여성으로서는 성취를 이룬 인물이다. 음식디미방 항목 참조 바람.
  • [9] 다만 장계향의 삶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 내에서 여성에게 허용되는 영역 내에서 최고의 성취를 이루어낸 삶이고, 조선시대는 허용된 영역 바깥으로 나가려고 한 여성들에게 결코 우호적인 시대가 아니었다. 즉, 비범하게 태어나 주위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장계향이지만, 규방의 일 이외의 영역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이에 비해 진출이 허용된 사회적 영역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현대의 여성들에게 왜 이렇게 살지 않느냐라거나, 이렇게 사는 것도(이) 훌륭한 선택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여자는 부엌에서 살림이나 하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비치기 딱 좋다. 더구나, 작가 자신이 평소부터 여성비하 시비에 자주 휘말렸던 것까지 생각하면… 그러다보니, 장계향의 아들과 정치적 반대파가 된 송시열이 신인선, 즉, 신사임당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한 글을 읽으면, 인재풀 축소를 하는 망할 개념에 대한 인식이 빨리 들어온다.
  • [10] 실제 박칼린에 대한 비판은 박칼린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본인이 자초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 [11] 뻔히 보이건 어쩌건 당신을 공격할 의도는 없었다고 작가가 말하면 뻔히 공격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작중의 자기 모습이 실제와 다르다고 말할 수가 없어지지 않는가?
  • [12] 개정판에는 "독자의 성원에 못 이겨" 후편을 내놓았노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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