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포루스 해협에 위치하여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선(이 경우 아시아의 정의가 좀 애매하기는 하지만)에 위치해 있는 도시.
본디 비잔티움이라는
로마의 지방도시였지만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를 기독교 제국으로 개조하기 시작했을 때, 아무래도 로마에서 시작하는 건 위험하니 대신 수도를 새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이곳을 라틴어로 콘스탄티노폴리스, 즉 콘스탄티노플이라는 신도시로 개조해버렸다. 이름의 뜻은 콘스탄티누스의 도시.
일단 도시가 삼각형의 양변이 보스포루스 해협에 면해 있기에 육지의 한변만 방어하면 되는 천혜의 요지이다. 게다가 당대 어떠한 공성병기로도 뚫을 수 없다는 삼중성벽의 명성은 드높았다. 물론 4차
십자군 전쟁 당시엔 동맹걸고 들어온 십자군에게 털리긴 했지만.
이후 동로마
비잔티움 제국의 총본산이 되나,
오스만 제국에 의해 끝내는 함락된다. 역사적으론 이 함락은 함대포를 끌고와서 포격을 하고, 방위군의 열배가 넘는 정예
예니체리들의 닥돌로 무너졌다고 하지만, 야사에 따르면 성문 샛길을 잠그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그보다 10만 공격군에 방어군이
8천명밖에 없었으니(...) 그때까지 버틴게 오히려 용하다.
오스만 제국에 점령당한 후 새로운 수도가 되면서 명칭에 혼선이 생기는데, 사실 오스만의 정복 이전부터 투르크인들은 이 도시를 '이스탄불'이라 부르고 있었다. 아니, 이미 이것은 10세기 무렵부터 아랍에서 쓰던 명칭이었다. 뜻은 '도시에서', '도시로' 정도로, 서쪽에서 번영하던 대도시라는 이미지를 통해 좀 막연하게 붙인 명칭이었다.
그 외에도 투르크인들은 이 도시를 스탐불(도시), 이슬람볼(이슬람으로), 파히타흐트(옥좌), 아시타네(술탄의 문지방), 데르시아데트(번영의 문), 바비알리(웅장한 문), 데랄리예 등으로 다양하게 호칭했다. 비잔티움을 멸망시킨 메흐메트 2세의 경우엔 친히 '이슬람볼'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스만의 점령 이후로도 제국의 공문서에서는 '콘스탄티니예'를 더 선호했다. 이미 현지에서는 콘스탄티노플이라는 명칭이 워낙 뿌리깊게 박혔던 탓이다. 이러던 것이 민족 의식이 강해진 19세기에는 그리스적인 느낌이 강한 콘스탄티노플과 확실히 차별화시키기 위해 이스탄불로 굳어졌고, 구어적으로 사용되던 명칭은 완전히 대세가 되었다. 그리고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자 이스탄불을 제외한 이런저런 명칭들은 완전히 폐지시키고 이스탄불로 완전히 공식화했다. 오늘날
그리스어를 쓰는 국가들을 제외하면 이 도시는 이스탄불이라 통용되고 있다.
오스만 제국의 수도 시절에도 이스탄불은 번영했다. 당시 이스탄불은 지금처럼 터키 끄트머리에 위치한 변경이 아니라 3대륙을 지배하는 제국의 한복판에 위치한 중심지였다. 술탄은 수도 이스탄불에서 제국 각지로 군사를 출병시켜 지배를 공고히 했고, 심지어 유럽 내륙의
오스트리아까지도 원정했다. 자세한 것은
빈 포위 항목 참조,
그러나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 터키 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수도의 지위는 상실하고, 터키 수도는 투르크인의 발원지이자 아나톨리아에 위치한
앙카라로 옮겨진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코앞인 보스포루스 해협에
영국 함대가 몰려와서는 깔짝댔던 기억도 있고, 기존 제국의 친왕 귀족세력의 본산이기 때문에 아타튀르크가 일부러 불모지나 다름없던 앙카라를 수도로 선택한 면도 있으며, 결정적으로는 터키 공화국의 출범 계기가 된 1922-3년의
그리스-터키 전쟁 당시 그리스와 인접한 이스탄불이 그리스군에 빠르게 점령당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수도가 적진에 그렇게 가까이 붙어있어서야 불안했던 모양.
이슬람 국가의 대도시라지만 이스탄불만은 별로 그런 느낌이 없이 서방세계의 도시들처럼 자유로운 분위기가 돈다. 여성들은 히잡(이슬람 여성들이 머리를 감싸는 스카프)을 쓰지않고 서방세계 여성들처럼 긴 금발에 티셔츠 청바지 차림으로 다니기도 하며, 특급호텔 2층의 유리창으로 배꼽이 드러나는 타이즈 헬스복 차림으로 런닝머신에서 뛰는 여성들도 볼 수 있고, 나이트클럽도 많고 술도 잘 먹는다. 이스탄불 나이트클럽에서는 바람잡이로 슴가가 수박 만한 금발여성이 춤추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낮에 공개된 시가지 대로에서 사람들 보는 앞에서 음주나 여성들에게 찝적대는 짓을 하는 건 여전히 위험하다.
도시 자체가 보스포루스 해협을 끼고 아시아와 유럽 두 구간으로 갈라져 있으며, 성 소피아 성당과 여러 유적들이 남은 구시가는 유럽 쪽에 있고 현대화된 신시가는 아시아 쪽에 지어지고 있다. 그래서 구시가 쪽에 사는 많은 터키 샐러리맨들이 아침에 다리를 건너 유럽에서 아시아로 건너가 일하고 저녁에는 유럽으로 돌아온다.
해협 양쪽으론 유럽과 전세계의 부호들이 지어놓은 호화 별장들과 개인 선착장, 요트들이 즐비하며 많은 관광객들이 유람선을 타고 여기를 구경하며 찬탄한다.
성 소피아 성당 외에도 블루 모스크라든지 볼만한 역사 유적도 많고 요즘은 세계적인 패션 중심지로 부상했다지만, 확실히 서유럽의 도시보다 낙후되어 보이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도로 체계가 근대화가 안 되어 벌어지는 엄청난 교통체증, 그리고 그 지역의 대기오염 등등. 유럽식으로 만들어진 깔끔한 버스 정류장에 들어오는 낡고 더러운 버스도 참 깨는 볼거리다.
세계 최대의 재래시장(그랜드 바자르)도 유명하다.
지중해성 기후일것 같은 선입관과 달리 비도 많이 온다. 보스포루스 해협 때문에 오히려 음습한 기후이다.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한 이유에 대한 우스갯소리로, 우중충하고 음습한 날씨의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삼아서 밝고 명랑한 그리스인들이 허약하고 비관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있다. 물론 사실은 아니다. 어찌되었든 현지인들은 비가 자주 오다보니 거의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는다. 주로 후드나 모자를 많이 쓰는듯. 우산을 쓰고다니는 사람은 전부 관광객이나 외지인이라고 한다. 이건 미국 시애틀과 비슷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