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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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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 이정재(李政宰)
출생 1973년 3월 15일[2], 경기도 이천시
신체 180cm, 68kg, B형
학력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영상예술학과 석사
데뷔 1993년 SBS '공룡선생'
소속 씨제스엔터테인먼트[3]
취미 골프, 영화감상
특기 인테리어, 구기종목, 보디빌딩
사이트 페이스북

Contents

1 개요
2 성장배경
3 배우가 되기까지
4 연기
5 기타 및 트리비아
6 논란
7 필모그래피
7.1 영화
7.2 드라마

1 개요





1973년 3월 15일에 태어나 숭의초등학교, 청담중학교, 현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년 후 1999년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에 입학하여 졸업하였다. 졸업후 동대 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영상예술학과에 입학하여 2008년 석사를 수료하였다. 석사논문명은 '영화 태풍의 강세종 역할에 대한 연기 접근방법 연구'이며 RISS에도 등록되어 있다.논문사이트

1999년 제19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1999년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2006년 제29회 황금촬영상 연기대상, 2011년 제31회 판타스포르토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2013년 제50회 대종상영화제 인기상, 2013년 제34회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 2013년 제3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CJCGV스타상, 2014년 제5회 올해의 영화상 남우조연상 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였으며, 2007년 3월 국가정보원 명예요원,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홍보대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 전에도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던 청춘스타였지만,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여주인공 고현정에게 일방적인 순애를 바치는 보디가드 '백재희'역을 맡아 과묵함[5]과 깊은 눈빛 연기를 보여줘 폭풍 스타가 되었다. 주인공인 최민수박상원보다 더 인기를 얻고 전국 검도장이 모래시계 보고온 남자들로 미어터질 정도로...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을 지키다 목숨까지 바친다는 설정때문에 한동안 여성들의 이상형 1위가 되었고 방영이 끝난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각종 매체에서의 보디가드 역은 백재희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입대 이후에는 군대에서도 여러 국방홍보영화의 주연을 맡았다. 모래시계 이외에도 배창호 감독의 '젊은 남자'란 영화에서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를 과시하며, 거의 한국 최초로 남자의 '몸짱' 열풍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시 그의 상반신 근육질 몸매가 드러난 영화 포스터가 길거리에 붙어있던게 젊은 여성팬들에 의해 감상/보관용으로 뜯겨나가 품귀현상을 빚기도 했다고 한다. 하녀에서도 재현되는 그 근육.

2 성장배경

도회적으로 잘생긴 외모와 세련된 스타일 그리고 초중고 학력 때문에 어릴 때부터 강남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랐을 것 같지만 실은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밝힌 바에 따르면 양친은 모두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6] 본인은 국민학교 재학 이후로는 유복했던 기억이 없다고 한다. 의사셨던 조부가 연달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마한 것이 집안의 뿌리를 흔드는 원인이었다는 듯. 가압류를 당하기도 하고, 이사를 다니면서 화장실이 바깥에 딸려 있는 단칸방에서 식구가 함께 생활했고 때로는 가족이 서로 흩어져 살아야 할 때도 있었다고. 고등학교 재학 시절엔 등록금을 내지 못해서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매를 맞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힐링캠프에서 처음 밝힌 사실인데, 자폐증을 앓고 있는 형이 있다. 이제까지 많은 매체에서 '외아들'이나 '무녀독남' 등으로 설명되고는 했기 때문에 몸이 불편한 형이 있다는 것을 밝힌 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데뷔 후 처음 밝힌 어려운 가정사에 그의 팬들은 물론이고 일반 시청자들도 많이들 놀랐는데, 담담하게 '내 형이니까 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이것이 나와 내 가족의 삶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하는 모습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했다는 평. 이외에도 IMF가 닥쳤을 때 소속되어 있던 소속사가 부도가 나면서 빚을 대신 짊어지게 되고 투자했던 부동산에서 아파트 중도금을 미납하게 되는 등 성공가도를 달린 후에도 금전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다. 차비가 없어 밖에도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힐링캠프에서 강우석 감독에게 영화 세 작품에 출연하는 개런티를 미리 받았던 덕에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7]. 고생 하나 하지 않고 자랐을 것 같지만 여러모로 힘든 면이 많았던 듯.

하지만 본인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2008년에 아레나와 한 인터뷰를 보면 “세상 살면서 그 정도로 안 힘들어본 사람 정말 아무도 없다. 그런데 유독 자기만 힘들었던 것처럼 과거를 끄집어내 말하면서 동정표를 유도하는 이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진 않는다. 누구에게나 개인적인 스토리는 있고 그 강도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 아니겠나." 이제까지 친형에 대해서 함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힐 수 있다. 아무튼, 고생한 것에 비하면 참으로 평온하고 맑은 얼굴을 하고 있다.

3 배우가 되기까지

원래 이정재는 배우가 아니라 건축인테리어나 미술쪽으로 직업 방향을 잡았었다. 고등학교때 집안 사정이 어려웠던 덕에 학업에는 흥미를 붙이지 못하고 노는 데에 정신을 팔았다고. 그러다 고교시절 미술 교사가 그의 미술적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이 아는 미술학원에 보내서 공짜로 입시교육을 받게 해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미대 진학을 도전했었으나, 성적이 따라주지 못해서 결국 미대는 갈 수 없었다.

대신에 아트스쿨같은 직업학교에서 인테리어와 건축을 공부했다.[8] 학원비를 벌기 위해서 압구정동 카페에서 서빙 알바를 시작했는데, 그때 매니저의 눈에 들어서 모델로 발탁된다. 그리고 모델료가 알바비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바로 알바를 그만두고 모델업계에 몸을 담게 된다. 그리고 그 후 출연한 크런키 초콜렛 광고가 대박을 쳤다. (9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나만의음악, 그가돌아왔다) 모래시계에 재희 역으로 발탁된 것도 이 초콜렛 광고 덕분이라고.


당시 광고 화보. 쵸코렡의 압박 90년대 감성이 뻐렁친다...


위 화보와 이 사진을 연결시켜보자. 그 남자의 심경

이러면서 젊은 남자에도 캐스팅이 되고 느낌에도 캐스팅이 된다. 그러나 결정적인 작품은 역시 90년대 국민 드라마 모래시계. 당시 최민수보다 오히려 더 인기를 모으면서 백재희를 죽이지 말아달라는 편지가 SBS에 쇄도하는 등 대국민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으로 1995년에 SBS 신인상을 수상했다 (재미있는 것은 정우성과 공동수상). 그러나 모래시계를 다 찍고 난 후 20대 초반에 찾아온 쏟아지는 인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군입대를 해버린다. 방위로 갔다고 까였으나 평발이라 방위가 나온 것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이 유재석과 군 동기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유재석이 자신을 업어 키웠다고...[9]

4 연기

제대 후 다시 연기를 시작했지만, 연기가 맞는 옷인지도 모르겠고 이 직업이 자신의 길인지도 아직 잘 모르겠는데 갑작스레 얻은 인기와 돈 때문에 심적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진짜로 연기가 즐겁다고 느낀 건 정우성과 태양은 없다를 찍으면서부터 였다고 한다. 이 영화로 1999년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당시 후보로는 최민식,한석규,안성기등등의 쟁쟁한 배우들....이 때 나이가 27세였는데,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지금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꽤 다작을 했지만, 그 후로 작품편수가 줄어들었다. 연기 말고 사업 등에 관심을 돌리고 시나리오를 이리 고르고 저리 고르다 보니 작품수가 줄어들게 됐다고. 패션사업 등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았지만, 최근에는 사업을 모두 정리했고 다신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한다. 최근에 하녀, 도둑들, 신세계로 연기, 인기, 흥행 면에서 제2의 전성기가 찾아온 것은 물론이고 성공적으로 중년 연기자로 정착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다음 작품은 송강호와 함께하는 '관상'. 수양대군 역을 맡았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연기에만 매진하면서 소처럼 일할 것이라고 하니 기대해 봐도 좋을 듯.

배우이길 떠나 자신이 영화를 찍어보려고도 해보고 나름 영화와 연기에 대한 열정은 상당히 진지하다고 평가받고 있긴 하지만, 그의 연기력에 대해선 다소 설이 엇갈린다. 몇몇 영화에선 굉장한 열연을 해보이긴 하지만 일상적인 연기를 맡기면 어색한 티가 많이 난다는 편. 그러나 그의 연기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는 데에서 장점을 찾을 수 있다. 본인이 스스로 연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또래의 다른 연기자들(장동건, 정우성)에 비해 하나의 색을 고집하기보다는 다양한 색의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데뷔 이후에도 하나의 이미지에 고정되지 않고 야망을 가진 청춘, 고뇌하는 형사, 야비한 도둑, 성적 판타지가 있는 동사무소 직원, 언더커버 경찰, 속물 주인집 남자 등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왔다. 그 자신도 '캐릭터 수집'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여러가지 다양한 인물을 연기해 보고 싶다고 한다. 이런 점이 메리트라면 메리트. 사실 하녀 이전에는 조금 주춤한 것 아니냐는 평이 대세였으나 그 이후로는 오히려 더 다양해진 영화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굳이 구분하자면 분출하는 연기보다는 안으로 흡수하는 연기를 더 잘 한다.

...그리고 관상으로 대박이 터졌다. 9월 21일 현재 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한국영화 중 세 번째로 빠른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관상은 영화에 대해서는 평이 엇갈리고 지루하다는 평도 있으나, 이정재가 연기한 수양대군에 대해선 거의 만장일치로 호평 일색. 많은 기자들은 관상이 이정재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일반 관객들의 평도 매우 좋다. 관상보러 갔다가 수양 보고 나왔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니... 많은 처자들이 '알파 메일 수양에게 나를 가져요~ 엉엉'이라고 외쳤다 카더라. 거기에 수양의 등짝 노출신에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아니 이 청년은 어따 두고? 첫 등장 장면을 런웨이로 만들어 버리며 영화 시작 후 한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나오는 첫 등장 장면을 ㅎㄷㄷ한 포스로 잠식해 버렸다. 이병우 음악감독은 그 장면에 쓰인 음악이 영화에서 가장 많은 돈을 들였다고 했고, 한재림 감독은 슬로모션 촬영 및 큰 개 두마리를 동원하여 시각적, 청각적으로 위협감을 주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배우 본인은 이 역할을 위해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동물의 왕국 등을 시청하면서 극중 '이리'의 상이라 표현되는 수양대군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이정재에게 관상 시나리오가 온 것은 2012년 여름에 부산에서 신세계를 촬영할 때였는데, 그 때 감독이 직접 찾아와 대본을 전했다고. 처음에는 더 센 이미지의 남자 배우가 맡아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출연을 망설였지만 하녀의 고훈 캐릭터에서 배어나온 기품과 카리스마를 원한다는 감독의 설득에 결국 역을 맡게 된다. 결과는 대박. 배우 본인의 아버지까지 네가 무슨 수양대군 이미지를 갖고 있냐면서 말렸다는데, 결국엔 역사상 최고로 섹시한 수양대군 이라는 평을 받게 되었다. 더불어 연기력 논쟁에도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팬들의 사랑을 받는 동영상도 올라오고 있는데 수양대군의 폭풍 등장씬을 아이돌 그룹 엑소의 으르렁 노래에 맞추어 편집한 이런 동영상이라든지, 관상 개봉 이후 팬의 센스 있는 잘생김 드립 이후 귀여운 찰싹 동영상이라든지...

5 기타 및 트리비아

  • 효령대군의 후손인 19대손의 돌림자 재상재를 이름으로 쓴다. 아마 이래서 수양대군 이미지에 제일 어울린듯
  • 3DO(한국명 금성 3DO 얼라이브) CF에 나온 흑역사가 있다.
  • 이정재와 이름이 같다. 다만 배우 이정재도 이천 출신이라고 잘못 알려진 경우가 있는데, 2013년 2월호 보그지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이 출신지역은 사실이 아니라고 언급했다. '정치깡패 이정재와 배우 이정재가 뒤섞인 프로필' 이라고 한다.
  • 태양은 없다에서 만난 정우성과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절친이며, 같이 패션사업도하고 CF에도 출연하고 술도 마시는 인생의 동반자 같은 사이. 일명 청담동 부부로 불린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두 세번은 만나며, 같이 영화 보고 밥 먹고 술 마시는 사이. 그야말로 절친이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 이지아 사건으로 위로 도 할겸 만났던 자리에서 술먹고 떡이된 정우성을 업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재밌는건 둘은 그렇게 친한데도 아직까지 말을 놓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정우성은 편하다고 이야기했다. 삼성동에 건축되는 18세대 고급빌라 라테라스에 함께 입주한다고 한다. (물론 세대는 다르다... 이젠 집 밖으로 안나오고 빌라 안에서 놀려고)
  • 말끔하고 잘생긴 외모로 연기력에 종종 오해를 받는 배우중 하나다. 범죄자나 사기꾼, 사채업자 ,배신자역할의 연기에서 쿨한 외모와 달리 진가를 보이는 배우로 그가 이런 역할만 맡았다 하면 최소 중박은 치거나 상을 탓다. 그가 처음으로 사채업자 연기를 했던 태양은 없다에서 그는 생애최초 남우주연상을 탄다. 오 브라더스에서도 사채업자를 맡아서 당시 명절 특수를 타긴했지만 중박을 쳤고 ,최근 도둑들에선 도둑놈역할로 천만배우까지 되었다.
  • 여담으로 심은하와 연달아 두작품을 한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재수의 난, 인터뷰).
  • 2013년 2월 21일에 개봉한 신세계에서 언더커버 경찰 이자성 역을 맡아 호평을 받고 있다. 속으로 삭히고 갈등하는 내면 연기를 잘 보여줬다는 평. 특히 정체가 들통날 위기에 처하는 인천 창고 씬이 많이 회자되고 있다.
  • 방위 시절 모래시계로 여러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탔는데, 대종상을 너무 가고 싶었던 나머지 군 규정을 위반하고 시상식에 참석했다고 한다... (언론에 노출되는 시상식은 군에서 참가 허가를 해 주지만, 대종상은 참석이 불가능했다) 군의 높으신 분께서 직접 만나 축하를 해 주려고 대종상 다음날 그를 찾았지만, 실상은 수상 후 부어라 마셔라 놀다가 다음날 무단 결근을 해 버림. 이 때문에 며칠동안 연병장을 몇 바퀴씩 뛰었다고 한다.
  • 성악과 라틴댄스를 배운 적이 있다고 한다.
  • 차는 벤츠 지바겐.
  •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화가나 무용가가 되었을 거라고 한다. 어쩐지 태양은 없다에서 춤을 너무 잘 추시더라니
  • 자타공인 연예계의 대표 패셔니스타. 그가 레드카펫이나 공식행사에서 입은 의상은 바로 인구에 회자되며 무슨 옷을 입고 나타나는지가 대단한 관심거리가 된다. 유수 명품 패션 브랜드의 파티에도 꼭 초대받는 패션 셀렙. 개인적으로는 댄디하고 베이직한 스타일을 선호한다고 하며 좋아하는 브랜드는 입생로랑, 디올옴므 등이라고... 그렇지만 럭셔리하게 옷장을 몇 개씩 채우고 있을 이미지와는 다르게 쇼핑은 일 년에 두세번 하는 정도로 그친다고. 돈 쓰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며 옷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한다. 실제로 故우종완과 출연한 케이블TV의 프로그램 '토크 앤 시티'에 보면 몇십만원짜리 티셔츠를 비싸서 사기 싫다고 하는 대목이 나온다.
  • 예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 심미주의자인 듯. '기본적으로 예쁜 것이 좋다'고 하며 꾸미는 대상은 본인 뿐 아니라 집안의 인테리어까지 포함. 예쁜 그릇이라든지 인테리어 소품 등을 좋아한다. 인테리어도 본인이 직접 한다. 2001년 9월 보그지에 당시 살던 집이 공개된 적이 있는데 상당한 미적 감각을 자랑한다.
  • 2013년 9월 28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데뷔20주년 특별전 '영원한 젊은 남자 이정재' 행사의 일환으로 데뷔 후 처음으로 팬들과 만나는 자리를 가졌다 (일본에서는 두 번의 팬미팅을 가진 적이 있으나 한국에서는 팬미팅 류의 행사를 한 적이 없다). 행사의 공식명은 GV였으나 곧 350명이 함께한 팬미팅으로 변했다 카더라. 약 한시간 반 동안 팬들과 출연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노래도 부르고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이 자리에서 걸어 달라는 팬들의 요구(?)에 걸어도 줌.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이정재가 팬들에게 주는 선물로 준비한 클레이 비누를 일일이 관객들에게 전달해 주면서 포옹을 해 주었다는 것.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에겐 꿈같은 1시간 반이었다. [10]

6 논란

2013년,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알고 지내던 게이 Y에게 '게이 좀 그만 하라'라고 충고했다고 밝혔는데 이게 논란이 되었다. 성적 지향이라는 게 직업이나 취미 생활도 아니고 어떻게 그만 할 수 있냐는 것. 이것은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일반인에게 '이성애를 그만 하라'라고 충고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아웃팅이니 고인에 대한 모욕이라는 혐의도 피할 수가 없다. 더구나 이때 '데뷔때 매니저가 게이라서 루머에 시달렸다.' 며 당시 매니저도 같이 아웃팅시켰다. 기자들이 인터뷰에서 '오프 더 레코드'랍시고 얘기를 끄집어 내서 기사화 시키는 일이 비일비재 한지라 이번도 같은 경우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공개된 자리에서든 사적인 곳에서라든, 모든 걸 떠나서 타인의 성적 지향을 함부로 발설한 것 만은 변호받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Y는 얼마 전 자살로 삶을 마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우종완이라는 설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추측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단언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후 보그 코리아 측에서는 트위터(@VogueKorea)를 통해 다음과 같은 짧은 입장을 내놓았다.
배우 이정재 씨가 <보그>와의 인터뷰로 인해 오해받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정재 씨와 우종완 씨는 특별한 우정을 나눈 사이로 진심으로 고인의 삶을 가슴 아파하는 심정이 잘못 전달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이상 공인들이 사실을 벗어난 허위기사와 댓글속에서 피해를 입지 않기를 바랍니다. 언론정보 문화가 앞으로 더 사실만을 가지고 기사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편 이정재 측 관계자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보그 코리아 에디터, 이정재, 우종완 모두 오랜 친분을 갖고 있던 사이로, 인터뷰와는 별개로 나눈 지인 간의 사담을 기사화된 것이 문제였다고 한다. 이정재가 우종완에게 '게이 좀 그만해라'라고 한 것은 애정 문제로 너무 힘들어하는 고인에게 힘든 사랑은 그만하라 이야기한 것을 자극적인 제목으로 뽑아낸 것. [11]

가뜩이나 보그체 등으로 일반인들에게는 비호감이었던 보그 코리아는 이번 일로 이미지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되었다.

7 필모그래피

7.1 영화[12]

연도제목활동관객수흥행
2014빅매치주연
2013관상주연913만명성공
2013신세계주연475만명성공
2012도둑들주연1298만명성공
2010하녀주연230만명성공
20081724기방난동사건주연28만명실패
2005태풍주연400만명성공
2003오!브라더스주연314만명성공
2002오버 더 레인보우주연24만명성공
2001흑수선주연40만명성공
2001MOB 2025주연
2001선물주연47만명성공
2000순애보주연4만명
2000시월애주연24만명성공
2000인터뷰주연15만명
1999이재수의 난주연5만명실패
1998정사주연30만명성공
1998태양은 없다주연32만명성공
1997박대박주연2만명
1997불새]주연2만명
1996알바트로스[13]주연-
1994젊은 남자주연7만명
1993참견은 노 사랑은 오예단역

7.2 드라마

연도제목활동
2009트리플주연
2007에어시티주연
1998백야 3.98주연
1995모래시계조연
1994남자는 외로워주연
1994사랑은블루주연
1994느낌주연
1993공룡선생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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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진은 2013년 9월
  • [2] 이것은 프로필상의 생일이며, 진짜 생일은 1972년 12월 15일이다. 학교를 73년생과 같이 들어갔다고 한다. 따라서 족보가 좀 꼬이는데, 절친 정우성과는 동갑내기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정재가 한 살이 많은 것이며 유재석과는 군 동기이면서 동갑이고 빠른 72년생인 장동건이정재는 반말을 쓰는데 또 정우성장동건을 형이라고 부른다. 족보브레이커
  • [3] 예당엔터테인먼트에서 이적
  • [4] 영화 관상의 무대인사 도중 한 여성관객이 "얼굴에 김이 묻었어요."라는 말에 이정재가 "어디요?"라고 되묻자 "잘생김이요."라고 대답한 일화가 있다. 이에 화통하게 웃으며 팬을 치는 이정재의 리액션이 압권. 이로 인해 한 연예가프로의 인터뷰에선 완도의 김CF를 찍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 [5] 사실 당시의 이정재는 나름 경력이 있던 다른 배우들에 비해 연기력이 시망인지라 그냥 말을 안시켰던 것인데, 이게 의외로 대박이 났다.
  • [6] 외가쪽은 지방에서 양조장 몇 개를 경영했고 친가쪽은 의사 집안이였다고 한다
  • [7] 그래서 찍은 영화가 이재수의 난, 순애보, 선물이다
  • [8] 지금도 연기 외에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라고 한다. 직접 설계도를 그리기도 한다고
  • [9] 당시 유재석은 압구정, 이정재는 논현동에 살았는데 둘이 카풀을 했다. 그런데 이정재가 밤늦게까지 술을 마셔서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차를 끌고 나오지 못하는 날이면, 기다리던 유재석이 자신의 차를 가지고 논현동까지 가서 이정재를 데리고 출근을 했다고.
  • [10] 표 구하는 게 전쟁이었다. 전날부터 밤샌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새벽 5시에 나온 사람들도 10등안에 들지 못함. 12시 정도에 온 사람들은 표를 구하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항간에 들리는 바로는 옆건물인 CJ E&M 사옥의 (엠카 보러 온) 줄보다 길었다고 하니... 본격 40대 아이돌 탄생
  • [11] 두 사람은 20년지기 친구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고인의 카드 빚을 이정재가 막아준 적도 있다고.
  • [12] 2000년대 초반까지는 서울관객만 집계
  • [13] 군 홍보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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