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면적 | 100만 2452km² |
| 인구 | 8101만 5887명(2011) |
| 수도 | 카이로 |
| 1인당 GDP | 명목 2,892$, PPP 6,361$(2011) |
| GDP | 명목 2,311억 $(2011) |
| 시간대 | 한국기준 -7시간 |
| 통화 | 이집트 파운드 |
| 공용어 | 아랍어 |
| 종교구성 | 이슬람 90% 이상, 기독교 10% 이하 |
| 국민특징 |
1 개요 ¶

한글 성경에는 '애굽' 혹은 미스라임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성경의 특성상 애굽이라는 이름이 자주 나오는데 이 애굽은 이집트의 중국어 음차 표기 '아이지'의 한자 애급(埃及)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다시 애굽으로 변형된 것. 한국에서는 기독교인 한정으로 이집트보다 애굽이 훨씬 친숙하다.
4 자연 ¶
나일강 하류의 비옥한 농지를 자랑했지만 산업화와 홍수통제로 인해 나일강 연안의 농토는 날이 갈수록 척박해지고 있다. 6~70년대에 아스완 댐 대공사를 통하여 반전을 노렸으나 결국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한 대신 정기적인 홍수라는 이집트의 특징도 사라지고, 비료 샤용량은 늘게 되고...경제 성장에 공헌하긴 했지만 장기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견이 다수이다. 중국의 쓰촨댐 반대론자들도 아스완 댐을 실패의 선례로 든다. 기후변화 탓도 있다. 사하라 사막이 고대로부터 꾸준히 확장해 오면서 이집트도 점점 건조해지고 있는 것. 이미 고대 이집트 문명의 유적 상당수는 사막 가운데에 있다.[2]
5 경제 ¶
현재 먹고 살 만한 물건은 오로지 피라미드를 위시한 관광자원밖에 없다고 보통 알고 있으나, 실제는 다르다. 이집트는 원유매장량이 전세계 0.5% 수준이고, 천연가스 수출만 해도 세계 6위라는 놀라운 자원 부국[3]이기도 하다. 수에즈 운하 통관료도 엄청나다. 2008년 여길 통과한 배만 해도 21,415척이 통과했고, 통과료로 받은 돈만 해도 53억 달러에 이른다. 이는 이집트의 2008년 GDP $4,525억의 1.2%에 해당하는 장난 아닌 액수. 물론 관광 수입도 엄청나서 주로 관광업으로만 알려져는 영향이 크다. 하지만 자국에서 나는 원유를 정제할 기술력이 없고, 원유품질이 좋지않아서 싼 값에 팔아서 휘발유로 비싸게 사오는 통에 연료비가 비싼 편이다.
문화유산의 규모와 수준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만큼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홀로 이집트를 여행한 사람의 경험담에 의하면 이집트의 박물관 등지는 유물을 전시하는게 아니라 그냥 여기저기 뿌려두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그 위에 걸터앉거나 만져보는 게 일상 다반사라 웬 돌덩어리가 덩그러니 놓여 있길래 슬쩍 가봤다가 설명에 3천년 된 유물이라 해서 기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흠좀무.
6 사회 ¶
이슬람 아랍연맹 나라에선 그럭저럭 개방적인 편이다. 사실 예전에는 여자들이 히잡이나 차도르같은 것을 안 입고 다니는 게 더 많았는데, 치한 짓 하는 남성들 덕에 히잡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집트가 워낙 더운 사막성 나라라는 거 생각하면 히잡이나 차도르같은 게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사막성 기후에선 되려 이렇게 살을 가리는 게 많은 옷이 몸 수분을 덜 마르게 하여 더 오래 견딜 수 있으니까. 이집트에 오랫동안 여행하는 사람들은 누가 쓰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히잡을 쓰고 터번을 두른다. '갈라베야'라는 남녀공용의 긴 통짜옷도 굉장히 싸고, 얇고, 바람이 잘 통하기때문에 사막여행에 매우 효율적이다.
6.1 치안 ¶
치안이 허술한가 하면 오히려 처벌이 인정사정 없다. 관광객 안전을 위하여 거리 곳곳에 깔린 제복경찰이나 사복형사들에게 적발되면 사람을 때려서 반죽이거나 불구로 만들려는 걸 생생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이집트 여행자들 가운데 일행이 여자인데 치한짓당해서 소리치고 그랬더니, 갑자기 나타난 제복경찰과 웬 사람들이 그 치한을 잡아 죽도록 패는 걸 목격한 이야기도 찾아볼 수 있다. 처음에는 외국 여성들이 잘한다고 응원하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기절하는 치한을 보고 오히려 경찰을 뜯어말릴 지경이라고. 이집트 경찰의 이런 과도한 정의실천(?)은 상부의 지시도 있거니와[4], 이런 치한은 대부분 가난한 서민들이라 별로 거슬릴게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바라크가 사임한 이후인 2011년부터는 바뀔 가능성도 있다.
6.2 인구 ¶
이집트의 인구밀도 지도.
19세기 말엽 1,000만 수준이던 인구가 이제는 8,000만에 달하며, 이는 이슬람 아랍 동맹에서도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다. 이집트 땅 크기는 남한 면적 10배가 넘으니 큰 걱정은 없어 보이지만, 문제는 이집트 땅 대다수가 무더운 사막이라는 거다. 그 사막성 기후를 뺀 곳을 다 합쳐도 남한 면적보다 더 작은 오스트리아 땅 면적과 비슷하다. 여기에 인구 85% 이상이 모여살고 있다 보니, 온갖 오염과 여러 개발에 얽힌 문제가 많다. 그래서 인구조절하고자 콘돔을 무상으로 주는 정책을 취했다가 되려 엄청난 비난 속에 전면 철폐했다. 한 집에 아이가 4~5명 가진 것도 적다고 여기는 이 나라에서 아이를 1~2명만 가지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반발을 가져올 상황이기도 했다. 다만 2006년 기준으로 합계 출산율이 2.8명대 정도 보면 출산율이 많이 낮아진 편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이웃 이스라엘이 인구가 적어 고민인거와 달리 이집트는 30년도 안가 인구 1억이 넘는 게 당연해보일 정도로 인구가 넘쳐난다.
카이로라든지 대도시들이 죄다 바닷가를 가까이 둔 지역이라 다수 지방 개발이 아주 엉망인 것도 문제. 게다가 대도시들을 가보면 항상 짓다가 만 건물들이 가득하다.건물 지붕에는 항상 벽돌이 가득 쌓여있는 게 자주 보이는데,이게 건물을 다 지으면 세금이 나오기에 일부러 공사를 하는 척하여 저렇게 놔두는 게 많다고 한다. 그리고 지방 사람들이 도저히 살기 어려워서 대도시로 오면서 형성되는 빈민가 문제와 치안 문제도 고민이라고 한다.
6.3 종교 ¶
독재자인 무바라크는 이슬람 강경파들에게 미움을 받던 인물. 이스라엘과 우호 관계를 맺었던 점도 이가 갈릴 법하지만, 1992년 무니라(Mounira)라는 강경파들 소굴을 불바다로 만들어가면서까지 철저하게 강경파들을 뭉갰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지난 1997년 룩소르에서 기어코 강경파들이 외국 관광객들에게 테러를 가해 60명이 넘는 외국관광객이 죽는 비극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 일로 외국 관광객이 여행을 안 오면서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게 되었기에 치안은 더 강화되었고 이후로 외국관광객 테러도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긴 했지만 무바라크가 2011 이집트 혁명으로 쫓겨났으니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하기는 힘들다.
아랍연맹에서 기독교도가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는데, 인구 6~7% 정도 된다. 이는 7천만이 넘는 상당한 인구 대국(이슬람 아랍 동맹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임) 이집트를 생각하면 4~5백만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단성론 교회로 5세기 이후 정통파에서 분리되었다. 이후 이집트의 주요 종교로 자리잡았으나 이슬람의 지배와 십자군을 거치며 이슬람에게 인구를 역전당해 지금에 이른다. 하지만 이집트에서 대놓고 차별과 탄압을 받고 있으며, 갈수록 신도가 줄어들고 있다. 이들 차별에 대하여 이집트에서 이런 농담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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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바라크가 셰이크(이슬람에서 명예직인 성직자 이맘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최고위 성직자, 다만 교황처럼 군림하진 않는다)와 콥트교 교황이 비행기를 같이 탔다.
그런데, 비행기가 그만 고장이 나버렸다. 무바라크가 말하길 "지금 낙하산이 2개 뿐입니다. 아무래도, 두 분 가운데 한 분은 포기하셔야 하는데
문제를 내서 맞추신 분에게 낙하산을 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수락하자, 먼저 셰이크에게 문제를 냈다
"이집트가 승리한 4차 아랍전쟁[5]에서 우리 이집트군 전사자 수는 얼마죠?"
셰이크: "예, 3541명입니다."
무바라크: "좋습니다. 맞았습니다. 그럼 교황에게도 문제를 내겠습니다.
저 전사자들 이름을 모두 말해보세요." 교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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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쓴 우스개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콥트교인들은 제대로 직업도 구하기 어렵고 종종 테러를 당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이래도 2천여년을 묵묵히 견뎌온 콥트교인들은 해외에서 차별많다고 안타까워하는 것도 안 좋게 본다.
지금도 심심찮게 해외 개신교 선교사들이 가지만 이집트에서 콥트 기독교인으로서 개신교로 개종한 경우는 아주 극소수이고, 그들은 콥트 기독교인들에게도 적이 되어 차별받아가면서 미국으로 이민가고 이집트에는 하나도 없다고 한다.
6.4 유목민 문제 ¶
이집트 다른 문제로 알려지지 않은 게 유목민들 처리문제이다. 베두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이집트 정부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마음껏 떠돌면서 살아간다. 이들은 시나이 반도가 이스라엘에게 넘어갈 때도 그랬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달리 건드리지 않고, 되려 이들을 치안 경찰같은 온갖 직장을 주고 시나이 지역에서 일하게 했는데 이들은 되려 이집트보다도 이스라엘에 대하여 우호적일 정도로 이스라엘 지배시절에는 별다른 갈등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시나이 지역을 이집트에게 돌려주면서 이집트는 그런 직장을 죄다 무효화하고 유목까지 막으면서 먹고 살 길이 없어진 이들은 시나이 지역을 중심으로 이집트를 상대로 투쟁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지난 2007년까지 시나이 지역에서 발생한 호텔 폭탄 테러 등 여러 테러의 범인들이 이런 유목민들.
이집트 정부는 병크스럽게도 미국과 이스라엘에게 이들이 알 카에다와 같은 골수 원리주의자들이라 주장했지만, 이들은 알 카에다의 지원도 거부[6]하고 있고, 미국 정부도 이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볼 수 없다며 이집트의 책임을 물었다. 시나이 테러로 많은 관광객들이 희생된 이스라엘 정부는 애꿎은 자신들이 당한다며 이집트를 욕하고 있다. 결국...덕분에 이들을 강압적으로 뭉개던 이집트 정부는 2007년 샤름 엘 세이흐 호텔 동시다발 폭탄 테러로 유태인만 해도 12명이 죽고 50여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스라엘과 미국의 분노어린 항의에 한발 물러나서 테러 용의자라며 붙잡아두던 유목민들 200 여명을 석방시키고 이동 자유를 허용하면서 이들을 시나이 지역 숙박업 직장을 주면서 이들이 행하던 테러를 줄였다.그러나 이번에는 이들을 고용하면서 종전 고용하던 이집트 국적 종사자들이 해고되는 터라, 이들이 분노하는 게 또 문제이다....
게다가, 아직도 유목민들에 대한 차별이 크다. 2008년 엠네스티를 비롯한 국제 인권단체들의 발표에 의하면, 유목민들 가운데 여자와 아이들까지도 수용소에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결국 2009년 시나이 지역 여러 호텔에서 연이은 폭탄 테러 공격이 다시 시작되면서 이집트 측의 고민은 쌓여만 간다.
이집트를 여행한 한국인 여성 여행자의 책에서도 언급된 바 있는데, 시나이 지역의 호텔에서 지내면서 별다른 문제없이 친하게 지낸 종업원들과 사진도 찍었다. 그런데 1년도 안가 그 호텔이 바로 유목민 과격단체 폭탄 공격에 휘말렸다. 깜짝 놀라 국제전화를 해도 그 호텔 측이 받지않아 메일이라도 보냈더니, 한참 시간이 지나 답장메일이 도착했는데 바로 종업원 가운데 한 사람이 보냈다고 한다. 다행히 사진을 찍고 친하게 지내던 종업원들은 하나도 죽지않았으나, 몇몇은 눈 앞에서 폭발에 휘말려 끔살되어 토막난 이스라엘인 여행자의 시체를 보고 충격에 빠져 일을 그만두고 카이로로 돌아갔다면서 자신도 여기서 일하면 언제 죽을지 몰라 불안감에 빠져 그만둘까 고민중이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지금도 여기 치안은 굉장히 불안하다.
2012년 들어서도 여전하여 한국인 및 중국인이 납치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베두인 수감자들 석방을 요구하기 위한 인질인데, 이집트 측도 난감해하는게 위에 나온 것처럼 베두인들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테러리스트로 규정되지 않기 때문에 무턱대고 무력을 쓸 수도 없거니와 안 그래도 무바라크 하야 이후 군부에 대한 반발 시위 및 여러 모로 불안정한 자국 사정에 이런 일이 생겼으니...
종교적으론 그래도 다른 아랍 연맹 나라보단 좀 나은 편이긴 하다. 비록 콥트교에 대한 차별 및 기독교 선교를 금지한다든지 그렇긴 하지만,자국에서 아바야(차도르)를 강요하지 않으며 여성부까지 있는 나라이다.히잡만 해도 각양각색 색깔이나 디자인으로 패션쇼까지 한다.(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아는 화려한 히잡이나 아바야를 금하며 죄다 검은색으로 통일하게 하는 거와 대조적)
게다가, 아바야를 경찰이나 군이나 정부까지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테러나 범죄에 악용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8년 카이로 한 은행에선 아바야를 입은 여성 4명이 들어와 갑자기 총기를 난사하며 11억 이집트파운드나 되는 거액을 훔쳐갔다. 이 와중에 드러난 것은 그 여성들은 실은 남성들이었다는 사실.(목소리로 비로소 알게되었다고;;;;) 물론 아바야로 들어난 건 겨우 눈이기에 CC-TV로 찍힌 이걸로는 범인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지금까지도 범인들은 안 잡혔다. 이 사건이 터지자 은행이라든지 금융 시설에선 이런 범죄를 대단히 우려했다. 그렇다고 아바야를 입은 여성들을 못 들어오게 할 수도 없으니...고민 끝에 경찰은 아바야를 입은 여성은 은행같은 곳에선 얼굴을 드러내게 하는 법안까지 냈는데 이를 두고 수구꼴통적 성직자들이나 여론과 충돌도 벌어졌다...
더불어 아잔 소리를 소음으로 규정하여 음량을 줄이고자 하는 움직임까지 벌였다. 하지만 이 또한 보수파들 반발이 워낙에 거셌기에 결국 무아진들을 목소리 좋은 이들만 간추려 쓰게 하면서 다른 무아진들이 실업자된다고 반발하면서 고민 중이라고 한다. 그만큼 아랍 연맹 소속이면서도 세속적 정책을 꽤 많이 취한다.(위에서도 나온대로 독재자가 종교 광신을 막고자 하는 점도 크지만)
위에 언급된 무지막지한 지역갈등도 문제이다. 고대시대부터 하이집트(카이로를 중심으로한 나일델타지역) 사람들은 상이집트 사람들을 '촌놈'이라고 무시했는데, 현재도 상이집트 사람들은 '싸이디'라고 불리며 촌놈 취급을 받는다(서독인이 동독을 까는 유머를 만들던 것과 비슷한 맥락). 이들을 놀리는 유머도 있는데, 몇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한 싸이디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친구가 물었다.
"무함마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거야?"
그러자 싸이디가 무릎을 탁 치며 말하길..."아! 무함마드였지!!!"[7]
"무함마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거야?"
그러자 싸이디가 무릎을 탁 치며 말하길..."아! 무함마드였지!!!"[7]
2. 한 싸이디가 밤에 나와 밭을 갈고 있었다. 삽을 들고 땅을 내리치는데, 어디선가 "아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싸이디는 어리둥절했지만,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또 한 삽 내리치는 순간 또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싸이디는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했지만 애써 진정하고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자 또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드디어 무서워진 싸이디는 서둘러 집에 돌아갔다.
집에 돌아가서 신발을 벗는 순간...아뿔싸! 싸이디의 오른쪽 발가락 세개가 없어져있는 것이 아닌가!!![8]
7.1 음식 ¶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이집트 요리는 중동지방의 전통요리와 함께 터키 요리의 세련됨이 가미되었으며, 특히 이집트가 자랑하는 빵은 고대시대부터 유명했다. 고대시대부터 이집트인은 '빵을 먹는 사람들'로 불렸으니...추천할만한 음식은 그곳 사투리로 '샤와르마(shawarma)'라고 부르는 케밥과 타메이야(tameiya)이라는 콩가루반죽을 기름에 튀긴것, - 이스라엘에서는 팔라펠(falafel)이라고 부르는 그것! - 코프타(qofta)라는 일종의 미트볼과 중동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사이에서 일명 걸레빵이라고 불리는 아에쉬(aesh) 빵이 추천할만하다. 이집트인들은 양의 뇌를 삶아서 빵에 발라먹는것도 좋아하지만 외국인들은 웬지 손을 대지 않게된다고 한다. 그리고 터키 지배를 받아서인지 이 동네 차이도 설탕물이다(…).더불어 바쓰부사라든지 여기에서 즐겨먹는 과자류는 무척 달기로 알아준다.
더불어 먹을 것이 무척 싸기로 유명한 나라(단, 관광객은 제외...더불어 지역에 따라 역시 차이가 있다.). 2000년 초반, 이집트 여행간 여행가 함승모 씨 책에 의하면 사와라는 작은 도시에서 먹을 것을 사고자 먹을 거 파는 집을 한참 찾다가 겨우 영어로 브래드가 희미하게 쓰여있는 집을 발견했다. 들어가보니 역시 수공업 빵집.
그야말로 우리에겐 웰빙인 빵, 장작을 지펴서 화학조미료나 방부제는 일절 없이 만드는 손맛이 가득한 빵을 굽더란다. 아랍어가 서툰 함씨, 반대로 영어를 거의 못하는 거기 빵집 주인, 그래서 한국 돈으로 당시 320원 정도 돈을 내주자 신문지로 방금 구운 꿀맛같은 빵을 20개가 넘게 싸주더란다! 더불어 주변에 순수 과일만 짜서 생과일 주스 파는 집을 찾아가 온갖 과일을 짠 단 주스를 마시며 빵을 먹었는데 주스값도 100원도 안했단다...이는 독재자인 무바라크가 적어도 굶주리진 말자는 정책으로 밀같은 것을 수입하여 엄청나게 싼 값으로 팔거나 보급하면서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
그야말로 우리에겐 웰빙인 빵, 장작을 지펴서 화학조미료나 방부제는 일절 없이 만드는 손맛이 가득한 빵을 굽더란다. 아랍어가 서툰 함씨, 반대로 영어를 거의 못하는 거기 빵집 주인, 그래서 한국 돈으로 당시 320원 정도 돈을 내주자 신문지로 방금 구운 꿀맛같은 빵을 20개가 넘게 싸주더란다! 더불어 주변에 순수 과일만 짜서 생과일 주스 파는 집을 찾아가 온갖 과일을 짠 단 주스를 마시며 빵을 먹었는데 주스값도 100원도 안했단다...이는 독재자인 무바라크가 적어도 굶주리진 말자는 정책으로 밀같은 것을 수입하여 엄청나게 싼 값으로 팔거나 보급하면서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
그러나 지난 2008년 세계를 강타한 곡물 파동으로 밀값이 오르는 통에 이집트도 빵값이 몇배로 오르게 되었고 이 와중에 여러 물가까지 덩달아 오르면서 민심이 폭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선거에서도 이슬람 과격파 정당들이 대거 약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과거라면 어찌 억지로 해산시켜 막곤 했으나 민심을 눈치보니 그러지도 못한다.게다가 무바라크가 무너졌으니.
7.2 스포츠 ¶
축구가 가장 인기가 있다보니 프로리그인 프리미어 리그가 인기가 많다.월드컵에는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 처음 나와 헝가리에게 4:2로 졌던 게 첫 성적. 그리고 또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56년만에 진출하여 아일랜드,잉글랜드,네덜란드와 경기를 치뤘는데 비록 탈락했어도 2무 1패라는 선전을 벌여 그 해 월드컵 8강에 오른 카메룬과 더불어 아프리카 성적을 증명하여 아프리카 참가국 확대에 기여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선 최다 우승국. 2006년부터 2010년까지 3대회 연속 우승을 하면서 최다 연속 우승 기록을 갈아치웠고 아랍 연합 공화국 시절까지 포함해서 통산 우승 횟수가 무려 7번이나 된다. 허나...201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선 지역예선 4차전까지 치른 결과는 영 좋지 않다. 처음에는 시에라리온을 맞아 1:1로 무재배를 하더니 최약체 니제르를 맞아서는 0:1로 패하고 남아공 원정에서 득점 없는 공방전을 계속하다가 카틀레고 음펠라에게 버저비터 골을 얻어맞아 또 다시 0:1로 패하며 1무 2패에 1득점 3실점으로 지역예선 광탈의 위기에 몰린 것이다. 그리고 남아공을 다시 안방으로 불러들여서는 0:0 무재배를 해 버려서 4경기동안 승점 2점에 그치며 조 1위는 완전히 물건너간 절망적 상황에 빠졌고, 급기야 시에라리온 원정에서 1:2로 패하면서 광탈 확정됐다. 망했어요. 제발 한 번만이라도 이겨보라고 축막 시밤바들아 마지막에 니제르를 홈으로 불러들여 3:0으로 관광을 태웠지만그래봤자 이집트는 이미 광탈 확정이었다. 아프리카의 최강자가 어쩌다가 이 꼴이 됐냐 하지만 남얘기가 아니라는거~
프로리그 인기가 좋은 건 좋은데, 너무 과열되어 문제. 90년대 후반 이집트 카이로에선 집단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원인이 대가족이 한 공동주택에 모여 살았다. 그런데 아내와 남편이 응원하는 축구팀이 서로 다른 탓에 중계방송을 보다가 남편이 아내를 구타했고 이웃에 살던 처남이 누나의 비명을 듣고 와서 매형을 두들겨팼다. 그러자, 근처에서 살던 처가 식구들도 와서 싸움을 벌였고 외가 사람들도 같이 싸움질을 벌여 집단싸움이 되었다는 웃어야할지 말아야할지 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2012년 2월 1일 알 아흘리와 알 바스라가 벌이던 리그 경기에서 관중들이 충돌하여 적어도 79명 정도가 죽고 1000명 이상이 중상을 입는 참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만, 칼을 숨겨가지고 벌어진 일이라는 점,경찰이 개입안하고 멀뚱멀뚱 지켜본점(...)역시 싸움은 직접 봐야 제맛! 으로 일부러 폭동이 되도록 기획된 일이 아닌가하는 음모론까지 나오고 있다.
8 문화유산 ¶
프랑스 루브르나 영국 런던 박물관(또는 대영박물관)이나 미국 메트로폴리탄, 러시아 에르미따주 박물관같은 세계 4대 박물관은 물론이오, 하다못해 터키 톱카프 황궁박물관에까지 이집트 유물들이 엄청나게 많은지라 정작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에는 유물도 별로 없겠지?라고 가볍게 둘러보다가 넘쳐나는 유물에 기겁할 정도라고 한다. 이집트에서 가장 크다는 카이로 박물관조차도 전시할 유물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전시할 곳이 없어 계단이나 여기저기에 대충 두기까지 한단다. 땅만 대충 파도 유적이 넘쳐난다는 말까지 있다.
오죽하면 유럽이나 미국같은 나라 고고학자들이 이렇게 두면 유물들이 훼손될텐데 안타까워하고 프랑스같은 경우엔 이렇게 방치하지 말고 루브르로 가져가서 잘 보관하겠다고 개념말아먹는 헛소리를 하다가 이집트에서 약탈해간 문화재부터 내놓고 그런 소리하라며 까였다. 참으로 얕궂은 게 한 프랑스인이 이집트 문화재 보호에 엄청나게 기여했다. 오귀스트 마리에뜨(Auguste Mariette, 1821~1881)가 바로 그 사람인데, 그도 20대 시절만 해도,이집트 문화재를 발굴해내 프랑스로 가져가던 자였다. 그러나...1858년 이집트로 가서 이집트 최초 근대 박물관을 세우면서 문화재 보호에 총력을 기울이고 문화재 국외 유출을 법으로까지 막게 하는데 했다(당시 사이드 샤에게 며칠을 설득하면서 기어코 법으로 만들게 했단다.). 그걸로만 끝낸 게 아니라, 문화재를 단지 돈만 주면 팔던 이집트 사람들에게 문화재의 보호성을 일깨워주고자 교육시설도 만들고 이집트 사람들에게도 문화재 발굴에 관여시키면서 고고학 기술을 전수하게 한다든지,수많은 공로를 남겼다. 또한,무함마드 알리의 아들이자 당시 이집트를 지배하던 사이드 샤(1822~1863)가 오벨리스크를 외국 왕족에게 선물로 마구 주는 걸 보고 분노하면서 가차없이 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갈하면서 꾸짖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프랑스 황제이던 나폴레옹 3세내외가 이집트로 와서 전시된 이집트 문화재들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황후가 그 가운데 몇몇 문화재에 눈독을 들여 황제에게 프랑스로 가져갈 수 없냐고 했다. 황제도 사이드에게 일단 정중히 부탁했다. 하지만 당시 강대국인 프랑스를 뒤로 한 사실상 협박이었다. 이에 사이드는 문화재 관련 문제는 죄다 마리에뜨에게 맡겨두었다고 자신은 물러났다. 황제는 프랑스인이라면 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줄 알고 이야기를 했지만 마리에뜨는 냉담하게 이미 프랑스 루브르만 가봐도, 몇 만점은 있는데 왜 또 멀쩡히 있는 것을 욕심내냐면서 위대한 프랑스 황제가 좀도둑같은 짓을 저질러야 되겠느냐~ 대놓고 앞에서 깠다. 당연히 황제 내외는 분노하면서 그 자리에서 나가버렸고...얼마 뒤, 그는 프랑스 입국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그는 상관없다면서 신경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조수이던 이븐 하지 라우드(1852~1931, 바로 이 사람이 투탕카멘 유적이 발굴되자 영국으로 빼내려고 하던 걸 필사적으로 막던 당시 이집트 박물관장이다. 마리에뜨가 없었다면 투탕카멘 마스크는 영국에 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가 선생님은 문화재 어느 게 가장 좋으세요? 질문하자, 그는 그 즉시 "몽땅 다! 돌조각 하나라도 다 좋아.함부로 버릴 수 없이 좋지."라고 대답했다. 늘그막에 대체 왜 그리도 이집트 문화재를 아끼느냐? 지인이 질문하자, 그의 대답이 참 개념적인데 "이 위대한 문화재들이 세워질 때, 우리 프랑스인의 조상인 갈리아인들은 그야말로 야만인처럼 숲에서 짐승을 잡아먹으며 작은 마을 단위로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때 야만인이라던 우리 프랑스인이 어느새 으스대면서 이 문화재를 부숴가며 제 나라로 훔쳐가는 주제에 이집트인들을 야만인이라고 비웃는다. 그래서 나만이라도 위대한 문화재들을 그 자리에 놔둬야 한다고 마음먹은 것 뿐이다." 19세기 당시 유럽인들에겐 이런 사고방식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것이었다. 현재 이집트에선 카이로 박물관 입구에 그의 동상을 세워 그를 기리고 있다.그리고 이 카이로 박물관은 시설이 오래되어서 문화재 보관 및 관리가 어렵다는 의견이 나와서 해외 투자로 건물을 더 현대적으로 고치고 더 크게 만드는 기획에 들어가있다. 그만큼 여지껏 이 박물관 시설 상태가 그다지 안 좋았다.
9 외교 관계 ¶
중동, 북아프리카 아랍권, 이슬람권 세계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국간데도 불구하고 주변의 이웃한 나라들이나 몇몇 이슬람 국가들과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 4차례씩이나 중동 전쟁을 벌였던 이스라엘은 말할 것도 없고 종교도 같은 이슬람교를 믿고 언어도 아랍어를 쓰는 리비아, 수단같은 주변 아랍국들과도 상당히 앙숙이다. 리비아와 관계는 고대 이집트 시기때부터 리비아가 이집트에게 일방적으로 침략과 약탈에 시달려온데다 1977년에 국경 지역에서 전쟁까지 벌어졌다. 수단과는 할라이브라는 항구 도시와 그 외곽 지역을 놓고 국경, 영토 분쟁이 진행중이다.
9.2 이스라엘과의 관계 ¶
이스라엘과는 4번이나 전쟁을 벌였을 정도로 앙숙이지만 요즘은 일단 나라끼린 잠잠하게 지내는 중. 그래도 아직까지도 이스라엘에 대한 감정은 그다지 안 좋기에 함부로 이스라엘 이야기 하지않는게 좋다. 여러번에 걸친 전쟁도 그렇고,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인식은 아주 최악이기 때문이다. 시나이 반도같은 지역 피서지로 오는 이스라엘인 관광객을 막가파 짓거리로 이스라엘 혐오증을 부채질한다고 한다.
1980년 6월 12일에는 유적지 치안을 맡던 이집트 사병이 갑자기 이스라엘 관광객들을 마구 쏴 여러 사람을 죽인 적도 있다. 그래서 또 이슬람 과격파 짓인가 말도 많았는데, 법정에서 그 군인은 아버지가 6일 전쟁 당시 사병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했는데, 이제 자기가 군인이 되어 복무하는데 아버질 죽인 나라놈들이 조국에 와서 웃으면서 유적지에 사진찍어대는 꼴을 보니 너무나도 화가 나서 저절로 쏴 죽였고 자신은 이슬람 과격파 어디에도 들어간 적 없다고 증언했다. 조사 끝에 이 군인이 과격파와 접촉한 것도 없음이 드러나서 이집트에선 이 병사를 무기징역으로 복역하게 했다. 이스라엘과 전쟁으로 이가 갈리는 이집트 사람들 마음을 대표한다고 하면서, 이스라엘 극우들이 울컥했지만 그를 사형시키면 이집트 민중들이 더 폭발한다고 이집트에서 하소연했을 정도이다. 그리고 2011년 무바라크가 물러나면서 무슬림 형제단이 12월 하원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이스라엘 정책을 다시 세울 것이라고 뜻을 밝히면서 이스라엘 관계는 비상이 걸렸다. 이제 이스라엘과 친했다가 관계 끊고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던것도 취소한 어느 나라처럼 되는건가?
9.3 다른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
이슬람 아랍 동맹이면서도 다른 아랍 나라들 사이가 안 좋은 점도 있다. 아무래도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맺은 점도 있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요르단도 마찬가지임에도 까인다.이집트에서 아랍어 공부를 한 김동문 목사는 정작 요르단 가서 아랍어를 하자 요르단 사람들이 "아랍어이긴 하지만, 당신 말투를 보니 이집트 쪽 아랍어를 배우셨구려..."라면서 그다지 안 좋은 말투로 대하여 황당했다고 한다. 대놓고 "너 왜 우리 노예들 말 씀?"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그가 요르단에서 오래 살면서 느낀 게 아랍 지역 사람들이 은근히 이집트에 대하여 거부감도 있다고 한다. 아랍 여러 산유국에 운전사 등 고된 일을 하는 이들은 이집트인들이 꽤 많다 보니 아랍에서도 유달리 후진국 신세로 우습게 보인다는 것. 그렇지만 이집트 나라, 정부는 제법 돈이 많긴 하다.(위에 언급한대로 자원도 꽤 있고 관광으로는 이슬람 아랍 동맹에선 가장 유명한 나라) 즉...국민이 직업을 찾고자 다른 산유국으로 가서 일하다 보니 저런 인식이 자리잡힌 모양
이를 이집트에서도 모를 리 없지만. 우물이 급한 게 자기들이라 저런 아랍 동맹국들의 인식에 별다른 논쟁을 벌이지 않지만 그래도 속은 타들어가서인지 이집트에서 만들어지는 연극이나 영화나 드라마로 은근히 아랍 동맹 다른 산유국을 까면서 작은 위안을 삼기도 한다. 90년대에 만들어져서 인기를 모은 연극 "알라가 말하길"에선 다른 아랍 나라들 사람을 맡은 배우들을 등장시켜 풍자한 바 있다. 이를테면 사우디아라비아인으로 나오는 배우는 아주 큰 재앙이 닥쳐도 와하비즘의 형님이라면서, 아무 일도 안하고 잘난척한다든지 나오는 다른 아랍 동맹 사람들은 잘난척하기만 하고 전혀 실속이 없다고 비웃고 풍자한다. 이 연극은 전회매진되면서 이집트 문화부 장관상, 최고 연극대상을 비롯한 상들도 휩쓸었는데 당연히 다른 아랍 나라들에선 엄청나게 비난했다. 물론 이집트 측은 개의치않았으며, 독재자 무바라크도 3번을 연이어 보러갔다며 칭찬했다고. 이집트가 연극, 영화같은 미디어가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아랍국가에 비해 여성의 사회진출이 자유롭기 때문인데 가령 여성이 TV에 출연하는것을 금기시하는 사우디나 걸프만 지역 국가들에서는 여성캐스터나 아나운서로 이집트 여성을 고용한다.
10 여행 정보 ¶
이집트 사람들은 외국인만 보면 잘 대해주기는 커녕 일단 뭐든지 뒤집어 씌우려고 들기 때문에 이집트 여행은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가 처절한 쌈박질의 연속이다(카이로 공항에서 시내를 연결하는 대중교통수단이 택시 외엔 거의 없다시피 하다.). 택시요금은 말할 것도 없으며 시장에서도 외국인이라면 당연히 바가지를 씌우는 등 오죽하면 이집트 여행갔다 온 사람들은 "이놈들은 짱깨보다 더하다"면서 이를 벅벅 갈아댄다고.
단, 여기에서 "아랍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은 예외다. 당장 공항에서 택시요금 교섭할 때도 영어로 하는 경우와 아랍어로 하는 경우는 기본 제시요금이 두배(…) 차이가 난다. 이집트에 여행갈 일이 있거들랑 간단한 아랍어와 아랍숫자(국내에서 쓰는 숫자와 다르다. 가격표를 못 읽으면 바가지 쓰니 주의)를 미리 공부해 가자. 물론 현지인 가이드를 고용하는 방법도 있다. 카이로의 경우 아랍어와 영어 모두 능통한 일일가이드를 하루에 3만원정도면 고용할 수 있다. 이들과 함께 다니면 쇼핑할때나 교통수단을 이용할때 내국인 요금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데다가 바가지도 안 씌우기때문에 오히려 바가지 당했을때 덤탱이쓸 비용보다 훨씬 남는다고도 한다.
하지만 여성 여행객한테는 엄청나게 친절하다고 하는 소문도 있다. 목적은 역시 한건 해보려는 수작인거 같은데[10], 이집트 남성들도 아랍계로 상당히 잘생긴 사람들이 있어 한국 여성 배낭여행객들이 홀린(?)다는 소문이 있다. 일단은 무슬림이 대부분이라 여자를 함부로 건드리면 서로 작살이 나기 때문에 건드려도 뒷탈없는 비무슬림계를 건드린다고. 거기에 결혼이라도 하면 그 순간 집에 감금되고 여권뺏기고 노예생활이 시작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이집트도 여성부와 같은 기관도 있으며, 이런 노예생활에 대하여 국제적 갈등도 크기에 말도 많다. 더불어, 이집트는 남성들이 결혼하기 어려운 곳이다(그러나 역시 이곳도 남자가 돈 많으면 아내를 여럿 둘 수 있다. 참고로 일부다처제를 인정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이걸 하려면 정말이지 돈 엄청 든다.). 지참금 문제라든지 남성들은 여성 친정에게 경제력을 보여야 하기에 그렇다. 그래서 이집트 남성들이 치한짓도 장난아니게 한다.
남자는 더 주의. 중동에서 동아시아계 남자는 털이 별로 없다고 해서 게이들이 좋아한다. 거기에 중동식 인사가 뺨을 스치는거라 이놈이 좀 이상하다 싶으면 거리를 두는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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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준 아랍어 발음으로는 '줌후리얏 미쓰르 알 아라비야'[2] 물론 피라미드는 처음부터 나일강 서쪽 너머의 사막에 세운 것이다.
[3] 2005년 여론 반발을 무시해가면서 이스라엘에 가스 수출 송유관까지 설치했다. 무바라크가 하야하면서 이 송유관도 공격받아 일부가 불타고 있고 덕분에 상당수 가스 수출이 중단되었다. 이스라엘에선 이것 덕에 충공깽이라고...
[4] 관광청 간부들이 치한이 많아서 관광업에 타격이 크다고 하소연하자, 1999년 무바라크가 직접 경찰 및 특수요원들에게 치한을 발견시 죽여도 일절 책임을 묻지않겠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5] 1973년 벌어진 전쟁으로 국제적으로 비겼다고 보는 전쟁이지만 이스라엘군도 엄청나게 사상자가 많아서 그동안 동네북처럼 당하던 이집트는 꽤나 이겼다고 생각할 만하다...비록 이집트군도 나중에 사상자가 장난아니었지만, 당시 이스라엘군 전사자와 피해가 장난아니라서 6일 전쟁의 영웅 모세 다얀이 순식간에 역적이 되어 사임했고, 골다 메이어는 핵까지 이집트에 퍼부을까? 고민했었는데 닉슨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이 핵을 쏘면 소련도 핵을 아랍 연맹에 지원하여 결국 늬들도 다 망한다! 경고하면서 그만두었을 정도이다. 그 정도로 이스라엘이 받은 충격이 엄청났고, 이집트는 이걸 꺼내면서 의기양양해한다. 결과적으로 시나이 반도를 되찾고 미국으로부터도 인정받게 되었으니 전쟁 목적은 전부 달성한 셈이기도 하다.
[6] 이들 저항 단체 지도자가 미국 내셔널 지오그래픽과의 인터뷰에서 우린 오사마 빈 라덴 같은 미친 자들과 다르며, 그들과 절대 손 잡지 않는다. 우린 단지 먹고 살기 위하여 이집트에 저항하는 것 뿐이라는 인터뷰를 했다.
[7] 즉, 자기 이름을 기억 못하고 있던거다(…).
[8] 그러니까 자기가 발가락을 삽으로 찍고 비명을 지른 거였다는 거다(…).
[9] 소문에 의하면 붕대에 기름처리를 한지라 활활 잘 타올랐다고...
[10] 여성 관광객의 90% 이상이 성추행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통계가 있다.
[11] 이집트 국적인지는 불확실하고, 소속 학원인 아틀라스원의 소재지가 이집트이다.
[12] 아포칼립스는 원래 '엔 사바 누아'라는 이집트 인이었다.
[13] 철권6의 신전을 보면 이집트 출신임을 알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