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북아프리카의 국가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
서사하라 수단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군사
4. 자연
5. 경제
6. 사회
6.1. 치안
6.2. 인구
6.3. 종교
6.4. 유목민 문제
7. 지역 갈등
8. 문화
8.1. 음악
8.2. 음식
8.3. 스포츠
8.3.1. 축구
8.3.2. 농구
9. 문화유산
10. 외교 관계
10.1. 한국과의 관계
10.2. 이스라엘과의 관계
10.3. 다른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11. 여행 정보
12. 창작물에서의 이집트
12.1. 이집트 국적, 출신의 캐릭터
13. 참조

1. 개요


면적 100만 2,452km²
관개된 지역 3만 4,220km²[1]
인구 8,101만 5,887명(2011)
수도 카이로
1인당 GDP 명목 2,892$, PPP 6,361$(2011)
GDP 명목 2,311억 $(2011)
시간대 한국기준 -7시간
통화 이집트 파운드
공용어 아랍어
종교구성 이슬람 90% 이상, 그리스도교 10% 이하

Egypt Travel Video Guide

이집트 아랍 공화국
جمهورية مصر العربية(굼후리야트 마스르 알아라비야, 아랍어)[2]
Arab Republic of Egypt (영어)

아프리카 북동쪽에 위치한 거대한 아랍 국가. 중동으로도 분류된다. 수도는 카이로. 공용어는 아랍어이다.[3] 엄청나게 오래된 국가로서 한국 사람들도 위치는 몰라도 이름은 대부분 안다.

한글 성경에는 '애굽' 혹은 '미스라임(מצרים, Mitzráyim)'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성경의 특성상 애굽이라는 이름이 자주 나오는데 이 애굽은 이집트의 중국어 음차 표기 '아이지'의 한자 애급(埃及)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다시 애굽으로 변형된 것. 한국에서는 개신교인 한정으로 이집트보다 애굽이 훨씬 친숙하다.

영어 이집트(Egypt)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이귑토스(Αἴγυπτος)의 라틴어 표기인 '아이깁투스(Aegyptus)'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아랍어로는 미스르(مصر, Miṣr), 이집트 아랍어 발음으로는 마스르(Maṣr)라고 하는데 이는 '두 좁은 땅'이라는 의미와 함께 '대도시'나 '문명'같은 의미도 있다. 고대 이집트 시대의 이집트어로 검은 땅이라는 뜻의 케메트(Kemet)라고 불렀으며, 현대 콥트어로도 '키미(Kīmi)'라고 부른다.

2. 역사

3. 군사

아프리카에서는 꽤나 군사강국이다. 이스라엘과의 계속된 전쟁은 물론, 수단이나 리비아와 국경분쟁으로 국지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중동전쟁 때와는 달리, 이집트군은 매번 리비아군을 박살냈다. 수단과도 국경분쟁으로 사이가 안 좋다.

4. 자연

나일강 하류의 비옥한 농지를 자랑했지만 급격한 산업 성장과 홍수통제로 인해 나일강 연안의 농토는 날이 갈수록 척박해지고 있다. 1960년 부터 1970년까지 아스완 댐 대공사를 통하여 반전을 노렸으나 결국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한 대신 정기적인 홍수라는 이집트의 특징도 사라지고, 비료 샤용량은 늘게 되고…경제 성장에 공헌하긴 했지만 장기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견이 다수이다. 중국의 쓰촨댐 반대론자들도 아스완 댐을 실패의 선례로 든다. 기후변화 탓도 있다. 사하라 사막이 고대로부터 꾸준히 확장해 오면서 이집트도 점점 건조해지고 있는 것. 이미 고대 이집트 문명의 유적 상당수는 사막 가운데에 있다.[4]

5. 경제

6. 사회

이슬람 아랍연맹 나라에선 그럭저럭 개방적인 편이다. 사실 예전에는 여자들이 히잡이나 차도르같은 것을 안 입고 다니는 게 더 많았는데, 치한 짓 하는 남성들 덕에 히잡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집트가 워낙 더운 사막성 나라라는 거 생각하면 히잡이나 차도르같은 게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사막성 기후에선 되려 이렇게 살을 가리는 게 많은 옷이 몸 수분을 덜 마르게 하여 더 오래 견딜 수 있으니까. 이집트에 오랫동안 여행하는 사람들은 누가 쓰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히잡을 쓰고 터번을 두른다. '갈라베야'라는 남녀공용의 긴 통짜옷도 굉장히 싸고, 얇고, 바람이 잘 통하기때문에 사막여행에 매우 효율적이다.

6.1. 치안

치안이 허술한가 하면 오히려 처벌이 인정사정 없다. 관광객 안전을 위하여 거리 곳곳에 깔린 제복경찰이나 사복형사들에게 적발되면 사람을 때려서 반죽이거나 불구로 만들려는 걸 생생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이집트 여행자들 가운데 일행이 여자인데 치한짓당해서 소리치고 그랬더니, 갑자기 나타난 제복경찰과 웬 사람들이 그 치한을 잡아 죽도록 패는 걸 목격한 이야기도 찾아볼 수 있다. 처음에는 외국 여성들이 잘한다고 응원하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기절하는 치한을 보고 오히려 경찰을 뜯어말릴 지경이라고. 이집트 경찰의 이런 과도한 정의실천(?)은 상부의 지시도 있거니와,[5] 이런 치한은 대부분 가난한 서민들이라 별로 거슬릴게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바라크가 사임한 이후인 2011년부터는 바뀔 가능성도 있다.

참고로 이 국가는 전설적인(?) 특수부대777부대의 업적(?) 덕분에 절대로 테러리스트 표적이 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시나이 반도 지역에선 과거 테러로 몇십여명이 그냥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이집트도 테러에 안심할 수 없는 국가이며 시나이 반도쪽은 특히! 조심할 것. 수도 카이로도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소문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닌지 인질극을 벌이지는 않고 있다. 심지어 테러리스트들이 이집트 외교관을 잡았을 때조차 인질로 삼지는 않았다. 그냥 죽였다. 그리고 2014년 2월17일(한국시간) 이스라엘과 국경지역인 타바지역에서 버스 폭탄테러가 일어나 버스에 타고있던 진천 중앙장로교회 성지순례 관광객들 35명(한국인 33명, 이집트인 2명)중 이집트인 운전사 1명과 한국인 3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리고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가 자신들의 소행이라며 "이집트 경제와 관광 산업, 군사령관들을 대상으로 한 공격을 지속하겠다"고도 밝혔다.

테러가 발생한 이유는 종교적 갈등이 아닌 현 임시정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서였으며 모함마드 이브라힘 내무장관을 대상으로 한 차량 폭탄 테러와 파이프라인 폭발 사건도 자신들의 소행이라 주장했다. 이번 테러로 인해 이집트는 여행제한 지역이 되었다. 덕분에 안 그래도 관광업이 타격을 받은 이집트 경제는 더더욱 타격을 받고 있다. 반대로 이웃 모로코는 그 반사로 관광객이 대폭 늘어나 좋아하고 있다

6.2. 인구


이집트의 인구밀도 지도.

19세기 말엽 1,000만 수준이던 인구가 이제는 8,000만에 달하며, 이는 이슬람 아랍 동맹에서도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다. 이집트 땅 크기는 남한 면적 10배가 넘으니 큰 걱정은 없어 보이지만, 문제는 이집트 땅 대다수 (90% 이상)가 무더운 사막이라는 거다. 그 사막성 기후를 뺀 곳은 다 합쳐도 남한 면적보다 훨씬 작아 오스트리아 땅 면적(8만 km²)과 비슷하다. 통계로만 670만명이 모여사는 카이로의 인구밀도는 서울보다도 높다! 근데 실제로는 인구의 1/8(천만 명)이 거기 산다고 한다…orz

이집트 제2의 도시이자 헬레니즘 제국까지 거슬러가는 오랜 고도이며, 북부 최고의 항구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는 약 400만명이 거주한다.

이런 나일강 유역에 인구 85% 이상이 모여살고 있다 보니, 온갖 오염과 여러 개발에 얽힌 문제가 많다. 그래서 인구조절하고자 콘돔을 무상으로 주는 정책을 취했다가 되려 종교적인 엄청난 비난 속에 전면 철폐했다. 하긴 한 집에 아이가 4~5명 가진 것도 적다고 여기는 이 나라에서 아이를 1~2명만 가지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반발을 가져올 상황이기도 했다.[6] 다만 2006년 기준으로 합계 출산율이 2.8명대 정도 보면 출산율이 많이 낮아진 편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이웃 이스라엘이 인구가 적어 고민인거와 달리 이집트는 2020년경이면 인구가 1억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될 정도로 인구가 넘쳐난다. 카타르 등의 부자나라로 인력이 수출되는건 기본이다.

카이로라든지 대도시들이 죄다 바닷가를 가까이 둔 지역이라 다수 지방 개발이 아주 엉망인 것도 문제. 게다가 대도시들을 가보면 항상 짓다가 만 건물들이 가득하다. 무한성? 단순히 계획만의 문제는 아니고, 건물 지붕에는 항상 벽돌이 가득 쌓여있는 게 자주 보이는데, 이게 건물을 다 지으면 세금이 나오기에 일부러 공사를 하는 척하여 저렇게 놔두는 게 많다고 한다. 그리고 지방 사람들이 도저히 살기 어려워서 대도시로 오면서 형성되는 빈민가 문제와 치안 문제도 고민이라고 한다.

6.3. 종교

설마 아직도 이집트 신화를 국교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7]

독재자무바라크는 이슬람 강경파들에게 미움을 받던 인물. 이스라엘과 우호 관계를 맺었던 점도 이가 갈릴 법하지만, 1992년 무니라(Mounira)라는 강경파들 소굴을 불바다로 만들어가면서까지 철저하게 강경파들을 뭉갰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지난 1997년 룩소르에서 기어코 강경파들이 외국 관광객들에게 테러를 가해 60명이 넘는 외국관광객이 죽는 비극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 일로 외국 관광객이 여행을 안 오면서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게 되었기에 치안은 더 강화되었고 이후로 외국관광객 테러도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긴 했지만 무바라크가 2011 이집트 혁명으로 쫓겨났으니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하기는 힘들다.

아랍연맹에서 그리스도인이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는데, 인구 6~7% 정도 된다. 이는 7,000만이 넘는 상당한 인구 대국(이슬람 아랍 동맹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임) 이집트를 생각하면 4~5백만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단성론 교회로 5세기 이후 정통파에서 분리되었다. 이후 이집트의 주요 종교로 자리잡았으나 이슬람의 지배와 십자군을 거치며 이슬람에게 인구를 역전당해 지금에 이른다. 하지만 이집트에서 대놓고 차별과 탄압을 받고 있으며, 갈수록 신도가 줄어들고 있다. 이들 차별에 대하여 이집트에서 이런 농담까지 있다.

무바라크가 셰이크[8]와 콥트교 교황이 비행기를 같이 탔다.
그런데, 비행기가 그만 고장이 나버렸다. 무바라크가 말하길…

"지금 낙하산이 2개 뿐입니다. 아무래도, 두 분 가운데 한 분은 포기하셔야 하는데
문제를 내서 맞추신 분에게 낙하산을 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수락하자, 먼저 셰이크에게 문제를 냈다.

"이집트가 승리한 4차 아랍전쟁[9]에서 우리 이집트군 전사자 수는 얼마죠?"

셰이크: "예, 3,541명입니다."

무바라크: "좋습니다. 맞았습니다. 그럼 교황에게도 문제를 내겠습니다.
저 전사자들 이름을 모두 말해보세요."

교황: "…………………………???"


이런 쓴 우스개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콥트교인들은 제대로 직업도 구하기 어렵고 종종 테러를 당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이래도 2천여년을 묵묵히 견뎌온 콥트교인들은 해외에서 차별많다고 안타까워하는 것도 안 좋게 본다. 물론 콥트교항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다 그런건 아니며, 한때나마 이런 악조건들을 이겨내고 성공한 이집트 내 콥트인 중산층들이 꽤 늘어나기도 했었다.

지금도 심심찮게 여러 해외 기독교 다른 종파 선교사들이 가지만 이집트에서 콥트 기독교인으로서 다른 기독교 종파로 개종한 경우는 아주 극소수이고, 그들은 콥트 기독교인들에게도 적이 되어 차별받아가면서 미국으로 이민가고 이집트에는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래도 다른 아랍 연맹 나라보단 좀 나은 편이긴 하다. 비록 콥트교에 대한 차별 및 다른 기독교 종파 선교를 금지한다든지 그렇긴 하지만, 자국에서 아바야(차도르)를 강요하지 않으며 여성부까지 있는 나라이다. 히잡만 해도 각양각색 색깔이나 디자인으로 패션쇼까지 한다. 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화려한 히잡이나 아바야를 금하며 죄다 검은색으로 통일하게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게다가, 아바야를 경찰이나 군이나 정부까지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테러나 범죄에 악용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8년 카이로의 한 은행에선 아바야를 입은 여성 4명이 들어와 갑자기 총기를 난사하며 11억 이집트파운드나 되는 거액을 훔쳐갔다. 이 와중에 드러난 것은 그 여성들은 실은 남성들이었다는 사실.(목소리로 비로소 알게 되었지만 목소리만으로 범인을 잡을 수 없었다) 물론 아바야로 들어난 건 겨우 눈이기에 CCTV로 찍힌 이걸로는 범인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지금까지도 범인들은 안 잡혔다. 이 사건이 터지자 은행이라든지 금융 시설에선 이런 범죄를 대단히 우려했다. 그렇다고 아바야를 입은 여성들을 못 들어오게 할 수도 없으니…고민 끝에 경찰은 아바야를 입은 여성은 은행같은 곳에선 얼굴을 드러내게 하는 법안까지 냈는데 이를 두고 수구꼴통적 성직자들이나 여론과 충돌도 벌어졌다…

더불어 아잔 소리를 소음으로 규정하여 음량을 줄이고자 하는 움직임까지 벌였다. 하지만 이 또한 보수파들 반발이 워낙에 거셌기에 결국 무아진들을 목소리 좋은 이들만 간추려 쓰게 하면서 다른 무아진들이 실업자된다고 반발하면서 고민 중이라고 한다. 그만큼 아랍 연맹 소속이면서도 세속적 정책을 꽤 많이 취한다.(위에서도 나온대로 독재자가 종교 광신을 막고자 하는 점도 크지만)]

그러나 무바라크 사임 이후 이슬람 형제단과 무르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강경 이슬람 국가로 변모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2013년에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여성이 징역 15년, 그 자식들이 징역 5년을 선고받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 결국 경제적으로 물가는 계속 오르고 종교 극단 정책만 강화되면서 무능한 종교인들이나 정부요직에 앉히는 꼴에 분노한 민중들이 늬들이나 무바라크나 차이가 뭐냐며 2013년 1년여만에 무르시 정권을 뒤엎어버리면서 혼란에 휩싸이고 있다. 근데 무르시 정권을 지지하는 무슬림 형제단에서 무르시 지지 시위를 하고 그걸 또 군부에서 강경진압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이집트는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되었으며, 유럽연합에서 이집트와의 관계를 재검토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6.4. 유목민 문제

이집트 다른 문제로 알려지지 않은 게 유목민들 처리문제이다. 베두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이집트 정부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마음껏 떠돌면서 살아간다. 이들은 시나이 반도가 이스라엘에게 넘어갈 때도 그랬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달리 건드리지 않고, 되려 이들을 치안 경찰같은 온갖 직장을 주고 시나이 지역에서 일하게 했는데 이들은 되려 이집트보다도 이스라엘에 대하여 우호적일 정도로 이스라엘 지배시절에는 별다른 갈등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시나이 지역을 이집트에게 돌려주면서 이집트는 그런 직장을 죄다 무효화하고 유목까지 막으면서 먹고 살 길이 없어진 이들은 시나이 지역을 중심으로 이집트를 상대로 투쟁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지난 2007년까지 시나이 지역에서 발생한 호텔 폭탄 테러 등 여러 테러의 범인들이 이런 유목민들.

이집트 정부는 병크스럽게도 미국과 이스라엘에게 이들이 알 카에다와 같은 골수 원리주의자들이라 주장했지만, 이들은 알 카에다의 지원도 거부[10]하고 있고, 미국 정부도 이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볼 수 없다며 이집트의 책임을 물었다. 시나이 테러로 많은 관광객들이 희생된 이스라엘 정부는 애꿎은 자신들이 당한다며 이집트를 욕하고 있다. 결국…덕분에 이들을 강압적으로 뭉개던 이집트 정부는 2007년 샤름 엘 세이흐 호텔 동시다발 폭탄 테러로 유태인만 해도 12명이 죽고 50여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스라엘과 미국의 분노어린 항의에 한발 물러나서 테러 용의자라며 붙잡아두던 유목민들 200 여명을 석방시키고 이동 자유를 허용하면서 이들을 시나이 지역 숙박업 직장을 주면서 이들이 행하던 테러를 줄였다.그러나 이번에는 이들을 고용하면서 종전 고용하던 이집트 국적 종사자들이 해고되는 터라, 이들이 분노하는 게 또 문제이다…

게다가, 아직도 유목민들에 대한 차별이 크다. 2008년 엠네스티를 비롯한 국제 인권단체들의 발표에 의하면, 유목민들 가운데 여자와 아이들까지도 수용소에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결국 2009년 시나이 지역 여러 호텔에서 연이은 폭탄 테러 공격이 다시 시작되면서 이집트 측의 고민은 쌓여만 간다.

이집트를 여행한 한국인 여성 여행자의 책에서도 언급된 바 있는데, 시나이 지역의 호텔에서 지내면서 별다른 문제없이 친하게 지낸 종업원들과 사진도 찍었다. 그런데 1년도 안가 그 호텔이 바로 유목민 과격단체 폭탄 공격에 휘말렸다. 깜짝 놀라 국제전화를 해도 그 호텔 측이 받지않아 메일이라도 보냈더니, 한참 시간이 지나 답장메일이 도착했는데 바로 종업원 가운데 한 사람이 보냈다고 한다. 다행히 사진을 찍고 친하게 지내던 종업원들은 하나도 죽지 않았으나, 몇몇은 눈 앞에서 폭발에 휘말려 끔살되어 토막난 이스라엘인 여행자의 시체를 보고 충격에 빠져 일을 그만두고 카이로로 돌아갔다면서 자신도 여기서 일하면 언제 죽을지 몰라 불안감에 빠져 그만둘까 고민중이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지금도 여기 치안은 굉장히 불안하다.

2012년 들어서도 여전하여 한국인 및 중국인이 납치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베두인 수감자들 석방을 요구하기 위한 인질인데, 이집트 측도 난감해하는 게 위에 나온 것처럼 베두인들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테러리스트로 규정되지 않기 때문에 무턱대고 무력을 쓸 수도 없거니와 안 그래도 무바라크 하야 이후 군부에 대한 반발 시위 및 여러 모로 불안정한 자국 사정에 이런 일이 생겼으니…

7. 지역 갈등

위에 언급된 무지막지한 지역갈등도 문제이다. 고대시대부터 하이집트(카이로를 중심으로한 나일델타지역) 사람들은 상이집트 사람들을 '촌놈'이라고 무시했는데, 현재도 상이집트 사람들은 '싸이디(صعيدى)'라고 불리며 촌놈 취급을 받는다.(서독인이 동독을 까는 유머를 만들던 것과 비슷한 맥락) 이들을 놀리는 유머도 있는데, 몇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한 싸이디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친구가 물었다.
"무함마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거야?"
그러자 싸이디가 무릎을 탁 치며 말하길…"아! 무함마드였지!!!"[11]

2. 한 싸이디가 밤에 나와 밭을 갈고 있었다. 삽을 들고 땅을 내리치는데, 어디선가 "아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싸이디는 어리둥절했지만,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또 한 삽 내리치는 순간 또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싸이디는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했지만 애써 진정하고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자 또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드디어 무서워진 싸이디는 서둘러 집에 돌아갔다.

집에 돌아가서 신발을 벗는 순간…아뿔싸! 싸이디의 오른쪽 발가락 세개가 없어져있는 것이 아닌가!!! [12]

8. 문화

8.1. 음악


흔히 이집트 하면 떠올리는 음악의 스테레오 타입.[13]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류의 음악은 아랍풍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지 실제 이집트 음악이 어땠는지는 자신있게 말할수 없다. 기껏해야 당시 사용했다는 악기를 이용해 유추할 뿐. 실제로 어느 음반에서는 고대 이집트의 음악을 재현했는데 우리가 아는 그런 흥겨운 리듬이 아니라 조선시대 궁중 음악같은 구수한(...) 리듬이 흘러나왔다!

유튜브에 Ancient Egyptian Music을 검색하면 이집트 현지인이 작곡한 것으로 추정되는 재현곡들이 나온다. 근데 어째 댓글란을 보면 키배의 장이 펼쳐지고 있다(...).[14]

8.2. 음식


이집트 요리는 중동-북아프리카 지방의 전통 요리와 함께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를 받는 과정에서 터키 요리 식의 요리법이 가미되었으며, 특히 이집트가 자랑하는 은 나일강의 축복을 받아 밀 곡창지대로 손꼽히던 고대부터 유명했다. 헤로도토스가 이집트인들에 대하여 언급할 때 빠지지 않은 게 바로 맥주를 먹는 점이었을 정도다.

추천할 만한 음식은 그곳 사투리로 '샤와르마(shawarma)'[15]라고 부르는 케밥과 타메이야(tameiya)이라는 콩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긴 것, - 이스라엘에서는 팔라펠(falafel)이라고 부르는 그것! - 코프타(qofta)라는 일종의 미트볼과 중동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사이에서 일명 걸레빵이라고 불리는 아에쉬(aesh) 빵이 추천할만하다. 이집트인들은 양의 뇌를 삶아서 빵에 발라먹는것도 좋아하지만 외국인들은 왠지 손을 대지 않게된다고 한다. 그리고 터키 지배를 받아서인지 이 동네 차이도 설탕물이다.(…) 더불어 바쓰부사라든지 여기에서 즐겨먹는 과자류는 무척 달기로 알아준다.

더불어 맛과는 무관하게 식료품 가격이 무척 싸기로 유명한 나라…지만 관광객은 제외(…). 더불어 지역에 따라 역시 차이가 있다.

2000년 초반 이집트를 여행한 여행가 함승모 씨 책에 의하면 사와라는 작은 도시에서 먹을 것을 사고자 먹을 거 파는 집을 한참 찾다가 겨우 영어로 브래드가 희미하게 쓰여있는 집을 발견했다. 들어가보니 역시 수공업 빵집. 그야말로 현대인에게는 웰빙인 빵, 장작을 지펴서 화학조미료나 방부제는 일절 없이 만드는 손맛이 가득한 빵을 굽더란다. 아랍어가 서툰 함씨, 반대로 영어를 거의 못하는 거기 빵집 주인, 그래서 한국 돈으로 당시 320원 정도 돈을 내주자 신문지로 방금 구운 꿀맛같은 빵을 20개가 넘게 싸주더란다! 더불어 주변에 순수 과일만 짜서 생과일 주스 파는 집을 찾아가 온갖 과일을 짠 단 주스를 마시며 빵을 먹었는데 주스값도 100원도 안했단다…이는 독재자인 무바라크가 적어도 굶주리진 말자는 정책으로 밀같은 것을 수입하여 엄청나게 싼 값으로 팔거나 보급하면서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

그러나 지난 2008년 세계를 강타한 곡물 파동으로 밀값이 오르는 통에 이집트도 빵값이 몇배로 오르게 되었고 이 와중에 여러 물가까지 덩달아 오르면서 민심이 폭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선거에서도 이슬람 과격파 정당들이 대거 약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과거라면 어찌 억지로 해산시켜 막곤 했으나 민심을 눈치보니 그러지도 못한다. 게다가 무바라크도 민주화 혁명으로 무너졌기 때문에 불안한 정국에 따라 매우 유동적으로 변해버렸다.

8.3. 스포츠

8.3.1. 축구

아프리카 나라답게 축구가 가장 인기가 있다. 국가대표팀에 관한 내용은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을 참고바람.

아프리카 클럽 축구에서도 최강급이라 1964년 처음 시작하여 2012년까지 모두 48번 치뤄진 CAF(아프리카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CAF Champions League)에서 이집트 구단이 4강에 진출한 게 30번이나 되어 아프리카 최대 성적이다. 결승진출 18번 및 우승 13번 또한 아프리카 최다 기록(2위인 콩고 민주 공화국이 우승 5번이다)이며 2012년 대회 결승은 알 아흘리가 4년만에 결승에 진출해 2011년 대회를 우승한 튀니지의 에스페랑스와 격돌하여 2-1로 이겨 우승하면서 2012년 FIFA 클럽 월드컵에 진출했다. 2013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올랜도 파이러츠 F.C.를 1승 1무로 제치고 우승하며 2013년 클럽 월드컵에 참가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2014년 아프리카 챔피언스리그 대회에서 이집트 알 아흘리는 예상을 뒤엎고 알 아흘리 SC(리비아)에게 0-1,2-3. 2경기를 다 지면서 토너먼트조차 올라가지 못했다. 그나마 이집트 자말렉이 토너먼트에 올라가 2009년 클럽 월드컵 준우승을 거두며 화제를 모은 콩고 TP 마젬베와 같은 조에서 겨루게 되었다.

이렇게 프로리그인 프리미어리그 인기가 좋은 건 좋은데, 너무 과열되어 문제. 90년대 후반 이집트 카이로에선 집단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원인이 대가족이 한 공동주택에 모여 살았다. 그런데 아내와 남편이 응원하는 축구팀이 서로 다른 탓에 중계방송을 보다가 남편이 아내를 구타했고 이웃에 살던 처남이 누나의 비명을 듣고 와서 매형을 두들겨팼다. 그러자, 근처에서 살던 처가 식구들도 와서 싸움을 벌였고 외가 사람들도 같이 싸움질을 벌여 집단싸움이 되었다는 웃어야할지 말아야할지 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2012년 2월 1일 알 아흘리와 알 바스라가 벌이던 리그 경기에서 관중들이 충돌하여 적어도 79명 정도가 죽고 1,000명 이상이 중상을 입는[16] 참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만, 칼을 숨겨가지고 벌어진 일이라는 점, 경찰이 개입안하고 멀뚱멀뚱 지켜본 점(…)(역시 싸움은 직접 봐야 제맛!)으로 일부러 자연스럽게 폭동이 되도록 기획된 일이 아닌가하는 음모론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후반부에는 경찰들이 최루탄을 난사하며 진압.

8.3.2. 농구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프리카 농구에서도 강호이다. 과거에는 아프리카에 농구대회가 없던 시절, 아예 유로바스켓에 자주 나갔다(1937,1947,1949,1953년 대회 본선 진출).동네북처럼 당하기도 했지만 1949년 제 5회 유로바스켓을 개최했고 이 대회에서 무패를 거두며 전승으로 우승까지 차지했다. 이는 역대 유로바스켓 대회 유일무이한 비유럽 우승기록이다.

그리고 아프리카 나라들이 차례로 독립하자 1962년 아프리카 선수권 대회(Africa Championship)를 첫 개최하여 우승했고 세네갈과 더불어 이 대회 우승을 연이어 차지하며 아프리카 최강급으로 면모를 과시했다. 그러나,1990년대 와서 앙골라가 아프리카 최강이 되면서 1983년 자국대회 우승(공교롭게도 결승에서 앙골라를 제치고 우승)이후로 30년째 우승을 못하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13 코트디부아르 대회에서도 결승에서 앙골라에게 패해 30년만의 우승에 실패했다.

9. 문화유산

프랑스 루브르나 영국 런던 박물관(또는 대영박물관)이나 미국 메트로폴리탄, 러시아 에르미따주 박물관같은 세계 4대 박물관은 물론이오, 하다못해 터키 톱카프 황궁박물관에까지 이집트 유물들이 엄청나게 많은지라 정작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에는 유물도 별로 없겠지?'라고 가볍게 둘러보다가 넘쳐나는 유물에 기겁할 정도라고 한다. 이집트에서 가장 크다는 카이로 박물관조차도 전시할 유물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전시할 곳이 없어 계단이나 여기저기에 대충 두기까지 한단다. 땅만 대충 파도 유적이 넘쳐난다는 말까지 있다.

오죽하면 유럽이나 미국같은 나라 고고학자들이 이렇게 두면 유물들이 훼손될텐데 안타까워하고 프랑스같은 경우엔 이렇게 방치하지 말고 루브르로 가져가서 잘 보관하겠다고 개념말아먹는 헛소리를 하다가 이집트에서 약탈해간 문화재부터 내놓고 그런 소리하라며 까였다. 그런데 참으로 얄궂은 게, 한 양심있는 프랑스인이 이집트 문화재 보호에 엄청나게 기여했다는 것. 프랑수아 오귀스트 페르디낭 마리에트(François Auguste Ferdinand Mariette, 1821~1881)가 바로 그 사람인데, 그도 20대 시절만 해도, 이집트 문화재를 파내 프랑스로 가져가던 자였다. 그러나…1858년 이집트로 가서 이집트 최초 근대 박물관을 세우면서 개심해 문화재 보호에 총력을 기울이고 문화재 국외 유출을 법으로까지 막게 하는데 했다.(당시 사이드 샤에게 며칠을 설득하면서 기어코 법으로 만들게 했단다.) 그걸로만 끝낸 게 아니라, 문화재를 단지 돈만 주면 팔던 이집트 사람들에게 문화재의 보호성을 일깨워주고자 교육시설도 만들고 이집트 사람들에게도 문화재 발굴에 관여시키면서 고고학 기술을 전수하게 한다든지,수많은 공로를 남겼다. 또한, 무함마드 알리의 아들이자 당시 이집트 왕국을 통치하던 무함마드 사이드 파샤(1822~1863)가 오벨리스크를 외국 왕족에게 선물로 마구 주는 걸 보고 분노하면서 가차없이 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갈하면서 꾸짖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프랑스 황제이던 나폴레옹 3세 내외가 이집트로 와서 전시된 이집트 문화재들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황후가 그 가운데 몇몇 문화재에 눈독을 들여 황제에게 프랑스로 가져갈 수 없냐고 했다. 황제도 사이드에게 일단 정중히 부탁했다. 하지만 당시 강대국인 프랑스를 뒤로 한 사실상 협박이었다. 이에 사이드는 문화재 관련 문제는 죄다 마리에뜨에게 맡겨두었다고 자신은 물러났다. 황제는 프랑스인이라면 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줄 알고 이야기를 했지만 마리에트는 냉담하게 "이미 프랑스 루브르에도 그런 것들이 몇만점은 있는데 왜 또 멀쩡히 있는 것을 욕심내냐면서 위대한 프랑스 황제가 좀도둑같은 짓을 저질러야 되겠는가"라면서 대놓고 앞에서 깠다. 당연히 황제 내외는 분노하면서 그 자리에서 나가버렸고...얼마 뒤, 그는 프랑스 입국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그는 상관없다면서 신경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조수이던 이븐 하지 라우드(1852~1931, 바로 이 사람이 투탕카멘 유적이 발굴되자 영국으로 빼내려고 하던 걸 필사적으로 막던 당시 이집트 박물관장이다. 마리에트가 없었다면 투탕카멘 마스크는 영국에 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가 '선생님은 문화재 중 어느 게 가장 좋으세요?'라고 질문하자, 그는 그 즉시 "몽땅 다! 돌조각 하나라도 다 좋아. 함부로 버릴 수 없이 좋지."라고 대답했다. 늘그막에 '대체 왜 그리도 이집트 문화재를 아끼느냐?'며 지인이 질문하자, 그의 대답이 참 개념적인데 "이 위대한 문화재들이 세워질 때, 우리 프랑스인의 조상인 갈리아인들은 그야말로 야만인처럼 숲에서 짐승을 잡아먹으며 작은 마을 단위로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때 야만인이라던 우리 프랑스인이 어느새 으스대면서 이 문화재를 부숴가며 제 나라로 훔쳐가는 주제에 이집트인들을 야만인이라고 비웃는다. 그래서 나만이라도 위대한 문화재들을 그 자리에 놔둬야 한다고 마음먹은 것 뿐이다." 찌질한 선민사상과 제국주의 사상에 젖어있던 유럽인들에게 이런 사고방식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것이었다. 현재 이집트에선 카이로 박물관 입구에 그의 동상을 세워 그를 기리고 있다. 그리고 이 카이로 박물관은 시설이 오래되어서 문화재 보관 및 관리가 어렵다는 의견이 나와서 해외 투자로 건물을 더 현대적으로 고치고 더 크게 만드는 기획에 들어가있다. 그만큼 여태껏 이 박물관 시설 상태가 그다지 안 좋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박물관이라도 미라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하는데 이집트에서는 왕과 왕비 뿐만 아니라 평민들도 시신을 미라로 만들었고 심지어 문자 그대로 개나 소나 다 미이라로 만들었기 때문에 동물 미이라까지 존재해 미이라가 엄청나게 많이 있다고 한다. 문화재에 대한 관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과거에는 이걸 연료(…)로 쓰기도 했고,[17] 심지어 사람이 먹기도 했었다!

이집트 벽화는 미술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고대 이집트 벽화를 보면 얼굴은 반드시 측면을 보고 있고, 눈은 정면에서 본 모습이며, 상반신 몸은 반드시 앞을 보아 양 어깨가 대칭에 가깝게 보이도록 그리며, 하반신은 또 측면으로 그려 두었다. 이는 당시 미술에서 사람에 대한 시각을 알려주는데,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의 양팔, 양다리 전부 그려넣어야 '완성된 사람의 그림'으로 인식했다. 사실주의 그림에서 측면으로 선 사람의 한쪽 팔이 몸에 가리어 안보인다면, 고대 이집트인은 그를 한쪽 팔만 있는 사람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이집트 벽화 인물들은 전부 애꾸

10. 외교 관계

중동, 북아프리카 아랍권, 이슬람권 세계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국간데도 불구하고 주변의 이웃한 나라들이나 몇몇 이슬람 국가들과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 4차례씩이나 중동 전쟁을 벌였던 이스라엘은 말할 것도 없고 종교도 같은 이슬람교를 믿고 언어도 아랍어를 쓰는 리비아, 수단같은 주변 아랍국들과도 상당히 앙숙이다. 리비아와 관계는 고대 이집트 시기때부터 리비아가 이집트에게 일방적으로 침략과 약탈에 시달려온데다 1977년에 국경 지역에서 전쟁까지 벌어졌다. 수단과는 할라이브라는 항구 도시와 그 외곽 지역을 놓고 국경, 영토 분쟁이 진행중이다. 1902년 국경선이 조정되면서 할라이브가 수단으로 편입되었기 때문. 반면, 비르 타윌은 이집트로 편입되었으나 이집트도 수단도 영유권을 포기하여 사실상 무주지다.

거기다 같은 수니파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하고도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며 이란과는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축출된 팔레비 국왕의 입국을 받아줬다는 이유로 양국 수교가 단절된 상태다.

10.1. 한국과의 관계

이집트는 대한민국과는 1961년에 영사급으로 수교하였고 북한과는 1963년 대사급으로 수교하였는데 중동전쟁 당시 북한이 군사적 지원을 함에 따라 북한과의 관계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 대통령이었던 무바라크는 "김일성이 죽을 때까지는 (대한민국과) 수교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하였는데 정말로 1994년 김일성이 죽고난 이듬해인 1995년에 가서야 대한민국과 대사급 관계로 격상하였다. 1999년에 당시 대통령 무바라크가 방한했던 적이 있다.

10.2. 이스라엘과의 관계

전쟁을 네번이나 치룬 앙숙이지만 일단 수교는 되어있는 둘뿐인 아랍국가이다. 자세한 것은 이집트-이스라엘 관계 항목 참조.

10.3. 다른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이슬람 아랍 동맹이면서도 다른 아랍 나라들 사이가 안 좋은 점도 있다. 아무래도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맺은 점도 있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요르단도 마찬가지임에도 까인다.이집트에서 아랍어 공부를 한 김동문 목사는 정작 요르단 가서 아랍어를 하자 요르단 사람들이 "아랍어이긴 하지만, 당신 말투를 보니 이집트 쪽 아랍어를 배우셨구려…"라면서 그다지 안 좋은 말투로 대하여 황당했다고 한다. 대놓고 "너 왜 우리 노예들 말 씀?"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그가 요르단에서 오래 살면서 느낀 게 아랍 지역 사람들이 은근히 이집트에 대하여 거부감도 있다고 한다. 아랍 여러 산유국에 운전사 등 고된 일을 하는 이들은 이집트인들이 꽤 많다 보니 아랍에서도 유달리 후진국 신세로 우습게 보인다는 것. 그렇지만 이집트 나라, 정부는 제법 돈이 많긴 하다.(위에 언급한대로 자원도 꽤 있고 관광으로는 이슬람 아랍 동맹에선 가장 유명한 나라) 즉…국민이 직업을 찾고자 다른 산유국으로 가서 일하다 보니 저런 인식이 자리잡힌 모양.

이를 이집트에서도 모를 리 없지만. 우물이 급한 게 자기들이라 저런 아랍 동맹국들의 인식에 별다른 논쟁을 벌이지 않지만 그래도 속은 타들어가서인지 이집트에서 만들어지는 연극이나 영화나 드라마로 은근히 아랍 동맹 다른 산유국을 까면서 작은 위안을 삼기도 한다. 1990년대에 만들어져서 인기를 모은 연극 "알라가 말하길"에선 다른 아랍 나라들 사람을 맡은 배우들을 등장시켜 풍자한 바 있다. 이를테면 사우디아라비아인으로 나오는 배우는 아주 큰 재앙이 닥쳐도 와하비즘의 형님이라면서, 아무 일도 안하고 잘난 척한다든지 나오는 다른 아랍 동맹 사람들은 잘난 척하기만 하고 전혀 실속이 없다고 비웃고 풍자한다. 이 연극은 전회매진되면서 이집트 문화부 장관상, 최고 연극대상을 비롯한 상들도 휩쓸었는데 당연히 다른 아랍 나라들에선 엄청나게 비난했다. 물론 이집트 측은 개의치 않았으며, 독재자 무바라크도 3번을 연이어 보러갔다며 칭찬했다고. 이집트가 연극, 영화같은 미디어가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아랍국가에 비해 여성의 사회진출이 자유롭기 때문인데 가령 여성이 TV에 출연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사우디걸프 지역 국가들에서는 여성캐스터나 아나운서로 이집트 여성을 고용한다.

11. 여행 정보

만약 고대 이집트의 이미지만 알고 여행을 간다면 실망할 준비를 하라. 고대 이집트 문화하고 아랍 이슬람 문화를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딱히 실망하지 않겠지만

(관광지의) 이집트 사람들은 외국인만 보면 일단 뭐든지 뒤집어 씌우려고 들기 때문에(삐끼들이 장난 아니게 많다!) 이집트 여행은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가 처절한 쌈박질(흥정)의 연속이다. (카이로 공항에서 시내를 연결하는 대중교통수단이 택시 외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애초에 터미널 셔틀버스밖에 다른 수단이 없을 정도로 시가지와 멀다.) 택시요금은 말할 것도 없으며 시장에서도 외국인이라면 당연히 바가지를 씌우는 등 오죽하면 이집트 여행갔다 온 사람들은 "이놈들은 짱깨보다 더하다"면서 이를 벅벅 갈아댄다고. 물론 복작복작한 지역 기준이고, 후르가다 사막 같은 사람이 적은 관광지는 순박한 사람들이 많다.

단, 여기에서 "아랍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은 예외다. 당장 공항에서 택시요금 교섭할 때도 영어로 하는 경우와 아랍어로 하는 경우는 기본 제시요금이 두배(…) 차이가 난다. 이집트에 여행갈 일이 있거들랑 간단한 아랍어와 아랍숫자(국내에서 쓰는 숫자와 다르다. 가격표를 못 읽으면 바가지 쓰니 주의)를 미리 공부해 가자. 물론 현지인 가이드를 고용하는 방법도 있다. 카이로의 경우 아랍어와 영어 모두 능통한 일일가이드를 하루에 3만원정도면 고용할 수 있다. 이들과 함께 다니면 쇼핑할때나 교통수단을 이용할때 내국인 요금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데다가 바가지도 안 씌우기때문에 오히려 바가지 당했을때 덤탱이 쓸 비용보다 훨씬 남는다고도 한다. 가이드 고용도 돈이 아깝다면(이런 자칭 가이드들도 사기치는 자들이 적지 않다!) 멘탈 깨질 각오를 하고 지루한 흥정을 시작하자. 당신이 제안한 걸 씹으면 그냥 뒤돌아서라. 적절한 가격이 아니라면 붙잡을 것이다. 어차피 당신이 (甲)이다. 당신과 흥정하는 사람 외에도 쓸 사람은 많다. 새벽이나 한밤중같이 사람이 적은 시간대가 아니라면 무조건 가격을 후려쳐라. 그냥 현지인이 제시한 가격의 절반~25%까지 후려치면 된다. 정말로! 대기업들이 협력업체들한테 하는 후려치기를 생각하면 된다.

남녀를 안가리고 삐끼나 노점상, 심지어 당신을 어떻게 해보려고(…) 달라붙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특히 여자들은 더욱. 이를 막으려면 가족이든 누구든 남자를 옆에 껴라. 팔짱을 끼거나 그냥 옆에 서서 빤히 보고 있기만 해도 왠만하면 접근하지 않는다.

이집트의 엄청나게 많은 유적들을 목적으로 대부분 올 텐데, 국제학생증과 교사증을 쓰면 못해도 40%는 할인이 된다! 학생증은 만 30세, 교사증은 40세까지 이용이 가능하다. 믿기지 않겠지만 비행기표를 제외하면(이것도 몇달 전 예약에 학생할인 적용하면 100만원 이하까지 가능하다)가장 큰 비용이 유적과 박물관 입장료다! 단적인 예로 기자 피라미드를 가게 되면 성인 1인당 80 파운드다. 마이크로 버스가 1파운드, 콜라 2리터짜리가 6파운드 하는걸 생각하면 실로 어마어마하게 비싼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과 나이가 된다면 무조건 학생증을 만들어 제시하자. 최대 십만원대까지 아낄 수 있다!그 외 숙박을 하겠다면 가능하다면 한인 숙소, 못하겠다면 호텔(그것도 체인점같이 운영이 건실한)을 쓰자. 일단 안전하며, 혹시나 버스 등지에서 분실물이 생겼다면 전화 한 방에 해결할 수도 있다! 좀 비싸겠지만 짐 잃어버려서 국제미아나 빈털털이가 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그리고 버스를 타게 된다면 당황하지 마라. 크게 고속버스와 마이크로 버스가 있는데, 고속버스는 터미널에서 시작해 중간중간 탈 수 있다. 워낙 외국인 여행객들이 많아 제대로 된 터미널이라면(카이로, 룩소르 등등) 접수원이 영어가 가능하다. 꼬치꼬치 물어보고 티켓을 사도록 하자. 참고로 등급이 있는데 카이로-바하라야 기준 낮은 등급은 40파운드인데 밑에 구멍이 뚫려 먼지가 들어올 정도로 낡은 물건이다(…). 마이크로 버스는 일종의 마을버스로, 한 도시에서만 운영한다.그레이스같은 9~14인승 승합차를 주로 이용하는데, 보통 1인당 1~2파운드의 요금을 낸다. 목적지를 물어보고 타면 되며 싸지만 단점이라면 대부분 낡아서 에어컨 그런 거 없으며 문을 열고 타는 등 개조된 상태가 많아 다소 위험할 수 있으니 꼭 좌석에 붙어서 타야 한다.

또 지하철 항목에도 있지만 아프리카 최초의 지하철 운영국가이다! 카이로에 있으며 1,2호선 완공에 3호선은 부분개통 상태이며, 1인당 1파운드 정도, 환승요금은 없다. 정치불안 때문인지 운영상태가 좋지는 않아서 들어가는 건 멀쩡하지만 나가는 건 고장나서 사람이 받는다. 안습(2014년 1월). 사람이 장난 아니게 많은 소위 가축수송이니 짐 바리바리 싸들고 탈 생각은 버릴 것. 정말 사람을 밀어가면서 탄다. 게다가 에어컨 작동도 별 소용 없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카이로 주요 관광지(기자 피라미드, 박물관 등등)을 갈 데가 아니라면 굳이 쓸 필요는 없다. 단, 여성전용 칸이 두 칸 정도 중앙에 있으니 여성들만 같이 있다면 쓰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근데 역과 전철 내 지하철 지도가 제대로 갱신되지 않았으니 멍때리면 목적지를 지나칠 확률이 대단히 높으므로 창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타자. 안내방송 그런 거 없다.

그래도 정 모르고 불안하다면 현지 한인들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이런 물가에는 꽤 정확하시다. 친구가 이 물가라고 말하면서 흥정하면 대개는 데꿀멍. 한인들이 운영하는 숙소는 대개 와이파이가 되기도 한다! 야! 신난다~ 단 한인 숙소를 쓰는건 말이 통하고 짐 보관의 안전성 때문이지 가격은 그리 싸지만은 않으므로 주의. 참고로 후르가다 같은 몇몇 도시는 오직 한두 개의 한국인 집이 있어서 "코리안 하우스"라고 하면 대부분 알아듣는다.또한 한국어를 알아듣고 몇몇은 심지어 할 줄 아는(!) 현지인 가이드도 있는데, 이집트 여행 관련 커뮤니티에 가면 바로 알아낼 수 있으므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현지인 관광업 종사자 중에서는 드물게(…) 성실하고 신뢰성이 높으므로 참고.

또 하나 유의할 점으로는, 현지에서 많이 팔리는 생수 브랜드 중에 "바라카"라는 것이 있는데, 대부분의 한국인의 체질에 맞지 않아 설사하기 십상이다. 최대한 피하고, 정 마셔야 한다면 끓이는 것이 좋다. 그리고, 팁을 요구할 때가 많다! 택시흥정 등에서 요금 더 받겠다는 흔한 핑계가 바로 팁은 포함 안했다고 발뺌하는 거다. 모든 요금과 팁 포함했다고 미리 못박자. 그렇게 해놓고 뒤돌아서면 궁시렁대도 그냥 가긴 갈 것이다.

대충 요약해보자면
  • 여성끼리 다니지 말고 남성과 함께 다닐 것
  • 흥정은 기본사양. 전통시장, 택시 등등. 낯뜨거운 수준으로 후려쳐라. 못해도 절반으로 후려쳐라. 튕기면 그냥 돌아서라. 적정가격 아니면 붙잡으면서 사정할 것이다. 원하는 가격에 합의했다고 해도 안심은 금물. 말바꾸기가 일상이다(…). 예를 들어 30파운드로 합의했는데 막상 택시서 내리고 가려고 하니 1인당이었다고 한다든가(…). 이럴땐 굴복할 때까지 버티든가, 아니면 일단 합의한 금액을 주고 뒤도 보지 말고 가던 길 가라. 현지 교포의 증언에 의하면 이집트인 대다수는 뒤끝은 없기 때문에 괜찮단다. 실제 하도 달라붙어서 다음날 떠난다고 해서 겨우 떨쳐낸 현지인 택시운전사가 다음날에도 마주쳤지만 그냥 웃으면서 계속 호객한 실화가 있다.
  • 30세 미만이라면 국제학생증을 쓰자. 일반 성인요금의 반값으로 상당수 유적지와 박물관을 입장할 수 있다. 40세 미만이라면 국제교사증을 쓰면 된다.
  • 지하철은 빠르지만 가축수송이 단점. 그래도 굉장히 싸다.
  • 삐끼들이 우글거린다! 무조건 씹어라! 도착만 하면 붙기 마련이다. 가장 좋은 건 목적지를 향해 고개도 돌리지 말고 걸으면 알아서 떨어져 나간다. 근데 당신(의 일행)만 있다면. 포기하면 편해
  • 시중 물가를 모르겠다면 현지 한인들에게 물어보자. 특히 교통비는 꽤 정확하다.
  • 환전소는 거의 전국에 있으며 크게 차이나지 않으므로 조금씩 필요할 때마다 바꾸면 된다.

12. 창작물에서의 이집트

이집트 신화가 유명한데, 고대문명의 신비성 때문인지 각종 매체에 등장하며 그럴 때마다 역사가 제멋대로 왜곡된다.

유희왕에서는 멀쩡히 밝혀진 18대 파라오가 이름 없는 파라오가 되고 일곱 가지 비보로 석판에서 마물을 소환해 외침을 막는 나라로(…) 변질되었고, 죠죠의 기묘한 모험 제3부 스타더스트 크루세이더즈쿠죠 죠타로 일행이 부활한 DIO가 살고 있는 이집트로 여행을 떠나는 내용이다. 영화 미이라 시리즈에서는 별의 별 이상한 고대인과 고대생물이 살고 있는 정신 나간 곳으로 등장한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의 개근 문명 중 하나이다.

시리어스 샘에서는 첫 작품이 고대 이집트였고, 3에서는 현대 이집트로 전체 줄거리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실제로도 유적지였던곳이 등장하지만 1에서는 대략적인 외관과 이름만 빌렸다. 3은 처음에는 카이로 시가지에서 시작하다가 유적지로 가는 구성이다. 3은 현지 취재를 한 등 어느정도 고증을 반영한듯한 모습도 있다.
대한민국의 워터파크오션월드는 고대 이집트가 테마다.

12.1. 이집트 국적, 출신의 캐릭터

----
  • [1] 해안가에 맞닿은 남한 면적 1/3 정도 이 땅을 빼고 나머진 다 사막이다(...)
  • [2] 표준 아랍어 발음으로는 '줌후리야트 미스르 알아라비야'
  • [3] 이집트에서 사용되는 아랍어는 중동쪽과는 다른 아랍어 사투리이지만, 중동에서 이집트 방송이 자주 방영되어서 많이 통용되고 있다. 주요 외국어는 영어, 프랑스어이다.
  • [4] 물론 피라미드는 처음부터 나일강 서쪽 너머의 사막에 세운 것이다.
  • [5] 관광청 간부들이 치한이 많아서 관광업에 타격이 크다고 하소연하자, 1999년 무바라크가 직접 경찰 및 특수요원들에게 「치한을 발견시 죽여도 일절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 [6] 무하마드가 "인구가 줄어들면 신국(神國)이 쇠퇴한다."고 아이를 많이 낳을 걸 장려했다.
  • [7] 그치만... 믿을 사람들은 다 믿는다. 왕가의 계곡으로 유명한 도굴꾼 라술 형제는 3000년간 도굴꾼을 가업으로 삼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그들이 살았던 쿠르나라는 마을은 이슬람교는 형식이고 실질적으로는 고대 이집트의 신앙을 지켜나가고 있었다고 한다(...).
  • [8] 이슬람에서 명예직인 성직자 이맘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최고위 성직자, 다만 교황처럼 군림하진 않는다.
  • [9] 1973년 벌어진 전쟁으로 국제적으로 비겼다고 보는 전쟁이지만 이스라엘군도 엄청나게 사상자가 많아서 그동안 동네북처럼 당하던 이집트는 꽤나 이겼다고 생각할 만하다…비록 이집트군도 나중에 사상자가 장난아니었지만, 당시 이스라엘군 전사자와 피해가 장난아니라서 6일 전쟁의 영웅 모세 다얀이 순식간에 역적이 되어 사임했고, 골다 메이어는 핵까지 이집트에 퍼부을까? 고민했었는데 닉슨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이 핵을 쏘면 소련도 핵을 아랍 연맹에 지원하여 결국 늬들도 다 망한다! 경고하면서 그만두었을 정도이다. 그 정도로 이스라엘이 받은 충격이 엄청났고, 이집트는 이걸 꺼내면서 의기양양해한다. 결과적으로 시나이 반도를 되찾고 미국으로부터도 인정받게 되었으니 전쟁 목적은 전부 달성한 셈이기도 하다.
  • [10] 이들 저항 단체 지도자가 미국 내셔널 지오그래픽과의 인터뷰에서 우린 오사마 빈 라덴 같은 미친 자들과 다르며, 그들과 절대 손 잡지 않는다. 우린 단지 먹고 살기 위하여 이집트에 저항하는 것 뿐이라는 인터뷰를 했다.
  • [11] 즉, 자기 이름을 기억 못하고 있던거다.(…)
  • [12] 그러니까 자기가 발가락을 삽으로 찍고 비명을 지른거였다.(…)
  • [13] 알 사람들은 알겠지만 소닉 & 너클즈의 스테이지 3(소닉 3까지 합할 경우 스테이지 9)인 샌도폴리스 act 2의 BGM이다. act 1의 BGM은 어느 정도 경쾌한 음악이었고 맵 자체가 밝은 톤이었기 때문에 그냥 고대 이집트풍 스테이지 정도로 각인되었지만 act 2에서는 갑자기 BGM이 기괴하게 변하면서(...) 유희왕에서나 나올법한 으스스한 연출때문에 1990년대 ~ 2000년대 초반 당시 이걸 플레이하던 초딩들은 절대 혼자서 하지 않고 형제나 친구들을 불러모아서 플레이 했다고... 게다가 이 맵자체도 게임 내에서도 유난히 난이도가 높아서 안 좋은 의미로 기억에 남겨졌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대부분 여기까지 못 오고 카니발 나이트 존에서 막혔겠지
  • [14] 대충 유럽계 유저들이 '너네나라(이집트)는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아랍, 터키, 프랑스, 영국한테 지배당하고 살았다매?'라고 어그로를 끌고 이집트인들이 '우리 조상 욕하지 마라 ㅇㅇ' 하는 식. 유럽문화의 근원을 찾아올라가보면 태반이 이집트에서 나왔다는 걸 생각해보면 여기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를 떠올려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 [15] 영화 어벤져스에 나오는 그 샤와르마가 맞다.
  • [16] 사상자 절반은 압사에서 생겨났다.
  • [17] 소문에 의하면 붕대에 기름처리를 한지라 활활 잘 타올랐다고…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Supported by Veda

엔하위키 미러는 엔하위키의 컨텐츠를 빠르고 안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사이트입니다. (자세히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