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따라 초기의 직도 형태부터 후기형인 카타나까지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일본에서 직접 제작한 일본도의 경우 가격이 천문학적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으나,
국보와 같은 극소수를 제외하면 그렇지 않다. 보통의 미술품과 같이 작가의 명성, 제작기법 등에 따라 평가된다.
《
디스커버리》에 의하면 '베는 것'에 한정해서 모든 인병기 중 가장 고성능을 발휘하는
무기로 묘사되며 사람과 같은 밀도를 가진 젤라틴을 베는 실험에서 오직 일본도만이 일도양단에 성공했다고 나왔으나, 사실 그 정도의 절단 성능은 일본도 외의 타 문화의 검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도로 총알을 가르는 실험의 경우는 식칼로도 성공 가능하다. 얼마 전에는 면도칼로 성공하기도 했다. 총신을 가르는 실험 역시 실패했다(실험 자체는 성공했지만 기계를 써서 성공했다. 인간의 신체로는 무리라고 한다). 다른 검으로 실패한 것은 검의 문제가 아니라 사용자의 기량 문제다.
중국 배경인
무협소설에서도 종종 언급되기도 한다. 보통 중국 배경의 무협물에서는
도는 두껍고
검은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도는 검처럼 가느다른 도로 찌르기에도 큰 문제가 없어 검과 도의 장점을 고루 가진 무기로 평가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근데
묘족에게도 비슷한 모양의 도가 있었기 때문에 일종의 과장일 것이라 추정된다).
명나라식 전용 검술도 존재하고 있는데 1621년 모원외가 15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2천여 종의 병법서를 참고하여 정리한 병법서 《무비지》에서 '일본음류도법'과 '왜구도법'이 기록되어 있다.《무비지》가 청나라 때 금서가 된 까닭에 청나라식 일본도 검술이 존재하는지는 불명이다.
조선에서는 왜검(倭劍)이나 왜도(倭刀)라고 불렀다.
조선 정조 시대에 편찬된 《
무예도보통지》의 한 챕터로 왜검(일본도)을 사용하는 검법에 대한 설명 또한 전해진다.
본래
임진왜란 이전에는 조선은 일본의 왜검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왜구들이 왜검을 들고 돌격해와도 원거리에서 활로 요격해버렸기 때문.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에는 일본군이 조총으로 조선군의 대열을 흐트려놓은 다음 일본도를 휘두르며 돌격해왔는데, 이러한 백병전 상황에서 일본도는 큰 위력을 발휘했다.
명나라의 경우에는 본래 방패를 들고 한 손에 든 칼로(당연히 양손으로 쥐는 일본도 보다 짧다) 싸우는 전술을 주로 사용했으나,
척계광이 백병전에서의 일본도의 장점을 인정하고 이를 이길 만한 긴 칼을 고안하였다. 양손으로 쥐는 긴 칼, 즉 쌍수장검이라 부르는 이 칼은 방패를 들고 다니기 곤란한 조총수들에게 주어 평소엔 조총을 사격하다가 백병전 상황이 되면 이 칼을 휘두르도록 했다.
임진왜란 이후엔 조선과 명의 장수들도 일본도를 모으는데 혈안이 되었을 정도라 할 정도로 당시로선 백병전에서 강력한 무기였다.
항왜들의 총포술과 함께 일본도를 이용한 검술도 높게 평가되어 조선군에 채용된 바가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군기시(軍器寺)에 간직한 왜도(倭刀)는 아무리 하품(下品)이더라도 몹시 날카로우니 진실로 군국(軍國)의 중한 기구인데, 가볍게 화매(和賣)하는 것은 미편(未便)합니다.”란 기록이 있다.
하지만 곧 왜검(일본도)를 사용한 전술이나 검법은 명과 조선 모두에서 사라졌는데, 아무래도 종전에 써오던 무기와 다르다는 문제점 때문이었다. 특히 조선은 전통적으로 활과 같은 원거리 무기를 중시하고, 칼은 일종의 호신용 개념으로 짧은 것을 선호하였기 때문에 길고 활을 쏠 때 걸리적 거리는 칼은(지휘용 칼이 아닌 이상)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같은 도 계열로서 리치도 길도 파괴력도 더 강한
월도가 있었기 때문에.
사실 일본도의 제조법은 질 나쁜 철(=옥강)을 써야했던 일본의 검 장인들이 최대한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였다. 그러나 우수한 강재를 얼마든지 쓸 수 있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전통적인 일본도(미술도검)의 제조법은 바뀌지 않았으며, 다만 수련용 도검의 경우 현대적인 방법으로 제작한다.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조한 검을 높이 치지만, 그것은 단지
전통공예품으로서의 평가일뿐 실용(?)무기로서 전통 도검 제작술이 더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강도와 내구성 면에서는 뒤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 전통 제작기법으로 만든 일본도가 현대식 기술로 만든 서양검에게 패배....
이처럼 여러 전문가의 손길이 닿아야 완성될 수 있는 물건이지만,
양판소에서는
현대인 천재론에 의거하여
이고깽들이 뚝딱뚝딱하면 만들어진다.
드워프라면 "쇠를 접어서 두들기고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줘." 라고 하면 그냥 만들어준다 (거기에 광선검 마냥 아무거나 쑥쑥 벤다).
서양 판타지를 배경으로 한 매체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레벨이 오를수록 가드나 검신에 화려한 무늬가 붙는 검 계열 무기와 달리 일본도는 레벨이 높은 무기여도 장식이 안붙는 경우가 많다.
세피로스의
마사무네나
버질의
염마도가 대표적.
현대에 와선 특유의 간지와 일본 만화의 영향으로 동양 판타지의 마스코트 격이 되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메리 수 테스트를 보면 캐릭터가 메리 수인가 아닌가를 평가하는 기준중에 일본도 사용 여부가 있다(...)
혹자는
다마스커스강으로
일본도를 만들면 세계최강이라고는 하는데, 다마스커스강은 오래전에 고갈되었고, 애초에 일본도로 다마스커스칼을 만들면
인장력이 너무 강해져서 옆으로 휘어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 일본도 역시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도 초반의 접는 단계를 많이 줄이는 상황.
이베이 등지에서 종종 패턴웰디드 다마스커스로 만들어진 일본도가 보이긴 하나, 상당수가 품질이 많이 떨어지는 인도산이나, 중국산인지라, 너무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도 검결이 꽤 보기좋게 잡혀서 관상용으론 괞찮다.
대체로 중국산은 현대 야금술로 만들어진 강철로 고전적인 방식을 이용해 만들어지며, 미국, 유럽이나 인도산은 단조하지 않고 프레스 가공으로 찍어낸다. 양자 모두 일본도 매니아들에게 까이고는 있지만, 일본 역시 옥강은 19세기 중엽에 이미 고갈상태여서 현대 일본도는 장인이 만든다고 해도 예술품, 소장품로서의 의미만이 남은 상태이다. 위의 사진에서 부러져버리는 일본도는 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 참고로 무기용으로 쓴다면 코테츠의 디자인을 카피해서 프레스 가공으로 만든게 일본이나 중국에서 만든 전통 제법의 카타나보다 훨씬 튼튼하게 나온다.
일본 문화가 알려지면서 일본에 신비감을 품던 자들이 일본도를 수집하는 일이 잦았으며, 2차 세계대전에 패한 일본인들이 미군에게 무기를 압수당할 때, 일본도는 전통공예품임을 강조하며 무기 수거를 피해갔다.
독일에는 세이버와 달리 양손으로 잡을 만큼 길고 일본도와 흡사하게 생긴 검이 있다고 한다. (그로스메서)
다른 여러 나라의 곡도가 기병이 말에서 적을 벨 때 칼날이 밖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휨을 크게 했던 것처럼 일본도도 처음엔 노다치같이 기마병이 차는 길고 크게 휘어진 모양이었으나 기병이 쇠퇴하고 보병용인 타치가 생기면서 직도에 가까운 형태가 되었던 것이다.
즉, 일본도는 외형적으로는 곡도라 불릴 수 있지만 그 휘어진 정도나 지상전용이라는 점은 곡도라기보단 직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