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치

일본의 정치, 사법 등을 설명하는 문서.

Contents

1 정체(政體)
2 삼권
2.1 의회(입법)
2.1.1 정당
2.2 행정
2.2.1 지방자치
2.2.2 관료
2.2.3 일본의 행정조직
2.3 사법
2.3.1 형사법
2.3.2 민사법
3 관련 항목

1 정체(政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한다.

일본국헌법 제1조
정치적으로는 입헌군주제로, 국가 원수는 덴노(일왕/천황). 전통적으로 국민의 대다수가 정치에 대해 반쯤은 무관심하고, 또 반쯤은 무지하기 때문에 때때로 제대로된 민주주의 국가라고 볼 수 없다. 일례로 일본 공산당이 활발했을 시절에 덴노의 퍼레이드 앞에서 뭔가 행동을 일으키려고 했는데, 막상 신성불가침의 상징인 덴노를 그들이 눈으로 포착했을 때 조건반사적으로 "덴노 헤이카 반자이!(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는 바람에 자괴감을 느끼며 해산해버렸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 물론 입헌군주제인지라 실질적인 권력 행사는 내각과 그 수장인 총리가 담당한다.

흔히 입헌군주제 국가로 여겨지고 있으나 일본은 입헌군주국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일본 헌법이 명시적으로 덴노국가 원수로 명시하고 있지 않고, 덴노의 위치를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는 모호한 것으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역대 일본 권력자들은 덴노를 상징으로 내세우며 흑막 정치를 했는데, 그건 상황(은퇴한 천황)이 천황을 조종하거나 그후 막부정치가 나타나서 쇼군이 천황을 앞세워 정치를 했다. 그뒤에는 GHQ가 나타났다. 그덕인지 흑막 정치가 유명하다.

일본 정부는 덴노를 형식적으로나마 국가원수로 대우하며 별도의 전담 부서인 궁내청을 두고 있으나 삼권분립의 원칙은 엄격히 지키고 있다.

2 삼권

2.1 의회(입법)

정부 공식 서열상으로는 참의원이 중의원에 앞서지만 중의원이 조약승인권, 총리선출권, 내각해산권 등을 가지고 예산안 등 기타 사안에서도 헌법상 중의원의 의견이 우선하게 되어있으므로 일반적인 양원제 국가(예외는 미국 정도)와 마찬가지로 하원 격의 중의원이 더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4년에 한번씩(또는 의회 해산시) 행해지는 중의원 총선거가 사실상 일본의 정치 구도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선진적인 학자들 사이에서 참의원 폐지에 대한 주장이 많이 나오고 있다. 양원제가 전세계적으로 쇠퇴 추세인데다 일반적인 양원제 국가와 달리 일본은 연방제도 아니고, 평화헌법 제정시 참의원 선거도 국민의 투표에 의해 결정되도록 바뀌어서 영국처럼 귀족원 성격의 상원을 유지해야 될 필요도 없으며, 사실상 실권이 하원에 있어서 참의원의 존재 가치가 별로 없는 만큼 잉여롭게 세금 깎아먹는 사람들 수를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대로 의원직이 높은 분들의 세습 대상이라 필사적으로 반대하는데다가 일반 국민들도 다른 세상 이야기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반향은 적은 편이다.

행정권은 중의원(형식적으로는 참의원 포함)에서 의결하고 덴노(천황)가 임명하는 내각총리대신과 그가 지명하는(단, 임명권자는 덴노) 국무대신으로 구성되는 내각에 부여되어 있다.

중의원 회의록 중의원들의 회의록이 데이터베이스화되어있는데, 한국인들의 이름(한자)도 찾아내보면 그동안 몰랐던 정치 비사들이 나오기때문에 정말 요긴하게 쓰인다.

2.1.1 정당

일본은 최근까지도 자민당이 내각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 자민당이 메이지유신 세력으로부터 내려오는 집단이다. 즉 자민당이 100년 넘게 일본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파벌 정치, 세습 정치 등의 부작용이 곪아 터져 정치인 집안만 정치하는, 정치인과 일반인 계층이 유리되는 일이 발생했다. 2009년에 와서 민주당이 정권교체를 이룩한 것은 꽤 역사적인 일이다.

한때는 이런 정치적 침체를 타파한답시고 1969년을 기점으로 일본 각 대학의 운동권이 들고 일어나 전공투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 아니면 도인 일본인의 기질 특성상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병크가 발생해 오히려 국민을 더욱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심지어 전공투에 가담했던 이들조차 지금에 이르러서는 당시의 행동을 철 없는 짓으로 치부할 정도.

자민당은 90년대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면서 점차 지지를 잃어갔다. 심지어 93년 비자민당 출신들이 연립정당을 세우면서 자민당의 과반의석을 일시적으로 저지, 잠시 야당이 되기도 했었다. 이후 만년 적대당이던 일본 사회당과의 연정까지 하면서 계속 혼미한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일본 사회당내 분열을 촉발시켰고, 55년 체제의 한 축으로서 제1야당이던 사회당은 완전히 몰락한다.)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이 신자유주의 "개혁"을 바탕으로 2000년대의 장기간 동안 민심을 얻었지만 그가 물러난 이후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오덕 총리아소 타로가 각각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임하면서 자민당의 신뢰는 바닥까지 떨어진다.

마침내 2009년 8월 30일 실시된 총선에서는 54년만에 민주당(일본)자민당을 뒤집으면서 "55년 체제"를 완전히 종식시켰고, 정권이 교체되었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역학 구도에 상당한 변화를 예고 중이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2010년 6월 2일 결국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이 총사퇴하면서 다시 제2의 자민당이 되어가고 있다. 안습. 간 나오토오자와 이치로의 파벌 갈등도 자민당 시절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최근 근황을 보면 기존의 탈아입구(脫亞入歐)[1] 기조에서 탈미입아(脫米入亞, 미국에서 벗어나 아시아로)쪽으로 기울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도 주변국을 고려하는 등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주당도 독도 등 영토관련 분쟁에서는 종전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다고 할 수 있겠다.

2.2 행정

2.2.1 지방자치

일본은 지방자치제도가 한국에 비해 역사도 길고 내용도 본격적이어서 전국이 47개의 도도부현으로 나뉘어 지방 분권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다. 각 도도부현시정촌(시쵸손)으로 구성되며 두 단계의 지방자치단체가 지방의 행정을 담당한다. 모든 토도후켄과 시정촌에는 의사기관인 의회와 집행기관인 수장(도·도·부·현 지사와 시·정·촌 장)이 있으며, 지방의회 의원과 지자체의 수장은 각각 주민의 선거로 선출하며 지방자치단체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각각의 조례를 지정할 수 있는데, 지방자치단체의 위상이 큰 만큼 이러한 자치 입법은 한국과 비교해서 일반 주민들의 생활에 상당히 큰 영향[2]을 미치고 있다.

2.2.2 관료

정권과 관료 계층[3]이 이래저래 탈이 많아서 그런지 막강한 경제력에 비해 외교적 협상력은 한참 떨어지는 수준. 다만 세계 2위 경제대국이라는 점과 비교할 때 그렇다는 것일 뿐 엄청난 경제력에서 나오는 ODA(정부개발원조)를 통해 국제사회 특히 개도국을 상대로는 무시할 수 없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 서방 선진 6개국 정상회담(현재의 G8)의 창립멤버로 2010 현재까지 총 5번 의장국[4]을 맡았을 정도. 거기다 2차 대전 이후의 해외이민장려정책으로 이주한 교포들의 경제력을 통해 남미 국가들의 내정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페루에서 일본계 이민 2세대인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도 일본의 경제원조의 덕이었다.

2.2.3 일본의 행정조직

일본은 2001년 1월 50년만에 중앙정부조직을 대폭 개편했다. 종래 1부 22성청에서 1부 12성청으로 개편된 일본의 새 중앙정부조직은 관료 주도의 정책 결정을 '정치 주도'로 바꾸고 행정의 투명화와 정부기관의 주도권 다툼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거의 매 정권마다 부처이름과 조직도를 갈아치운 한국에 비하면 상당히 조직이 안 바뀌는 편이다. 이 때문에 일본 정치는 관료의 비중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 정계, 특히 외무성을 가리키는 말로 카스미가세키가 있는데, 한국의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처럼 행정기관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2.3 사법

2.3.1 형사법

일본의 검찰, 경찰 사법체계는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관료적인 막장 수사로 유명하다. 한국어에서는 잘 안 쓰이는 말인 원죄(寃罪)[5]라는 단어가 일상적 시사 용어로 자리잡을 정도이다. 소위 일본 국철 3대 미스테리 사건에서도 이런 경향이 드러난다. 2009년에는 스가야 토시카즈라는 노인이 원죄를 뒤집어썼는데, 범인이 아니라는 수많은 증거들이 있었음에도 경찰이 이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아 아동 강간 살인죄, 일명 아시카가 사건의 용의자로 17년 동안 감옥에 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자세한 사건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17년 전 재판이 얼마나 날림이었냐면 2심에서 현장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의 DNA와 자신의 DNA가 일치 하지 않음 이라는 증거를 가져갔으나 증거 효력 불충분이라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고, 그 재판의 막장성은 피해자의 가족들조차 그 노인이 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17년 다 살고 나온 뒤에 비로소 무고함이 밝혀지자 당시 판결낸 대법관이라는 이의 인터뷰가 예술. 대법관 왈, "억울하게 살다 온건 유감이나 원칙에 의해 하위 재판소에서 올라오는 증거를 우선적으로 채택해야 하므로[6] 전혀 잘못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즉 상소를 해도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지방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나면 대법원까지 올라가도 그대로 유죄라는 얘기. 진성 막장인 점은 상소 과정에서 피고인이 자신은 무고하다 라는 증거를 몇 박스를 들고 가더라도 지방법원에서 판결한 자료가 무조건 우선시 된다. 즉 상소시에 자료 추가를 아무리 해봤자 1심에서 사용한 자료 이외에는 경시한다. , 즉 2심 3심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7]하물며 재심이 인용될 확률이란...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또 한가지 쇼킹한 자료는 일본 검사의 기소후 유죄판결의 비율인데, 무려 99.9%. 이는 일본 검사의 입장에서 누군가를 기소했는데 무죄로 판명나면 커리어에 상당한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자면 유죄라고 생각되는 사람만 핀포인트로 잡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 그런게 아니고 실상은 현시창. 경찰이 잡은 용의자가 범인임이 확실하더라도 티끌만한 오류라도 있으면 절대 기소되지 않으며, 반대로 한번 기소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유죄다. 흠좀무. 일본 검찰은 절대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보면 역전재판의 설정은 일본에서라면 의외로 사실적인 이야기(...)

두 사실을 조합해서 알 수 있는 결론은 바로 일본에서는 누명을 쓰면 벗겨 줄 구석이 어디에도 없다. 참여재판제 도입이 이런 경직된 관습에 새 바람을 불어 넣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역효과나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일본 만화를 보면 이러한 배심제에 대한 고찰을 다룬 만화도 두어 개 나오고 있다.

때문에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과 동격에 해당)에서 1, 2심의 판결을 뒤집는 판결이 나면 사건이 아무리 소소한 것이라도 매스컴에서 다루어진다. 최고재판소의 존재가치가 의심가는 부분.[8]

이 막장인 사법 제도를 다룬 영화로 '셀 위 댄스'의 수오 마사유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등이 있고 주인공이 조그마한 욕심을 부리다 살인죄 같은 큰 죄를 뒤집어 쓰게되는 내용의 소설, 영화 등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일본이 로스쿨 제도를 도입한 것도 동경대 법대-사법시험으로 이어지는 사법 엘리트주의를 깨뜨려 보고자 하는 의도가 상당수 들어있었으나 알다시피 결과는 망했어요. 각 대학의 법학부-사시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고 로스쿨 출신들은 사시 출신 법조인들에게 무시당하며 사법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게다가 변호사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변호사 시험 합격률을 낮추는 바람에 수험생들이 로스쿨을 외면하는 경향도 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이 그 뒤를 똑같이 밟을 준비를 하고 있다.

2.3.2 민사법

일반적으로 민사법에 관한 한 일본 민사법체계는 세계적 초일류급에는 못 미치더라도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가장 선진적인 법체계와 논리성을 자랑한다. 독일 민법을 계수하여 자국의 사정에 알맞게 수십년간 로컬라이징한 민사법 체계는 합리적이고 강력한 체계정합성을 자랑한다. 특히 금융이나 부동산에 관한 소송이나 회사법, 상법 분야에서는 세계 법학을 선도할 만한 역량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일본이 국제법학 무대에서 갖는 잠재력과 영위하는 지위는 실로 막강하다. 설렁설렁한 한국의 민사법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만 민사소송법을 비롯한 절차법 체계는 제정 이후로 거의 변화가 없어 비판을 받다가 한국의 02년 개정법을 벤치마킹해 05년부터 개정 작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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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가자'는 뜻으로 일본의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가 주창한 운동.
[2] 이는 도쿄도 같은 초대형 지자체에서는 더욱 심하다. 만화 등 에서 'XX금지 조례 발령' 이라는 대사가 자주 나오는 것도 이 때문
[3] 일본에서 외교관의 이미지는 '세금 낭비가 주특기인 엘리트', '해외 순방하는 정부 요인 접대가 본업' 등으로 한국과 별로 다를게 없다
[4] 일본에서 4번째로 열린 2000년 오키나와 정상회담을 기념해 2천엔 지폐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5] '무고한 사람이 죄를 뒤집어 쓴다'라는 뜻, 일본식으로 읽으면 엔자이(えんざい)
[6] 여기서 눈치챈 사람이 있을 것이다. 대체 3심제왜 있는 제도더라?
[7] 단, 미국만 봐도 첫 재판에서 나온 판결이 주 항소법원, 주 대법원 또는 연방 (대)법원에서 뒤집어질 확률은 3%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같이 판결이 1심, 2심때마다 춤추는 것도 꽤 유별나다 할 수 있다(사실 한국에서도 그런 경우는 드물다. 언론에서 소개하는 센세이셔널한 몇몇 사건이 그런 인식을 주는 듯하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정도가 지나치며 특히 3심제의 존재 의미를 없을 정도로 경직되어있다면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8] 여담으로, 일본의 헌법학자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한국의 헌법재판소라고 한다(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헌법재판론 수업 중 교수님이 언급.). 일본은 별도의 헌법재판기관이 없고 최고재판소가 이를 겸하는데, 머리가 매우 단단하신 재판관들께서 현행법에 대고 "위헌!"이라고 외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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