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JST1.jpeg
[JPEG image (30.15 KB)]
이 사진은 영정사진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영정사진이라도 걸어주는 곳은 리그베다 위키밖에 없다.

張成澤
1946년 2월 6일 ~ 2013년 12월 12일 향년 68세.
북한정치인.


성택부마도위(成澤駙馬都尉)
성택부원군
김일성더불어 세번째로 죽었다 살아난 자
21세기 토사구팽의 대표적인 인물

Contents

1. 개요
2. 일생
2.1. 청년 시기
2.2. "김씨 왕조"의 부마가 되다
2.3. 첫 번째 숙청
2.4. 김정일의 최측근
2.5. 2차 숙청
2.6. 김정은 승계 전후
2.7. 실각
2.8. 마지막 숙청과 죽음
3. 분석 - 왜 숙청되었는가?
3.1. 이유에 대한 논란
3.2. 김정은 체제의 취약성
3.3. 군부 강경파의 득세
4. 평가
5. 관련 항목

1. 개요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으로 김정일매제이다. 즉, 김일성의 사위. 김정은고모부. 故모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행정부장 겸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이었다. 또한 서열 2위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김정은 체제 하에서 명실상부한 북한2인자이자 실세다.

친형인 장성우장성길조선인민군 간부였으며 둘다 지병으로 사망했다.

자녀로는 무남독녀인 장금송이 있었는데, 2006년 8월에 신변 비관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자살했다.

데니스 로드먼이 지난 1월 방북했을때 장성택을 봤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모란봉악단 단장 현송월도 사형당했다는 설이 거의 확실시되었으나, 건재한 것이 확인되었으므로 장성택도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지 않냐는 주장이 있으나, 장성택은 현송월과 달리 대놓고 북한 정부가 범죄자로 낙인찍고 숙청했다고 발표했는지라, 설사 장성택이 숙청당하지 않았더라도 외국 방문객이 장성택을 봤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따라서 로드먼의 주장은 별로 신빙성이 없다.

2. 일생

2.1. 청년 시기

소군정 시대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역[1] # 출신으로, 장성택의 부친은 일제강점기에 국내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한 함북 길주 명천 농민쟁의에 참가했었다고 하며, 장성택 집안은 그렇게 부유한 것은 아니었던 정도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1969년에는 모스크바에서 유학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아버지가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하다가 체포된 경력이 있던 탓에 성분은 나름대로 괜찮아 김일성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장성택이 대학 입학할때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항일투쟁을 한 후손들의 성분은 나름대로 알아줬다고 한다. 1968년 갑산파 숙청이후는 일반인과 다를바 없어졌지만.

2.2. "김씨 왕조"의 부마가 되다

김일성의 딸 김경희와는 1964년 입학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동급생으로 만났다. 둘이 같은 반이었고[2], 장성택은 김경희의 앞자리를 배정받았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둘은 사귀게 되었고, 이 사실을 들은 김일성은 처음엔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하여 김경희를 불러 다그치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했으나 요지부동인 딸의 모습에... (설마 딸내미바보? 하긴 북쪽 남자들이 집안 여자들에게 약하다고들 하니...)
젊은 시절 장성택은 큰 키에 굉장한 미남이라, 김경희는 장성택을 처음 보고 반했다고 전해지며 그에게 끈질기게 구애를 했다고 한다. 김정일의 전속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를 비롯해, 최은희 신상옥 부부도 장성택을 모두 '장신의 미남'이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김일성은 결혼을 허락한 뒤에도 영 탐탁치 않았는지, 김영주를 시켜서 장성택이 대학교 3학년이었을때 "놀기 좋아한다."는 이유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원산경제대학으로 강제로 전학시키기도 했다.[3] 이 때, 김경희는 김일성의 차(...)를 끌고 원산과 평양을 왕복하면서 장성택의 뒷바라지를 해주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김경희가 처음 원산경제대를 방문했을 때는 교직원들이 수령님의 차가 뜬금없이 오는 것을 보고 "어익후, 현지지도하러 오셨구나!"면서 혼비백산했다 카더라. 연애로 민폐 김경희가 오면 만나지 못하게 빼돌리라는 김일성의 특명(?)을 받은 총장이 둘을 만나게 해주지 않자, 김경희가 총장실에 직접 쳐들어가서 "총장 동무가 뭔데, 남의 연애사에 간섭이시오?" 하고 고함을 친 것은 유명한 이야기. 오오 자유연애 오오

김경희는 험준하기로 유명한 마식령 고개를 매번 넘어가서 장성택의 빨래까지 해주고 가곤 했는데 김정일과 김일성의 설득에도 독한 김경희가 조금도 뜻을 굽히지 않자 김정일이 먼저 저러다가 차사고나서 애 다치면 어떡하냐. 낮은 신분은 높여주면 그만이다. 라고 아버지를 설득하여 결국 둘의 연애는 인정된다.

장성택은 이때부터 평양시당 지도원, 당중앙위원회 지도원, 당 부과장, 당 과장을 거쳤다.

2.3. 첫 번째 숙청

이렇게 김일성은 사윗감인 장성택을 몹시 미워했으나,[4], 장성택을 김경희의 끈질긴 부탁과 김정일의 중재로 다시 복귀시켰고 그는 김정일의 측근이 됐다. 대신 그 동안 사상 교육으로 고생 좀 했다고 한다. 말이 교육이지, 실제로는 빡센 육체 노동+갈굼으로 점철된 공개 비판으로 사람 돌아버리게 만드는 처벌이라고 한다. 소설 1984를 생각해보자. 웰컴투 처월드

김경희는 장성택의 누이 장계순과 함께 1969년에 러시아로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와서 1972년에 장성택과 결혼한다. 무남독녀 장금송도 출생했다. 장금송은 29세이던 2006년 8월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생활 중에 자살했다. 장금송이 살아있었다면, 조카에게 처형당하는 비참한 상황은 면치 않았을까 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김정일도 장성택에게 마냥 잘 대해준 것은 아니어서, 1978년에는 김경희와 부부관계가 악화되었다는 이유를 들며 2년간 강선제강소의 작업반장으로 짱박아놓고 또 사상 교육을 받게 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정일이었다. 다만 진짜 이유는 장성택이 김정일을 흉내 내서 기쁨조 파티(?)를 벌였던 것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아내인 김경희도 빡쳤겠지만, 김정일도 "니가 뭔데 나를 따라하냐!"며 노발대발했다고 한다(...).

훗날 탈북했다가 암살을 당한 이한영의 회고에 의하면, 자신의 이모이자 김정남의 생모였던 성혜림이 김정일을 어르고 노여움을 풀게 해서 장성택을 다시 복직시켰다고 한다. 두 번째 사상 교육을 받고 돌아온 장성택은 몰골이 말이 아니었고 어찌나 구르고 굴렀는지 후지모토 겐지는 그의 맨다리를 볼 때마다 쇳물이 튀어 입은 화상 자국을 몇 군데나 보았다고 증언했다. 복귀자리에서 김정일이 술을 한 잔 따라주자,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받아마시며 충성을 맹세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 김경희와의 관계는 이미 틀어지기 시작했고 김경희는 알코올 중독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2.4. 김정일의 최측근

이후 쾌속 승진하였다. 1982년 10월 복귀하여 조선로동당 청소년사업부 부부장, 1985년 7월 청년사업부 제1부부장을 맡았으며, 1986년 11월 최고인민회의 제8기 대의원, 1988년 12월에는 청소년 사업부 부장을 맡았다. 1989년 7월에는 조선로동당 청년 및 3대혁명 소조부 부장을 맡았다. 이것이 그의 공식 직함이 된다. 1990년 4월 제9기 대의원으로 재선하였으며, 1992년 당 중앙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1998년 9월과 2003년 9월에 다시 제10기, 11기 대의원으로 재선하였다.

복귀 이후에는 마약 밀수를 진두 지휘하고 3대혁명 소조운동을 추진하는 등 김정일의 최측근으로 권세를 부렸다. 그의 권세를 엿볼 수 있는 일화로 역시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인데, 아무도 장성택을 장 동지나 부장 동지라고 부르지 않고 깍듯이 '장 1부장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2002년에는 남북경제실무접촉회담 때 북한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서울을 몇 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자본주의 문화를 맛보자"라면서 가라오케(노래방=룸살롱) 등을 즐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즉, 남한을 방문한 북한의 가장 서열이 높은 인물이었다.[5] 이때 북한경제시찰단의 명목상 단장은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이었지만, 실권자는 장성택이었다고 전해진다. 여담으로 박남기는 후에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을 역임했으나, 2009년에 실시되었던 화폐개혁 정책 실패의 책임을 지고 2010년 3월에 공개처형되었다. 박남기의 죽음 이후엔 이 북한의 화폐개혁도 장성택의 책임이 되었다. 그리고 3년 뒤 장성택도 같은 운명을 맞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2.5. 2차 숙청

그러다가 2003년 10월 부터 북한 언론의 동정 보도가 끊겼고, 2004년 초에는 '권력욕에 의한 분파 행위'를 의심받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장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에서 해임당하는 등 상당히 부침이 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6년 1월 29일 조선중앙방송 보도에서 당 중앙위원회가 개최한 음력설 연회에 참석한 인사들을 언급할 때 소개되어 조선노동당 근로단체·수도건설부 제1부부장(혹은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으로 복권되었음이 밝혀졌다. 2004~2006년 동안의 공백은 아직도 수수께끼인데, 기존의 실각설 외에 두 번이나 사상 교육을 받은 탓에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 아내 김경희와 함께 강원도로 요양을 간 것이 실각으로 와전되었다는 설도 있다.

당시 실각설로는 김경희와 이혼한 후 사고사했다는 설도 있었다. 반대로 김경희 사망 후 실각설도 있으나 모두 헛소문이 되었다. 다만 당시 김경희와는 사이가 좋지 않은듯 하며, 별거중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다만 이 잠적을 짐작할 수 있는 한 일화가 있다. 2005년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북한에 가서 김정일에게 장성택의 안부를 물었는데‘남쪽에 가서 폭탄주도 배우고 해서, 아파서 쉬게 했다’라고 말하며 웃었다한다. 어련할까 당시는 남북관계가 매우 양호했기 때문에 장성택은 방한하여 삼성전자 및 한국의 여러 공장들을 둘러보고 갔는데, 한국 접대요원들이 밤마다 장성택을 강남 룸살롱에 데려가서 놀았다는 후문이 있다. 또한 김경희가 한 바이올리니스트와 맞바람을 피우자 장성택이 그 바이올리니스트를 반동 혐의를 씌워 죽였으며 그 후로 부부 사이가 완전히 벌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2.6. 김정은 승계 전후

2007년에는 10월(혹은 12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행정부장으로 승진해 다시 일선에 나섰다. 당 행정부장이 국가안전보위부인민보안부, 보안성, 검찰을 담당하는 직위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의 서열 2위 실권자였던 셈이다. 복권 후에는 단순히 행정부장이나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라는 직함으로만 소개되었고, 이후에도 그다지 존재감이 강하다고 볼 수는 없던 인물로 여겨졌다. (2009년 4월 최고인민의회 대의원에 재선(5선) 되었고, 북한 국방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jang212.PNG
[PNG image (97.25 KB)]

군복을 입은 장성택과 김정은. 한때 이렇게 사이가 좋았는데.. 2013년 7월 사진. 이때만해도 몇달 후 겪을 자신의 운명을 전혀 몰랐을 듯.

그러나 2010년 6월에 행정부장에 더해 서열 2위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되었음이 발표되었고, 그해 9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위원회 위원,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그러면서 김정일의 3남 김정은의 후계 구도를 주도하고 있다는 견해가 나돌았다. 이전까지 장성택은 김정남의 생모였던 성혜림의 도움으로 복권되었기 때문에 김정남 파였다는 것이 정설이었던 터라, 이와 같은 부위원장 임명 소식은 북한 전문가들에게 꽤 혼란을 안겨주었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함에 따라 영구차를 함께 호위했고,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추정되었다. 일각에서는 본인의 권력욕과 아직 막강하지 못한 김정은의 측근 세력 등으로 볼 때, 김정은을 꼭두각시로 내세우고 자신이 수렴청정권한 대행으로 정치일선에 나서거나, 극단적인 경우에는 김정은을 내쫓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다만 장성택 역시 나이가 많고 김일성과 김정일이 죽도록 굴린 탓에 건강이 그리 좋지 않으며, 이전에 두 차례 숙청당했을 때 자신의 세력을 거의 잃어버렸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에 정권을 잡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결국 그 주장이 맞았다.)

또한 정치적 라이벌로 평가받고 있는 또 다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인 오극렬의 존재도 변수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다. 하지만 오극렬 역시 장성택과 마찬가지로 정치위원 제도의 폐지를 건의했다가 오히려 김일성의 노여움을 사 실각하는 등 경력에 오점을 남긴 바 있고, 나이도 여든 살을 넘겼기에 오늘내일하는 군부 바지사장일 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김정일 사후 발표된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 이름만 올리고 장례식 때는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아 숙청설이 나돌다가 2012년 1월 1일에 은하수관현악단의 신년음악회 보도에서야 이름이 언급되는 등, 여러 모로 다른 군부 실세들과 비교하면 안습이라 건강이나 권위 모두 예전 만큼 고려될 수 없게 되었다.

2011년 12월 25일에 김정은이 김정일의 시신에 참배했을 때도 다른 측근들과 함께 동행했는데, 뜬금없이 대장 군복을 입고 나와 총참모장인 리영호 옆에 서있는 모습이 나오면서 장성택 실세설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 동안 그가 대장직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장성택이 대장 군복 차림으로 등장한 것은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대장 군복 차림으로 등장하기 바로 하루 전에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나온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장성택은 대장 칭호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군부에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발언했을 정도다.

28일에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있었던 영결식에서도 김정은의 바로 뒤에서 영구차 행렬을 호위하는 등 계속 존재감을 과시했고, 2012년 2월 15일에 4.25문화회관에서 개최된 김정일 생일 70 중앙보고대회에서도 각각 대장과 상장 계급을 받은 당 비서 박도춘과 당 기계공업부 부장 주규창 등 다른 정계 인사들과 함께 재차 대장 군복 차림으로 참석했다. 장성택의 대장 진급은 정계 뿐 아니라 군부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어서, 앞으로 김정은을 보좌할 핵심 측근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2012년 4월 11일 당대표자회에서는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친족들과 자신의 계파에 속하는 인물들도 대부분 요직을 차지했는데,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았다.

김경희(당 비서), 최룡해(당정치국 상임위원 겸 인민군 총 정치국장(대장) 겸 당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다음달 차수가 됨), 김원홍 (전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 국가안전보위부장(남한의 국가정보원장과 비슷한 위치) 겸 정치국 위원. 대장), 리명수 (인민보안부장(남한의 경찰청장과 비슷한 위치). 정치국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대장)).

북한의 핵심 고위층 인사들 중에도 정치국이나 중앙군사위원회에서 상임위원이나 위원은 커녕 후보위원 자리에서 맴도는 인물들이 쌔고 쌨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당대표자회를 통해 장성택이 당정군에서 확실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2012년 7월 자신의 가장 큰 라이벌이라 볼 수 있는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리영호가 모든 공직에서 전격 해임되었는데, 김정은 혹은 장성택이 선군정치로 지나치게 힘이 커진 군부를 제어하기 위해 야전 사령관 출신이 아닌 인사들로 정권을 이끌고 나가겠다는 의지가 보여진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나왔다. 리영호의 후임으로는 장성택 라인과 우호적인 관계인 것으로 보이는 신임 차수인 현영철이 임명되었다. 김영춘송해 인민무력부장은 당 부장으로 이동해 은퇴 수순을 밟게 되었다. 우동측과 김정각 등 김정일 시대의 군부 인사들도 리영호의 해임 이후 은퇴하거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

8월에는 경제특구 유치를 위해 중국을 방문했는데, 유치 전략이 성공적이었는지 조선중앙통신에서 광복절에 즈음해 황금평-위화도, 라선 지구 공동개발을 위한 제3차 '조·중공동지도위원회'의 협상 결과를 보도했다.북한 장성택 "경제특구 7곳으로 확대" 장성택은 이 공동 개발 협상 외에 중국 정부에 100억 달러 규모의 차관도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11월에는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의 결정으로 국가체육지도위원회가 결성되자 위원장으로 임명되는 등, 2012년의 장성택은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막후의 실력자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2012년 12월 차수에서 대장으로 강등되었던 최룡해가 2013년 2월 다시 차수로 재진급한 것도 장성택의 힘이 작용했다고 추측되었다.

20130201105019265.jpg
[JPG image (12.4 KB)]

게다가 이렇게 김정은이 있는데도 삐딱하게 앉기까지 했다. "자세가 삐딱해서 북한의 실권자"로 추측된다는 대한민국 국방부의 발표가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외에도 북한식 표현대로라면 "최고 존엄(...)"이 있는 자리에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김정일 참배에서 경례한 손을 먼저 내리거나 하는 행동 등으로 김정은을 의식하지 않는듯이 보이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장성택은 2013년 4월 김경희에게 전화해 "개성공단을 폐쇄하면 안된다. '정은이'를 좀 말려라"라고 한 것이 도청을 당해 김정은 귀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2.7. 실각

2013년 2월 이후로 장성택이 북한 내부의 동정 발표에서 사라지고 있다. 김정은 체제가 안정되면서 장성택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거나, 군부 내부의 강경론자한테 밀렸다는 설, 가택 연금설, 아니면 건강이 좋지 않은 부인 김경희를 돌보기 위해 잠시 중앙정계를 떠났다는 설 등이 난립했다.

그러다가 4월 1일 북한 최고인민회의때 나타났는데, 최룡해 옆자리에 앉아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이에 따라 2월부터 3월까지 장성택이 보이지 않았던 건 본인이나 부인 김경희의 건강 문제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일부 언론기사에서 "장성택이 되면 개방해서 더 잘 살텐데" 같은 북한 주민의 여론을 전하기도 했다.

5월에 국가의 채무를 갚기 위해 라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간 외국(중국)에 임대하는 것을 주도한 것이 (사망 이후에 확실히) 드러났다.

2013년 10월 말만 해도 라선특별시를 시찰하고 "나선은 완전히 썩어빠진 자본주의의 온상이 돼 버렸다. 봉쇄를 더욱 철저히 하라."라는 말을 해서 개혁과 통제 사이에서 가닥을 잡을 실세로 여겨졌다. 11월 6일 안토니오 이노키의 방북 때도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의 입지로 모습이 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2013년 12월 3일, 11월 중순 경 장성택의 핵심 측근 두명이 공개처형 당했으며[6], 장성택이 실각한 것으로 보인다는 국가정보원발표가 있었다. 공개처형의 당사자는 장성택의 오른팔인 행정부 제1부부장 리용하와 왼팔인 행정부 부부장 장수길이며 반당(反黨)혐의로 처형되었다고 알려졌다.[7]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룡해 총정치국장과의 파워 게임에서 밀린 것으로 추정되었다.

실각 직전 부인인 김경희가 실각만큼은 막아달라고 김정은에게 부탁했으나 그대로 강행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민주당 정보위 정청래 간사의 의견, 새누리당 조원진 간사는 부정함) 반대로 김경희가 앞장서서 장성택을 쳐냈다는 분석도 있었다.(주성하 기자의 분석) 한편 장성택 본인은 소재가 불분명했는데, 11월 중순(정청래) 혹은 하순(조원진)에 측근들과 함께 처형되었다는 보고도 있었다. 12월 1일자 로동신문에서 "김정은 유일 영도체계를 철저히 세우며 세상끝까지 김정은과 운명을 함께할 것"을 촉구하는 기사를 내보낸 것도 이와 관련된 것으로 국정원은 추정했다.

그러나 12월 4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보고에서 '장성택과 김경희의 신변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보고 함으로써 그가 처형을 당하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것은 아닌걸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숙청이나 실각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의 신변 안전만 확인한 것이다.

북한 내에서는 비교적 온건파인 장성택의[8] 실각으로 향후 남북관계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최고 원로라서 오랜 세월 입지를 다져온 인물이 철저하게 숙청될 만큼 아직도 권력암투가 극심하고 김정은 독재체제가 불안정하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으로 드러났다.

장성택의 입지는 최룡해가 수행(!)하는 모습이 비쳤던 내각 총리인 박봉주[9] 로동당 정치국 위원이 차지했다는 주장이 있으며, 이 해석에 따르면 라선 시찰 당시의 장성택의 발언은 박봉주에 대한 견제 발언으로 여겨진다. 당시 장성택과 비슷한 시기 박봉주 역시 시찰을 했는데, 박봉주와의 서열관계가 정해지기 어렵기 때문에 각자 시찰에 나섰다는 것이다. 오른팔이었던 리용하는 김정일 사망 당시의 장의의원 명단에서는 박봉주를 앞섰으나 결국 숙청되었다. 이 해석에 따르면 북한의 개방정책은 지속 될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박봉주가 실권을 가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면 박봉주 역시 장성택의 최측근이며, 함께 숙청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이 시각에 따르면 김정은의 사실상 친정과 함께 최룡해가 최실권자가 되며, 북한의 개방정책은 일순간에 대규모로 뒤집힐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 입장에서는 키워줬더니 뒤통수 맞은 격이 된다.[10]

한편 이번 사건을 통해 장성택이 "실각"을 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권력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았다라는 주장도 일각에서 제기되었다. 애초에 핵심조직이 아닌 비선조직이었다는 것. 일종의 명예직이었던 체육지도위원장으로서 이노키를 만난 것이 오히려 실각의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중국과의 친분이 강하며, 사실상의 서열 2위였던 인물의 숙청 자체가 이례적인 일임은 분명하다. 한편 국정원의 보고와 달리 정치범수용소에 가둬져 있다는 추정이나 실각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었다.

여하간 장성택이라는 인물은 김정은 권력 승계 초기 김정은은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장성택과 고모인 김경희가 후견인 역할을 할 것이다 라는 전망이 있었을 정도로 북한 지도부내에서 영향력이 매우 강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런 인물이 2인자 자리에서 쫓겨났다는 것은 북한 내부의 권력 싸움이 심한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김정은의 정치 파워가 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재자에게 강력한 2인자란 언제든지 자신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존재이다. 설령 그것이 친인척이라 해도 말이다. 권력 앞에서는 눈물 없다는 것이 이미 역사에서 수 없이 증명되지 않았는가? 그렇기 때문에 장성택은 김정은이 손을 쓰기 전에 쿠데타를 일으키던지, 스스로 물러났어야 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룡해가 장성택과의 권력 싸움에서 승리하고 결국 김정은의 자리마저 넘볼 것 이라고 예측했던 어느 중국 역술인의 한자 사주가 새삼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최룡해라고 다를것도 없다. 김정은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김정일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은 인물이며 북한이라는 나라 구조 자체가 수령과 그렇지 않은자의 차이가 엄청난 나라이기 때문에 최룡해라고 해도 언제든지 실각할 위험성이 있다.

2.8. 마지막 숙청과 죽음

12월 5일, 세종연구소에 따르면 장성택 본인은 육체적 처벌은 받지 않은 상태이며 가택연금 조치되어 계속 집에서만 지낸다는 기사가 떴다.

12월 6일, 언론보도에 의하면 장성택의 최측근중 한명이 중국으로 도피해 망명을 신청했다고 한다. 이 측근은 장성택의 자금을 관리한 인물이며 중국은 한국으로의 망명은 불허하고 있고 미국측에서 미국 망명을 주도하려 한다는 것이다. 다른 보도에서는 이 측근이 한국 또는 제3국으로의 망명을 요청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통일부와 국정원은 아는 바가 없다고 부인한 상황.

12월 7일에는 북한에서 방송된 선전용 기록영화에서 장성택을 고의로 삭제시킨 정황이 발견되어, 실각설에 더욱 힘을 실어 주었다. 이오시프 스탈린 항목에 나오듯, 공산권 특유의 '인민의 에어브러시질'과 비슷한 일이 실행된 것. 아아 1984! 조지 오웰의 혜안에 감탄할 따름이다[11] 특히 김일성의 후처 김성애가 영상에서 삭제된 이후 다시는 복권되지 못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장성택 역시 앞으로의 복귀는 불가능해진 셈. 또한 기록영화 뿐만 아니라 출판물들에서도 조만간 장성택과 관련된 모든 기록이 삭제될 것으로 분석되었다.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인 주성하 기자에 따르면 북한같은 사실상의 왕조 사회에서 이런 식의 기록말살형옛날로 치면 멸문지화를 당할 반역자급의 처벌 수위라고 한다.(#)

12월 9일, 조선중앙통신이 장성택의 해임을 공식 발표하였다. 죄목은 명분에 불과하겠지만 반당·반혁명·종파행위. 당일 오후, 조선중앙TV는 12월 8일 열렸던 조선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이 해임안 채택 후 김정은 앞에서 인민보안원 2명에게 체포되어 끌려나가는 사진을 보도하였다.


"장성택은 앞에서는 당과 수령을 받드는 척 하고 뒤에 돌아앉아서는 동상이몽, 양봉음위(陽奉陰僞[12])하는 종파적 행위를 일삼았다."라 는게 죄목이라고 한다. 또한 "장성택은 당이 제시한 내각중심제, 내각책임제원칙을 위반하면서 나라의 경제사업과 인민생활향상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다."라는 대목이 있으며, 설마 그 내각책임제? [13] 그리고 "국가재정관리체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나라의 귀중한 자원[14]을 헐값으로 팔아버리는 매국행위를 함으로써 주체과 주체비료,주체비날론공업을 발전시킬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과 어버이 장군님의 유훈을 관철할수 없게 하였다."라고 주장했다. 자세한 것은 노동당 보도 전문을 통해 확인할 것.

라브렌티 베리야가 당한 것처럼 장성택이 눈치채고 반격하지 못하게 공개회의 석상에서 기습적으로 체포한 것으로 보이지만, 거꾸로 말하면 장성택은 이때까지 무사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렇게 되면 국정원이 주장했다는 11월 처형설은 사실이 아니게 되며, 신변만은 안전하다는 통일부의 말이 사실이 된다. 심지어 미국의 정보관계자는 "국정원이 '장성택 실각'을 발표한 3일 이후 전 세계는 그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고, 북한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5일 후 장성택을 전격 체포했다. 국정원이 북한에 빌미를 준 측면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북한이 국정원 발표만 갖고 멀쩡한 장성택을 '홧김에' 숙청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오히려 북한 입장에서는 장성택과 그의 측근들이 건재한 모습을 공개하여 국정원을 국내외적으로 망신시키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1986년김일성 사망 오보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 그리고 밑에 보면 알겠지만 김정은은 그 이전부터 이미 장성택을 내칠 생각이 있었다고 보는게 더 명확할 것이다. 또한 저 기사에선 그 미국 정보 관계자가 누구인지 안 나와 있다.

혹은 장성택이 이미 실각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일종의 합의적 쇼, 최소한의 암묵적 인지가 있었던 체포 장면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 근거로는 그동안 장성택은 김정은, 최룡해 등과 함께 단상의 주석단에 항상 자리가 배정되었으므로, 정말 모르고 있다가 기습적으로 체포당한 것이라면 이 날도 주석단에 앉아있어야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다른 정치국원들과 함께, 그것도 맨 앞줄이 아닌 자리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이미 체포된 상황에서 언론에 내보내기 위해 체포 장면을 재연한 것이라는 주장. 여하간 북한의 이러한 "외신의 가설에 대한 반사적 대응(확인)"은 확실히 유례 없이 빠르며 공개적이었다. 자유북한방송에서는 "인물들 시선·잘린 어깨 등이 어색하다"는 사진 조작설이 나왔으나 통일부는 다시 일축했다. # 이 주장대로라면 장성택이 12월 9일 이전에 체포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북한에서 고위인사로써 체포장면이 보도 된 사례는 1970년 이후로 유일하며 이로써 장성택의 안전까지 의심스러운 상황에 이르렀다. 북한 당국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반당 종파사건은 1950년대 8월 종파사건이후로 쓰인적이 없는 엄중한 죄목이다. 확대회의에서는 주로 장성택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으며 장성택과 가까운 관계인 박봉주 내각 총리조차 울면서 장성택을 비판했다고 알려졌다.

사실 북한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누군가는 숙청당했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정권이 교체될 때에도 한국전쟁 당시의 행적을 문제삼아 서관히를 비롯한 수백명의 관료들이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했다. 이번에 김정일이 죽고 김정은로 정권이 바뀌자 타겟은 장성택이 되었다는 분석.

국민일보 노컷뉴스의 단독보도에 의하면 이번 장성택의 실각에는 먼저 처형당했다고 알려진 리룡하, 장수길 두 사람을 비롯한 일부 장성택 측근들의 과잉충성이 원인이라 하며 이후 국가안전보위부와 당 중앙위원회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11월 30일 삼지연 시찰 때 이른바 '백두산대책회의'를 열고 장성택의 처리문제를 논의하였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번 장성택 실각은 군부와의 갈등에 기인했다기보다는 김정은으로의 유일지도체제 확립에 걸림돌이었기 때문에 실현된 것으로 풀이된다.

자유북한방송에 따르면 장성택은 이미 12월 5일 처형되었다는 주장이 있었다. 다만 리용하 등도 함께 처형되었다는 주장이라 신빙성은 적다.(뒤에 보듯 북한의 공식 기록상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한편 장성택이 김정남을 김정은 대신 옹립하려는 쿠데타 모의를 하다 먼저 당했다는 설도 있다. 헤럴드일보의 "대북소식통" 역시 장성택의 실각 이유가 김정남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12월 10일 저녁, SBS의 단독보도로 숙청된 북한 장성택의 핵심측근이 북한의 핵개발 관련 핵심자료를 빼돌려 중국으로 탈출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실사판 베를린(영화) 찍을 기세 정부당국이 신병을 확보하고있지만 미국, 중국이 관심을 보이고있어 어려움을 겪고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장성택의 측근은 중국의 한국공관에서 심문을 받고 북한의 핵기밀등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12월 17일에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2014년 1월부터 3월 초 사이에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높다"라고 밝힌것은 이 측근이 털어놓은 기밀에 근거한것으로 보인다는 것.(#) 이로 미루어보면 북한의 4차 핵실험 기도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이 사람을 통해 남한으로 흘러갔을 개연성도 있어보인다.

12월 19일 세계일보 단독 보도에 따르면 장성택의 숙청을 전후해 북한 노동당과 군부 인사, 그들의 가족 등 70여명이 중국으로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일부는 국내 정보당국과 접촉, 남한으로의 망명을 저울질하며 중국 내 안가 등에서 은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소식통은 "최근 장성택 처형을 전후해 김정은 정권의 숙청 대상에 오를 것을 우려한 장성택의 측근은 물론 김정은 체제의 '공포정치'에 겁먹은 일부 인사들까지 중국으로 탈출하고 있다"면서 "현재 정보당국이 파악한 인원만도 70여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정보당국이 파악한 70여명은 대부분 북한 노동당과 군부 인사, 외교관들로 일반 주민은 제외된 숫자"라면서 "유럽지역 국가에서 북한 대사를 지낸 고위층 인사와 북한의 도발 징후를 담은 기밀문서를 정보당국에 넘긴 인사도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북한 정보에 밝은 군 소식통은 "탈출한 북한측 인사 가운데는 북한 로열패밀리의 비자금 내역에 정통한 인물과 남파간첩 명단 및 핵무기 관련 자료를 갖고 국정원과 협상 중인 거물급도 존재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이들은 대부분 한국 망명을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장성택 측근 중 망명을 한다면 장성택의 돈을 관리하던 자금줄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장성택 처형 근거로 부패 문제가 거론된 이상 장성택 밑에서 돈과 관련된 일을 했던 인사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12월 11일에는 장성택이 실각된 이유가 김정은의 부인인 리설주와의 부적절한 관계 때문이라는 주장이 북한 소식통을 통해 제기되었지만, 관련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보았다.

12월 13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12일 특별군사재판에서 사형 판결 후 그 즉시 집행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로서 장성택 개인은 사라졌지만 장성택 일파에 대한 숙청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그야말로 피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현실이다.
2014년 1월 26일자 연합뉴스의 보도에 의하면 장성택의 누나인 장계순을 포함한 일가인 장용철 전 말레이시아 대사와 전용진 전 쿠바 대사와 그들의 아들인 20대 중반의 태령, 태웅을 포함한 장성택 일가에 대한 전격적인 처형소식이 보도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장성택 일가에 대한 사형은 그야말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정말 무자비하게 집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장된 게 화근 장성택은 김정일 사후 대장계급을 받아 군인 신분인데, 그래서 재판은 속전속결로 끝낼 수 있는 군사재판[15]으로 실시되었으며, 선고 후 바로 집행하여 공포심을 극대화했다. 민간인 신분이라면 북한의 법제상 3심까지 갈수도 있지만,[16] 그래도 북한무슨 나라인가? 어차피 김정은은 장성택이 민간인신분이었다고 해도 즉결처분했을 것이다.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즉결처분을 당하게 되면 어떻게 죽든 고통스럽게 죽긴 마찬가지이고 총살을 하나 패서 죽이나 그 차이뿐이지 북한이라는 나라에서 편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조차 없다.[17]

사진을 보면 말랐던 과거 모습과 달리 왼쪽 눈두덩이가 부어오르고 이 든 흔적이 있고, 에도 구타 흔적 같은 것이 있다. 거기다가 자세도 영 엉거주춤하고 측면만을 보여주고 있다. 고문을 받지 않았느냐는 추측이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형이 집행되었지는 불명이지만 기관총으로 사살하고 화염방사기로 시체를 불태우는 방식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알려져 있다. [18] 물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인민들의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위함.[19]

보도된 바로는 실제로 북에서 장성택의 공개처형 모습을 보던 사람 중 한사람이 증언하기를 무려 총탄 90탄이나 쏘았다고 한다. 이 모습이 얼마나 참혹했던지 결국 그 자리에서 직접 공개처형을 보던 인민들 중 한명이 졸도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그 총탄을 왜 훈련 때 쓰지 않는거야?
한편 한반도 사정에 밝지 않은 몇몇 서양 언론에서는 장성택이 사냥개 수십여마리에게 물어뜯기는 식으로 처형당했다고 잘못 보도하기도 했다. 영국주재 북한대사 말에 따르면 장성택은 총살 당했다고 한다.

3. 분석 - 왜 숙청되었는가?

장성택 사형 판결에 대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 전문을 보면 역시 숙청의 결정적인 원인은 김정은에게 반역을 꾀한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보도 전문의 전반부는 장황하게 장성택의 비리혐의를 나열하고 있지만, 사실 북한에선 부정부패 사건이야 너무 흔해서 이런식으로 일벌백계할리 없고, 단순히 김정은의 권한 확대를 위해서는 가택 연금이나 수용소행 등의 다른 방법도 많은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심각한 일이 있었다는 반증이 된다.

조선중앙통신의 보도 전문을 보면 장성택이 당정군의 인맥으로 무엇인가 꾀한 것 같은데, 이것이 쿠데타 음모이거나 꼭 그렇지 않더라도 김정은을 밀어내고 수양대군처럼 등극하려는 것으로 비쳤고, 이에 장성택은 전광석화처럼 체포후 거의 즉결 처분에 가까운 운명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보도 전문 중 일부 인용. 숙청에 대한 독재 국가 언론의 보도 내용이 늘 그렇듯이 답정너에 가깝지만, 무언가 심상찮은 일이 있었음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놈은 정변의 수단과 방법에 대하여 《인맥관계에 있는 군대간부들을 리용하거나 측근들을 내몰아 수하에 장악된 무력으로 하려고 하였다. 최근에 임명된 군대간부들은 잘 몰라도 이전시기 임명된 군대간부들과는 면목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인민들과 군인들의 생활이 더 악화되면 군대도 정변에 동조할수 있지 않겠는가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내가 있던 부서의 리룡하,장수길을 비롯한 심복들은 얼마든지 나를 따를것이라고 보았으며 정변에 인민보안기관을 담당한 사람도 나의 측근으로 리용해보려고 하였다. 이밖에 몇명도 내가 리용할수 있다고 보았다.》고 꺼리낌없이 뇌까리였다.
장성택놈은 정변을 일으킬 시점과 정변이후에는 어떻게 하려고 하였는가에 대하여 《정변시기는 딱히 정한것이 없었다. 그러나 일정한 시기에 가서 경제가 완전히 주저앉고 국가가 붕괴직전에 이르면 내가 있던 부서와 모든 경제기관들을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가 총리를 하려고 하였다. 내가 총리가 된 다음에는 지금까지 여러가지 명목으로 확보한 막대한 자금으로 일정하게 생활문제를 풀어주면 인민들과 군대는 나의 만세를 부를것이며 정변은 순조롭게 성사될것으로 타산하였다.》고 토설하였다.
장성택은 비렬한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한 후 외부세계에 《개혁가》로 인식된 제놈의 추악한 몰골을 리용하여 짧은 기간에 《신정권》이 외국의 《인정》을 받을수 있을것이라고 어리석게 망상하였다.

위의 발표문대로라면 장성택은 구체적인 거사 계획은 없었지만, 경제난이 심화되고 김정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 당정군 내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김정은을 몰아내고 집권을 하려는 어렴풋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집권 후에는 대대적인 개혁개방을 통해 민심을 얻고 국제 사회의 지지 획득를 꾀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덩샤오핑이 광범위한 인맥으로 당정군을 장악하여 마오쩌둥이 지명한 후계자이자 문화대혁명 노선을 이어가려던 풋내기 화궈펑을 몰아내고 대권을 장악해 중국을 개혁개방을 이끈 것을 따라하려고 한 것 같다. 그러나 중국은 최소한의 합리성은 남아 있었지만, 북한은 이미 정통성이 혈연으로 결정되는 왕조국가가 되어버렸던 것을 계산에 넣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박헌영도 뜬금없는 미제 스파이라는 죄목을 덮어씌워 처형한게 북한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장성택이 진짜로 저런 계획을 기획했는지 여부는 통일이 되기 전엔 알기 힘들 가능성이 높다.

아래는 그가 김정은 세습에 마뜩잖아했다고 주장하는 조선중앙통신 보도의 내용. 어째 태종원경왕후 외척인 민씨들을 숙청할 때의 죄상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때도 민씨들이 남들 기뻐할 때 슬퍼하고 슬퍼할 때 기뻐했다는 죄목이 적용되었다. 역사는 반복된다더니 그래도 이방원은 왕노릇 꽤 잘했잖아 김정은은 안될꺼야 아마

놈은 자기의 교묘한 책동이 통할수 없게 되고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에서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인민들의 총의에 따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높이 모시였다는 결정이 선포되여 온 장내가 열광적인 환호로 끓어번질 때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서서 건성건성 박수를 치면서 오만불손하게 행동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냈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장성택은 충성을 다하지 않아 처형 당했다고 한다.

자유아시아 방송에서는 식량과 자원에 대한 권한을 쥔 장성택과 군부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아 무력 충돌이 벌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둔전병을 운용할 정도로 북한군은 식량 사정이 시궁창이라서 예전부터 어업권을 되찾기를 원했고 수산부업기지에 150명을 동원해 공격했으나.... 수비측인 장성택의 군대가 공격하는 측의 3분의 1 정도밖에 안되는 숫자에도 불구하고 더 잘 먹어서 체격도 좋아 큰 피해없이 격퇴를 하자 군부와 김정은이 위협을 느껴 숙청했다고 한다.조폭 이야기가 아닙니다. 청동기시대 이야기도 아닙니다...

"국가재정관리체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나라의 귀중한 자원을 헐값으로 팔아버리는 매국행위를 함으로써 주체과 주체비료,주체비날론공업을 발전시킬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과 어버이 장군님의 유훈을 관철할수 없게 하였다."

이 언급은 주로 북한이 중국에 수출하는 석탄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분석에 따르면, 장성택은 중국에 석탄을 수출하여 외화를 확보하려 했으며, 이 이권을 노리고 군부와의 다툼이 일어났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언듯 보면 이 주장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애초에 '헐값으로 팔아버리는 매국행위'라는 것이 어이가 없는 것이, 북한은 경제제제를 심각하게 당해서 석탄을 수출할 곳이 중국 밖에 없는데, 북한은 외화가 필요해서 몸아 달았고 중국도 석탄 자원은 여유로운 상황이므로 제 값(국제시세)을 받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즉, 장성택은 북한의 외교, 통상 상황이 최악이라 어쩔 수 없이 헐값에 팔 수 밖에 없었는데 국제시세를 조사해오고 장성택이 판 값과 "시세와 이렇게나 차이가 난다. 헐값으로 판 거다."[20]라는 누명을 덮어쒸웠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석탄과 철,비료,비날론 언급이 함께 나오는 것은 석탄을 이용하여 발전을 하거나, 원료로 사용[21]하여 생산량을 올릴 수 있었는데, 장성택이 수출해서 외화로 바꾸는 바람에 석탄 재고가 줄어서 그렇게 못하게 되었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이는 상식을 아는 사람에게는 어처구니가 없는 주장인데, 북한의 생산시설은 기계가 낙후되고 기술이 부족하여 석탄을 철,비료,비날론 생산에 투입해봤자 그 효율이 떨어지고 품질도 좋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석탄을 코크스 대용으로 쓰는 철은 품질이 나쁘고, 비날론은 품질이 안 좋은 섬유라 그냥 쓰레기를 비싼 원료와 전력을 들여서 만드는 꼴이니 말할 것도 없다. 애초에 북한의 철도 환경을 보면 선탄을 캐봤자 공장으로 일일이 운송하는 것도 어려울 지경으로 산업 환경이 최악이다. 이런 상황이면 차라리 석탄을 바로 중국에 팔아버리고, 그 외화로 '중국산' 철,비료,섬유를 구입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주체사상을 내세우는 놈들에게는 꼬투리 잡할 꺼리였을 것이 분명하다.

즉, 판결문에서 이 언급은 장성택이 그나마 중국을 들락날락 거리면서 석탄 수출길을 터서 외화를 좀 벌어왔는데, 그 반대파 측에서 말도 안되는 꼬투리를 잡고 누명을 쒸워서 죽였다고 자기 자신들이 자백하는 꼴이다.

게다가 이러한 '상거래'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드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들, 그게 어떻게 사람을 죽일 이유가 되겠는가?

여담으로 일본에서는 국회의원 안토니오 이노키가 방북하여 장성택을 만난지 얼마 안 된지 숙청이 터져서 곤혹스러운 반응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이노키는 방북하기 전에 "납치 피해자 문제는 내가 해결한다. 나는 장성택과 친교가 있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북한에 파이프가 있는 건 나 정도다."라고 장담했다고 하는데(...) 파이프가 죽었슴다

3.1. 이유에 대한 논란

  • 반역설 : 실제로 북한이 공개한 대로 장성택이 김정은에 대해서 일종의 반역을 시도하고 있었다는 주장. 이 경우 김정남이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철은 이미 무능력자 입증했고, 김정은의 자식들은 전부 딸인데다 어리기까지 했으니 김정은을 숙청할 경우 그 자리에 앉힐 수 있는 사람은 같은 백두혈통인 김정남밖에 없었다.
  • 무고설 : 장성택은 전혀 반역을 할 뜻이 없었고, 단지 김정은의 포악함과 주변의 모함 떄문에 숙청되었을 뿐. 실제로는 무고하다는 주장. 만약 장성택이 모함을 당해 죽었다면 장성택을 모함한 건 최룡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 예정설(…) : 장성택은 지나치게 막대한 부와 강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죽음은 그 자신의 행동과는 무관하게 김정일 때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북한 정권은 능력 있는 사람에게 권력을 몰아줬다가 나중에 제거하고 회수하기를 반복하곤 했다. 사실, 장성택의 숙청에 대하여 '고모부까지 죽인 패륜'이라 충공깽하다는 반응이 많기는 한데, 사실 혈통이 정통성의 담보가 되는 왕조국가에 있어서 왕의 친족은 최대의 경계대상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장성택이 김씨는 아니지만, 왕의 직계가 단절되었을 때 여계 계승이 일어나는 경우는 역사적으로 드물지 않았고, 이 때문에 권력을 가진 외척이나 이성(異姓)친척은 언제나 경계 대상이었다. 물론, 장성택과 김경희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없으니 혈통적으로 왕조 창시자의 계승을 주장할 수 없고, 한국의 왕조사 전통에서 이성족의 여계 계승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한계는 있으나 부부로써 김경희의 정통성을 공유할 수 있는 장성택에게 일정한 왕위계승권의 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즉, 북한이 왕조국가라는 것을 명확히 이해했다면 오히려 있을법한 일이라고 생각할 만하다는 것.
  • 중국 음모설 : 장성택이 중국과 연계하여 음모를 꾸미고 있었거나, 중국과 관련이 깊은 장성택의 움직임을 김정은이 껄끄럽게 보았다는 설이다. 실제 장성택은 막나가는 김정은 정권에 대해 불만이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반역 및 김정남 연결설 : 장성택이 김정남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 죽음의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주장. 반역설과 연관하면 새로운 정권의 지도자로서 김정남을 옹립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는 가설이 제시된다. 게다가 장성택은 김정남에게 700만 달러를 송금했다.(#)
  • 최룡해와의 반목설 : 사실 장성택의 사형을 주도한 것은 김정은이 아니라 최룡해라는 의견도 있다. 최룡해는 북한 정권의 2인자가 되기 위한 야심을 품고 있으며 김정은의 친인척인 장성택은 그러한 최룡해의 출세에 걸림돌이 될 것이 자명하여 최룡해가 김정은을 꼬드겨서 장성택을 사형에 처했다는 설이다.
  • 리설주 관련설 : MBN에서 제기한 것.기사 장성택이 조카며느리 리설주와 바람이 나서 분노한 김정은한테 죽었다는 것. MC가 계속 이 설을 거론하면서 이야기를 그 쪽으로 유도하려고 하자 당시 패널로 참석한 전 통일부 관련 인물인 현 대학교수가 그냥 듣고만 있다 결국 아니다 싶었는지 "북한 관련 문제를 다루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려면 통일 이후에 있을 일도 생각하고 장성택 실각이라는 이 사안에 어울리는 더 진지한 내용을 다뤄야지, MBN의 품위를 생각해야 할 거 아니냐." 고 지적을 했다. 그러자 MC는 움찔 하면서 이 후로도 계속 리설주를 언급해보려다 결국 그만뒀는데, 문제는 다음날 같은 프로에서 그 MC 말고도 방송국측 패널이 두 명 더 나왔는데 전날 하던 리설주 장성택 내연설만 똑같이 반복하고 있었다.[22] 요즘 종편간 경쟁이 치열해지자 시청률을 노리고 어떻게든 말초적인 내용을 넣으면서 남북관계를 흥미위주로만 다루는 황색언론적 행동이다. 물론 김정은이 돌지 않고서야 겨우 그런 걸로 장성택을 죽였을 리는 없다. 권력자 김정은에게 있어 아내는 갈아버리면 그만이지만, 인재는 한 번 없어지면 보충하기 어렵다.
  • 사다리타기 당첨설(#)
  • 술자리 게임(#)[23]
  • 김경희 관련설 : 이전에는 농담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숙청설 후 김경희 건강 악화설이 어떤 형태로든[24] 사실임이 확실시 되고 있고, 직접 장성택의 숙청에 어떤식으로든 관여했음도 밝혀지고 있어 농담이 아니게 되었다. 주된 분석은 건강이 악화된 김경희가 직접 김정은이 장성택을 치워버리도록 도와준 것 아니냐는 분석. 장성택은 김일성 김정일 둘 다에게 구박받은 천덕꾸러기 기질이 있을 뿐 아니라 개방에도 비교적 적극적인 태도, 주색잡기도 좋아하는(...) 면모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김경희가 별다른 조치없이 사망할 경우 김정은으로서는 고모부라 함부로 처리할수도 없고 두자니 걸리적거리는 존재가 되버린다. 김경희 개인적으로도 장성택이 자기 죽은 뒤 기쁨조 끼고 잘 먹고 잘 사는게 탐탁치 않았을 듯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김경희의 치매가 심하게 악화되어 사람을 못 알아볼 지경이라, (장성택을 밀어내려는 세력이 부추김과 동시에) 김정은이 마음놓고 장성택을 숙청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 이발소 관련설 (#)[25][26]
  • 메신저 관련설(#)
  • 불경죄 관련설

3.2. 김정은 체제의 취약성

어떤 이유에서인진 몰라도 장성택을 이렇게 속전속결로 보내버린 것은 분명히 어떠한 목적 달성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논평에서 북한이 장성택의 속전속결식 처형을 통해 '극단적 잔학성(extreme brutality)'의 민낯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결국 공포가 김씨 왕조 체제를 지탱하는 기제임을 만천하에 확인시킨 것이다.

장성택의 충격적인 처형은 김정은 1인 지배 체제를 확고히 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김정은 체제의 취약성을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백두 혈통’에 대한 도전은 추호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확실한 본보기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김정은 유일 영도 체제가 아직은 불안정한 상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이 공개한 판결문에서도 장성택이 내각 총리에 오른 뒤 군대를 동원해 정변을 일으켜 최고 권력을 탈취하려는 음모를 꾸몄고,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본인도 이를 시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김정은 체제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당과 군, 내각에 걸쳐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위기 상황을 자인한 꼴이 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장성택은 “나라의 경제 실태와 인민생활이 파국적으로 번지는데도 현 정권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다는 불만을 군대와 인민이 품게 하려고 시도했다”고 자백했다. 또 “경제가 완전히 주저앉고 국가가 붕괴 직전에 이르면 내가 있던 부서와 모든 경제기관들을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가 총리를 하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정은 체제의 실질적 2인자이며, 북한의 핵심 경제 관료였던 장성택조차 북한 체제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품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장성택이 체포될 때만 해도 '설마 고모부를 처형하겠냐?'라는 반응[27]이 대다수였으며, 정치적으로 실각하는 수준에서 끝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런 반응은 북한에서도 마찬가지인지, 되려 숙청에 대해 불만을 가진 인사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라며 조롱하거나 패륜이라며 욕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한다.

3.3. 군부 강경파의 득세

청와대는 장성택 처형 후 북한의 권력 구도의 변화와 강경파 득세에 따른 도발 위협 가능성 등 국가 안보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해서 13일 집중 논의하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장성택 일당 제거는 곧 북한 권력 구도의 교체를 의미하는 것"이라면서 "장성택을 대신할 새로운 세력이 누구인지에도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대적으로 유연한 전략가였던 장성택의 실각으로 북한의 권력 지형은 군부내 강경파가 득세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며 북한은 장성택 숙청을 계기로 김정은 제1위원장은 강경파를 중심으로 '1인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는 북한 군부내 강경파의 득세가 국가 안보와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편 토마스 쉐퍼 북한 주재 독일 대사는 장성택이 숙청당한 것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북한 군부 내 강경파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평가했으며 강경파의 압력에 밀려 장성택의 숙청을 결정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장성택 숙청으로 김정은의 1인 지배체제가 강화된 것도 아니라고 분석했다.[28]

4. 평가

1967년 갑산파 숙청과 도서정리사업[29]으로 모든 반대세력이 사라지고, 김일성 유일영도체계 즉 "김씨 절대 왕조"가 확립된 이후에 (오극렬 정도를 제외하면) 나름대로 독자 세력을 가지고 행보가 주목되던 유일한 인물이었다. 남한을 직접 방문한 김정일의 가장 최측근이기도 했고, 중국이나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개방 지향성도 높은 편의 인물로 여겨졌다. 그래서 김정은 시대에 "2인자"로서 더욱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지만, 결국 북한 역사상 박헌영8월 종파사건 이래 최대의[30] 숙청을 당하는 파란만장하고 비극적인 삶으로 끝나게 되었다.

다만 3대를 보좌하면서 구축한 인맥이 너무 방대해, 이들을 모두 숙청해버리면 권력공백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주석에서 언급한 것처럼, 장성택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중에서도 여전히 멀쩡하게 활동하는 것으로 확인되는 인물들이 몇 있다. 2013년 12월 17일 김정일 사망 2주기 추도행사에 장성택계로 분류되던 로두철 내각 부총리, 김양건 당 비서, 문경덕 평양시 당 책임비서 등이 참석했다.

카리스마나 사람을 끄는 능력은 있었는지, 김일성의 외동딸 공주님 김경희가 학창시절 쫓아다녔고, 이후에도 여러 사람들이 주위에 모였다. 이렇게 주위의 사람이 모여서 두터운 인맥을 당정에 구축하였지만, 이는 김부자의 경계를 사서 두번이나 분파행위로 실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어쨌든 김일성-김정일 시대에는 그나마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처조카인 김정은이 집권하자 방심하다가 결국 비극적인 종말을 맞은 것 같다.

2000년대 남한에서 그를 직접 만나본 이들에게 인품은 의외로 권위적이고, 흐트러짐 없이 진중하며, 강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31] 그러나 북한에서 유일하게 수동적이지 않고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능력있는 관료라는 평가도 함께 받았다.(# ##)

김정일의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저서에서 장성택 관련 일화를 몇가지 소개했는데, 부인 김경희가 장성택에게 이름을 부르면서 반말을 하고 연회석에서 술을 강권해도 화내거나 거부하지 못한 채 주는대로 받아 마시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 또한 언젠가 김정일과의 포커에서 후지모토 자신이 그날 딴 돈을 전부 푸자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뇌까린 적이 있었는데 장성택이 옆에서 그 "칙쇼"란 욕을 듣고는 다음날 아침 자신에게 "후지모토는 돈을 잃어서 무의식중에 그랬겠지만 장군님이 들으면 무사하지 못하니 다음부터 그런 일 없도록 하라."고 주의주는 선에서 그치자 장성택이 도량있는 인물이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정일의 가정교사였던 탈북자 김현식 교수는 "지도력과 추진력은 누구도 가히 따라올 수 없었고, 인간적인 의리와 인간애는 참 두텁고 따뜻했다", "한번 만나기만 하면 강렬한 자석과 같이 관계가 끊이지 않고 계속 다져지는 것이 그가 지니고 있는 독특한 힘이었다"라며 "몸에 배어 있는 강한 지도력과 풍부한 인간성, 민족과 나라를 위한 희생정신"을 극찬했다.(#) 다만 그의 회고록은 김씨 일가에게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물론 장성택은 "김씨 왕조"의 부마로서 덕을 누구보다 많이 보았던 사람이고, 그 체제를 비판하거나 바꾸려던 (드러나는) 시도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장성택의 독특한 위상은 흥미롭게 보아야할 지점이지만, 그것을 추앙하거나, 지나치게 안타깝게 여길 필요는 없다는 시각도 많다. 그저 팀킬일 뿐.[32][33] 또한 장성택 같은 인물까지 죽였으니 새로 권력을 잡은 최룡해 일파가 김정은에게 진심으로 충성할 지도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자기들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북한의 정권 중심부에서 필연적이라 할 수 있지만 장성택이 상당한 부정부패에 연루되었던 것은 분명해보인다. 1차 숙청 때의 행각이나 남한 방문 때의 행각을 보면 대단히 방탕하고 향락적인 인물로 추측되기도 한다. 사형 판결문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장성택은 2009년부터 온갖 추잡하고 더러운 사진자료들을 심복졸개들에게 류포시켜 자본주의날라리풍이 우리 내부에 들어오도록 선도하였으며 가는 곳마다에서 돈을 망탕 뿌리면서 부화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

5. 관련 항목

----
  • [1] 일설에는 함경남도 문천군(현 강원도 천내군) 출신이란 떡밥도 있으나 이는 정치국 위원 주상성의 지역이다. 주상성 역시 김정일의 신임을 받았으나 2011년 미움을 받아 전격 좌천, 해임되었다. #
  • [2] 김일성대학은 일반대학과 다르게 학부가 결정되면 수업은 선택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부여받고 한국의 고등학교처럼 반이랑 좌석도 지정된다. 물론 대한민국은 제비뽑기 등 위에서의 완전지정이 아닌 경우도 많다.
  • [3] 이 인연 등으로 장성택이 원산을 아껴 경제특구로 키우고 싶어했다는 주장이 있었다. 원산은 김정은도 아끼는 도시다.
  • [4]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장성택의 부친이 공산주의자로 소작쟁의를 주도하긴 했어도 김일성은 자신과 연고가 없는 함경도 토착 공산주의자들을 자신의 위협적인 정적으로 여기고 치를 떨었다. 혈통을 제일 중시하는 계급제 사회 북한에서 김일성 정적의 아들이 부마가 된다는 것 자체가 김일성에겐 껄끄러웠을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함경도 토착공산주의자라지만 공신관 관계가 없는 미천한 신분이라 김일성은 늘 불만스럽게 여겼다.
  • [5] 그러나 이 기록은 2014년 10월 방남한 황병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게 물려주었다.
  • [6] 김정남과 이메일 왕래, 전화통화까지 하는 일본의 언론인 고미 요지 씨는 이들이 처형당할 때 북한 당국에서 장성택을 공개처형장으로 끌고 가서 측근들이 죽는 것을 지켜보게 만들었다고 했다.
  • [7] 리용하 제1부부장은 국내 배급 일을 했고, 장수길 부부장은 승리무역 사장으로 해외무역을 담당했다. 다만 장성택의 측근이기도 하지만 정확히는 김경희쪽 측근이라 장성택이 이때는 안심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 [8] 다만 국민의 정부 시절 대북밀사로 장성택을 포함한 북한 지도부와 많이 접해본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오히려 반대로 평가했다. 개혁,개방에 유화적이지만 체제유지를 위해선 무슨 짓이던 할 수 있는 아주 강경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 [9] 경제관료 출신으로 2004년 당시 경제개혁정책(7.1 경제개선조치)을 진두지휘했던 인물. 2006년 경 몰락하여 2007년 숙청(지방 좌천)되었으나, 3년 4개월 만인 2010년 8월 노동당의 제1부부장으로 복귀했다.
  • [10] 결국 이 해석들은 박봉주 총리가 숙청 이후인 12월 14일 주석단에 등장하여 살아남고, 최룡해가 김정은과 함께 숙청 이후 첫 방송 등장한 3인 가운데 한명이 되면서 반반씩 맞는 셈이 되었다.
  • [11] 굳이 따지면 오웰 역시 소련의 행태를 보고 그걸 그대로 소설에 적용 시킨 것이다. 사실 그대로 배경만 옮겼더니 그게 소설이 되네?
  • [12] 앞에선 받드나 뒤에서는 음모를 꾸밈
  • [13] 북한은 명목상으로는 최고인민회의에서 총리를 추대하는 내각제와 비슷한 형태의 국가다. 김일성은 주석제가 확립하기 전까지 북한의 수상이었다. 사실, 이런 명목상의 내각책임제는 딱히 북한이 특이한 게 아니고, 구 공산권 국가들 중 상당수가 이런 체제를 채택했다. 당장 구 소련의 예를 봐도 실권자는 공산당 서기장이었지만 명목상의 국가원수는 최고소비에트 의장이었다. 다만 북한의 경우는 이런 명목상의 내각책임제 상위에 있는 실질적 최고권력구조가 좀 많이 복잡할 뿐이다.
  • [14] 이 언급은 주로 북한이 중국에 수출하는 석탄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15] 남한과 마찬가지로 북한 형법에서도 군인, 인민보안원(경찰), 군부대에서 일하는 민간인(군무원)이 범죄를 저지르면 군사재판으로 넘어가도록 규정되어 있다.
  • [16] 형량 감형이라고 해 봤자 무기징역 뿐인데, 그래봤자 무기징역으로 선심쓰는 척하며 정치범수용소에 처박아놓고 서서히 피를 쥐어짜서 죽일 뿐이다. 직접적인 방법이냐 간접적인 방법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사형에 처하는 것은 다를 게 없다.
  • [17] 다만 박격포로 사형을 집행하다는 설은 의문의 여지가 많다. 이건 공개방식의 기관총 총살과는 달리 처참한 광경을 대중에 공개함으로써 공포를 일으키는 전시효과를 노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라크 후세인 정권 하에서는 폭발물로 사형집행을 해도 군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형수의 가슴에 소형폭발물을 붙이고 작은 언덕 너머에서 폭발시킨 뒤 구경꾼들을 접근시켜 그 시신을 관람하게 했는데 박격포 처형은 안전거리 확보 및 화력으로 인해 구경이 어렵다. 당연히 고통을 덜어주려고 포격으로 처형했을 리도 만무하다. 게다가 공개처형은 공포를 얻는 전시효과 말고도 중요인물을 어디 빼돌리고 시체만 놔뒀다는 소문을 원천봉쇄하려는 의도도 있기 때문에 박격포 처형은 공개처형으로써는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다만 이라크처럼 폭발물로 처형한 사실이 와전되어 박격포 처형이 됐을 가능성은 있다.
  • [18] 북한에서는 사형을 집행했다고만 말했고, 처형방법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밝힌바 없다.
  • [19] 또한 북한군의 14.5mm 4신 기관총으로(총알 하나가 보드마카 크기이다 ㅎㄷㄷ) 으로 처형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대공방어용의 4신 기관총의 폭은 사람의 폭보다 넓기 때문에 처형용으로 사용하기는 무리다. 어쨌든 이런 중기관총으로 사람을 수십발 갈기면 사람은 그대로 으깨진다. 그러니까 사람 형체도 남아 있지 않는 살덩어리 + 피투성이만 남는 것이다. 이를 치우는 방법은 그냥 화염방사기로 소각하는게 제일 간편하고 위생적(?)이다. 북한입장에서는 참관인에게 겁을 줄 뿐만 아니라 위생적(..)이니 일석이조다.
  • [20] 이런 일은 북한과의 경제 협력에서는 흔히 일어난다. 값을 이미 합의해놓고 갑자기 시세가 어떻다면서 웃돈을 더 받으려 하는 용팔이나 하는 양아치 짓. 애초에 자기들이 시세 대로 받을 처지가 아니라는걸 모른다. 이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노동가치설예 따라서 모든 물건에 '일정한' 제 '가치'가 있고, 이를 어겨서 이윤을 내는 것은 착취라는 생각이 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 [21] 북에서는 코크스 대용으로 쓴다.
  • [22] 이설주설을 계속 언급해보려던 MC도 그렇고 나중에 추가된 패널도 그렇고 자기가 생각해서 그랬겠는가, 편집국장이 시청률 꼴리도록 그렇게 진행하라고 지시했겠지.
  • [23] 실제로 탈북 기자 주성하는 링크 속 김정은의 뚱한 표정과 헝클어진 머리는 걍 숙취 때문일 거라고 간단명료히 분석한 바 있다.(#)
  • [24] 치매, 중풍, 뇌종양 수술 등 병명은 여러가지가 나오고 있지만 와상생활 중인 것은 거의 분명한 듯. 자세한 것은 김경희 항목 참고.
  • [25] 창이 뜨면 주소창에 엔터 한 번 더 쳐 주자.
  • [26] 그런데 장성택 처형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일보에서 김정은의 헤어스타일 보도를 했다.
  • [27]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친인척이 아니라 자신의 직계 존속까지도 죽인 사례는 많다. 당장 당나라만 보더라도 태종은 자기 형을 죽였고 수나라 양제는 자기의 아버지를 죽였다.조선 또한 왕자의 난 등 권력을 위해서라면 부모, 형제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권력 기반 안정을 위해서, 친인척, 직계 가족을 처형하거나 귀양 보낸 사례는 역사에서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물론 앞의 것들은 끽해봐야 중세니 이것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북한의 정치제도가 얼마나 막장인지 알 수 있지만.
  • [28] 이는 김정은이 공포 정치를 통해 본인의 입지를 단단히 하기 위해 장성택을 제거했다는 분석과 명백히 대비된다.
  • [29] 사실상 북한판 문화대혁명이다.
  • [30] 박헌영은 최종적으로 종파사건과 함께 처형되었으니 같은 사건이라 볼 수도 있다. 황장엽의 탈북 때 당한 인구가 수천명이지만, 장성택 시대에 함께 걸려 숙청될 인구는 수만명으로 추정된다. 그나마도 대부분이 당원들일 것이니 거의 북한 엘리트의 몇분지 일이 타격을 받는 일이 된다. 반면 박 내각 총리 등의 생존으로 보아 시범타나 확실한 측근들을 빼고는 의외로 상당수는 살려둘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지금 군부 인물 가운데 장성택 측근으로 분류되었다가 도리어 숙청에 적극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는 인물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 [31] 이는 그가 당시 김정일에게 숙청을 당한 적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김정은 승계 이후의 그의 유독 삐딱했던 자세들은 결국 그의 실각을 부르는 원인이 되었다는 평가가 많다.
  • [32] 주성하의 경우 장성택도 자기 권력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인 천하의 개쌍놈이라 그렇게 처참하게 죽은게 싸다고 평가하고 있다.
  • [33] 사실, 황장엽의 탈북이나 장성택의 숙청등을 보면 본질적으로 체제내 권력갈등에서 한 축이 득세하고 다른 축이 실각한 것 뿐이지 체제 개혁을 시도하던 양심세력들이 숙청당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한국 언론들에 의해 이것이 무슨 비극처럼 포장되는 것은 사실 우스운 일이다. 특히, 북한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상징처럼 내세우던 보수언론들이 얼마 전까지 북한 정권의 수뇌였던 인물들을 옹호하는 것은 거의 개그에 가깝다.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Supported by Veda

엔하위키 미러는 리그베다 위키의 컨텐츠를 빠르고 안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사이트입니다. (자세히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