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
한 사람이 국가의 모든 권력을 틀어잡고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정치체제. 독재와는 다르다! 독재와는!
민주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간 20세기 이전에 동서양 가릴거없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정치체제이다. 대개 군주 혹은 왕과 국가가 동일취급되는 것이 특징으로, 한 술 더떠 땅까지 군주가 지배한다는 왕토사상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전제군주제는 군주에 대한 제재장치가 전무하기 때문에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은 독재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 명제에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이라면 바로 들 수 있을 예외가 하나 있다. 밑에서 서술하겠지만, 전제군주제였음에도 왕한테 태클을 거는 기관을 정식 정부 기관으로 설치했던 조선. 이 녀석 때문에 '전제군주제 = 독재'라는 명제는 참이 아니게 된다.
개념 잡힌 지도자가 국민을 위해 권력을 쓰면 강력한 권력을 기반으로 하는 체계 잡힌 좋은 정책을 통해 국가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지닌다는 장점이 있으나[1] 반대로 지도자가 개념없이 무소불위로 권력을 휘두르면 국가 막장 테크로 가게 된다. 따라서 신의 뜻 내지는 단순한 운에 따라 국민과 국가의 운명이 완전히 바뀐다.
문제는, 전제군주제 하의 지도자는 아들이나 가까운 친족에게 지도자 자리를 계승을 하기 때문에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나타나서 현재는 거의 사장되고 있다.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입헌군주제라는 정치제도가 17세기 영국에서 명예 혁명 후에 최초로 만들어졌다.
부탄의 왕은 정치 제도를 전제군주제에서 민주주의로 제도를 바꾸려고 노력하면서, 극렬하게 반대하는 자국 국민과 의회(…)를 설득할 때 직접 이 단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자기가 정치를 잘 하면 그걸로 충분하지만 뒤에 나오는 왕이 폭군이면 나라 꼴이 엉망이 될 수도 있으니 민주주의가 낫다고. 이 나라는 결국 왕의 저런 노력 덕에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대신 대가로 행복지수가 조금 낮아졌다고.
이것을 뒷받침하는 이론으로는 왕권신수설이 있다.
조선은 사실상 전제군주제 국가였으며 개화기 때 입헌군주제를 주장했던 일부 세력에 대해서 입에 거품을 물고 까댔다. 독립협회가 강제 해산된 이유가 이들이 공화제를 추진하려 한다는 거짓 보고 때문이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이 必要韓紙? 법전이 있기는 했었지만 모두 왕은 그 법 위에 있는 것을 전제로 쓰여진 법전이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유교의 통치 이념 자체가 어느 정도는 입헌군주제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도 있으나[2], 유가는 이미 법가[3]를 비롯한 다양한 사상을 받아들여 군주권을 정당화한 상태였다. 애초에 기본적으로 백성(民)보다도 절대적인 천(天)의 개념이 권위의 가장 큰 근거라는 점을 생각하면[4] 근대 법치주의 국가와는 큰 차이가 있다.
대대로 신권이 드셌기에 왕이 뭘 하려고 하면 "아니 되옵니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삼창하는 신하들이 있기는 했고, 영조가 세자에게 군포를 내게 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조선이 신권이 강했다고 해도, 왕의 권한이 마냥 약했다고 보는 것 또한 겉보기만 보고 섵불리 판단하는 것이다.
조선에서도 법적으로 왕은 거의 완전한 생사여탈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왕과 신하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주는 기관인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가 존경을 받았던 이유가 바로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해야 하는 그들의 속성 때문에. 물론 진짜로 임금이 죽여버렸다간 스스로 '나 폭군이요' 하고 선언하는 꼴이라 실제로 죽은 삼사 관원은 별로 없다. 보통은 그냥 귀 닫거나 파직으로 끝냈다...만, 연산군 등의 싸이코 폭군이 뜨면 그것도 없는 거고, 숙종이 송시열을 죽여버린 것처럼 이론상으로는 왕이 마음만 먹으면 제 아무리 수천의 제자가 있고 현인으로 칭송받는 거물이라 해도 목이 무쇠로 되어 있지 않는 한은 살아남을 수 없었다.
조선에서는 이론적으로 왕은 모든 신하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중론을 취합하여 실행하는 것을 관례로 삼았다. 이러한 관례하에서 이루어진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마치 왕들은 모두 우유부단하고, 신하들의 뜻에만 따라 이러저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정치 현실에서 왕이 신하들의 중론을 따르건 따르지 않건 그것은 왕의 마음이었고, 반대로 왕은 마음대로 신하를 파직시킬 수 있고, 별 어려움 없이 귀양보낼 수도 있었으며, 생사여탈의 권리까지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특히 사림이 대두되기 전인 초기~중기 무렵의 조선의 왕들이 '신하들의 언로'를 통제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물론 이시기에도 한명희와 같은, 그 세력이 하늘을 찌를듯해 왕조차도 함부로 어쩌기 힘든(이론적으로야 왕이 절대적이지만, 현실은 이론이 아니다...) 대신들이 존재했다는 것은 이시기에도 단순히 왕이 절대적이였고 모든것을 왕이 주도했다고 보기 힘듬을 알수 있게 해 준다.
여기에 중기 이후의 사림의 대두, 특히 '산림'의 등장은 이러한 기존의 정치 공식을 파괴하는 것이였다. '산림' 이란 존재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인 '과거에 매달리지 않는다'(= 정부의 녹을 먹지 않으며, 따라서 왕이 주도하는 조정의 여론몰이에서 자유롭다.)는 점은 왕 주도하의 여론몰이를 사실상 무력화시켰으며, 향촌의 사족층은 이들 산림을 중심으로 지방에서의 여론을 형성하여 왕이 인위적으로 언로를 통제하는 것을 크게 저해했다. 이는 다시 이러한 지역 기반을 토대로 하는 조정 대신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격이 되어 조정 내에서의 언로 또한 왕이 원하는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된다. 거기다 선조부터 현종때까지 조선의 왕들은 정통성 측면에서 상당히 불리한 상태였고 이들 향촌 사족과 그들의 대표격인 산림의 지지가 절실했기 때문에 이전처럼 마음대로 언로를 통제하여 원하는대로 정국을 주도하기 힘들었다.
이러한 일은 조선의 왕들에게는 상당히 큰 장해요소로 다가왔으며, 결국 정통성이 가장 튼튼한 왕이였던 숙종부터 시작하여 환국정치, 영조의 산림 부정, 정조의 향악 통제 등 지방 여론의 장악에 나서 이를 달성한다.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 등에서 보이듯 정조대가 되면 다시 조선의 왕들은 조정 내에서의 언로와 지방의 여론을 통제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전후사정을 살펴가며 실록에서의 조정의 논의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히 조선 정치의 흐름이 아닌, 시기에 따른 왕의 정통성과 정치적 상황, 시대에 따른 향촌 사족층의 영향력의 증감 등을 세부적으로 따져야 할 것이다. 신하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왕이 흔들려 다녔다거나, 그 반대로 왕이 대부분의 논의를 마음대로 주도했고 조정 내에서의 논의는 왕의 행보를 추인하는 과정에 불과했다 한다면 이는 지나치게 단순화한 의견일 것이다.
다음은 은하영웅전설의 양 웬리가 버밀리온 회전 이후, 라인하르트와의 회담에서 언급한 말.
" 민주주의에서 국민을 해칠 수 있는 권리는 국민 자신 이외엔 누구에게도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루돌프 폰 골덴바움, 욥 트류니히트가 권좌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국민들 자신의 책임입니다. 남을 택할 수가 없습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점입니다. 그러나 전제정치에서는 국민이 정치의 해악을 가져온 것이 아니므로 책임질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전제군주의 죄는 그만큼 배가되는 것입니다. 그 죄의 크기와 비교하면 100명의 명군이 베푼 선정도 아주 작은 것입니다. 더욱이 각하(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처럼 총명하신 군주의 출현은 결코 흔하지가 않습니다. 그 점을 생각하면 공과는 명백해진다고 저는 봅니다."
요약하자면,전제군주제의 장점 : 이게 다 군주 탓이다.
단점 : 군주 까면 사살.
단점 : 군주 까면 사살.
2 현실에서의 관련 국가와 통치자 ¶
- 사우디아라비아
- 파드 국왕
- 파드 국왕
- 바레인
- 바티칸
- 조금 애매하기는 하지만 일단은 교황이 전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전제군주제 국가로 분류되기는 한다.
- 브루나이
- 브루나이 국왕 하사날 볼키아. 말 그대로 왕
- 브루나이 국왕 하사날 볼키아. 말 그대로 왕
- 아랍 에미리트[5]
- 카타르
- 형식상 입헌군주제 형식을 갖추었고, 국왕이 비교적 청렴한 편인데다 개혁 정치를 하고 있고 그 결과가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왕가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전제군주제이다.
- 형식상 입헌군주제 형식을 갖추었고, 국왕이 비교적 청렴한 편인데다 개혁 정치를 하고 있고 그 결과가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왕가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전제군주제이다.
- 쿠웨이트
- 북한
- 통가
- 일단은 입헌군주제로 의회가 있기는 하지만 총리와 각료를 국왕이 임명한다는 점과, 의회를 구성하는 30명 중 이 각료가 12명, 귀족 중 선출되는 의원이 9명으로 2/3를 넘는다는 점에서 전제군주제에 가깝다. 평민이 선출 가능한 의원은 단 9명이다.
- 일단은 입헌군주제로 의회가 있기는 하지만 총리와 각료를 국왕이 임명한다는 점과, 의회를 구성하는 30명 중 이 각료가 12명, 귀족 중 선출되는 의원이 9명으로 2/3를 넘는다는 점에서 전제군주제에 가깝다. 평민이 선출 가능한 의원은 단 9명이다.
- 스와질란드
- 에이즈 감염률이 40%에 달하는데도 국왕은 부인을 13명이나 두고 호화판 생활을 일삼고 있어서 민주화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단 형식상 입헌군주제이나(의회가 있다.), 이 의원들은 사실상 국왕이 내놓는 정책을 동의하는 거수 셔틀에 불과하다.
- 에이즈 감염률이 40%에 달하는데도 국왕은 부인을 13명이나 두고 호화판 생활을 일삼고 있어서 민주화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단 형식상 입헌군주제이나(의회가 있다.), 이 의원들은 사실상 국왕이 내놓는 정책을 동의하는 거수 셔틀에 불과하다.
3 가상에서의 관련 국가와 통치자 ¶
- 스타워즈의 은하제국
- 유일한 황제 팰퍼틴
- 스타크래프트의 코랄 제국
- 초대 황제 아크투러스 멩스크
- 은하영웅전설의 은하제국
- 골덴바움 왕조 초대 건국자 루돌프 폰 골덴바움
- 골덴바움 왕조 역대황제와, 프리드리히 4세
- 로엔그람 왕조 초대 건국자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 코드 기아스 반역의 를르슈의 신성 브리타니아 제국
- 제 98대 황제 샤를 지 브리타니아
- 제 99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
- 프리큐어 시리즈의 관리국가 라비린스
- 총통 메비우스
- 총통 메비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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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좋은 예로 카타르가 있다.[2] 일단 왕은 백성의 뜻에 의해 추대된다는 이념.
[3] 흔히 법가가 왕의 통치를 정당화하고 법을 왕의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법가에서 왕은 법률의 집행자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근대적인 법치주의 개념에 가까운 것도 아니다. 법치주의 개념이 국민이 지켜야 할 최소한을 규정하고 이를 통해 국민의 진정한 자유를 보장한다면, 법가는 국가의 모든 것을 법에 의해 규정하고 철저히 그에 맞춰 국가를 운영한다. 모든 권위가 부정되고 철저히 법만이 권력의 근거와 실제가 되는 것이 법가 사상이다. 왕도 법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이러한 법을 비난하는 것은 물론 법을 찬양하는 것조차도 국가 이념을 흐릴 수 있다면 처벌받아야 한다(실제로 상앙은 태자가 잘못을 저지르자 묵형을 해야 한다고 바득바득 우겼고 법을 찬탄하는 백성들도 다 잡아 넣었다). 법가 치하의 왕은 이념적으로 최고 수권자일 뿐이지 국가 통치 이외의 아무것도 할 수 없다(실제로는 물론 그럴 리 없었지만). 그러나 법가는 효율성 면에서는 고대 국가의 이념 중에서 최고 수준이라고 할 만하지만, 법의 정당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기는데 역사에서는 이러한 정당성을 유가를 통해 뒷받침해주는 모습이 나타난다. 한무제 때 동중서의 기(氣) 이론이 채택되었음에도 실제 정치는 매우 법술적이었던 것은 이러한 데서 기인한다.
[4] 인간은 누구나 이러한 천(天)의 속성(道)을 이어받았으며, 따라서 이것이 민본주의를 뒷받침한다. 이러한 속성은 맹자와 성리학을 거치면서 세계 자체를 유교 질서 아래에 포괄하는 원리로 발전한다. 법가의 효율성이 훨씬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사상계에서 유교가 끝까지 살아남은 건 이러한 절대적인 정당성과 발전하는 포괄성 때문이다. 최한기의 글들을 보면 심지어 서양 과학까지도 기(氣) 철학을 통해 이기론의 아래에 포섭하려고 했으니, 뭐 유교가 근대 사상으로 발전할 기틀이 전혀 없느냐고 말하자면 좀 곤란하긴 하지만.
[5] 다만 이 자체는 7개의 왕정국가의 연합이며, 실제 국가 체제는 공화정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