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
戰鬪機
Fighter Aircraft.
Fighter Aircraft.
보통 영어로는 줄여서 'Fighter'라고 한다. 군사 관련 정보를 다룰 때 'Fighter'라는 말이 나오면 웬만하면 이걸 뜻하는데, 별로 어려운 단어도 아닌데 개판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포케울프 폭격기라던지, 제공기라던지... 총을 총이라고 안부르면 이상하듯이 전투기는 그냥 전투기다.
파이터라고 하면 보통은 다른 항공기와의 전투를 맡는 기종, 즉 '공대공 전투기'를 뜻한다. 전투용으로 쓰이는 항공기를 통틀어서 말하는거면 'Combat aircraft', 'Combat air vehicle', 혹은 'Warbird'같은 단어들이 있으니 헷갈리지 말자.
현대에는 제공권과 지상 공격을 병행할 수 있는 전폭기가 유행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대공 전투만을 위한 전투기'는 그리 많지 않다.
2.1 제1차 세계대전 ¶
처음엔 정찰나간 동종업계 종사자끼리 서로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열받아서 서로 권총을 쏘고 벽돌을 던지다가, 본격적으로 항공기에 기관총을 탑재하기 시작하면서 전투기의 역사가 시작된다... 는 건 농담이고 사실 항공정찰로 인해 아군의 위치를 알아낼수 있다는 이유가 제일 컸다. 이걸 막기 위해 무기 탑재가 시작된 것.
초기에는 보병용 기관총을 후방에 탑재하거나 날개 위쪽에 탑재하고 사격하던 방식(후방사수가 따로 타거나 조종하다 말고 기어올라가서 쏘는)이었으나, 항공기의 비행 축선에 조준선을 일치시킨 전방 기총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확 달라져버렸다. 물론 내가 쏘는 기관총에 내 전투기의 프로펠러가 부러지면 안되니까 처음에는 프로펠러를 강철로 보강한다던가 하는 꼼수를 쓰다가, 독일의 포커 아인데커(단엽기)에 이르러 제대로 된 프로펠러 동조 장치가 장비되었다. 엔진 샤프트에 캠을 장착하여 프로펠러가 기총 앞에 오면 발사를 중지시키는 싱크로나이즈드 기어가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전방 기총이 출현하면서부터 비로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우리가 아는 도그파이트가 시작되었다. 꼬리물기 싸움이 시작되자 이내 양 진영에서는 잽싼 선회가 가능한 항공기를 선호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신형기의 개발도 이쪽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 정점에 선 기체가 붉은 남작의 포커 삼엽기로, 순간 정지 후 180도 반전이라는 극단적인 선회 능력을 갖추기에 이른다.
이렇게 선회가 중시되는건 당시 엔진의 출력이 낮았기 때문이다. 당시 사용되는 대부분의 엔진은 오늘날의 이륜차나 경차 엔진보다 출력이 낮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항공기가 비행성능이 유사했고, 따라서 고도와 속도 우위를 점하는 에너지 파이팅이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2]
또한 레이더도 휴대 통신 장비도 없었기 때문에 적을 사전에 발견하고 추격하여 제압하는 현대적인 항공 전략을 사용할 수 없었고, 모든 전투기 승무원들은 적이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공역으로 각자 알아서 출격하여 육안을 이용하여 상대방을 탐색했다. 따라서 양 측의 실력차이가 아주 크지 않은 이상, 보통은 동시에 서로를 발견하고 전투 기동에 들어가 정정당당하게 교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적을 만나는 것부터가 힘든' 이러한 전장 환경으로 인해 당시의 공중전에는 때아닌 기사도가 꽃피었다. 마침 당시 전투기 승무원들은 귀족 출신들이 많았고 그들에게 있어서 "항공기는 하늘의 말이자 파일럿은 하늘의 기사"라는식으로 받아들여졌다. 때문에 대전 초기에는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신사적인 행동이 많았는데, 만나면 손을 흔드는 것 부터 시작해서 적 비행장에 결투장을 던지고 정해진 시간에 만나 결투를 한다거나, 죽은 적 파일럿에게 애도의 편지를 공중에서 보낸다거나 하는 사례가 많았다.
또한 당시 승무원들은 전투기에 자기만의 문장이나 가문의 문장을 그려 넣는다든지 개성있는 자기만의 도색을 칠하기도 했다. 역시 '적을 만나기 힘든' 전장 환경 때문에, 적의 항공력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미끼로 내걸어서라도 적을 끌어들여 교전을 벌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유명한 붉은 남작이 자신의 기체를 선명한 붉은 색으로 칠한 것도 이러한 이유였는데, 막상 붉은 도색이 너무 유명해지자 연합군은 붉은 기체를 보기만 해도 도망쳐버리는 역효과가 발생했다(....)
그러나 공중전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항공 전역의 중요도가 올라간 대전 후반으로 갈수록 1:1 결투장을 보내놓곤 구름 뒤에 떼거지로 숨어있다 덮치기도 하는 등 초기의 신사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꿈도 희망도 없는 아귀다툼으로 변모해 간다.
2.3 제2차 세계대전 ¶
속도와 고도, 즉 에너지에 의한 항공전이 성립되었다.
다양한 항공이론이 존재했고 다양한 국가가 다양하게 발전시켜나갔기 때문에, 초반은 혼란 그 자체였다. 후방 기관총탑만 탑재한 디파이언트에 낚인 Bf-109라던가 전쟁 끝까지 성공적으로 작전한 복엽 캔버스 뇌격기 소드피시, 시대에 뒤졌지만 단엽기와 꿋꿋이 맞서 전과를 거둔 복엽기 글래디에이터(겨울전쟁, 몰타항공전) 등등... 그리고 숙련된 파일럿과 신출나기의 싸움은 대부분 더 많이 훈련한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기술은 발전했고, 결과적으로 승부는 간단했다. 누가 더 빠른가, 누가 더 높은가. 강력한 엔진, 튼튼한 동체, 최대한의 화력을 어떻게 조합하는가가 결국 승부의 핵심이 되어버렸다. 각국의 걸작 항공기들이 하늘을 누볐고, 결국 연합군이 승리했다. 제로센의 초반 분전은 고양이 시리즈에 씹혔고, 독일의 하늘은 머스탱과 썬더볼트가 양분했다. 영국은 스핏파이어를 비롯한 여러 우수한 전투기들을 개발했지만, 근본적으로 방공전투기로서의 성능을 추구한 나머지 항속거리의 부족으로 독일 상공을 지배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대전후반 타이푼, 템페스트 같은 걸출한 전폭기를 개발하여 독일군에게 '야보'의 공포를 안겨 주었다.
소련은 독소전 공중전의 양상이 고공 폭격기들의 전략 폭격이 아닌 슈투카와 IL-2로 대표되는 강력한 지상 지원기들의 저공 근접지원이 중시되는 환경이라 적 공격기들을 잡거나 적 전투기들로부터 아군 공격기를 호위하기 위해 중/고고도 성능이나 상승력보다는 저고도에서 우수한 선회력을 보이는 전투기들을 선호했다.
기본적으로 2차대전 기간의 공중전은 전금속제 단좌 단엽기의 시대였다. 또한 보다 강력한 엔진을 가진 쪽이 보다 여유있는 설계를 가능하게 했고, 결국 싸움에 이기는 길을 열었다.
2.4 한국전쟁 ¶
2.5 베트남전 ¶
미사일 만능주의가 호되게 뒤통수를 맞게 된 계기가 되었다. 대만 해협 위기 당시 거둔 AIM-9 사이드와인더의 놀라운 전과(당시 폭발하지 않고 꽂힌 사이드와인드를 역설계해 소련은 K-13 공대공미사일을 만든다) 이후, 미사일이면 장땡개념에서 기관포를 전투기(F-4)에서 철거한 미 해/공군은 베트남의 Mig-17/19/21에게 근접전에서 상당히 고전하게 된다. 비록 미군의 교전 수칙이 까다로왔다고는 하나, 역사상 최악의 교전비를 거두고 만 전투를 통해 미국과 소련은 각국의 전투기 개발 사상을 재정립하게 되었다.[3]
마하를 가뿐하게 넘어가는 전투기들이 대거 전쟁에 투입되었지만, 결국 꼬리를 물어야 한다는 문제는 여전했고 항공기의 기동성능에 사람과 항공기가 버티지 못한다는 문제 때문에 근접 항공전은 여전히 음속 이하에서 벌어지게 되었다. 이후 초음속성능만 보고 아음속 기동성능을 포기한 기체들은 별로 대접받지 못하게 된다.
이거저거 다 해보겠다고 설계한 전투기가 죽쑤는 것을 본 미국 공군은, 대놓고 하늘의 제왕(Air Superiority Fighter. 그러니까 말 그대로 제공권 장악용 전투기가 개발 모토였다)을 목표로 해서 F-15를 개발하게 된다.[4] 또한 미국 해군은 F-14를 개발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정밀 공격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우루루 가서 대충 쏟아붓는 것보다, 정확히 노리고 딱 한대 때리는 쪽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북폭을 통해 실제로 보여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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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격기와 폭격기의 차이는 무엇인가도 헷갈리기 쉬운데, 폭격기가 보통은 특정 지역, 건물, 교량같은 고가치 목표물에 큰 '한방'을 날리는 용도이고, 공격기는 적 지상군이나 이동 목표물을 식별해가며 직접 공격을 목표로하는 기종들이다.[2] 물론 동일 시기에 투입된 기체간의 우열을 말하는 것이다. 수직 기동을 취하면 부서지던 1914년의 기체와 과급기를 장비하고 수직 상승도 가능했던 1918년 기체의 출력 차이는 그야말로 넘사벽.
[3] 미국은 근접공중전을 더 중시하게 되었고, 소련은 반대로 F-4의 BVR에 감명을 받은 나머지 중거리 교전에 초점을 맞춘 MiG-23을 내놓게 된다(...)
[4] 실제로 F-15 개발팀 문에다 지상에는 단 1%로도 할애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붙어져 있었을 정도.
[5] 다만 포클랜드 전쟁당시 아르헨티나 전투기들을 가장 크게 괴롭힌 요소는 바로 항속거리였다. 포클랜드에서 가장 가까웠던 공군기지의 활주로가 영국 공군의 폭격에 사용불능이 되어버린 바람에 더 멀리있는 곳에서 발진할 수 밖에 없었고 그로인해 공격목표인 영국 해군은 항속거리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서 제대로 공격하기 어려웠다. 덕분에 목적지에 도달해도 체공시간 5분 미만. 이렇게 급하게 공격을 하다보니 폭탄의 신관을 조작 못하거나 너무 낮은 고도에서 투하하여 폭탄이 터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었다.
[6] 걸프전 때 전개되었던 다국적군의 항공력은 전술기체 수로 봤을 때 현재 대한민국 공군력의 약 5배, 조기경보기나 공중급유기 등의 지원세력의 역량까지 포함하면 무려 10배 가량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전력이었다.
[7] 다만, 이렇게 압도적인 항공력으로도 꽁꽁 숨어있던 공화국수비대를 격멸하거나 스커드 미사일들을 소탕해내지는 못했고, 사담 후세인의 항복이 100시간 지상전에서 이들이 완전히 녹아내린 다음에야 이뤄진 점은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사실 제대로 된 국가간의 전쟁에서 항공력으로 적국의 방공망을 제압하고 전쟁수행능력에 의미있는 수준의 타격을 줄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며, 실제로 2011년의 오디세이 새벽 작전에서 미국이 손을 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국가들은 당장 떨어뜨릴 폭탄의 부족으로 애를 먹어야 했다.
[8] 엄밀히 말하면 관제 등의 지원이 없으면 안된다는 기존의 상식을 재확인 시켜준 것에 가깝다. 이라크의 지상관제 시설은 전쟁 시작하자마자 무력화됐다.
[9] 최초 투입은 아니다. F-117의 최초 실전 투입은 미국의 파나마 침공 때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