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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민주의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 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 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태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니묄러 신부,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
우리의 경우, UMC의 "사람들을 착하게 만들어 놓았더니" 같은 것도 유명.
1 개요 ¶
정치적 무관심은 정치에 대한 불참가를 야기하고 이는 다시 정부가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국민의사가 정부에 의해서 대표되지 않게 되고 결국 권력은 이러한 불참가자의 필요와 이해를 무시하거나 고려하지 않아도 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책임지지 않는 책임질 필요가 없는 지배자를 만들게 되어 권력의 남용에까지 이르게 된다. 또한 정치적 무관심과 정치적 무지와 정치적 불참가와의 사이에는 일종의 악순환의 관계가 있다.
이는 정체된 정치 풍토와 기존의 정치체제의 존속에 유리한 결과(즉 독재)를 낳을 수 있으며 또한 축적된 정치적 무관심이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를 통해 극단적인 형태로 폭발할 수도 있다(파시즘,나치즘 등). 이처럼 되면 연속적이고 점진적으로 사회가 발전하는 것을 방해하며 큰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정치적 무관심의 폐해가 어떤지는 위에 인용한 시를 참조
반대로 정치적 참가가 일상적인 사회에서는 그 필연적 결과로서 정치적 학습의 기회를 많이 하고 정치적 책임의식이 강해지며 자기의 정치 참여에 대한 자신감과 적극성이 강해진다.
2.1 전통형 무관심 ¶
정치문제가 자기는 다른 세계의 일이며 정치는 특별한 사람, 높은 사람만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정치를 권력자·지배자·특별한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정치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태도이다. 이 무관심은 은연중에 가지게 된 권력에 대한 충성과 복종심이 기저에 깔린 경우가 많다. 심하면 권력자는 항상 서민을 위해 고생하고 있으며 국민들은 지도자의 영도력에 추진력을 실어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까지 미치게 된다.
- 신뢰형 무관심: 현 정치체제나 권력의 작동에 대하여 그 공정성과 정통성에 대한 깊은 신뢰가 원인이 되는 경우이다. 선거 때는 의무적으로 투표하지만 그 결과에 대한 심판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신화시대 중국의 어떤 노인이 변장한 왕의 면전에서 "이렇게 나라가 잘 돌아가는데 왕이 무슨 상관이냐?"라고 말했다는 예시가 있듯 정말로 정치인들이 믿을만해서 믿어 주는 경우에는 민주주의로서는 최상의 상태라고 할 수 있지만,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이런 형태의 정치적 무관심이 발생했을 경우엔, 정치 체제가 점점 이상해져도 눈치를 채지 못하다가 시민들이 다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는 이미 헬게이트가 열린 뒤일 것이므로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는 상태이다. - 무정치형 무관심: 국민들이 정치적 참여에 신경쓸 시간에 자신에게 더 직접적이고 확실한 이익을 주는 활동에 더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또는 자신의 정치참여활동으로 얻는 사회적 이익에 비해서 정치참여로 인해 받는 개인적인 피해가 너무 크다고 여기는 경우이다.
아테네에서는 이를 피하기 위해 아고라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그날 일을 쉬어도 되도록 참여 수당을 지급했다고 한다.
2.2 현대적 무관심 ¶
근대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정치적 무관심은 체제와 상호 모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의 여러 양태 때문에 정치적 무관심이 일어나고 있다.
- 굴절적 무관심: 원래는 강렬한 정치적 관심이 존재했었는데도 불구하고 정치에 대한 요구와 기대가 뜻대로 실현되지 않기 때문에 환멸을 느끼고 그로 인해 정치적 관심이 얕아져 버린 경우를 가리킨다. 기대가 무력감과 실망으로 돌아오는 것이 반복되다가 끝내
생각을 그만둔다정치적 참여를 포기한다. 내가 투표한다고 혹은 내가 투표 안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혹은 이 놈이 되나 그 놈이 되나 마찬가지라고 여기는 경우이다. 극단적으로 이는 대중의 소외 현상을 불러올 수 있느며 권력으로 하여금 현상유지를 가능하게하여 권력의 폭력화를 허용하게 된다. 이 상태에서는 권력이 소수집단을 폭력으로 탄압해도 잘 발견되지 않고, 공론화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로 밑에 서술되어 있는 실존적 무관심과는 잘 구분해야 한다. 이쪽은 진짜로 무관심해진 것이고, 실존적 무관심은 무관심의 가면을 쓰고 잠복해있는 형이다. - 사생활화형 무관심:사회는 복잡하고 전문화되면서 사회 문제와 현상을 파악하는데 과다한 노력이 들게 된다. 때문에 개인은 거대 담론을 피하고 개인적인 이익과 행복만을 추구하게 된다. 따라서 국민들은 공공의 이익과 사회발전보다 자신에게 밀접한 이해관계에 민감해지면서 생기는 경우이다. 이렇게 되면 권력은 개인들에게 눈앞에 이익을 제공함으로써 사소한 이익을 만족시켜 주면서 다른 한편으로 강압을 펼침으로써 눈치채지 않게 장기적으로는 사회에 불이익이 되는 결정을 내리고 추진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정치인들이 특정인들이나 자신의 이해관계인들에게는 이익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에 결정적인 불이익이 되게 하는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행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 형태에서 소위 '회유와 강압'의 정책이 쉽게 나타난다. 대국적인 식견과 견해를 가진 정치인보다는 당장 지역구 주민이 좋아하는 공약을 내세우는 정치인이 쉽게 당선되는 현상이 이 때문이다.
- 소비형 무관심: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국민들이 소비에 몰두하고 달콤한 대중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면서 골치아프고 어려운 정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되는 경우이다. 이렇게 되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은 상호간에 손을 잡고 더욱 매스 미디어나 술 등으로 소비형 무관심을 조장하여 이 무관심을 지레로 하여 대중조작을 활발히 진행하게 된다.
우민화 정책이 바로 이것을 유도하기 위한 것.어떤 형식이든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할 수 있으면 우민화 정책으로는 성공이다. 대표적인 예로 제5공화국이 국민의 정치 무관심화를 유도하기 위해 3S (섹스, 스포츠, 스크린) 정책을 실시했다. 그래서 70년대 볼수 없었던 에로영화나 프로 스포츠가 80년대 갑자기 생겨난게 바로 이때문이다. 오공이 88올림픽을 개최하려 한 것도 사실은 이런 정책의 연장선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정책에도 불구하고 오공은 망했어요 - 실존적 무관심: 이 경우는 의도된 무관심이다. 실제로는 무관심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지만, 겉으로는 무관심의 탈을 쓰고 있는 것이다. 무관심으로 있을 수 있는 한은 무관심이지만 무관심으로 지나쳐 버릴 수가 없는 문제가 일어났을 때는 정치적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경우이다. 사실은 이게 제일 무섭다고 할 수 있다. 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충분히 쌓이기를 기다리며 일부러 꾹 참고 있는 경우니까. 이런게 폭발하면 그야말로 국가나 사회 전체가 뒤집어지는 꼴이 나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