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관혼상제
관례 혼례 상례 제례(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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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은 이렇지만 집안, 지역마다 제각기 특색이 있어 다양한 조합이 존재한다.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 등은 따로 올리기도 한다. 아주 싫어하던 음식이 있으면 빼기도 하고. 그래서 생겨난 속담이 "남의 집 제사에 놔라 놔라 한다"이다. 각 가정마다 제례에 있어서 사소하거나 또는 큰 차이점이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아는 척하는 걸 까는 데에서 비롯된 말.

Contents

1 개요
2 한국의 제사
3 의의
4 단점
5 음복
6 가문별, 지역별 특색
7 제사와 관련된 사자성어
8 기타 얘기거리

1 개요

국어사전에는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냄. 또는 그런 의식이라고 나온다.

제사의 동기는 토테미즘이나 샤머니즘과 같은 원시신앙에 있다. 자연재해, 질병, 맹수들의 공격 같은 인간집단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재앙을 막기 위해 하늘이나 땅, 강이나 바다, 오래된 나무, 높은 산, 조상등에 절차를 갖추어 빌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일반명사로서의 제사는 이렇지만 흔히 '제사'라고 하면 유교의식에 기반을 둔 조상 제사를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수단으로서 행해진 제사는 중, 근세에 이르러 유교와 결합하여 조상숭배의 제도로 변질, 고착되었다. 또한 종교적 의미를 가지면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정교가 분리된 이후에도 왕은 하늘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며, 자신의 조상을 신격화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권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1] 또한 가정에서는 효의 의미를 가져 가문의 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종교적 면은 사후세계의 인정을 통한 유교 특유의 간접적 영생법의 의미를 가졌다.

조선중기 이후의 유교에서 유래된 경제적 부분으로 상속적으로써 제사를 지내는 장남이 아버지의 재산 2/3을 받고 나머지를 다른 아들들이 나누는(딸은 받지 못한다) 전통이 1990년대까지 유지되기도 했다. 이에 비해 고려 시대에는 제사의 권한이 딸들에게도 있어 자식들이 돌아가면 제사를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제도는 복잡하게 변천하여 가정마다 연간 제사 횟수가 48회 이상이나 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한 제례의 실용성 등에 대한 문제는 옛 유학자나 예문가들 사이에서 자주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2 한국의 제사

  • 삼국 시대 이전 : 신명에 의한 복을 받고자 자연숭배로서의 제사의식이 행해짐.
  • 삼국시대 : 자연신에 대한 제사가 자기 가문의 조상에 대한 제사의례로 발전하였다. 일반 민중보다 왕가에서 먼저 행해짐.
  • 고려 말 : 성리학의 수입과 더불어 주자가례에 따라 가문의 무덤(가묘)를 설치하려는 운동이 사대부사이에서 활발해졌으나 별로 보급되진 않음.
  • 조선시대 초기: 불교의례의 전통이 남아 주자가례와 같은 유교의례는 사회전반에 보급되지 않음.
  • 16세기 중반 : 성리학이 심화되어 양반사회에서 주자가례가 정착되고 주자가례에 명시된 4대조까지 제사를 지내는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면서 조상에 대한 존경과 추모의 표시로 행하여 지고 있다.

3 의의

제사는 후손들에게 공경심과 효심을 나타내는 의식으로 사회적 소속감, 연대감을 증진하며 가족간의 우애와 화목을 다지는 의미를 가진다. 특히 현대 핵가족 사회에서 초래되는 단절과 공동체 의식의 결핍을 보완하여 현대적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이 되기도 한다. 사방으로 나뉘어 살아가는 현대 가족들이 모여 정담을 나누고 가족애를 확인할수 있는 자리가 제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4 단점

제사는 허례허식으로 지적되어 과도한 낭비 등을 가져온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그래서 1969년에 가정의례준칙 및 가정의례법이 제정되어 제사에서 4대이상까지 제사를 지내는 일이 적어지고 부모, 조부모 및 배우자로 점차 국한되었다. 1999년 8월 31일에는 건전가정의례준칙이 공포되었다.

현실적으로 부담이 크기 때문에 제사 지내는 가정에서도 의례를 크게 간소화해서 치르는 경우가 많다. 조상들의 제사일을 아예 한 날짜에 몰아서 제사를 지내거나 제사상 진설을 FM대로가 아니라 많이 간소화해서 지내기도 한다. 아무튼 제사 간소화는 집안마다 가족마다 방법이 다 다르다.

또한 제사음식을 차리는 데에는 상당한 노동력과 수고가 필요하므로 기혼여성들의 주적으로 꼽히기도 한다. 미혼 여성들의 혼인기피자 0순위가 '종가집 맏아들'이란 농담은 아주 옛날부터 내려온 말이다. 농담 같지 않지만

때문에 굳이 개신교인이 아니더라도 해가 지날수록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안도 늘어나고 있다. 사실 이미 유교적 의미보다는 전통 문화로 자리잡은 만큼 쉽게 사라지진 않겠지만, 이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 것이 사실.

5 음복

제사를 지낸 뒤에 제사에 쓰인 제주(祭酒)와 음식을 나눠서 먹는 것.

집안에 따라 젯상에 올린 나물과 밥을 함께 비벼서 비빔밥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묘하게 평소 먹는 것보다 더 맛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현대 이전에 먹을 것이 귀한 시절에는 명절, 잔치와 함께 음식을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기회이기도 하다.[2]

6 가문별, 지역별 특색

  • 제주도에서는 을 올린다. 본래 제주도는 토질의 특성상 벼농사를 짓는 것이 매우 어려웠고 따라서 쌀밥이 대단히 귀했다. 그래서 밀이나 보리를 쪄서 반죽해 쌀밥대신 올렸는데, 현대에는 이것이 빵으로 정착되었다.
  • 경상도중부지방에서는 돔배기를 올리고 경상도 북부지방은 강원도와 똑같이 제사상에 삶은 문어를 올린다.
  • 안동헛제사밥이라는 음식이 있다. 제사지내는 척 하면서 제사상 차려 맛있게 먹으려고 하는 행태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 신숙주의 본관인 고령 신씨의 일부 집안에서는 제사상에 숙주나물을 올리지 않는다.
  • 현대에 들어서면서 제사상에 생전에 조상이 좋아하는 음식을 특별히 올리는 경우도 있는데, 바나나를 올리는 집안도 제법 많다. 원래 유교적 원칙에서는 예법에 지정된 대로 올리기를 중요시하여 망자가 살아생전에 좋아했던 것을 따로 올리게 하지는 않는다. 망자가 좋아하던 음식이 제삿상에 원래 올리는 음식이라면 다행이지만. 이 문제는 이미 명나라 이전 유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의되었는데, 원칙적으로 옳지 않다는 데에는 모든 유학자들이 동의했다.

7 제사와 관련된 사자성어

제사상에 음식을 놓는 방식을 쉽게 외우기 위한 다양한 사자성어들이 존재한다.

  • 어동육서(魚東肉西) : 물고기는 동쪽에 고기는 서쪽에 놓는다.
  • 두동미서(頭東尾西) : 물고기의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가게 놓는다.
  • 홍동백서(紅東白西) :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
  • 조율이시(棗栗梨枾) : 왼쪽부터 대추,밤,감,배 순서로 놓는다. 근데 한자는 대추,밤,배,감 순서인데?[3]
  • 좌포우혜(左脯右醯) : 포는 왼쪽에 식혜는 오른쪽에 놓는다.
  • 반서갱동(飯西羹東) : 반(밥)은 서쪽에, 갱(국)은 동쪽에 차린다.
  • 생동숙서(生東熟西) : 날것은 동쪽에, 익힌 것은 서쪽에 차린다.
  • 건좌습우(乾左濕右) : 건한 음식은 왼쪽에 습한 음식은 오른쪽에 놓는다.
  • 적전중앙(炙奠中央) : 적과 전은 중앙에 위치한다.
  • 접동잔서(接東盞西) : 접시는 동쪽에 잔은 서쪽에 놓는다.
  • 남좌여우(男左女右) : 남자는 제사상의 왼쪽에서 여자는 오른쪽에서 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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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타 얘기거리

  • 놀부는 제물 대신에 종이에 음식 이름을 써서 올렸다. 세바퀴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
  • 고려 말기에는 당밀 과자가 크게 유행했는데, 제사상에도 과일 대신 과자를 과일 모양으로 만들어 올리는 것이 유행해서 조정에서 금지령을 내렸다고 한다.[4]
  • 조선시대 때 들어온 서학(천주교)에 가한 박해의 가장 좋은 근거가 바로 천주교의 제사 금지 교리 때문이었다.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제사를 금지한다는 것은 단순히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국시인 유교 자체를 뒤흔드는 중대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천주교에서 공식적으로 제사를 허용한 것은 1939년 교황 비오 12세가 '유교 문화권의 조상 제사는 민속적 관습일 뿐 가톨릭의 교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발언한 뒤이다. 다만 천주교의 제사는 전통적인 제사 형식과 약간 차이가 있는데 우선 지방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5], 지방을 쓰더라도 지방에 신위神位란 말을 쓰지 않고 그냥 위位라고만 쓰게 한다. 혹은 존위尊位라고 쓰기도 한다. 그리고 제문을 올리거나 하는 일도 없으며, 죽은 이를 위해 바치는 기도인 연도를 드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집안에 따라(특히 다종교가정(?)인 경우) 다양한 차이가 있기도 하다. 어쨌건 결론은 천주교에서 드리는 제사는 어디까지나 조상에 대한 추모와 기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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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제후국을 자처한 조선의 왕은 하늘에 대해 제사를 지낼 수 없었고, 땅의 신(사직)과 왕조의 조상신(종묘)에는 제사를 지냈다.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는 환구단을 지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2] 아래 내용의 '헛제사밥'의 기원으로 이를 꼽기도 한다.
[3] 조율이시와 조율시이는 혼용되고 있으며 이는 집안마다 다르다. 고로 남의 제사상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지 말자.
[4] 그럴만도 한게 전통 한과는 제조하는데 엄청난 비용과 노력이 들었다. 한과 항목 참조.
[5] 이 경우 그냥 영정 사진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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