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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열강간의 각축 구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국가별 의인화.


Contents

1 개요
2 참전국
3 원인
4 참호전과 독가스
5 전쟁의 영향
6 관련 항목
6.1 연표
6.1.1 1914년
6.1.2 1915년
6.1.3 1916년
6.1.4 1917년
6.1.5 1918년
6.2 관련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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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세르비아의 전쟁으로 촉발되어, 1918년 11월 11일까지 전개된 전쟁. 기관총, 참호, 독가스로 대표되는 전쟁. 독가스 대신 철조망이 나오기도 한다. 인류 전쟁사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기사도가 존재했으며, 동시에 최초로 조직적인 민간인 학살이 벌어진 전쟁이기도 하다.

일단은 전쟁에 관련된 국가들의 숫자만으로도 35개국이 관련됨으로서 이전의 그 어떤 전쟁보다도 대규모의 전쟁이었으며 전장이 확대된 최초의 전쟁이었기 때문에 세계대전이란 이름이 붙었다. 지금도 'Great War'는 제1차 세계대전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다른 말로 '모든 전쟁을 끝낼 전쟁'이라고도 하는데 당시 사람들이 '이렇게 ㅎㄷㄷ한 전쟁이면 다시는 전쟁 같은 걸 못하겠지?'라고 생각했으나 현실은...(…) 전 계층이 전쟁에 참가하였으므로 인민전쟁(People's War)이라고도 한다.

전쟁기간 동안 900만의 전사자가 나왔는데 그보다 약 3배에 가까운 2,500만명이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함으로서 사상 최대규모의 전염병 사망자를 낳은 기록이 있다.


2 참전국 #

■ 연합국
■ 동맹국

3 원인 #

제1차 세계대전의 기원은 팽창된 유럽 때문이라고 보는게 타당할 것이다.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유럽의 생산력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급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에 필요한 자원을 얻고 생산된 상품을 판매할 식민지가 필요하게 되어 유럽 각국은 식민지 쟁탈전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일찌감치 산업혁명을 성공시키고 국내 정치가 안정되어 있던 영국은 우위에 서있는 해군력 등을 바탕으로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보유했고 프랑스도 여기에 가세했다.

그에 비해 신흥 강국 독일은 통일전쟁을 거치면서 영국, 프랑스에 비해 산업화 과정이 늦어졌고 이 때문에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고 보니 이미 알짜배기들은 영국, 프랑스 등이 차지한 상태였다. 그래서 독일이 식민지를 획득할 방법은 영국, 프랑스의 식민지를 뺏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독일은 기존 식민국가인 영국, 프랑스의 대립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가장 크게 지적되고 있다.

이미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도 독일과 영국, 프랑스의 대립은 위험수위에 달해있었다. 영국이 남아프리카에서 네덜란드계 보어인들과 싸운 보어전쟁에도 보어인들의 배후에 독일이 있었고, 프랑스와는 두 차례에 걸친 모로코 사건으로 대립하는 상황이었다.

한편 식민지와는 인연이 없는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등의 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로 인한 발칸반도를 둘러싼 갈등도 전쟁의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발칸반도는 19세기까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독립하게 되었는데, 독립 이후 발칸반도의 각국은 영토를 놓고 치열한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발칸반도의 슬라브족을 선동하여 지중해로의 진출을 노리던 러시아와 이를 견제하려는 오스트리아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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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가장 큰 불만을 품은 것은 세르비아로, 오스트리아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합병하고 러시아가 독일의 압력으로 이에 굴복하자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에 극렬한 적대감을 품게 된다. 세르비아의 적대감은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트 대공을 세르비아 비밀결사 '검은 손'의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암살하는 사건으로 발전했고,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방아쇠를 당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1]

명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예술적인 솜씨로 유지하던 독일-러시아-오스트리아 삼각동맹체제를 빌헬름 2세가 폐기시켜버린 것이 독일의 결정적 실책으로 꼽힌다. 비스마르크는 프랑스-러시아가 동맹을 맺어 포위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사이가 좋지 않던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를 잘 구워삶아 삼각동맹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빌헬름 2세 즉위 후, 노재상 비스마르크를 강제로 은퇴시키고 외교체제를 개편하면서 러시아를 버리고 오스트리아를 동맹 파트너로 선택한다. 이에 러시아는 당연히 프랑스와 연합하며 독일은 전략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이에 따라 독일은 이러한 전략적 약점을 작전술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먼저 프랑스를 치고 나중에 러시아를 손본다!"는 슐리펜 계획을 구상한다. 결국 슐리펜 계획 자체가 1차 대전 개전 원인의 일부가 됐으니 1차 세계대전 개전의 가장 큰 책임은 독일의 빌헬름 2세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1차 세계대전 개전 과정의 막장스러움은 꽤 유명해서 외교사나 국제관계사에도 단골처럼 소개된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강경한 최후통첩을 보냈으며, 세르비아는 재판에 오스트리아 관리가 참가한다는 한 가지 조항을 빼고 이를 모두 승낙한다. 그러나 백지수표를 내준 독일을 등에 업은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의 제안을 무시하고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하며 이에 따라 러시아는 오스트리아-독일에 전쟁을, 프랑스는 독일에 전쟁을, 독일이 중립국인 벨기에를 침략함에 따라 영국도 독일에 맞서 참전하게 된다.

인척관계로 얽힌 참전국의 군주들은 전쟁을 피하려고 노력했으나, 산업화된 국가는 이미 군주들이 일일이 통제하기는 어려운 수준으로 복잡해졌기 때문에 문제가 더 커졌다. 러시아는 애초 부분 동원령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으나, 부분 동원령이라는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총동원령을 내렸다. 이를 당연하게도 전면전의 시작으로 해석한 독일은 슐리펜 계획의 발동을 명령하는데 계획이 발동되고 나서는 더 이상 수정할 수가 없었다. 빌헬름 2세가 "야, 벨기에는 중립이고 여기 터치하면 영국이 낀다는데 계획 수정할 수 없음?"이라고 참모총장 소 몰트케에게 물어보니 "ㄴㄴ, 병력집결부터 기동, 전투까지 꽉 짜여져 있어서 벨기에 안 넘어가면 계획이 다 무너짐"이라고 펄쩍 뛰어서 어쩔 수 없이 벨기에를 지나가게 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벨기에의 저항이 의외로 격심해 진격 시간표를 맞추기에 혈안이 된 독일군은 벨기에에서 최초로 조직적인 민간인 학살 및 도시 파괴를 저지른다. 루뱅 시 학살사건이 유명하며, 당시 몇 백년 된 도서관도 같이 불타버렸다. 이 때문에 아직도 루뱅 시에서는 독일 깃발을 게양하지 못한다고... 이 외에도 많이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 및 이후 독가스 사용 등으로 독일군의 이미지는 큰 타격을 입고 이는 독일의 외교에도 마이너스로 작용하게 된다.


4 참호전과 독가스 #

제1차 세계대전을 상징하는 것으로 유명한 것이 참호전인데 정작 전쟁 발발 시점에 어느 나라에도 참호전이란 교리가 없었으며 슐리펜 계획의 실패 이후 독일이 점령지에 참호를 판 것을 시점으로 양측이 서로 참호를 파고 틀어박히게 됨으로서 참호전이 전개되었다. 게다가 서부전선을 제외한 동부전선이나 발칸, 중동전선에서는 참호전이라고 부를 만한 상황 자체가 없었다.[2]

국내에서 동부전선은 자료나 관심이나 거의 아웃오브 안중이라 1차 대전의 이미지는 참호전으로 더욱 확고하게 고정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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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호와 상대편 참호 사이를 NO MAN's LAND라고 불렀으며 그 사이에는 살아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전술은 닥치고 돌격하여 전멸 or 승리라는 무식한 전술이 사용되었다.

사실 이 참호의 위생상태가 매우 나빠서, 거기에 고인 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가 병사들이 참호족 (Trench Foot) 이라는 병에 걸리기도 했으며, 하루가 멀다하고 포를 쏘거나 찾아오는 적에 대한 압박감으로 Shell Shock 라는 일종의 정신공황 상태에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서 시체 등을 뜯어먹고 일종의 진화를 한 초거대 서생원급 에게 습격당해서 식량을 빼앗기기도 했으며,심지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부상병이 쥐에게 습격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하여간 도저히 사람이 장시간 있을 곳이 아니었기에 일정기간을 두고 로테이션을 하는 방식을 취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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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호전을 타개하기 위해 숱한 신병기와 전술이 개발되었다. 현대적인 형태의 박격포수류탄이 처음 등장했고 현재까지 사용되는 거의 모든 보병전술이 이 시기에 확립되었다. 독일은 독가스를 사용해 최초의 화학전을 시도했고 영국은 전차를 발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신병기들로도 참호전의 양상을 궁극적으로 타개하지는 못했다. 독가스는 사용조건에 제한이 있는데다 화학전 방호장비가 보급되면서 효력이 없어졌고, 전차는 가장 획기적인 발명이었으나 초기 전차는 성능이 부족한데다 전차 운용에 대한 노하우가 없어서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바람에 참호전을 궁극적으로 타개하는 데는 실패했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 동안의 전차는 거의 움직이는 엄폐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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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의 군사적 활용의 발전도 두드러진다. 전쟁 초에는 단순히 정찰, 그리고 상대 국민에 대한 테러 목적으로 미미한 폭격이 있었으며, 비행선을 이용한 포격이 시도되기도 하지만, 공냉식 기관총과 동조식발사장치의개발로 1-2정의 기관총을 가진 빠르고 민첩한 전투기가 상대의 기구, 비행성, 정찰기를 격추시켜 나갔으며, 이에 따라 폭격용 비행선은 빠르게 사라지고 보다 빠르고 크기대비 폭장효율이 좋은 대형 폭격기가 등장하여 상대국의 도시를 노리게 된다. 이에 따라 자국 방공망구축과 보다 효율적인 항공기 운용을 위해 1918년부터 영국 공군이 세계최초로 결성되었으며, 다른 참전국들도 따라간다. 대전말 전략폭격의 이론이 영국의 트렌차트, 미국의 미첼, 이탈리아의 두헤에 의해 서서히 탄생하기 시작한다.

대전기간 어느 쪽도 참호전 양상을 타개하는데 실패하여 무제한 소모전을 벌였다. 결국 국력이 완전히 소진된 독일은 킬 군항에서 발생한 해군의 폭동을 계기로 연합국에 항복한다. 이 때 독일은 계속 밀리는 중이었긴 하지만 프랑스 영토에서 전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자국 영토에 적군을 한발짝도 들이지 않은 상태에서 한 패전은 많은 독일 국민들에게 분노와 의심을 안겼으며 후일 히틀러의 등장 배경이 된다.

사실 이 당시의 독일은 전선의 병사들도 굶주림에 못이겨 연합군 참호를 습격해 음식을 약탈해 오고, 후방의 민간인들은 1주일에 감자 한번 구경할 정도로 굶주리고 있다가 마침내 전선과 후방이 한꺼번에 와해되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패전하지 않았다면 그걸 바로 기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힌덴부르크 계획이라고 불리는 전시 계획경제에서 군수물자 생산에 너무 치중하다가 식량 생산 등의 기본적인 요소에서 일이 틀어진 것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경제 전체가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독일의 경우 관료들이 자원을 비교적 유능하게 잘 배분해서 가용한 모든 자원을 완전히 탕진할 때까지 끌고 오는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으며, 식량이 풍부하다고 알려진 프랑스도 독일보다 먼저 그러한 상황에 직면한 적이 있다(프랑스는 미국의 식량 원조로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 이 때 식량 원조분이 4일만 늦게 도착했으면 프랑스 전역에서 식량이 고갈될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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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독일은 경제가 한계에 다다르자 빨리 전쟁을 끝내기 위해 마지막으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쥐어짜서 춘계공세, 루덴도르프 총공세를 펼쳤고, 그것마저 실패로 돌아간 것이 확실해지자 정부가 무너져 버렸던 셈이다.

위에 나열된 막장 상황들은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통해 접해볼 수 있다.

5 전쟁의 영향 #

제1차 세계대전은 전쟁 이후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데 기관총의 유용성과 항공기, 독가스, 전차의 등장, 잠수함의 최초의 전술적 운용 등이 그것이다.

군사학적으로는 승자와 패자에게 완전히 다른 영향을 미쳐 2차 대전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승자인 영국과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의 전훈을 압도적인 화력과 방자의 우세로 결론짓고 방어 위주의 군사사상을 도입, 마지노 선 건설 등의 뻘짓을 벌이지만, 독일은 그 우세를 극복하기 위한 기동전 연구에 힘을 써 결국 1940년, 20년 전에는 4년 동안 점령못했던 프랑스를 단 6주만에 점령하는 쾌거(?)를 달성한다.

또한 제정 러시아와 독일은 정부 자체가 무너져 각각 소련과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다시 탄생하였고, 오스트리아와 오스만 제국은 해체되어 그 영토 대부분을 상실하게 된다.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을 계기로 식민지와의 연결이 끊어지고 경제적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어 제국 해체의 발단이 된다. 유일하게 일본만은 피해를 입지 않은 채 태평양과 중국에 식민지를 획득함으로서 [3]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를 만들어 놓았다.

6 관련 항목 #

6.1 연표 #

6.1.1 1914년 #

6.1.2 1915년 #

6.1.3 1916년 #

6.1.4 1917년 #

6.1.5 1918년 #

6.2 관련 용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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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담으로,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그냥 석방되었다. 그러나 얼마 뒤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2]  그래서인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은 동부전선에 배치되는 걸 선호했다고 한다(...).
   [3]  근데 웃긴 건 중국도 연합군에 참전한 같은 승전국이었다는거...어차피 일본이 날름한 중국지역 식민지는 독일이 확보한것을 신경 못쓰는 사이 거저 먹은거진 하지만.. 이 전투가 1차 세계대전 기간 중 유럽 외의 지역에서 벌어진 유일한 전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