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
인간의 마음이 진화적으로, 다시 말해 자연 선택과 성 선택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인간의 많은 심리 기제들이 어떠한 근원을 가지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진화생물학, 신경과학, 인지주의 심리학 등의 발달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용어가 과학에서 만들어 진것은 아마도 1973년 기셀린의 논문으로 추축되지만 그 용어를 널리 대중화시킨 것은 존 투비와 레다 코즈미다스의 덕이다. 만들어진 지 20여년 밖에 되지 않는 신생 학문이다보니, 대표적인 인물들은 아직도 다 생존해 있다.
인간의 마음에 대해 그야말로 근원의 규명을 추구하는 지극히 생물학적인 연구분야이기 때문에 많은 논란을 야기하는데다, 애시당초 심리학이라는 학문(또는 심리학적 접근)이 방법론적으로 자연과학에 비해 탄탄한 기반을 갖지 못한다는 점에서 많은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비판이 존재하지만, 일단 충분한 과학적인 사례를 충분히 쌓아두고 전개하는 과학으로 정착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앞의 내용에서 언급되었듯이 태동기에 있는 학문이기 때문에, 위에서 제기되는 비판은 (적어도 사회과학, 또는 사회과학과 접점을 가지는 성격의 자연과학 가운데) 신생 학문이라면 한 번쯤은 거쳐가야 하는 비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2 진화심리학의 역사 ¶
진화심리학의 기원은 실제로 다윈의 종의 기원이다. 이 책에서 '심리학은 새로운 토대 위에 새로 쓰여질 것이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 언급이 실제로 실현된 것이 결국 20세기 말에 와서였다.
그 과정은 험난한 길의 연속이었다. 스키너로 대표되는 행동주의가 대세였을 때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학습에 의한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인간의 행위가 본능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가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주의의 열풍도 잠잠해지고, 인지주의가 새로운 심리학의 대세로 자리잡자 생물학자들 사이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성향의 논쟁이 일어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윌슨의 사회생물학 논쟁이었다. 윌슨이 주창한 사회생물학은 인간의 본능을 너무 직설적으로 써내려간 나머지 반대하는 과학자들로부터 “생물학적 결정론”이니 “우익 이데올로기”니 하는 심한 말을 들었던 것.
3.1 생물학적 결정론 ¶
굴드파가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주제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생물학적 결정론, 또는 유전적 결정론이라 불리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이 본능(=유전자=DNA)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것처럼 말한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진화심리학자의 말에 따르면 범죄자 DNA를 가진 사람은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스키너의 행동주의와 정확히 대칭되는 개념이다. 행동주의는 인간이 학습에 의해 전부 결정될 수 있다고 하였고, 본능의 역할은 거의 없다고 말하였다. 유전적 결정론은 학습은 인간을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말한다. 사실 이 문제는 수백년 이상 논쟁을 벌인 주제로, 영어로는 nature vs. nurture라는 플로우 가득한 구절로 표현한다.
진화심리학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진화심리학은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동등하게 취급하고, 환경으로 인해 유전자가 어떻게 발현되는지(유전과 환경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또한 인간의 심리는 타고난 하드웨어 (뇌) + 그 동안의 학습된 기억을 이용해 유전자로 인해 발현되는 본능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3.2 우익 이데올로기의 합리화 ¶
여자는 아이를 키우는 데 적합한 심리적 기제를 가지고 있고, 남자는 바람을 피우는 데 적합한 심리적 기제를 가지고 있다는 진화심리학적 연구결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남자가 쉽게 바람을 피우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화되는가? 진화심리학은 '그러한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논리학에도 바로 이걸 까는 개념으로 '자연주의적 오류'라는 것이 있다. '어떠한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 사실이 정당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을 오류라고 보는 것이다. 경제학에서도 비슷하게 실존하는 경제 현상을 기술하는 실증경제학과, 특정 경제 현상을 지향해야 하는 당위성과 그 현상을 이룰 방법론을 제시하는 규범경제학을 나누어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아주 단순하게 예를 들어, '남성은 진화적으로 보아 일부다처제의 성향이 농후하고, 많은 수의 성관계 파트너를 가지기 원하는 경향이 있다'라는 연구 결과(내지는 주장)가 있다고 해서 '남성이 바람을 피는 것은 본능을 따르는 것이므로 전혀 문제가 될 일이 없다'라든가 '남성이 바람을 피는 것이 옳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자연주의적 오류'의 전형을 보여주는 추론(이라고 보기도 힘든 뻘소리) 방식이다.
또한 진화론에 의한 사회적 행동의 설명 방식이, 정치적으로 인종주의·성차별과 가부장제·생존경쟁에 따른 계급사회와 엘리트주의을 옹호하는 우파 친화적 설명이라고 함부로 규정하는 것 역시 다소 어폐가 있다. 물론 실제로 우생학의 대두와 같은 비극이 있기는 했지만, 정치적 좌파의 중요한 가치로 대표되는 연대와 협동이 인간의 근본적인 행동원리라고 보고 이를 진화론적으로 규명하려는 접근 역시 진화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체계화되기 전부터 존재했다. 대표적인 것이 무정부주의자인 P.A.크로프트킨의 '상호부조론'.[1]
그리고 현대 진화심리학에서도 인간 사회와 같이 거대규모로 형성된 사회에서 장기간의 협동과 이타적 행동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특이한 현상으로서 인식하고, 이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 하나의 연구 주제로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3.3 범적응주의 ¶
적응은 특정 기능을 위해 잘 설계된 생물학적 특성이고(예를 들자면, 뼈가 칼슘으로 구성된 이유는 튼튼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부산물은 적응적 특성을 만들기 위해 곁들여진 우연한 특성이다(뼈가 흰색인 이유는, 칼슘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며, 진화적 이유는 없다).
굴드는 진화심리학자들이 인간의 모든 심리적 특성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적응'이라고 주장하는 병크를 터뜨린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 진화심리학자들도 적응과 부산물을 구별하는 능력쯤은 가지고 있다. 진화심리학자들이 대표적으로 드는 부산물이 읽기 능력이다. 읽기는 문자가 발명되지 않은 선사시대에는 필요없는 기능이었을 테고, 분명히 시각 능력과 기타 여러 능력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부산물임에 틀림없다.
여기서 문제 한 가지. 언어는 적응일까, 부산물일까? 굴드파는 부산물이라고 주장한다(대표적으로, 그 유명한 노엄 촘스키). 진화심리학 학자들은 언어와 같은 복잡한 능력이 부산물로 생길 리 없기 때문에 적응이라고 말한다(대표적으로, 스티븐 핑커. 그는 그의 대표작 '언어본능'에서 노엄 촘스키의 언어이론을 매우 세심히 설명하고서도 촘스키의 '언어 부산물' 이론을 신랄하게 까내려 애증의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4 한국의 진화심리학 ¶
현재 한국에는 단 2명의 진화심리학 전공자가 있다.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인 최재천 교수까지 친다 해도 3명에 불과하다. 교양과학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에 비하면 대단히 작은 수준이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진화심리학의 온갖 떡밥들이 난무하다. 과연 이것들이 좋은 현상일까? 게다가 창조설 떡밥과 위에서 예시한 온갖 반론들이 엎치락뒷치락대고, 과학뽕을 맞고 싶은 인문학자들이 무분별하게 떡밥을 물질 않나, 참으로 혼란스런 상황임에 분명하다. 진화심리학은 그 본질을 잘못 이해하거나 의도적으로 은폐해서 떡밥을 던지기도 쉽고, 그 때문에 시끄럽기도 쉬운 물건이다. 예시를 들어보자.
| 나는 사회생물학은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몰아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우익 인종주의자들의 논리 체계의 유사성을 부각시켜 비난하지 않으면 약육강식을 합리화하게 된다. (고종석, 프레시안, 04.6.2) |
| 사회생물학은 모든 사회성 동물의 행동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시각안에서는 현재의 인간 세계의 계급 제도, 인종주의, 가부장제, 엘리트주의 등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이게 된다. (이상원, 중앙대신문, 06.3.13) |
특히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인종주의나 페미니즘 측에서 오해할 만한 여지가 충분하다. [2] 또한 제국주의 시대를 정당화했던 사회진화론과 같이 인종차별, 성차별 등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물론 이 모두가 위에서 말한 '자연주의적 오류'이다.
진화심리학이나 이와 관련된 분야를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학문으로서의 진화심리학을 비판하는 떡밥을 물게 될 때, 십중팔구는 저 위의 반론 중 하나로 물리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모든 사회과학이 그러하듯, 진화심리학도 사회과학 또는 사회과학과 큰 접점을 가지는 자연과학으로 분류되는 이상, 정치 논리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뭐랄까, 지금 시대의 사람들 입장에서는 진화론이 생기던 그때 당시 수많은 반대에 부딪쳐야 했던 것이 그저 지나간 웃긴 일로 보일 뿐이지만, 이런 일련의 현상들을 보면 당시 진화론이 그렇게 까였던 이유를 약간이나마 알 수 있게 된다고 할까...
아무튼 이 학문에 대한 인식이 인식이니만큼, 진화심리학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논거로 쓸 사람들은 다음 몇 가지를 조심할 필요가 있다.
-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자연주의적 오류에 빠지지 말 것. 사실 이 자연주의적 오류는 모든 과학자들이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 진화심리학은 인류의 보편적인 행동 양식을, 선사시대 인류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으로 본다. 즉 현대 인류의 행위를 진화심리학적으로 분석하려면, 필수적으로 선사시대 인류의 생활사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무시하고 현대 인류의 행동 양식을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하려다 보면 심할 경우 병크를 터뜨릴 수 있다.
- 진화심리학이 '통섭'을 통해 여타 학문들을 충분히 대체해 낼 수 있을것이라는 식의 일방적인 주장은 되도록 삼가자. 특히 자연과학이 비과학적인 사회과학을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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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혁명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학문을 이용했다는 비판 역시 충분히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생존경쟁과 유전자적 우월성에 기반한 사회 변화'라는 정치적 지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학문을 이용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과 동일하게 말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현대에 '과학'으로서 자리잡은 진화심리학 정도의 과학적 엄밀성을 바라기도 힘들다.[2] 페미니즘이 이상으로 생각하는 세계관 하고 대치되는 면도 있지만(반페미니즘으로 해석될 만한 사례가 무지 많긴 하다) 적당히 이해한 채로 페미니즘측에 떡밥 던지기도 쉽기에...대표적인 사례 : 이글루스의 紙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