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구팽

兎死狗烹



Contents

1. 개요
2. 유래
3. 역사에서의 사례
4. 사례
4.1. 현실의 사례
4.2. 가공의 사례

1. 개요

원래는 교토사양구팽(狡兎死良狗烹)의 준말이다. 교토사주구팽(狡兎死走狗烹)이라고도 한다.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좋은 사냥개도 삶아먹는다'는 뜻으로, 필요할 땐 이용할 만큼 이용해먹고 난 뒤 필요가 없어지면 야박하게 버린다는 뜻이다. 줄여서 "팽당하다"로 자주 쓰인다.

인터넷에서는 간단하게 뒷글자 팽만 따서 팽하다. 팽당하다라고 사용하기도 한다.

2. 유래

果若人言 狡兎死良狗烹 飛鳥盡良弓藏 敵國破謀臣亡 天下已定 我固當烹.
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도다. 교활한 토끼가 죽고 나면 좋은 사냥개도 삶아지며, 높이 나는 새가 다 잡히고 나면 좋은 활도 광에 들어가며, 적국이 타파되면 꾀 많은 신하도 망한다. 천하가 평정되었으니 나도 마땅히 팽당함이로다. - <사기> 회음후열전[1]

유방한신을 죽인 데에서 유래한 걸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그보다 훨씬 이전에 춘추전국시대 나라의 군사범려의 말(사기 : 월왕구천세가)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말이 전해져 "토끼를 다 잡으면 사냥개를 삶는다."라는 한국 속담도 만들어졌다.

당시 를 멸망시킨 월왕 구천은 고생할 때는 함께 고락을 나누지만 자신이 부귀해질 때면 교만해져 모든 것을 자신의 공으로 돌리는 성격이기 때문에, 구천이 범려 자신을 포함한 공신들을 죽일 것이라 미리 예측한 범려가 문종에게 관직에서 물러나자고 권한 것에서 나온 말이다. 과연 그 말이 맞아서 문종은 자결해야 하는 위기에 몰렸지만 그 때 가서 깨달은들 소용 없었다.

초한지》에서 마침내 한신과 동맹을 맺으려고 항우무섭[2]을 한신에게 보냈을 때 그가 한신에게 한 말이라는 일화가 있는 걸 감안하면 확실히 오래 전에 있었던 우화이다.

한고제는 토사구팽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으며, 한신, 팽월이 숙청당했다.[3] 마지막에 여후를 견제하려고 번쾌도 숙청하려 했으나, 숙청전에 유방이 세상을 떠난지라 번쾌는 죽지 않았다.

삼국지 연의의 영향으로 순욱이 저평가되어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조와 순욱 또한 대표적인 토사구팽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조조 살아생전 순욱을 나의 장자방이라고 하며 크게 아꼈으며, 정치뿐만 아니라 전투에 나가서도 큰 흐름을 모두 순욱과 의논하였다고 한다.[4] 잘 알려진 곽가 또한 "그대를 대신하여 전장에서 책략을 상담할 이가 누가 있는가."의 질문에 추천을 받은 인물이었으며, 정욱 등도 그가 추천하여 임관을 한 인물이다. 전쟁에서 전략뿐만 아니라 내정에도 크게 공헌하였으며, 그가 추천하여 임관에 올라 조조군에 큰 도움을 준 명사의 수는 무수히 많다. 이처럼 조조에게 충성하고 헌신한 바가 정말로 많은 그였으나 위공의 지위를 욕심낸 조조와 대립하면서 끝내 토사구팽 당하여 자결하고 만다. 이가 그 유명한 공찬합고사이다.

명 태조 주원장도 피비린내나는 토사구팽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심지어 1년에 3만명의 권신들과 그 일가족까지 죽여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위협적이던 자기 넷째아들을 놔뒀다가, 결국 숙부가 황제인 조카를 쳐바르는 상황이…….

조선 태종 이방원은 공신과 외척들을 아주 평등하게 토사구팽했다. 이숙번, 이거이 등의 공신들은 귀양보내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외척인 자신의 처남들은 4명 모두 도륙해 버린다. 심지어는 아들인 세종에게 양위하고 상왕이 된 뒤에도 세종의 처가인 청송 심씨 가문을 개박살 내버렸다.(…) 덕분에 후계자인 세종에게는 매우 바람직한 통치여건이 마련되었으니, 이것 참 잘했어요.(…)

어찌보면 가장 이상적인 토사구팽을 보여준 인물은 태조 조광윤과 후한 세조 광무제. 조광윤은 황제의 위에 오른 후 개국공신들을 불러서[5] 술판을 벌이던 도중 술 한잔 하다가 갑자기 한숨을 쉬면서 나는 술먹고 뻗어있는거 너희들이 황제옷을 입혀줘서 이렇게 황제도 됐다만, 너희들은 또 너희 부하한테 어디서 용포 하나 구해서 걸칠 수도 있겠구나란 드립을 쳤다. 공신들이 술이 확깨서 '아니 폐하 어째서 그런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까.' 라며 바싹 엎드리니까 조광윤은 계속 술을 빨면서 인생 뭐 있어? 어차피 황제 할 생각 없으면 고향 내려가서 명예직이나 하며 부유하게 살다가 애들이나 키우면서 편안하게 죽으면 되는거지. 니들도 그렇게 할래? 그 자리에서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다들 모든 실권을 내놓고 정말로 고향 내려가서 명예직이나 하며 부유하게 살다가 애들이나 키우면서 편안하게 살다가 갔다(…). 말기부터 오대십국시대 내내 중국대륙을 혼돈으로 몰아넣은 절도사들의 병권을 너무나 간단하게 수거한 사건이라서 과장이 섞인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어쨌든 의 개국공신들이 숙청당하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6] 어찌 보면 숙청은 맞지만 - 피를 보지 않은 숙청이라고 할까? 물론 그 과정에서 공신들에게 막대한 부를 나눠준 탓에 초반에 경제가 좀 흔들리긴 했지만.

광무제의 경우에는 광무제는 공손술을 토벌한 뒤 왕망이 망쳐놓은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의 일부 전쟁을 제외하면 거의 전쟁을 벌이지 않으려 했고, 군비도 꽤 줄였다. 이 과정에서 광무제 휘하의 명장들인 운태 28장들은 문관으로서의 능력도 출중하던 등우 등을 비롯한 몇 명만 빼고는 다들 자진해서 은퇴했고, 광무제도 이들에게 국가 원로로서의 대우는 해줬지만 조광윤처럼 크게 파격적인 대우는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 시기에는 광무제의 숙부뻘 되는 이까지 왕에서 공으로 대우가 낮춰졌는데, 대단한 건 아무도 반항하지 않았다는 것. 물론 통일 전에 일부 반항하던 자들은 다 죽었지만.(…) 후한 2대 황제인 한명제 때에는 간접적인 토사구팽이 있었는데, 개국공신을 기리는 영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장인을 일부러 빼버렸다. 공을 세운 정도에서 절대 꿀리지 않을만큼 큰 공신이었으며 황제의 장인이었음에도 마황후 본인이 스스로 앞장서 외척을 막고자 일부러 빼버린 것. 황제의 장인까지 찬밥신세가 되어버리니 다른 공신들도 알아서 길 수 밖에 없었고 남은 자들 중에서도 낙향한 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사실 광무제 때 별 다른 일 없이 자진 사퇴한 자들이 많았던 것은 광무제 본인의 재능이 너무 출중해서라고 한다.

3. 역사에서의 사례

사실 이 말이 널리 쓰이지는 않았으나, 정치가 김재순[7]이 자신을 은퇴시킨 김영삼을 겨냥해 사용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하는 경구가 되었다. 김재순은 3공화국 시절 유정회 출신으로 이후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도 민정당 소속으로 정치 경력을 이어왔으나, 특유의 친화력으로 김영삼을 비롯한 많은 야당 인사들과도 교분이 있었고, 이후 3당 합당을 통해 여당으로 들어온 김영삼을 지원하여 그가 대통령이 되는데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이후 김영삼이 자신을 비롯한 구 민정계를 숙청하자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남기고 정계 은퇴 후 하와이로 이민했다. 30년 우정도 권력 앞에서는 필요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

베트남에서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저질러졌던 토사구팽은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월남의 대통령 후보였던 쭝딘주(Truong Dinh Dzu)는 사실 월맹에서 보낸 간첩이었는데, 통일이 된 이후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사상이 의심스럽다면서 수용소로 보내버렸고, 1980년대 중반에 죽어버리고 말았다. 월남의 여성운동가였던 응오 바 타인(Ngo Ba Thanh)역시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인해 수용소에서 죽었고, 반정부 운동을 주도한 짱 후 타인(Tranh Huu Thanh)신부도 수용소행을 피할 수 없었다. 북베트남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서 남베트남인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적이었던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토사구팽이 있었는데, 군사적으로 제일 유능했던 린뱌오펑더화이 모두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린뱌오는 권력문제로 마오쩌둥과 반목하여 앙심을 품고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실패하여 비행기를 타고 도망가던 중 탑승하고 있던 비행기가 하늘에서 폭발하면서 즉사했고, 펑더화이는 마오쩌둥을 비판했다가 권력을 모두 빼앗기고 홍위병에게 구타와 폭행을 당하고 차디찬 감방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옥사했다. 하지만 마오는 자신의 아내를 비롯한 4인방은 그대로 놔두었고, 걔네들이 중국을 완전히 말아먹은 것이 문화대혁명.

대한민국도 다르지 않아서 위의 김영삼 외에 박정희도 집권후에 중앙정보부장을 하면서 무소부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김형욱, 이후락 등을 내쳤다. 김형욱은 이에 배반감을 느끼고 해외로 도피하여 반박정희 활동을 했다. 또한 김재규가 극단적으로 박정희를 배신한 이유도 바로 얼마전 실종된 전임 중정부장 김형욱의 운명[8]을 보고 회의를 느껴서 그랬다고도 한다.

그리고 2013년 말에는 한반도 북쪽의 반국가 단체 내부 에서도 토사구팽이 있었는데 경거망동한 젊은 지도자자기 추종자들과 손잡고 직접 자신의 고모부를 숙청했다.

공훈 많이 세우고 겸손하게 행동을 한다고 해서 토사구팽을 피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겸손하게 행동하면 그건 그거대로 의심을 받는다.

춘추전국시대 나라의 명장 왕전나라를 공격하면서 일부러 전쟁에 이기고 돌아오면 넓은 논밭과 화려한 저택을 달라고 계속 졸라댔는데, 의심이 많은 진시황의 성격을 간파하여 "그저 재물과 노후의 편안한 생활에만 욕심을 부리고 정치에 큰 뜻은 없는 늙은이"로 보이려는 의도였다고 한다.[9]

또한 유방을 도와 나라를 창립한 일등공신 소하도 승상이 직위임에도 청렴결백하게 사치를 부리지않는 생활을 했으나, 주위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사치를 부려야 유방의 의심을 안 산다고 하자 그 말에 따른다. 나중에 유방이 죽기 직전에 소하를 의심하여 감옥에 잠깐 가두는데, 주변사람이 간언하자 유방은 소하를 가둔걸 후회하고 소하를 풀어준다.

물론 토사구팽이 꼭 부정적인 건 아니다. 한신 항목을 보다시피 한신은 따지고 보면 한고제의 어그로를 대놓고 여러번이나 끌은지라 한고제 입장에선 한신은 충신이 아닌 언젠가 반란을 일으킬 위험분자(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리 되었다)일 뿐이었으며, 역사를 살펴보면 권력을 움켜쥔 개국공신이 나라를 도로 갈아엎은 경우도 많았다. 특히 세조는 공신들을 많이 봐줬는데, 수령의 부패와 백성들의 고통을 막는데 정말 신경 썼던 세조지만 정작 공신은 건드리지 않았다. 당연히 가장 큰 부패를 저지른 건 공신이었고 결과적으로 전부 도로아미타불.[10]

야구계에서는 보스턴 레드삭스를 비꼬는 말로 '보사구팽'으로 바뀌어 쓰인다. 보스턴 레드삭스 항목 참조.

더 지니어스: 룰 브레이커에서는 조유영이 이은결을, 임윤선이 임요환을 상대로 토사구팽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이은결의 결정적인 도움을 폄하하며 대찬 배신을 때린 조유영은 당당히 혐라인의 수장이 되었고, 자기가 반강제로 끌어들여 놓고 끝까지 부려먹은 임요환을 데스매치 상대로 지명하는 임윤선의 행태는 많은 시청자들의 반감을 샀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4. 사례

4.1. 현실의 사례

4.2. 가공의 사례

  • 건슬링거 걸 - 5공화국파의 세력이 줄어들자 사회복지공사의 이후 처분에 대해 논의가 시작되었고, 정부는 신 토리노 원전 사태 때에 테러리스트와의 공멸을 바란다. 사건 종결 후 사회복지공사는 의체개발 관련 부서로 축소, 인원은 군경 및 기타 부서로 재흡수하고, 흡수할 수 없는 인원은 선상 기지로 좌천시켰다. 우려되었던 화력충돌로까지는 비화하지 않았으나 어찌되었든 팽.
  • 날아라 호빵맨 - 세균맨에게 이용당한 이들: 가끔 세균맨이 누군가를 이용해 호빵맨을 이기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러면 꼭 "이제 너한테 볼 일 없거든?"하면서 그냥 토사구팽한다. 그리고 당연히 빡쳐서 호빵맨을 도와 세균맨을 쓰러뜨려 호빵맨에게 역전승을 안겨준다.
  • 닌자 워리어즈 시리즈
  • 데스노트 - 타카다 키요미 : 라이토를 위해 멜로데스노트 조각에 이름을 적어 죽였으나 직후 야가미 라이토의 데스노트에 이름이 적혀져 죽었다.
  • 드래곤볼 - 바비디 : 스포포비치가 마인부우 부활을 위해 에너지를 모아오자 뻥 터뜨려 죽여버린다.
  • 럭키짱 - 양무도 - : 백기산이 처음 꼬드길ㄸ만해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이후 백기산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아예 풍호를 눌러버리자고 먼저 제안하긲지 하며 2부내내 백기산이 직접 나서기 전까지 작중인물 중 가장 즌인한 면모를 보이지만 강건마에게 제압당하자 속내를 보링 백기산에게 즈려밟히게 된다.
  • 마비노기 - 모리안밀레시안 멸족 시도[25], 모이투라 전쟁 이후의 마우러스[26]
  • 마신영웅전 와타루 - 토라오 : 1기 후반부 아버지로 믿고 따랐던 마왕 도아쿠다가 돈고로등 믿고 따르던 부하들을 죽이고 나중에 도아쿠다에게 철저히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나머지 자코마루를 타고 도아쿠다를 공격하나 암흑룡에 물려 자코마루가 폭발하면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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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본문에 있듯이 토사구팽 성어 자체는 한신의 오리지널이 아니지만 이 원문의 출처는 사기 회음후열전이다.
  • [2] 그나마 초에 남아있던 몇 안된 재사였다. 기억해주자.
  • [3] 영포는 아니다. 영포는 먼저 반란을 일으켰다가 토벌당했다. 그리고 한신은 사실 진작부터 사망플래그를 쌓으며 어그로를 끌고 있었다. 팽월은 가장 억울한 편이지만 사실 팽월을 숙청한 사람은 한고제가 아니라 여후다.
  • [4] 어디까지나 시시각각 바뀌는 전투상황을 편지로 의논하기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순욱의 조조세력내 위치는 제갈량 이상이었다.
  • [5] 조광윤은 후주로부터 선양 받을 때 술에 취해 진중에서 자고 있는 동안 자기 동생인 조광의가 장군들을 선동해서 황제의 옷을 걸치게 하고 바로 쿠데타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송을 세웠다.
  • [6] 이 조광윤의 일화를 가리켜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이라고 한다. '술자리에서 병권을 놓게 하다'는 뜻. 토사구팽과 정반대의 의미다.
  • [7] 김영삼이 대통령하던 시절에 국회의장까지 역임한 7선 의원.
  • [8] 파리에서 납치하여 한국으로 끌고 와서 직접 총을 쏴서 처형했다는 설도 있고, 현지에서 닭모이 분쇄기에 넣어서 살해했다는 설도 있다.
  • [9] 그럴수밖에 없는게 소모한 시간도 엄청났고 요구한 병력도 많은터라, 만약 왕전이 마음 돌려먹고 진시황을 공격하면 위화도 회군마냥 쿠데타가 가능할 정도였기에 의심 안하는게 이상할 정도.
  • [10] 하지만, 다르게 보면 세조 자신부터가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인물이니, 그 밑에 모인 이들도 야망이 큰 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러모로 자신의 장악력만 과신하여 후대를 살피지 않은 세조의 과오이며, 비슷한 과정으로 집권한 할아버지 태종은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결국 세조의 능력부족도 한몫했다
  • [11] 2011년 125억 들여서 인수한 때부터 특허만 빼갈거라고 하더니 진짜로 2014년 1월 29일 Lenovo에 팔면서 특허는 남기고 하드웨어쪽만 29억 달러에 팔았다(...)
  • [12] 물론 미국에 의해 이용당한 것도 없진 않지만 후세인 본인도 집권기간 정적들을 학살하고 비인간적인 독재정치에 남의 이웃나라 하나(쿠웨이트)를 침략하는 등 불쌍한 인물이라곤 할수 없다..
  • [13] 사실 서달이 과연 토사구팽 당했는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홍무제가 서달이 등창을 앓고 있을 때 많은 양의 거위고기와 술을 내려 그를 위로 했다고 하는데.(거위는 등창과 상극) 우선 정사인 명사에는 서달이 고기를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서달의 죽음과 관련한 기록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명나라 말의 한 소설에서부터인데, 정사의 기록이 아니라서 다소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래도 서달의 가문은 그 이후에도 명 왕조 최고의 명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 [14] 다만 아이패드/4세대는 성능을 제외하곤 변한 부분이 많지 않은데다가 7개월이 지나고 출시되었기 때문에 토사구팽의 사례로 보기 힘들다고 보는 의견이 많다. 만약 이게 토사구팽의 사례라면, 반년도 안지나서 옆그레이드 모델, 파생 모델이 우후죽순 출시되는 안드로이드나 윈도 모바일 기기들은 전부 토사구팽의 사례이다.
  • [15] 단 이쪽은 본인이 자초한 면도 크다.
  • [16] 소하, 진평, 조참등 유방에게 숙청당하지 않은 공신들도 있긴 하지만....
  • [17] 성경의 등장인물로 다윗의 조카이자 부하장수.
  • [18] 그야말로 진정한 토사구팽. 영국 귀족들이 사냥하던 여우사냥 방식에 쓰이던 사냥개들은 6살만 자나면 퇴물로 취급되어 처분된다. 항목 참고
  • [19] 그래도 하륜이나 권근, 조영무등은 죽을때까지 부귀영화를 누렸고 이숙번도 평생 유배지에서 사는걸로 퉁쳤다. 민무구를 비롯한 민씨 4형제가 죽은건 외척이 되어 나라를 휘두를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 [20] 프랑스가 처음부터 잔 다르크를 버린 건 아니다. 지금은 프랑스의 영토지만, 당시 합스부르크 왕가 밑에서 힘을 발휘했던 부르고뉴 지방이 잔 다르크를 영국에게 넘긴 것이다. 다만 영국에서 포로교환을 제안한 것을 프랑스에서 무시했다. 요약하면 부르고뉴가 잔 다르크를 영국으로 넘겼고, 프랑스는 잔 다르크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무시했다.
  • [21] 아예 2011년 카라사태 이후로, 예능에 단 한번도 고정이 였던적이 없었다. 자세한건 항목 참조.
  • [22] 그의 사후 덩샤오핑에 의해 명예가 회복되었다.
  • [23] 단 이 쪽은 린뱌오 자기 자신이 몰락을 자초한 면도 크지만...
  • [24] 마오쩌둥의 눈 밖에 나 권력에서 축출되어 문화대혁명때 감옥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죽은 펑더화이나 권력문제로 마오쩌둥과 다투다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린뱌오와 달리 권력에서 축출되긴 했으나 나중에 다시 복귀하고 깔끔하게 생을 마감했다.
  • [25] 낙원 수호를 위해 밀레시안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밀레시안의 힘이 자신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자 종족째로 멸망시키려 했다.
  • [26] 포워르로 전향한 자브키엘의 최종마법을 막아냈으나 전쟁이 끝난 후 동료들에게 배반당해 가족까지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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