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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Volkswagen의 영어, 독어식 발음
1.1 역사
1.2 위상
1.3 평가
1.4 산하기업

1 Volkswagen의 영어, 독어식 발음 #

독일어로 국민차를 뜻한다.
한국에서는 폭스바겐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독일 니더작센 주의 볼프스부르크(Wolfsburg)에 본사를 둔 자동차 제조 회사.

1.1 역사 #

포르쉐를 만든 페르디난트 포르쉐[1] 박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당시 히틀러는 독일에서 만든 차로 독일인들이 유럽을 자유롭게 오가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위해 추진한것이 아우토반과 국민차 계획이였다. 히틀러는 이 계획을 포르쉐박사에게 맡겼으며 포르쉐 박사는 KDF바겐이라는 비틀의 원형을 만들어낸다. 이 KDF바겐을 만들던 공장과 회사가 실질적인 폴크스바겐의 시작이다. 실제로 폴크스바겐 홈페이지에서는 1934년을 폴크스바겐의 시작으로 말하고 있다. #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군수공장이 되어 KDF바겐을 제대로 뽑아내지 못했다. 대신 슈밸바겐 같은 군용차를 마음껏 뽑아냈다. 2차 대전이 독일의 패배로 끝난 후 연합군이 관리에 들어가면서 폴크스바겐은 위기를 맞게 된다.[2]
다행히 영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공장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당시에 국민차라는 개념 자체가 널리 퍼지지 못한 때였으므로 비틀은 마음껏 나올 수 있었다.

히틀러의 구상물인 KDF바겐은 후에 비틀이라는 이름으로 개명되어 미국등에서 히피들에게 대 히트를 치게된다. 그리고 비틀의 대박을 등에 업고 폴크스바겐은 완전하게 부흥하게 된다.

1.2 위상 #

포르쉐, 아우디, 람보르기니 등을 관리하는 폴크스바겐 AG의 지주회사다. 또한 니더작센 주정부가 주식의 20%를 소유한 공기업이다. GM만큼은 아니지만 이것저것 처묵처묵해서 스폐인의 세아트라던가 체코의 스코다같은 브랜드도 흡수했을 지경.

포르쉐에 먹힐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오히려 포르쉐를 먹어버렸다.형님에게 까분 아우의 최후 애초에 포르쉐와 창업주가 동일해서 이것저것 협력한 사례가 적지 않다. 딱히 대박이다라고 할만한 물건이 없어서 그렇지.[3]

결국 토요타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 제조사가 되었다.

"The Original German"이라는 광고 카피로 오랫동안 밀어붙이고 있다. 독일제라는것 하나만으로도 광고가 되는 더러운 덕국.

1.3 평가 #

그냥 저냥한 독일차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폴크스바겐이라는 브랜드 자체로 럭셔리나 스포츠카를 시도한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대신 거느린 수많은 브랜드를 통해 그런 문제점을 해결하는 편. 그래도 일본과 한국의 자동차산업 성장으로 위기감을 느낀것인지 럭셔리부분은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투아렉페이톤은 이런 전략에서 나온 결과물이였지만 결과가 꼭 성공적이라고는 평가하기 힘든편. 물론 이것은 그동안 유지해온 국민차라는 브랜드의 역효과일 가능성이 크다.

골프에 대한 사랑이 유별나다. 실제로 폴크스바겐 자체적으로 시작된 스포츠카도 골프의 가지치기인 GTI였고, 최근에는 골프의 플랫폼을 이용해 뉴비틀이나 티구안같은 물건을 뽑아내고 있다.
골프의 3도어 스포츠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시로코도 있다.

비틀마이크로 버스는 히피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1.4 산하기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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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르쉐 의 기반을 닦은 사람. 실제로 회사는 아들 페리 포르쉐가 창업했다. 그래서 폴크스바겐과 포르쉐는 형제나 다름없는 관계다. 시간 순서를 따지고 보면 폴크스바겐 쪽이 형. 그리고 형은 동생을 먹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2]  당시 포르쉐 박사는 포드 에게 회사를 매각하려 했으나 포드 측의 거부로 이뤄지지 않았다.
   [3]  대표적으로 포르쉐 914가 있다. 4기통 버전은 엔진이 폴크스바겐의 것. 하지만 대박난 작품도 없진 않다. 폴크스바겐 투아렉과 포르쉐 카이엔은 플랫폼이 동일하다. 포르쉐는 카이엔은 정말 대박을 쳤다.
   [4]  "슈코다"라고도 발음한다.
   [5]  아우디 계열이 별도로 적힌 이유는 2000년 전후 회사 개편 과정에서 아우디 앤 람보르기니라는 별도 디비전을 분리시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