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전설이 된 손현주의 거지 연기.
한자어로는 乞人, 丐 등으로 쓴다. 영어로는 begger, homeless 등등.
1 소개 ¶
직업, 거취가 없이 남에게 구걸을 해서 먹고사는 사람.
소련마냥 엄격한 공산주의체제가 아닌 이상, 인류의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직업. 엄밀하게 정의하기 위한 말이 이렇다 뿐이지 사실 소련에도 있었다.
소련마냥 엄격한 공산주의체제가 아닌 이상, 인류의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직업. 엄밀하게 정의하기 위한 말이 이렇다 뿐이지 사실 소련에도 있었다.
기실 이러한 거지라는 직업은 사회가 산업화 되기 전까지는 매우 자연스러운 직업군 중 하나였다. 단적으로 6.25 전쟁 전 세대만 해도 동네를 해마다 들리던 거지들을 기억하던 사람이 많다. 사회가 본격적으로 사람을 노동력으로 분류하기 시작한 산업시대 무렵부터 '노동하지 않는 것이 죄'라는 개념이 널리 퍼져나갔고,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거지들이 원하지 않는 직업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거지들은 떠돌이였고, 많은 경우에 빌어먹기 위한 기술들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판소리 명창들은 전국을 떠돌며 공연했고, 조선시대의 오락을 담당한 많은 이들이 이러한 떠돌이었다. 많은 수행승과 이름없는 선비들이 전국의 명산을 유람했고, 유람의 과정에서 이들도 마찬가지로 구걸을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거지의 정체성은 상당히 모호한 편이다.
보통 무리를 만들어 다니는 경우가 잦았는데, 크게는 100명 가까이 하는 거대 집단이어서 이들의 우두머리인 꼭지는 조직폭력배인 검계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위치였다. 일화 하나로 한 궁중에 초청까지 올 정도로 유명한 예인이 꼭지에게 생신에 와서 풍악을 연주하라는 요청에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자, 꼭지가 직접 와서 "니 집에 불을 지를 수 있다."고 협박을 하자 공연을 허락했을 정도.... 그리고 생신날 거지들이 즐겁게 놀면서 구걸해온 재료로 만든 음식을 예인들에게 대접했다 한다. 또한 영조가 거지들을 우대하는 령을 내리자 생신날 대궐 밖에 모여 다 함께 함성으로 생신을 축하했다고. 그밖에도 일부 세력이 큰 집단들은 지네나 두꺼비를 잡아 한약방에 팔거나 잔치가 있을 때 다른 세력의 거지들이 물을 흐리지 않게 한다거나 이이제이 하면서 벌이를 하기도 했고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해먹을만큼 여유가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렇게 큰 규모의 거지들은 밥은 빌어도 반찬은 안비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고 한다. 오십보 백보
예전에는 신기하게도 어느 동네에 가든 동네 바보나 거지가 꼭 한명씩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복지시설이나 정신이상자들을 치료하는 기관에 바로 입원시키는 일이 많아서 그런지 이런 동네 거지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산업사회에 접어들어 이런 떠돌이 예능인, 직업군이 이상한 것으로 치부되고 사회체계가 발전함에 따라 사람이 본격적으로 사회의 일부로 예속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그 정체성을 명확히 갖추고 정체성을 수호할 만한 집단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많은 직업 혹은 인종'들이 핍박받았는데 이러한 핍박과정에서 거의 모든 거지들은 소멸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떠돌이 유대인'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폭발한 홀로코스트 이후로, 이러한 현상에 대한 재조명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산업사회에 접어들어 이런 떠돌이 예능인, 직업군이 이상한 것으로 치부되고 사회체계가 발전함에 따라 사람이 본격적으로 사회의 일부로 예속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그 정체성을 명확히 갖추고 정체성을 수호할 만한 집단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많은 직업 혹은 인종'들이 핍박받았는데 이러한 핍박과정에서 거의 모든 거지들은 소멸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떠돌이 유대인'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폭발한 홀로코스트 이후로, 이러한 현상에 대한 재조명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근대에 이들이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보편적으로 인정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 애초에 농업사회에서는 떠돌아 다니는 것만으로 상인도 통제와 억압의 대상이었다. 동아시아권에서는 특히 유교가 사회에서 자신의 직분을 다하기를 요구하면서 유랑민에 대한 회유와 통제에 나섰고, 중세 유럽에서도 떠돌아 다니는 이들은 통제된 장원 질서를 흐트릴 수 있는 유랑민으로서 경계의 대상이었다. 10 ~ 12세기 경에는 청빈하기를 강조한 수도사들의 탁발 운동이 성행하면서 걸인들에 대한 재인식이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12세기 이후에는 청빈에 대한 인식이 '자기 할 일을 충실히 하면서 검약을 통해 청빈해지는 것'으로 전환되면서 다시 걸인들은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거지들(과 이와 잘 구별이 되지 않았던 예능인들)이 전통적으로 천민으로 대접받았던 것만 봐도, 거지들이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까지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거지들이 농경사회에 더욱 많이 존재했던 것은 기본적으로는 토지 소유가 생존과 직결되었던 시대에 토지를 차지하지 못한 계층을 어쩔 수 없이 용인했던 것에 가깝고, 거지들에게 행해진 베풂도 근본적으로는 'ㅉㅉ 쟤네들 구제해줘야지'와 같은 시혜적 시각에 가까웠다.
예를 들어 유대인들이 모여사는 곳에는 유대인 거지가 꼭 한명씩 있는데, 유대인에게는 일상적인 기부가 의무이기 때문에 이들은 선행의 대상으로서 필수요소로 여겨지게 되었다고. 심지어 어떤 거지들은 이런 점을 이용해서 내가 당신에게 착한짓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데 나한테 이렇게 대접하면 안되지 하며 큰소리를 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흠좀무.
한편 이슬람교 또한 자선(자카르트)이 5개의 주요 율법[1]이기 때문에, 이슬람 주요 도시에는 거부들이 자선할 때를 노리는 거지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윤회 사상이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힌두교나 불교 문화권 또한 거지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이다. 선행을 통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므로, 거지들이 오히려 당당하게 행세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편 이슬람교 또한 자선(자카르트)이 5개의 주요 율법[1]이기 때문에, 이슬람 주요 도시에는 거부들이 자선할 때를 노리는 거지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윤회 사상이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힌두교나 불교 문화권 또한 거지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이다. 선행을 통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므로, 거지들이 오히려 당당하게 행세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편으로 이러한 시혜는 걸인들을 유력자와 연결시켜, 결국 걸인들이 하나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이용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명, 청대의 무뢰였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무뢰배'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폭력 조직으로서 신사층의 권력 유지 수단 중 하나로 이용되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한대의 호족들도 유랑민들을 시혜를 통해 수용하여 자신들의 무력 기반으로 이용했다.
앞서 말한 판소리 명창이나 떠돌이 수행승, 선비과 우리에게 잘 알려진 거지의 경계는 여기서 갈라진다[2]. 미약하나마 사회에서 유용한 역할을 하던 이들과는 달리 거지들의 상당수가 양민들에게 폭력적인 해를 입히거나 유력자들의 권력을 지탱하는 도구가 될 수 있는 이들은 국가 권력의 입장에서 볼 때 통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으며, 국가 권력이 성장해가면서 이들은 배척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는 뚜렷한 자기 직업을 갖고 사회에 봉사하는 것을 중요시한 유교나 장 칼뱅 계열 프로테스탄트 등의 사상이 큰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사회적인 생산력의 발전에 힘입어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농민들이 자립력을 갖추어 나가면서 전반적인 서민 사회가 구축되고, 천민층이 급감하는 동시에 예능인들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아 나가면서[3] 거지의 이미지는 서서히 '사회의 위험 세력'으로 축소되어 간다. 한편 유럽 지역에서는 합리주의의 부정적 영향으로 소수자에 대한 핍박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이 결과 거지의 이미지는 역시 '사회의 위험 세력'으로 축소되어 나갔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산업혁명으로 토지보다 노동력이 중요한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제 '토지를 확보하지 못한 불쌍한 떠돌이 농민'을 유력 세력들은 'ㅉㅉㅉ 불쌍하다 구제해 주마'가 아니라 공장 가서 니가 열심히 일하면 되는데 니들이 일 안 한 거잖어?라는 태도로 몰아가게 된다. 떠돌이 계층이 사회적으로 배척받지 않던 명분이 소멸하게 된 것이다. 결국 거지의 이미지는 우리가 익히 아는 사회의 가장 밑바닥 인물들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렇기 때문에 거지는 욕설로도 자주 쓰인다. 거지 그 자체뿐만 아니라 '거지 같다', '거렁뱅이', '빌어먹을' 등의 표현도 욕설로 쓰이고, 천박하거나 질이 떨어지는 물건을 지칭하는 '거지발싸개'라는 말도 있다. 변형된 '그지'라는 표현도 많이 쓰이며 사투리로는 '그르지'로까지 변형된다.
물론 취업률이 또다른 문제가 되고 인권 문제가 대두한 현대에는 거지의 이미지가 다시 '사회의 최하위, 위험 계층'이 아닌 '사회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는 소외 계층'으로 바뀌어 나가고 있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구제 정책도 많이 펼쳐지고 있는 편이다. 물론 지하철 앵벌이나 조직폭력배와의 연관성 등의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면서, 거지에 대해 마냥 돕자는 시각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차라리 전 사회적으로는 배척의 시선이 더 뚜렷한 편이다.
한편 맨 처음에 서술된 거지의 국어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일단 지하철 대다수 거지들은 거지가 아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사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찬송가를 틀며 바구니를 들이대는 장님이나 불구자들도 거지의 범주에 속할 지는 미묘하다. 대체로 이런 거지들은 조직폭력배의 비호를 받고 그들의 용돈벌이를 하는 경우가 상당수인데다가, 간혹 거지 일로 부자가 된 경우도 있다.
가끔은 자신이 직접 구걸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구걸을 시켜 일정액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럴때 그 구걸을 대신하는 자를 앵벌이라고도 한다.
가끔은 자신이 직접 구걸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구걸을 시켜 일정액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럴때 그 구걸을 대신하는 자를 앵벌이라고도 한다.
온라인 게임에서도 많이 목격된다. 특히 "님들아 저 아템 좀."은 어지간한 게임에선 다 보이는 구걸. 그러나 진짜로 게임에 거지라는 직업을 구현한 경우도 있어 충격과 공포를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는 울티마 온라인의 구걸(Begging) 스킬.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고, NPC에게 사용하는 스킬이다.(최대 10gp를 던져준다...) 배울 수 있는 스킬 숫자가 제한되는데 비해 돈을 버는 효율은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므로 굳이 배우는 사람은 없었다. 올리기가 쉬운 편도 아니었고. 때문에 이 스킬을만렙 100까지 찍어 Grand Master Begger 칭호를 딴 사람은 두고 두고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망조의 대명사 르네상스 패치가 나온 후에는 모든 컨텐츠를 소모해버린 플레이어들이 너도 나도 이 짓에 도전해서 색이 바랬지만...
대표적인 예는 울티마 온라인의 구걸(Begging) 스킬.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고, NPC에게 사용하는 스킬이다.(최대 10gp를 던져준다...) 배울 수 있는 스킬 숫자가 제한되는데 비해 돈을 버는 효율은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므로 굳이 배우는 사람은 없었다. 올리기가 쉬운 편도 아니었고. 때문에 이 스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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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앙 고백, 예배, 자선, 금식월, 성지순례로, 이를 '이슬람의 다섯 기둥'이라고 한다. 단 이는 순니파에만 해당하는 것이며 시아파는 이를 규정하지 않는다.[2] 물론 앞서 말했듯 이러한 존재들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았다. 다만 예능인으로서의 거지와 사회의 불안 세력으로서의 거지의 성격은 양면적으로나마 완전히 융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그것이 사회의 변화에 힘입어 서서히 분화되어 나갔음을 설명하기 위해 얼핏 보면 상호 모순되는 문장을 썼음을 주지해둔다.
[3] 판소리는 처음에는 서민 예술이었지만 서서히 양반층을 상연의 대상으로 확대해 나가기 시작했으며, 흥선 대원군 때에는 경회루가 완공되자 이를 축하하기 위해 신재효 등 명창을 초청하기까지 했다. 여기에는 흥선 대원군 본인의 취향도 반영되었다고 한다. 즉 이 시점에서 소리꾼들은 걸인과는 상당히 이미지가 분화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