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98년부터
두산 베어스에서 배터리 코치를 맡다 2004년부터 계속 두산 감독직을 맡고 있는 인물. 선수시절 포지션은
포수이며,
조범현과 같은 OB 원년멤버 출신이다. 별명은 달감독, 혹은 돌경문으로 돌경문이라 불리는 이유는 작전과 투수교체 타이밍 등 여러가지가 맞지 않아서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다 편견에 불과하다고 보는 편이 옳은데 그가 감독을 맡게 된 해부터 성적이 2 2 5 2위, 그리고 08년도에도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 2위를 달성했다.
야구팬들이 다 알다시피 두산은 21세기부터 잘나가는 선수를 다 팔고 직접 육성한 선수들로만 꾸려가는, 그래서 항상 시즌 초 예상성적이 하위에 머물러 있는 팀이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대로 감독이 돌이라면 과연 저런 성적이 나올 것인가는 이미 상식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전통적으로 칭찬에 인색한
김성근 현
SK 와이번스 감독의 김경문 감독에 대한 평가가 매우 호의적이라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달리 립서비스를 해줄 만한 좋은 사이도 아니다. 오히려 꽤나 악연으로 얽힌 관계.
다만 08 베이징 올림픽의
윤석민 논란은... 음...
사실상 김경문이 욕먹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주관이 강하고 스타 플레이어의 대접을 소홀히 한다는 것인데 전자는 08년부터 계속되는
김성근 감독과의 충돌, 그리고 후자는 08년
안경현의 2군행과
홍성흔의 보직 변경 등에서 이런 면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꼭 단점이라고 할 수 없는 면들이며 실제로 전자의 경우 김성근 감독과의 오랜 악연과
SK 와이번스 선수들의 더티 플레이로 인해 벌어진 점과 오히려 남자답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점, 후자의 경우 팬과 선수 개개인에겐 씁쓸한 기억이지만 팀에 있어선 결과적으로 좋은 상황이 되었다(이 건에 대해선 고참 선수와 감독의 기싸움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김인식 시절의 뻥야구 대신 투수진과 탄탄한 수비, 발을 이용한 주루플레이를 중점에 두는 스타일로 팀을 변화시켰는데 이는 기록에서 자세히 찾아볼 수 있다(팀홈런, 득점, 실점, 방어율 하락, 도루 증가). 공격력이 전체적으로 하락한 이유는 팀의 전성기를 이끌던 한국 야구의 전설적인 클린업 우동수트리오와 테이블 세터진이
김동주를 제외하고 타팀으로 모두 이적해버리는 바람에 줄어든 공격력 때문.
특이사항으로는
듣보잡 선수 몇 명을 엄청나게 밀어주는 경향이 있어 그 선수는
달의 남자 라 불리며 까인다. 그러면서 동시에 김경문 감독도 함께 까이지만, 달의 남자들이 포텐셜 폭발로 스타플레이어가 되면 이 칭호는 사라지고 이때까지 까던 팬들이 '이선수는 될 줄 알았다' 면서 애널서킹을 해댄다. 하지만 김경문이 밀어줬던 과거는 잊어버리는 전통이 있다. 물론 이면에는 안 되는 선수도 많다. 근데 이런 갑툭튀한 선수들이 이 팀에는
굉장히 많이 나온다. 흠좀무.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선수들의 경우, 자신의 실력을 충분히 내보일 수 있도록 상당 기간 기회를 준 후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냉정하게 정리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서른 전후의 선수들에게는 문차일드에 속하는 것이 굉장한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가 문희성, 이승준, 정원석. 성공해서 자리잡은 예는 임재철. 2010 시즌에는 유재웅을 지목했는데...
간단히 말해서,
강병철 감독과 그의 숱한
강병철의 양아들들을 생각하면 된다. 다만 기대주 타자들을 잘 발굴해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대개 다음 감독 좋은 일만 해주는 강병철 감독과는 달리 팀 내에서의 그의 자리가 안정적이기 때문에 약간 차이가 있긴 하다.
다만 치열한 경쟁에 의한 타자 육성에 비해 투수 육성은
빵점 덕분에
다니엘 리오스가 떠나자 마자 불펜 야구로 전환되었고 그후 지금까지 제대로 된 선발 투수를 단 한 명도 키워내지 못했다.
김인식 감독이 일선에서 물러난 현재
현재 선동렬과 함께 투수혹사로 KBO 1.2위를 다투는 백정. 선한 이미지 때문에 가려져 있지만 나이를 생각하면 스승
김인식 감독을 뛰어넘을 포스를 보여주고 있다.
김인식 감독과의 차이점이라면 한놈만 집중적으로 완전히 뻗을 때까지 쥐어짜는 김인식 감독에 비해 중간중간 약간의 휴식을 줘서 방전되는 속도가 조금 늦다는 거 하나...그 외에는 제대로 완성되지도 않은 투수들을 위기 상황에 마구 등판시키고 불펜에서 신나게 부려먹다 지치면 휴식 없이 선발에 쑤셔박는 실로 막장 운용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코치진의 무능으로 선발에 적응 못하는 선수들을 제대로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당장 써먹기 위해 불펜알바를 시켜 쥐어짠다는 것도 큰 문제. 구위 하락후 그저그런 투수로 전락한다는 문제도 있고, 게다가 구단도 문제인게 감독이 이러면 제대로 된 투수코치를 영입해주고 실력 있는 용병을 영입해서 어떻게든 보완을 해줘야 하는데 코치라고 데려온건 삼성에서 무능력자 인증 제대로 한 조계현이고 용병은 이번에도 남이 쓰다 버린거 주워왔다.
그리고 10시즌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임태훈,
이재우,
고창성,
홍상삼 등 핵심 투수들이 연달아 무너지며 자멸하는 중. 타선이 강하니 4강 어떻게든 가겠지만 우승은 요원한 상태.
베이징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예선 7전 전승 포함 도합 9전 전승으로 팀을 금메달로 이끌었으며, 예선 및 준결승에서 대타 성공률이 50%를 기록하면서 작두 탄 김경문(
기사보기)이 되었다.
우승하고는 지독하게 인연이 없다. 2005년(
삼성 라이온즈), 2007년, 2008년(
SK 와이번스) 세 번 한국시리즈에 나갔지만 전부 4연패로 한국시리즈를 마감했다(2005년 4연패, 2007년 2승 후 4연패, 2008년 1승 후 4연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 무관의 한은 풀었지만,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1사 만루 역전패 위기에 처했을때는
난 영원히 우승은 못하나보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라고 하니 뭐라 위로해야할지(…).
다만 올림픽 금메달의 경우 국제대회에 불과해 국내에서는 3번이나 준우승만 했다. 결국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홍진호의 별명인 콩을 빗대어 콩경문, 콩산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결과적으로 사실상
콩라인에 가입한 상태. 올림픽 우승의 원동력은 올림픽이 정규리그가 아니라
이벤트전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근데 생각해보면 올림픽도 4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정규리그인데
연패로 가을 야구를 끝내는 것은 09년까지 이어져 PO에서 SK에게 2승 후 3연패로 탈락했다. 이쯤되니 안타까울 지경.
그나마 선수 시절(1982년)이랑 코치 시절(1995년, 2001년)에 우승 경험이 있다.
2.
게이머즈의 기자. 닉네임은 skullokei(스컬로 케이). 주요 담당은 격투게임. 내부 통칭은 해골.
아마 최연소 기자로 추측되는데, 10대였던 97년당시 게임매거진의 KOF97 공략을 맡게 될 예정이었으나 어떠한 연유로 취소되고, 대신 마블 대 스파 공략 어시스트를 맡으며 이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82년생으로 16살때부터 이 바닥에 들어섰다나? 본래
게임매거진 소속.
나이가 어려서인지 주로 당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으며, 사진에는 주로 스크림의 가면을 쓰고 등장했다. 공익시절 당하는 역은
김흠민 기자에게로 넘어간 듯. 참고로 둘 다 제네레이션 캡콤 출신에 친한 친구사이다.
공익 근무로 빠지면서 기자는 그만두게 된 적도 있으나, 그때도 공략 필자로 꾸준히 일하고 있었다.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보면 공익현역 당시 워낙에 많이 일을 쉬어서 26개월 정량 공익에 5개월 가량을 더 했다고 한다.)
나우누리 격투게임 동아리 '제네레이션 캡콤'의 일원으로 시작해서 필자 시절부터 게이머즈에서 줄곧 격투게임을 담당했으며, 기자가 된 이후로 격투 게임 관련 특집이나 기획, 공략들의 대부분을 맡았다. 그가 쓴 공략들을 보면 초보보단 중~고수에게 더 도움되는 내용들이 많은데 기술의 응용과 연속기, 기술 시전 후 경직 프레임까지 계산하는 치밀함을 보여준다.
강승민기자도 나름대로 격투 게임에 일가견이 있다지만 스컬로케이만큼 독보적이진 못한듯.
단, 수많은 격투 게임 공략을 담당했기 때문에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게임도 공략을 많이 했다. 때문에 공략의 퀄리티가 들쑥날쑥하는 경우도 많고, 외국 공략 자료를 전제하는 경우도 있었다. (출처가 없는 것으로 보아 무단전제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 국내의 사정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부족한 인원에 부족한 시간으로 공략 기한을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 이해는 된다.
사실 그의 지명도는 격투 게임보다는 그의 불행이 근간이다. 그가 약 1년 동안 연재한 '
스컬로 파이널'이란 코너에서 드러난 그의 불행 경력들을 보면 정말
안습. 덕분에 컬트적인 인기를 얻어서, 한 때는 독자 응모 코너의 상당수가 스컬로케이의 캐릭터였을 때도 있었다. 더 무서운 것은 이 불행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학창시절, 기자시절은 물론이고 그의 블로그 포스팅들을 보면 공익생활조차 순탄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예비소집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때는
노트북을 도둑맞아 있었고 유종의 미인가, 소집해제 당일날에는
지하철에 치인 시체를 치웠다. 동료인
조기현기자의
인생이 스컬로 파이널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거 같다. 아직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인만큼 앞으로 어떤 불행을 당할지 참으로 불쌍하다.
기자로 복귀하면 스컬로 파이널 리턴즈를 연재할 것 이라는 예측과 기대도 있었지만 결국 본인이 연재를 원하지 않은 탓인지 연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소녀게임을 좋아한다. 공익되기전에 연재하고 있던 미소녀 게임 칼럼을 복귀하자마자 다시 시작했다.
히로하시 료의
카레이도 스타의 인터넷 라디오 일명 스고라지 진행 당시 외국인&한국인
최초로 메일을 보낸 사람은 바로 스컬로 케이라고 한다.
흠좀무.
스트리트 파이터 4의 가정용판 한글화 작업을 맡았다. 엑박판 스파4는 모든 언어판이 한 장에 들어가 있으므로 단순 로컬라이제이션 스탭이 아니라 공식 스탭롤에 이름을 올린 셈. 본인도 그 사실에 대단히 기뻐하고 있다.
위의 글을 대충 봐도 알겠지만
게이머즈의 편집진중 가장 독특하고 가장 개성이 강한 인물이라고 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