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사건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다.
육군사관학교 5기생으로 입학하였으며, 이후 5.16 군사정변 때는 방첩대장(현재의 명칭은 기무사령관)을 역임했으며, 이후 제7사단장, 국방부 인사국장, 제3군단장, 육군사관학교
교장, 제1군 사령관 등을 두루 거치다가 1979년 2월에 육군참모총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1979년 12.12사태 때 권력을 장악하려는
29만원의 전설
전툴루의 계략에 의해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10.26사건 당시 궁정동 안가 '가'동(피살장소는 '나'동이었음)에 있었다는 점을 조사하겠다는 명목으로 전두환의 부하 허삼수 등에게 강제 연행,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가 결국 석방되었지만 이미 모든 실권은 전두환에게 넘어간 뒤였다.
장태완과
정병주가 이 일에 크게 분노하며 반기를 드나,
안타깝게도 그들만으로 신군부를 막을 수는 없었고 그들 또한 신군부에 잡혀 버린다. 굴욕 속에 지내던 중, 아들이 이를 비관하여 목을 메는 아픔도 겪었다.
이후 조용히 지내다가 1987년 통일민주당 상임고문을 지냈지만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떼었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나 1996년
대머리와
보통사람(…)이
김영삼 정권의 12.12 쿠데타 단죄로 잡혀 들어가자 청문회 등에 잠깐 출석해 당시 정황 등을 증언하기도 했다. 이후 2002년에 77세로 사망했다. 12.12 당시의 군사재판 이후 굴욕스럽게도
이등병으로 불명예 전역했으나 결국 다시 예비역 대장으로 복권되었다.
참고로 10.26 당시 "나 참모총장이야!!" 하니 어느 사병이 "뭔 총장?? 대학교 총장 말인가여??"라고 한 일화는 정승화 회고록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