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세기 동안 유럽의 문화, 예술, 외교 언어는 영어가 아니라 불어였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는 프랑스어를 직접 프랑스어로 지칭하지 않고 '국제어' 라고 호칭하고 있다. 이는 당시 프랑스어의 위상을 잘 알려주는 한 단편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또한
로마제국 쇠망사의 저자
에드워드 기번도 원래는 자기의 저서를 불어로 쓰려고 했을 정도였으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의 국호도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불어식 표기는 'Corée'였기 때문에 영어식 국호도 'Corea'로 한 경우가 종종 생기게 된 것. 그러나 영국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면서 'Korea'로 바뀌게 되는데,
J로 시작되는 모 섬나라의 계획적 의도가 아니었다. 정작 조선 당국은
고려 에서 유래된 국호가 꺼림칙하여 'Chosun'이나 'Empire of Dai Han'의 표기를 은근슬쩍 했지만 통용이 안돼서...
또한 최초의 '현대적' 백과사전이 탄생한 곳도 프랑스다. 라루스 백과사전이라고,
볼테르 등이 만들었다. 그리고 간발의 차로
브리태니커가
영국에서 등장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름대로 얌전하게 식민지들을 독립시켜주고 제국을 해체한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끝까지 피를 보고나서야 식민지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여전히 다른 나라에 꽤 많은 식민지를 두고 있다. 단, 이들 식민지의 대부분은 아예 프랑스에 동화되어 버려서 이제는 독립의지가 별로 없는 상태.
남태평양의 식민지인 프랜치 폴리네시아(=타히티)에 가면 까무잡잡한 피부 가지고 있는 원주민 밖에 없는 이국의 섬나라에서 전통음악 연주하며 춤추는 언니들이 꽃목걸이 나눠주면서 "Bienvenue~"라고 하는 인삿말을 듣는 괴 체험 가능. 저 섬엔 무려 까르푸도 있다(다른 데서는 적어도 공항에서 인삿말은 원주민어로 해준다.) |
물론 상대적으로 쉽게 식민지를 독립시킨 영국이 착해서 그런것은 아니다. 일단식민지를 갖고 있었던 것이 잘한 짓이라는 게 아니다. 영국도 돈이 떨어져서 식민지 유지가 어려워지니까 놔줬을 뿐.
자문화를 아끼는 것까지는 좋게 보면 본받을 만한 귀감이긴 한데, 남의 나라에서 약탈해온 문화재는 선진국이 가지고 있는 쪽이 좋다는 논리의 신봉자로서 약탈문화재가 소장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루브르 박물관은 문화재 반환요구가 거세지기만 하는 상태. 하도 까이니
뉴질랜드 마오리족에서 뺏어온 머리 미라는 뉴질랜드에 돌려준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외규장각 도서는 언제 돌려줄 거냐
TGV를 사면 외규장각 도서를 돌려주겠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부터가 1993년 미테랑-김영삼 정상회담 이후, 수십개의 회담의제들 중 가장 화제가 되었던 두 가지를 당시 언론들이 제멋대로 마치 거래가 이루어진 양 지어낸 허구이다.
프랑스로서도 정신이 나가지 않은 한 문화재반환과 열차판매를 연동시켜서 한국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릴 하등의 이유가 없으며, 백 번 양보해서 프랑스가 그 둘을 교환관계로 묶었다 하더라도, 그런 말도안되는 제안을 한국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당시 한국 대통령은 김영삼, 듣자마자 걷어찰지언정 저런 조건에 ok할 양반이 아니다.
당연히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둘 간의 어떤 거래관계도 없다-이다.
외규장각 스캔들에 있어서는
KTX항목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으니 그쪽을 참조하고, 정말 확실한 공식정보를 원한다면 외교통상부에 문의해 보면 답을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최초 1권의 반환도 '버티다가 마지못해 내준'것이 아닌, 미테랑이 한국에 도착해 바로 돌려준 것이며(이 과정에서 그 유명한,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들의 반발이 있었다. 물론 미테랑은 반발을 씹어버리고 1권을 김영삼에게 전달한다),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반환협상이 비로소 시작되었으므로 한국정부가 프랑스측에 항의했다는 것 역시 사실무근이다.
한국 시민단체가 소송에서 패소했다는 부분 자체는 사실이다.
다만 이는 현재 한국으로부터 문화재를 약탈해 간 모든 국가에서도 마찬가지 결과를 얻을 수 밖에 없는지라,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한 부분이다.
예를 들자면, 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된 병인양요와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신미양요때 미군이 약탈해 간 어재연 장군기는 겨우 '10년 대여' 조건으로 2007년에야 돌아왔다, 그나마도 오랜 반환요청과 설득작업 끝에야 따낸 조건이 그것이다. 반환요청은 공식적으로 거절당했다. 다만 이렇다고 해서 미국이 딱히 비양심적인 국가는 아니다, '10년 대여'조건도 국제사례들을 볼 때 결코 흔한 조건이 아니다. 미국 정도면 신사적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는 한국정부의 공식 반환요청이 있자, 처음부터 무려 '영구대여'를 한국측에 먼저 제시해 왔는데, 한국 정부에게 약탈국 정부가 영구대여 혹은 그 이상가는 조건을 제시했던 사례 자체가 없다. 당시 한국 대통령이었던 김영삼은 이 조건을 수락했으며, '본디 반환이었는데 프랑스가 영구대여로 말을 바꿨다'는 소리는 사실이 아니다.
프랑스는 약탈문화재 반환에 있어서 타 약탈국들에 비해 이례적으로 한국에 우호적으로 나오고 있는 국가임이 현실인 셈이다.
루브르 박물관 유리 피라미드 아래에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유해가 있다고 소설, 영화 '
다빈치 코드'에서 주장했으나, 파 본 사람은 없다(픽션에 나오는 내용이라며 겁 없이 파다간 당장 잡혀갈 일이다).
아직까지 스크린쿼터 제도를 꿋꿋하게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으로부터 철폐압력을 받고 있는 한국의 스크린쿼터제의 강력한 옹호자가 프랑스다. 스크린쿼터 존폐여부가 언론의 화제거리가 될 때마다 프랑스의 영화관계자들이 한국의 입장에 찬성하는 기사를 종종 볼 수 있다.
관련내용
이전까지는 그 어떤 영화도 프랑스어로 제목을 번역하지 않으면 개봉할 수 없었고, 모든 영화가 더빙돼서 개봉했다. 최근 들어서는 V.F (프랑스어 더빙)과 V.O (원어 더빙)으로 나뉘어서 개봉된다. 하지만 프랑스땅이므로 V.F 로 된 영화가 더 자주 상영된다.
영화 취향도 특이해서, 한국에서 흥행에 죽쑤는 준 예술영화들이 프랑스에서 개봉하면 나름대로 인기를 끄는 것도 특징. 박스 오피스를 보면 한국에서는 듣보잡 예술 영화로 취급 받는 영화가 박스오피스 1위를 하는 괴현상을 볼 수 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한국보다도 더 잘 팔리는 나라다(사실 김기덕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강세지만).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프랑스에서 24만 관중을 동원했고, 다른 작품들도 다수 개봉되었다.
게다가 2010년,
이창동감독의 '
시'가
칸느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고 격찬받음으로서 한국보다 한국예술영화를 더 인정해 주는 나라로 부각되고 있다. 사실 '
시'는 조국인 한국에서는 영화제작지원심사에서 각본 항목에
무려 0점을 받는 바람에 지원대상에서 탈락하였던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이례적인 일로 주목받았다.
영화에 대해서는 진짜 자부심이 대단한데, 그럴 만도 한 것이 영화를 최초로 발명한
뤼미에르 형제가 바로 프랑스인이다. 즉 영화의 원산지. 그 외
장 뤽 고다르 등 현대 영화 문법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을 배출해냈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영화제 셋 중 하나인
칸느 영화제가 프랑스에서 개최되고 있다.
졸리고 어려운 예술영화만 만들거라는 많은 사람들의 선입관과는 달리 의외로 재밌는 상업적 영화도 많이 만들어 왔는데, 1950년대부터 미국의
하드보일드 문학/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범죄영화를 만들어 왔으며 이 영화들은 필름
느와르라 불리며 이후 미국, 홍콩의 영화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위의 고다르하고도 어느정도 연관이 있기도 하다). 그런 영화계에서 공포의 보수, 사무라이 같은 수작들과 쟝 가방, 이브 몽땅, 알랭 들롱, 쟝 폴 벨몽도 등등의 스타들이 나왔으며, 이후로도 미국과 홍콩을 제외하고는 드물게 수작인 범죄, 액션 영화들이 이어져 나오다가 최근에는 뤽 베송이라는 걸출한 감독 겸 제작자가 나타나 헐리우드와 동일하거나 오히려 더 능가하는 그런 액션영화를 만들어오고 있다. 자기네들이 필름 느와르를 만들어 영향을 미친 홍콩의 액션 느와르의 장점을 거꾸로 수입하여 헐리우드 영화보다 더 제대로 동양 무술액션을 이해한 좋은 액션영화들을 만들고 있으며, 이연걸을 비롯한 무술배우들도 영화에 출연시키고 있다. 미국과 홍콩,
인도, 한국 정도를 빼놓고는 자생적으로 영화에 경쟁력을 가진 몇 안 되는 나라중 하나다.
음악에 대해 적어보자면 프랑스의 고유 장르라 할 수 있는 샹송이 6-70년대 세계에서 큰 붐을 일으켰으며 샹송 이외에도 천하의 난봉꾼으로 유명한 세르주 갱스부르(정확히는 샹송과 팝/록 사이에 걸쳐 있지만),
AIR,
다프트 펑크,
저스티스가 국제적으로 인정 받았다. 이 외 문학, 미술, 연극, 무용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도 자부심이 대단하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도 인정할 만한 사람들은 인정할 정도의 안목은 있어서 영국의 락커 데이빗 보위에게 문화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심지어 국제관계에서도 자신들의 자존심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랑스인들의
개근성(…)은 프랑스의 핵개발 역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자세한 사항은
핵무기 항목을 참조.
핵과 마찬가지로 무기규격에서도 자존심을 엿볼수 있는데, 나토에서 탈퇴한 이래로 나토규격이 아닌 프랑스 독자규격을 이어오고 있으며, 자주국방,자체생산 비율이 매우 높다. 헐.
우린 낮 뉴스시간에 공연도 해요. 그것도 공영 방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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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얘기거리 #
서래마을 영아살해사건에 대한 대응이나
개고기 반대로 유명한 BB여사의 추태, 외규장각 도서 스캔들 등으로 인해
한국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불까들을 양성하는데 성공했다. 반대로 반미 성향이 짙은 사람들에게는 불빠 성향이 짙은 사람이 의외로 많은데, 이는 소련과 중국이 반미라고 해도 한국의 통일에 직접적인 방해를 했다는 점이 크기 때문이라는 점이고 또한 모씨의 영향 때문인지 반미주의자들 중에서 프랑스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역사 공부를 조금만 더 해보면 미국과 프랑스의 사이는 의외로 굉장히 좋고 사실 프랑스 실상을 뜯어보면 미국과 다를거 하나도 없는 세계 강대국 중 하나일 뿐.
한국전쟁에도 UN군으로 참전했으며, 이들의 전투는 지지대 고개 전투가 유명하다. 그래서 프랑스 UN군 참전기념비는 현재 수원의 지지대 고개 고갯마루 부근에 위치해 있다. 90년대 초반까지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으나, 현재는 담을 쌓고 문을 달아 프랑스 전몰기념일 등 특별한 날에만 개방하고 있다. 사실 참전기념비라는 특성상 뭐 별 볼 거리는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신형 전투기 도입사업인 FX사업 입찰 때
다쏘에서 만든
라팔을 팔기 위해 프랑스가 정부차원에서 부던히도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미국
보잉의
F-15K에 좌절.
그래도 찾아보면 우리나라에서 쓰고 있는 프랑스 무기가 제법 많은데, 주로 우리가 미국에서 어떤 무기를 사려고 했는데 미국이 이를 거부하면 프랑스가 비슷한 무기체계를 판매 하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엑조세 미사일이나
미스트랄 미사일이 대표적.
FX사업 당시 인터넷에서도 수 많은 밀덕들이
F-15K와
라팔을 놓고 어느쪽이 더 좋다라고 갑론을박을 벌였는데(사실 지금도 종종 배틀이 붙지만), 이때 누군가가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혹은 고의적으로) 프랑스가
무기를 팔 때 여기 저기 사기만 치고 다니는 못 믿을 놈들이라는 취지의 글을 인터넷에 퍼트렸다. 글의 내용들은 내용이 전혀 틀렸거나, 잘 모르는 사람을 현혹시키기 위해 교묘하게 비틀려 있는 것들. 지금은 주요 밀리터리 사이트들에서 이런 고대떡밥을 들고오면
아직도 그런거 믿냐. 지겹다는 반응이지만 그래도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글을 보고 '헉 프랑스는 오나전
닌자에
먹튀네' 라고 믿으며 또 다시 다른 어딘가의 카페나 블로그로 퍼다 나르고 있다.
지못미.
관련내용
또한 프랑스에는 대서양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운하가 있다. 남으로 지중해, 북으로 대서양에 면한 점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였지만, 완성되고 보니 그다지 빠르지도 않고 운항의 난이도가 대양항해에 비해 높고, 항해할 수 있는 배의 크기가 한정되었고 철도건설 붐 크리를 맞아 화물운송으로서는 망했다. 그러나 풍광이 아름답고 만들어진지 수백년이 지나 주변환경에 녹아든 덕에 레저나 관광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400만원이면 요트를 하루 임대할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다.
다만 세계 최초로 혁명을 통해 절대왕정에서 민주정으로 이행한 현대국가답게 굉장히 자유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리고 정치적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 때문인지 정치적 망명객들은 항시 파리를 선택한다. 다만 그 탓에 7~80년대 내내 파리는 아수라장 폭탄테러와 총기난사 등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당시는 이란 혁명 등 꽤 뒤숭숭한 나라들이 많았고, 파리로 도망간 망명자들을 없앤답시고 신정부들이 파리 한복판에서 암살전을 벌이는 일이 잦았기 때문. 여하간 그 덕택인지는 몰라도 제3세계 독재자들이나 아라파트와 같은 테러단체 지도자들은 파리로 치료를 많이 받으러 간다.
유럽 최강의 덕력을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그 전에 프랑스 만화가 좀 유명했다 지금은 일본 만화덕에 좀 주춤하는것 같지만).
일본 만화의 영향을 워낙 많이 받은 덕분에 수많은
양덕후 보유국가, 만화를 9번째 예술로 칭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덕력은 그야말로 고귀해서 아마츄어들의 자체자작 특촬물인
총사전대 프랑스 파이브라는 것이 있으며, 현재 에피소드 4까지 나와있는 듯하다. 무려 3개 국어로 서비스 된다(프랑스어, 일본어, 영어).
성문화도 상당히 개방적. TV에 영화는 물론 뮤직비디오, 거리의 온갖 광고물, 온가족들이 모여 TV를 보는 시간대 프로그램이나 CF까지 남녀의 알몸 노출, 성행위 장면이 버젓이 나오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혁명> 중에서는 "열아홉 살에 아직 숫처녀로 남아있는 여자는 아마 공상 과학 소설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게다"라는 대사도 나온다.
흠좀무.
프랑스의 이 두 가지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를 들자면 BL계 만화로는 이례적인 100만부 돌파라는 성적을 올리며 일본에서 TVA화(무려 TV방영이다)까지 된 순정 로맨티카가 프랑스 만화 판매고 집계 TOP 10 중 5위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한 바가 있다.
세계 축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 많다. 프랑스인인 로베르게링이 FIFA를 만들었으며 줄리메는 줄리메컵을 만들고 앙리 들로네는 UEFA를 만들었다. 아니 축구는 영국에서 만들었는데 국제축구의 기반은 전부 프랑스인이 닦았잖어 이거.... 그런데 비해 실제 축구실력은 기복이 있다. 퐁텐느, 플라타니, 칸토나, 지단 등 걸출한 스타가 있을때는 강팀으로 돌풍을 일으켰지만, 그런 인물이 없을때는 월드컵이나 UEFA에서 예선 탈락하는 수모를 격기도 했다. 지금도 앙리, 리베리, 에브라 등 유명스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죽쑤는 중... 게다가 월드컵 우승은 자국에서 단 한번밖에 못해봤다.
근래에 프랑스의 국영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된 프랑스 텔레콤이 무려
24명의 직원이 잇달아 자살하는 사태가 벌어져서 프랑스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더 놀라운것은 이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텔레콤의 회장은 책임을 지고 물러날 생각을
전혀 안한다는 것. 실로 --
인간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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