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는
나무 등의 탄력있는 재료를 휘어서 시위를 걸고 그 시위에
화살을 걸어, 활대 부분의 탄력의 힘으로 화살을 날리는 무기이다. 주로 나무를 재료로 사용하지만,
동물의 뿔이나
뼈,
금속,
플라스틱 등의 재질도 상당히 많다. 시위부분도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명주실에서 동물의 힘줄이나 쇠사슬 등 뭐든지 이용한다.
단일소재로 만들어진 활보다는 여러가지 재료를 사용한 복합궁 쪽이 강한 모습을 보이며, 각궁의 경우 대표적인 복합궁이다.
숙련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고래로 전장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눈 먼 화살이었다. 일례로
일본 전국시대에서 최다 사상자는 활에 맞고 죽은 것으로,
일본도나 다른 무기에 맞아 죽은 수는 적다. 심지어 헤이안 시대에 무사계급이 태동하던 시절에는 말을 타고 활을 쏘아 결투를 하는 식으로 전투를 했다.
활 잘쏘기로 손꼽히는 국가로는 서양의
영국(특히 장궁), 고대 파르티아와
몽골,
한국 등이 활을 잘 다루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활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추모왕(주몽. 심지어 이름이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
이성계(
조선 태조) 등 건국 시조 2명이 활을 잘 쏘았다는 나라다. 그 외에
정조도 명궁이었다고 한다(
정조가 활을 쏜 기록에서 보면 50발 중 41발, 45발, 46발, 47발 등 기록이 계속 늘어나다가 이후 49발이 10번 정도 나오는데,
일부러 50발 다 안 맞췄다고 한다. 이는
신하들 기 죽을까봐 그랬다는 말도 있고, 자만심을 막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다.
흠좀무).
설 중에는
성리학에서 전쟁을 예법에 맞지 않는다고 깠으나,
활은 군자의 무기다라고
공자가 말해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활쏘기를 즐겼다. 이는 활쏘기는 철저하게 스스로 바른 자세를 유지하면서 쏴야 되기 때문에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으로 보았기 때문. 구한말 기록영상 등을 보면 활터에서 우직하게 시위를 당기고 있는 어르신과 아낙네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아무튼 '
중국은
창, 일본은
칼, 한국은 활'이라고 할 만큼 한국에서 발달한 무기다. 한국의
지나가던 선비들이 활을 쏴서 이무기를 잡은데는 다 이런 문화의 영향으로 보인다.
우리땅에서 특히 활이 발전한 이유는 주로 산성에 의지하여 싸우는 전술 때문. 적이 처들어 올때 요격이 어렵다면 일단 산성에 틀어박힌 다음 수성하면서 적이 접근하면 활을 쏘아대는 식으로 싸웠기 때문에 활이 발전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지형이 대부분 산세가 험하여서 적이 우회로로 삼을 만한 길들이 잘 없고, 또 후방에 점령하지 않은 산성을 둔채로 이동하다가 배후를 찔리는 일도 있었으므로 공격자 입장에선 어떻게든 산성을 함락시키고 지나가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았던 것.
초기의 화승총 같은 화승점화식
총이 등장한 이후에도 활은 연사속도, 유효사정거리 등에서는 오히려 총을 앞서기도 했다. 쉽게말해
임진왜란때
조총보다 조선 각궁이 성능이 더 좋았다.(…) 활이 총에게 밀리게 된 것은 성능상의 문제보다는
- 총은 장전하고 방아쇠 당기는 법만 배우면 되는 반면 활은 숙달하는데에 오랜 기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
- 유효사거리 내에서 총이 관통력이 더 강한 점.
- 활은 만들고 관리하기가 총보다 훨씬 까다롭다는 점 등 때문이다.
국궁에서 최고로 치는 것은 물소뿔로 만든 수우각궁(흑각궁)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물소가 없다(…).(매우 매우 엄밀하게 말하자면 틀린 소리다. 성종이 후추의 종자를 구해 이를 재배하고자 일본상인들에게 수많은 비용을 들였을때, 대신들이 일본상인들이 사기를 치고 있고, 설령 구한다 하더라도 기후의 차로 재배할수 없을 것이라고 간하자. 성종이 제주도에 들여온 물소를 언급한 것으로 보자면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다만, 그 수가 많지는 았았었던 듯.) 이 때문에 재료를 중국과 일본, 오키나와에서 전량 수입해야 했는데, 중국에서 견제하는 의미에서 수량을 제한하고 오키나와는 일본에게 점령당해서 일본에서만 수입할 수 있었다. 또한 뿔로 만든 활은 습기에 치명적으로 약하다. 따라서 장마철은 총을 다루기에도 좋지 않은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왜군에게 유리한 계절로 인식되었으며, 장마철과 여름에 망가지는 활도 많았는데 이는 접착제로 쓰인 아교가 이런 날씨면 습기를 먹어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서양의 수많은 학자들은 훈족의 활로써 각궁을 생각하고, 또한 동양에서 가장 활이 강하고 숙달된 민족으로 보는데, 삼면이 바다여서 재료 수급에서 그나마 나은 사정을 보인 한국과 다르게 재료 수급이 극악하게 어려웠다는 점에서 이는 올바른 관점이 아니다. 활의 중요한 재료중 하나가 바로 접착제인데 그 접착제로 쓰이는 아교의 재료는
물고기의 부레다. 그리고 재료 문제에서 한국에서는 물소뿔을 최상으로 쳤지만, 사실 이건 최상품의 문제고 대체제는 얼마든지 있다.
중국에서 노(
석궁)를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한국 장인을 초청/납치했다던 기록이 있기도 한데, 노 제작 기술은 전국시대 이래로 구진천의 경우 같은 몇몇 사례를 제외하면 중국이 더 발달되어서 보통 한국에 전래되었다.
조선과 영국에서 활쏘기가 장려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고, 영국은 장궁 궁수대를 유지하기 위해 아예 다른 놀거리를 모두 금지하고 활쏘기 대회만 줄창 하기도 했다.(…) 물론 이후 활은 총의 급격한 발달과 함께 성능상의 우위조차 상실하게 된다.
허나 우리나라에서는 갑오개혁 이전(1894년)까지 군대의 제식무기였다.
서양에서는 사실상 영국을 제외하면 12세기 무렵 전장에서 도태되는 분위기였으며,
석궁이 주로 사용되었다. 귀족들의 전쟁에 머물렀던 서양에서는 중무장한 기사들을 상대하기에 석궁이 더 나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석궁에 비하여 활은 다루기가 힘들기 때문에 전문인력이 필요했는데, 중세 유럽은 상비군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활을 전문으로 쏘는 궁수를 양성/유지하기도 어려웠다. 이후 석궁이고 활이고 전부 총으로 대체되어 버리지만...사실 서양 전쟁사에서 투사무기가 쉽게 총으로 이관될수 있었던 이유도 일찍이 중갑세력을 상대할때 활이 관통력등의 문제로 도태 되었기 떄문이다. 때문에 똑같이 발사속도 느리고 관통력이 중시되던 석궁에서 총으로 갈아타기 쉬웠다.
현재는 스포츠 경기나 레저용으로 쓰이며 전쟁터에서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람보라면 모를까..) 몇몇 특수부대가 그 정숙성에 주목, 실전에서 일부 사용하고 있다.
게임이나 만화등의 매체에서는 호리호리하고 마른
엘프와 같은 자들이 주로 사용하여 활빠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여성들이 활을 드는 이미지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곧은 검이나 창이 남성적 이미지인 것처럼 유연하게 휘어진 활의 몸체가 여성적 이미지이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가 정착된거라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활은 당겨서 조준할 때 팔, 등과 다리쪽의 힘이 많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올바른 궁사의 모습은 전사에 비등할 정도의 근육질이어야 한다는 소리.
사실 내장형 근육입니다 물론 전사보다 호리호리한 스타일의 근육이겠지만.
Fate stay night의
5차 성배전쟁의
아처의 등빨은 어쩌면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올림픽
양궁의 경우 대한민국 대표팀이 악명을 떨치는 종목이며, 항상 금, 은, 동 3개의 메달을 싹쓸이해가다 보니 룰 자체가 바뀌어 결승에 한 국가의 선수가 세명 이상은 진출할 수 없도록 바뀌었다 한다.
한국 대표팀의 실력이 어느정도였나 하면 30M 거리에서 과녁 한가운데에 설치된 카메라 렌즈(일명 불스아이)를 심심하면 깨 먹었다. 바꿔 말하면 10점을 밥 먹듯이 내서 타 국가의 선수들이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30M 사격은 폐지됐다. 이렇듯이 올림픽 양궁 룰변경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메달독식을 막기 위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변경한 룰에 가장 잘 적응하는 곳도 대한민국이다...
흠좀무
실제로, 남자 30M 종목의 경우, 144발을 쏘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 분야의 한국 기록이 1440점이다. 엄마 이거 뭐야 무서워...
참고로 스펀지에서
로빈 후드 이야기에서 묘사되는 '먼저 쏜 화살을 나중에 쏘는 화살로 맞춰 반으로 쪼개기'를 실험한 적이 있는데, 30미터에서 성공했다. 화살을 두번 쏜 것은 아니고 과녁 정 중앙에 속이 빈 화살모양 원통을 하나 꽂아놓고 그것을 향해 활을 쏜 것. 날아간 화살이 박혀있던 화살 속으로 빨려드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올림픽 및 아시안 게임은 메달의 독점을 반대하기 때문에 금, 은, 동이 같은 나라 사람이면 4위에게 동메달을 수여하며 메달을 줄때 국기는 3위와 4위의 국기를 나란히 계양한다.
영화 등에서는 중력만 믿고 활을 하늘로 쏘아올리는데, 각도가 안 맞아서 제대로 된 타격은 입히지 못한다고 한다. 이건 그냥 위협 사격용.
시대극 같은 경우 이게 등장하면 액션씬이 상당히 재미없어진다는 인식 때문인지, 일당백의 용사를 해도 해도 못해먹을때에야 궁병을 투입하는 경우가 많다. 300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고, 그밖의 시대극에도 칼로는 못해먹을 만큼 강한 자의 마지막 전투에서 활로 쏴 치명상을 먹이는 전개가 자주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 잘만 투입하면 웬만한 액션씬보다 더욱 긴박감 넘치는 상황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위와 같은 원리로만 따지면 저격씬 등은 더럽게 재미없는 장면이 되어야 할테니까.
1.1 게임의 활(무기) #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에서 명중률을 민첩성으로 잡아서인지 민첩성을 기준으로 명중률을 따지는 경우가 많고, 공격력도 민첩성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사실 일반적인 활 조준을 생각하면 당연하긴 하지만.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는 3판까지는 공격력은 능력치를 기준으로 올라가지 않고,
합성궁을 쓸 경우
힘에 따라 공격력이 증가한다. 힘이 강해야 활줄을 당길 수 있다는 것. 다만 4판 오면서 합성궁이 짤렸고, 공격력도 민첩성을 기준으로 올라간다.
전형적인 원거리 무기이며, 따라서 밸런스 잡기가 어렵다. 활 전용 클래스(
사냥꾼, 궁수 등)를 두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도 근접전 클래스와의 밸런스가 중대한 과제가 된다. 원거리 무기라는 특성상, "적에게 접근하지 않고 데미지를 줄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어서 상대도 똑같이 원거리 공격을 하는 적이 아닌 이상, 활을 쓰는 캐릭터는 자연스럽게 매우 유리한 입장이 된다. PvP도 고려한다면 이야기가 더 복잡하다. 그래서 약간만 강하게 만들어도 근접전 무기가 아예 쓸모 없게 돼버리고, 너무 약하게 만들면 반대로 활쪽이 쓸모 없게 돼버리는 결과가 나온다.
거기에 위에서 언급한대로 활 데미지 증가에 영향을 주는 민첩이 명중에도 관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멀리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것도 활 밸런스 조절이 필요하게 만드는 요인중 하나.
마비노기에서는 게임 시스템 상 멀리서 활만 줄창 쏘아대도 접근을 하기가 심히 난감하지만, 반대로 이 게임에서 유일하게 '확률적으로 공격이 빗나가서' 악평도 많다.
왈도체로 유명한
마이트 앤 매직 6은 초중반에는 활이
킹왕짱이다. 살아 남을려면 죽어라고 활을 당겨야 한다. 후반으로 가도 마찬가지. 다만 후반으로 넘어가면 스파크, 용숨 난사와 블라스터로 넘어가니 별로 쓸 일은 없다.
바람의 나라의
궁사는 절망적인 명중률 때문에 키우기는 미칠듯이 어려우나(그래서 돈을 좀 써서 명중보정을 해야한다) 후반에 가면 1
억(…)을 넘는 데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총처럼
쌍으로 들 수 없어 모션이 획일화 되기 때문에
창이나
검에 비해 화려함이 부족하다. 사실 이 점은 게임 제작자들의 상상력 부족 때문이기도 하다.
거의 대부분의 게임이 화살 소비와 방패 착용 불가라는 패널티가 거의 공통으로 따라오기 때문에 빈약한 방어를 보충할 컨트롤과 화살을 넉넉히 대줄만한 자본력이 있어야 활을 제대로 쓸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단, 리니지의 경우 고대의 보우건이라는 무기에 한해 방패 착용이 가능하다. 고대의 보우건 자체가 좀 고가이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