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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칭(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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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한민국 운동권 계열 중 하나

1 약칭(NL)

3 대한민국 운동권 계열 중 하나


본래는 NLPDR, 즉 민족해방(National Liberation)민중민주주의 혁명(National liberation people democracy revolution)의 약자이다. 혹은 North Love의 약자라고도 카더라 자주파(자주대오, 자주계열), 자민통[1], 민족해방이라고도 한다.[2]

NL의 뿌리는 기본적으로 이오시프 스탈린1국 사회주의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1,2차 세계대전 당시 '만국의 노동자의 일치 단결'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허황되었다는 교훈하에(가령 독일의 노동자들은 전쟁이 일어나자 소련에게 총부리를 겨누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개별 국가의 사회주의 혁명은 해당 국가의 노동자 계층이 스스로 달성해야한다는 공산주의 혁명 이론이다. 이 이론은 "일국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다시 말해 스탈린주의로 정리가 되고,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경계가 명확하지 못한 동아시아의 중국과 한국에 전파되면서 민족주의적 공산주의 혁명 이론으로 바뀌어나가게 되며, 현재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로 변화되게 된다.

이와 반대되는 입장인 PD의 경우는 인민민주주의(People's Democracy) 노선으로서, 기존의 '만국의 노동자의 일치단결'을 통한 공산주의 혁명을 주장하는 사해 시민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 PD 노선의 경우는 남미로 옮겨가면서 독자적인 사회주의 이론(종속이론 등)을 발전시키게 되는데, 이 계통의 이론을 실천한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쿠바 혁명을 성공시키고, 볼리비아 정글에서 살해된 체 게바라를 들 수 있다. NL의 주장을 비교하면 양자가 엄연히 다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양자의 혁명 이론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례는 북한에 대한 태도와 동남아시아에 대한 태도이다. NL은 민족주의 노선으로서 북한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반면, PD는 그런 속박에서 자유롭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정치적 자유화를 위한 투쟁에서 NL은 개별 국가의 혁명은 그들의 문제이므로 외면하는 반면, PD는 이들을 지원하는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게 된다.

NL의 연원은 사실 갑툭튀라고 부를 정도로 1980년대에 갑자기 발생한 정파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이전의 재야 운동권에도 종북주의자주체사상파는 존재했으나, 대부분 자생적이지 못했고 어떻게든 북한과 연계가 있던 집단들이었다. 박정희 정권 내내 조작된 간첩사건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간첩사건도 상당수 있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1960~70년대 내내 북한보다 낮은 경제사정과 집권층의 부패라는 약점을 파고들어 한국 사회에 침투를 시도한 간첩들이 꽤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통일혁명당 사건. 그러나 유신체제가 들어서면서 이들은 상당부분 일망타진되고, 사실상 맥이 끊기게 된다. 1980년대 이전의 종북노선이나 통일지상주의 운동권은 대부분 북한과의 직간접적 연계가 있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 자생적 민족주의인 NL계열이 운동권의 주력이 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였다[3]. 1980년대의 학생운동을 이끌어 나갔던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하나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었는데.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사에서 광주항쟁은 반미가 중요한 명제로 부각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1970년대까지 많은 민주화 운동에서도 미국은 박정희 정권의 폭주를 저지하는 고마운 우방이었다. 또한 유신 말기의 카터 정부에서 인권과 민주화를 중시하며 박정희 정부와의 사이가 껄끄러웠던 것도 이러한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다. "그나마 미국이 있으니 간신히 숨통이 트인다"는 것이 미국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면서 카터 정권의 레임덕과 그로 인한 정치적 실책[4], 그리고 전두환 정권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면서 운동권 내부의 분위기는 급격히 반미, 그리고 그 반대급부의 민족주의로 기울게 된다.

사실 미 대사관을 비롯한 미 당국은 투옥된 김대중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때문에 김대중의 명줄을 잡고 있던 전두환에게 이리저리 휘둘린 것이긴 했지만, 당시에 그런 속사정까지 알 수 있을리 없었던 대학생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며 "미국놈들도 사실 다 똑같은 놈들이었어!!"하고 외치게 된다(…). 물론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병력 이동을 허가한 것은 미국의 덮을 수 없는 실책이었지만…. 어쨌든 이런 반미 감정은 1980년대 급속히 확산돼, 1982년의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나 1985년 서울 미 문화원 점령사건에 이르기까지 운동권에서 터트렸던 굵직굵직한 사건에는 어지간하면 '반미'라는 모토가 깔려 있었다.

현재의 대한민국을 미국식민지 반봉건사회(은유적 표현이 아니다) 로 보고 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미제의 꼭두각시 정부라고 판단하여 그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언뜻 보면 일본의 한국사 정체성/타율성론과 비슷하게 보이나 사실은 다른 이론으로, 이들이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5단계설과 그 이후 좌파들의 논의를 검토한 결과 내린 결론이다.[5]

이와 반대로 북한은 외세의 식민주의적 침략과 간섭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민족 자립국가로 보고 있으며, 그 중 일부는 남한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북한이고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남한보다 북한이 훨씬 자유롭고 자주적인 국가라고 여기는 오류를 저지르기도 했다.[6][7] 따라서 남과 북이 힘을 합쳐서 외세인 미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같은 민족끼리 자립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태우 정권과 첨예하게 대립했던 NL의 리즈시절 80년대 말에는 북한의 선전 멘트에 매우 충실히 반응해 한국전쟁은 남한의 북침으로 발발했다고 믿고, 남한의 원자력 발전소는 미국이 북한을 두려워하여 준비한 N2 지뢰핵무기라고 믿는 등 여러모로 순진한 모습을 지녔었다. 이런 양반들 중 상당수가 교육계로 흘러가기도 하다 보니,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08년 한국 초등학생 설문조사 결과 한국전쟁은 남한이 일으킨 거라는 응답이 20%가 넘게 나와 충격과 공포를 선사해 주셨다.[8]

조직은 연합의 형태를 구성한다. 1990년대 NL(민족해방) 운동권들이 전국연합이란 합법적 조직을 건설했을 때 지역별 조직들이 건설되었는데 서울연합, 경기동부연합, 경기남부연합, 인천연합, 광주전남연합, 울산연합, 부산연합 등이 탄생했다. 그때 맺은 인연들이 이후에 정치적으로 구심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그중에서 특히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 인천연합이 가장 큰 조직적인 힘을 획득해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다.

비록 지역이름이 붙어 있지만 특히 경기동부연합은 다른 지역 활동가와 조직에도 상당한 지도력을 행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지역에도 경기동부연합이 50%가 넘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들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 인천연합의 삼대연합은 사안별로 경쟁하기도 하고 연합하기도 한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이들은 정파의 존재에 대해서 함구한다. 특히 일반 당원들과 외부에 대해서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따라서 이들 삼대연합의 활동방식은 각종 진보적 조직과 지역위원회 활동가들을 자신들의 영향력 하에 두고 사안에 따라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인물을 조종해 전화로 지침을 내린다. 그리고 각종 공직선거와 당직선거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이념으로 주체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남한에서는 직접적으로 표방하기 힘들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는다. 다만 NL계열 단체의 강령 등에서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주체사상 자체가 아바이 수령 아래 대동단결이라는 굉장히 수직적인 정치 구조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수의 NL단체들은 수직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윗선에서 내려온 명령에 복종하며 의문을 제기하면 대동단결을 해치는 반동분자로 낙인찍힌다. 이런 위계질서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절차를 넘어선 항명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NL계열은 PD계열에게 '통큰치킨통큰단결'이라고 항상 손을 내밀며 연합하려 하지만 수직적 상명하복의 조직구조상 소수파인 PD계열은 NL계열의 머릿수 때우기로 흡수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반발한다(사실 손을 몇 번 잡았다가 PD계열이 데인 경우가 꽤 많다). 그래서 NL계열은 PD계열을 통큰단결을 저해하는 종파주의자라고 깐다. 마찬가지로 PD계열은 NL계열을 북조선식 독재정권이라고 깐다.

대학에서도 학생회를 애국적인 학생들로 이루어진 '조국통일의 첨병'으로 여기기 때문에 학생회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학원 자주화'가 학내 최우선 목표가 되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학생회를 장악하려 한다. 덕분에 학생회를 둘러싼 비리와 폭력사건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한총련의 꽉꽉 채워진 할당량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학내 문제에 대해서 비교적 신경쓰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이런 식으로 학생회 장악을 노골화 하다보니, 이미 여러 대학에서 부정투표 등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진보적 학생회 전부가 NL계 학생은 아닌데, NL계가 이들의 이미지를 다 깎아먹기 때문에, 최근에는 뉴라이트의 지원을 받는 학생회라던지 비운동권이 다소 강해질 정도.

민족, 통일이란 말에 매우 항가하며 어떤 일보다 민족에 관한 일이 우선시된다. 심지어는 노동쟁의 도중 사망자가 발생하자. "열사의 주검안고 가자! 평양으로!"라는 구호를 외쳤을 정도.(무슨 상관인데?)

또한 현재 남한사회를 봉건주의라고 보기 때문에 농민과 연대하려고 하며 전농 등 농민단체와 친하다. (문제는 북한이 전제주의 국가라는 점에 있지만) 학생회가 NL계열이라면 거의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농번기에 농활을 가는데, 협동봉사라는 측면도 있지만 정치적인 이유가 더 강하기 때문에 한총련 지도부에서 각각의 학교에 지역할당을 해 누락되는 지역이 없도록 전국적으로 조직한다. 뭐, 그렇다고 PD 애들이 농활 안 가는건 아니지만 의미가 좀 다르다. 실례로 어느 대학의 PD계열의 학생회에서 '학우들의 부모님을 돕자!'라는 취지로 한총련에서 내려온 할당구역을 무시하고 농사짓는 학생의 집 위주로 농활을 꾸렸다가 비판당한 일이 있었다.

승리적 관점이라는 이상한 시각으로 모든 행동을 긍정적으로 표현한다. 승리적 관점을 요즘 유행어로 표현하자면 정신승리. 이게 버릇이 아니라 이념으로 존재한다. 우리를 대표하는 위대한 영도자(수령이든 단체장이든)가 행하는 일에 실패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수단과 과정에 대한 고찰이 그만큼 부실하게 될 수 밖에 없으며 그 결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결과론적인 입장을 자주 취한다.[9]

이념이 좀 허황되지만 매우 단순하고 감성적이라서 열성적이며 운동세력의 다수를 차지한다. 항간에는 머리 없는 NL, 손발 없는 PD라는 말로 종종 표현된다.

PD 계열에 비해 친북적 성향을 띄는 집단인데, 한국에서 친북(혹은 종북)이 진보에의 지지를 깎아먹는 제일 요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결국 진보 세력의 지지를 깎아먹는 가장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집단이다. PD파가 적어도 친북적 색채는 벗어던지기 위해 노력한다는 걸 생각한다면 그냥 무개념.

크게 사람사랑(온건파)과 자주대오(강경주사파)로 나뉘지만 주체사상을 한꺼풀 숨기느냐 내세우느냐 정도의 차이 밖에 없다. 하지만 두 계파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다. 물론 비주사NL이라는 기치의 소수파가 존재하긴 하나 이들도 기본적인 민중해방의 모토 하에 움직이기 때문에 이들도 엄연한 NL이다.그리고 이 다양한 정파가 3단합체하여 경기동부 짠짜라잔

다만... NL 운동으로 지금까지도 몸바치고 있는 '그 바닥'에선 메인 브레인인 민경우씨가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책으로 현 NL 운동의 한계 및 문제점을 얘기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정치 군사적 식민지인가, ‘농촌 인구가 급감한 현실에서 노농동맹에 기초한 통일전선이 여전히 의미 있는가, ‘현대와 삼성은 매판자본인가, ‘지사적 풍모와 금욕적 생활 태도가 요즘 청년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가, ‘일국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가?'와 관련된 질문들을 독자에게 얘기하고 있는데 좀 늦은 고민이긴 하지만 이정도라도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라면 다행.

참고로 이들의 심화된 버전인 주체사상파 (주사파) 에 소속된 이들은 기본적으로 (진보신당은 물론이고) 민주노동당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유일한 혁명정당은 북한조선노동당뿐이라고 보는 것이다. 흠좀무

이것의 이론적 배경을 본다면 이오시프 스탈린의 1국1당주의에서부터 기인하는데, 한나라에는 오직 하나의 사회주의 정당만을 인정하며 어떤 정당을 인정하는가는 소련이 꼴리는 대로 결정한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남북한은 원래 한 나라이고 소련의 간택을 받았던 조선노동당이 있으니 다른 사회주의 정당이 있어서는 안되며 있더라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한 주체사상에 의해 하부는 상부의 명령에 복종할 수 밖에 없으며, 이는 그대로 북한(노동당)의 방침에 따라 후빨할 수 밖에 없는 배경을 낳는다.

다만 이것은 강경한 쪽의 관점이고, 온건파는 2001년을 전후로 민주노동당에 대거 입당, 현재 다수파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위의 이유로 민주노동당을 남한 내에서 합법적인 정치활동을 하기 위한 방패막이 도구 정도로 인식하며, 사실상 조선노동당의 제2중대 쯤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의 전신 97년 대선 권영길의 선거본부 국민승리21에서 선거운동은 권영길을 하고 뒷통수를 때려 투표는 김대중을 조직적으로 밀어버린 과거가 있다.[10]

NL계열이 민주노동당에 조직적으로 잠입하고 장악하면서 크게 물의를 일으켰는데, 민주노동당을 장악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민주노동당 A지구당의 선거에 대량으로 위장전입하여 선거권을 획득한 후 몰표를 주어 NL계열을 지구당 위원으로 당선시키고 해산하기를 반복하여 당 중추를 장악한다거나 유령회원의 입당서를 작성한 다음 투표만 시키고 탈당시킨다거나 하는 등이다.

2012년 진보계열 정당들의 선거연대인 통합진보당의 당권파로 조직논리를 앞세운 부적절한 경선행보를 보이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국가보안법매의눈으로 노리고 있는 메인 타겟이다. PD계열 단체들은 어지간해서는 국가보안법으로 엮기 어려운지 주로 파업 가담이나 시설물 파괴 등에 대해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식으로 잡아가는 수법이 많이 쓰인다. 국가보안법보다 더 무섭잖아??
  • 여담이지만 예전 안기부 시절에는 NL보다는 PD들이 주로 타겟이었다고. PD계열로 활동하던 사람이 조사받던 중에 조사관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NL은 병진이라 가만 놔둬도 한계가 있지만 PD는 미리 싹을 밟아놔야 한다라고 했다나.
인터넷 정치 토론 사이트인 서프라이즈딴지일보에도 사이트 관리를 안해서 인지NL 계열 네티즌들이 상당수 있어서, 무슨 기사만 뜨면 미국을 욕하고 북한을 찬양한다. 심지어 북한을 4대 군사 강국이라고 하는 말도 나왔다. 흠좀무...서프라이즈는 관리를 소흘히 해서인지 국제/군사방이 NL에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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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들은 반미하나 에만 광적으로 집착한 나머지, 그 반대쪽에 서 있는 중국에 관해서는 거의 무한대의 애정을 보인다.[11] 한 예로 최근 출판된 <인도는 울퉁불퉁하다>에서는 미국과 일제 강점기를 통해 일본을 거의 무지막지하게 까더니, 반대로 중국의 티베트 침략에 관해서는 "티베트 학살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 티베트 망명정부는 사치스럽게 살며, 거짓말을 했다. 오히려 중국이 티베트 점령하고 나서 티베트의 생활 수준은 더 나아졌다."라고 두둔하기까지했다. 일본의 한국 병합은 저주하고 욕하면서, 중국의 티베트 병합은 찬양하는 이중적인 잣대의 모순점이란 할말이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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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들의 금과옥조이자 남북공동합의서의 3대 강령인 자주, 민주, 통일의 약어
[2] 흔히 키배 에 종종 쓰이는 "좌빨"의 의미라면 모를까 이들을 좌파로 부르기는 (현재로서는) 어렵다. 뭐 이미 북한 도 헌법에서 공산주의를 삭제한 마당에
[3]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성향이 강했던 학생운동이 (적어도 표면적으로도)정치적, 사회주의적 성향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부터가 5.18을 막지못한 서울역 회군부터로 보는 평이 유력하다. 서울역 회군 이후 기존의 학생회 지도부들을 대신하여 사회주의의 영향이 강했던 복학생 그룹이 투신자살 등을 무기로 학생운동의 전면에 부상한 것이 이 시기부터였다. 그리고 기존의 학생회 지도부는 이념의 부족에 주도권 상실의 이유로 보고 일본을 거쳐서 북한에 밀입국 하는 형태로 북한과 연결된다. 이 복학생 그룹이 PD, 기존의 지도부로 북한에 건너간 그룹이 NL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전부터 준비론과 투쟁론 등으로 크게 두 부류가 있었다는 평이 있기는 하지만 본격적으로 세력이 분산되기 시작한 것은 이 시기부터라는 것이다.
[4] 국무부가 전두환을 열심히 까고 있을 때 정작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이던 위컴 대장은 "한국인은 레밍" 운운하며 전두환을 지지한 일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5] 물론 지금은 역사학계/사회과학계는 물론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대접받지 못하는 이론이지만, 1980년대 당시 학생사회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가 어려운 현상은 아니다. 그냥 말이 안 된다는 것뿐이지.
[6] 이것은 1960년대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알던 일본의 적군파의 영향을 받은 것이 크다. 꼭 적군파만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1960년대까지는 세계적으로 북한이 사회주의 혁명의 모범 사례였다. 물론 북한의 선전활동만 믿은 것이고 실상은 시궁창이었지만.
[7] 1989년~1990년 당시 한창 남북 화해무드에 따라 북한에 다녀온 학생운동가와 사회운동가들이, 자신들을 환영하기 위해 오밤중에 주민들을 깨워서 숙소 근처에 동원시켜놓은것을 보고 "얼굴에 피곤하다고 쓰여있는 사람들 데리고 뭐 하는 짓인가"라고 생각하면서, 적어도 남한이 북한보다는 자유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종의 임수경 쇼크의 남한버전?
[8] 하지만 이건 단순히 NL 성향의 교육자들 탓으로 치부할 일은 아니고, 그만큼 한국 역사-특히 근현대사-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도가 낮다는 의미도 있다.그 놈의 입시경쟁
[9] 수직적 조직구도와 함께 PD계열이 가장 반발하는 부분이 이 항목이다. 친북은 그 차후의 문제고.
[10] 원래 NL계열은 '비판적 지지', '사표 방지', 여당 견제 등의 이유로 88년 이후 제1야당에게 몰표할 것을 종용해 왔으나 민주노총이 건설되고 국민승리21이 구체화되면서 운동세력들이 결집되자 이 또한 좌시할 수 없기 때문에 국민승리21에 참가한다. 그러나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NL진영에서 다시 한번 '비판적 지지'론이 두각되기 시작하고 결국 국민승리21의 권영길은 자신의 지지기반에 훨씬 못미치는 고작 30만표(1.2%)에 불과한 득표를 기록하며 참패하였다.
[11] 서프라이즈에서 어느 네티즌은 중국에 기대야 나중에 미국의 횡포로부터 한국이 보호받을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소리까지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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