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

Contents

1. 역사적인 의미에서의 마녀사냥
1.1. 마녀사냥 과정
1.2. 타 지역의 마녀사냥
1.3. 마녀사냥이 등장하는 창작물
2. 인터넷 악습
2.1. 오용되는 경우

1. 역사적인 의미에서의 마녀사냥

미리 말해두는데, 중세가 아닌 근세에 벌어진 일이다.

16~17세기에 걸쳐 유럽에서 벌어진 학살. 총 6만명이 죽었다.[1] 가톨릭만이 아니라 개신교 계열에서도 마녀사냥은 존재했다. 하지만 고문과 사형 그리고 재산몰수로 이어지는 일종의 산업이 된 것은 프로테스탄트 운동으로 인해 실추되고 있던 교황청에서 이전에는 금지하던 이것을 승인한 후부터이다.

악마와 계약해서 마법을 사용한 마녀를 재판에 넘겨서 처형하는 것. 주로 화형당하는 이미지로 널리 알려졌지만 화형만이 아니라 목을 매달거나 물에 빠뜨려 죽이는[2] 등 온갖 방법으로 죽였다.[3]

서양 역사에서 있었던 통칭 마녀재판 은 사실 마녀재판이란 번역이 적절치 않으며 '특별재판' 이 적절하다. 흔히 이단심판, 마녀재판으로 번역하는 라틴어 'inquisitio' 는 교회법으로 어떤 특정한 사항이 발생했을 때 임시로 개설하는 '비상설 특별재판' 이기 때문. 즉 'inquisitio' 는 꼭 마녀나 이단만을 다루던 재판이 아니다. 하지만 마녀재판이란 단어가 워낙 한국어 언중에게 깊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 문서에서도 그대로 마녀재판이라는 단어를 쓰도록 한다.

마녀를 찾아내는 데에는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이란 책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사제 두 명이 합동으로 쓴 책. 우리말로 '마녀의 망치' 혹은 '마녀의 추' 라고 번역한다. 그 이전까지 마녀에 대해 떠돌던 온갖 전설과 민간신앙을 정리하고 집대성한 매뉴얼적인 책.[4] 이 책을 비록 가톨릭 수도사들이 썼지만 그 이전까지 전해오던 모든 이미지를 종합한 것이기 때문에 개신교권에서도 참고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자기들이 보기에도 친숙한 이야기들만 나오니까. 반대로 영국에서는 그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영국은 섬나라라 대륙의 전통을 집대성한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일단 명목은 마녀사냥이지만 실제 마녀사냥에 희생당한 사람들은 권력의 희생자들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특히 돈 많은 과부들이 주로 타겟이 되었는데 당시 여성의 지위도 별 볼일 없었고 남편이 없으니 '악마와 간통했다' 라는 소문에 취약한 데다가 무엇보다도 당시 독일법상 마녀재판으로 몰수된 재산의 일부는 마녀로 누군가를 지목한 사람의 몫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덤으로 '아름다운' 과부는 같은 마을의 여성들이 질투로 마녀로 신고했다고. 또한 이교도였던 개신교 신자들도 상당수가 희생되었다. 하지만 개신교 국가에서도 마녀사냥은 많이 이뤄졌다고 한다. 개신교 신자들이 이주한 미국의 경우에도 세일럼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난 적 있다. 이때 이 재판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유명한 작가 너새니얼 호손[5]의 조상이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호손은 자기 성을 'Hathorne' 에서 'Hawthorn' 으로 바꿔버렸다고 한다.

세일럼 재판은 당시에도 말이 많았는데 완전 무죄는 거의 2000년대에 돼서야 이루어졌다. 마릴린 먼로의 남편 중 하나인 아서 밀러가 이 사건을 걸작 희곡 크루서블로 남겼고 영화화도 되었다. 아서밀러는 매카시즘의 희생양이었기 때문에 무엇을 풍자했는지는 상상 가능한 일이다.

유명한 천문학자이자 왕실의 정식 마법사 케플러의 모친도 마녀로 몰렸다.[6] 사형까지는 안 가고 어찌저찌 풀려났는데 후유증으로 사망한다. 막상 케플러는 마녀 사냥을 아주 지지하는 사람이었다.[7]

참고로 잔 다르크는 희생자가 아니다. 마녀로 기소되기는 했지만... 정확하게 말해서 잔 다르크는 마녀사냥이라기보다는 이단심문의 희생자로 잉글랜드와 프랑스, 교황청의 이해관계가 합일되면서 희생된 케이스다. 잉글랜드측에서는 백년전쟁 말기의 잉글랜드군을 무찌른 잔 다르크를 제거하기를 원했고 프랑스는 국왕보다 인기가 높아지는 잔 다르크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에 잉글랜드는 부르고뉴파의 도움으로 잔 다르크의 신병을 양도받았고 프랑스 국왕은 잉글랜드로부터 적절한 뒷돈을 받으면서 그것을 묵인했다. 교황청은 이미 짜여진 각본대로 잔 다르크의 이단 혐의를 입증했으며 이를 문서화 시킨 뒤에 잉글랜드 국왕에게 넘겨버렸다. 잔 다르크가 서명한 자백서에는 '자신은 자신의 이단 행위를 회개하며 다시는 정통된 신앙에 도전하지 않겠다' 는 내용이 적혀있었으며 동시에 이와 같은 일이 또 발생시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 고 하였다. 이때 문맹이었던 잔 다르크는 자신이 어떤 문서에 서명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뒤에 잉글랜드에서 다시 한 번 잔 다르크를 마녀로 기소하면서 어쩔 수 없이 잔 다르크는 화형대로 올라갔다.

흔히 중세시대에 가장 많이 벌어졌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실제 가장 극심하게 마녀사냥이 벌어진 시대는 근세로서 대표적으로 30년전쟁 기간 독일에서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애초에 마녀사냥이 벌어진 원인이 가톨릭의 권위가 약해지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8] 그 전까지 (공식적으로) 금지해왔던 마녀사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부터이다. 그리고 한 번 몰아치기 시작한 광풍이 그렇게 쉽게 가라앉을 리가 있나(...) 결국 근세에 정점을 찍은 뒤 가라앉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12세기 이전의 마녀재판과 12세기 이후의 마녀재판을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12세기에 로마법에 대한 연구가 다시 시작되면서 그 전에 있었던 게르만족 풍습에 의한 살리카법전의 사용빈도가 적어지고 새로운 로마법에 기초한 법전 체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12세기 이전에는 게르만족 풍습에 의해서 피해자가 있어야만 고소가 가능했었다. 즉 마녀에게 피해를 받은 사람이 있어야만 마녀를 고소 가능했던 것이다. 그에 비하여 12세기 이후에는 피해자의 신고 없이도 마녀의 고소 색출이 가능했다. 소위 황제시해음모 이론에 따른 것인데 황제를 시해하려는 음모만으로도 반역죄에 해당하며 이는 사형으로 다스린다 라는 로마법 구절을 인용하여 누군가의 신고 없이도 바로 재판이 가능하게 되었다. 근데 사실 이 로마법도 고대에는 그딴 식으로 해석 안했다(...) 그렇게 해석했어도 아무 때나 들먹이진 않았다. 애초에 황제 시해 음모에 대한 거였는데 통상적으로 쓰였을리가...

사실 중세 말부터 시작된 교회 영향력의 불안으로 인해 심화된 것으로서 구교, 신교 갈등으로 절정에 올랐는데 종교 갈등이 없었던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는 거의 마녀사냥이 없었고 있어도 태형 정도의 처벌에 그쳤다. 단, 스페인은 유대인 탄압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있었던 한 마녀재판의 경우 주술 행위를 한 죄로 농부를 체포하고 훈방하고 체포하고 훈방하고를 거듭하다 수십 년 만에 최종적인 사형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독일의 경우 마녀의 재산을 가지지 못하게 했더니 신고률이 급감했다(...)는 기록이 있다. 즉, 지역사회의 갈등이나 재산 등의 문제를 종교적인 명분을 빌려 처리하기도 했다는 것. 원래 마녀재판은 지역 공동체의 불안케 하는 원인을 색출해서 진정케 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마녀재판이 너무 심해지면서 도리어 지역 공동체가 극도로 분열, 나중에는 마녀재판 그 자체가 악마의 농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기도 했다. 미국 세일럼 재판이 그 대표적인 예. 이 정도쯤 되면 이단심판관들에게 마을 사람들이 공공연히 적대감을 보일 정도였다.

독일은 마녀사냥이 가장 심한 곳이었는데 그마저도 지역마다 서로 대단히 달랐다. 해당 지역을 통치하는 권력자의 성향에 따라 강하게 영향 받은 듯하다. 그 때문에 마녀사냥을 연구하는 서양사 학자들은 일괄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연구에 애로사항이 많다(...).

영국의 경우 알려진 것과는 달리 마녀사냥은 적은 편이였으며 처형당한 숫자는 지나치게 과장된 것일 뿐 실제로는 마녀로 고발되어도 무죄로 풀려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독일과는 반대로 마녀를 처형시키는 것이 죽인 마녀에게서 압수한 것보다 돈이 더 드는 데다가 마녀사냥이 미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혹은 한 명 잡아다가 태웠는데 마을 하나가 통째로 날아간 사건 때문일 수도 있고 또 독일 등 다른 나라와는 달리 영국은 마녀를 사형시킬 때 화형이 아닌 교수형에 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였다.[9]

한 가지 재미난 점은 이러한 마녀사냥은 도시처럼 번화한 곳보다 시골에서 더 잔인하게 시행된 경우가 많았다. 도시에서는 고문을 하더라도 법대로 하라고 따질 사람이 많지만 시골에서는 법에서 정한 제한 따위 다 무시하는 경향이 많아서 그렇다. 또한 마녀라고 해서 여자만 잡은 게 아니었다. 기회만 되면 마녀(?)라고 몰아갈 수 있을 만한 독거 노인을 몰아서 잡았는데 그중엔 남성도 상당했다고 한다(...) 물론 전체적인 비중으로 따지면 여성 희생자가 더 많지만 모스크바의 경우엔 희생자의 70% 이상이 남성(...)이였다.

여담이지만 영국 뇌르틀링겐에서는 약 56번에 걸친 혹독한 고문에도 끝까지 마녀가 아니라고 뜻을 굽히지 않아서 결국엔 풀려났다는 강철의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지역 재판 건수 처형 건수
영국 본토와 북미 식민지 ~5,000 ~1,500–2,000
신성 로마 제국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로렌, 알자스, 오스트리아, 체코) ~50,000 ~25,000–30,000
프랑스 ~3,000 ~1,000
스칸디나비아 ~5,000 ~1,700–2,000
동유럽 (폴란드, 리투아니아, 헝가리, 러시아) ~7,000 ~2,000
남유럽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10,000 ~1,000
합계 ~80,000 ~35,000
< 1450년 ~ 1750년 사이에 유럽의 각지에서 벌어진 마녀재판과 처형의 추정 건수 >
위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이 마녀사냥의 끔찍한 경험 때문에 현대의 유럽 지역에서는 '작은 사회' 에 대해 의외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1.1. 마녀사냥 과정

마녀사냥은 마녀 혐의자라고 쓰고 사냥감이라고 읽는다를 체포하고 마녀재판에 회부한 뒤 재판을 통해 고문을 가해서 자백을 얻어낸 후 화형에 처한다.

물론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평범한 재판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사실 이것은 마녀사냥이 아니라 마녀사이라고 봐야 옳다. 왜냐하면 전술한 내용을 다시 보면 된다.

마녀사냥은 마녀 혐의자라고 쓰고 사냥감이라고 읽는다를 체포하고(마녀 용의자에게 체포세 부과 및 체포에 동원된 인원의 급여를 부과) 마녀재판에 회부한 뒤 재판을 통해(마녀 용의자에게 재판세를 부과하고 판사의 급여를 부과) 고문을 가해서(마녀 용의자에게 고문에 사용된 도구의 요금을 징수 및 고문기술자의 급여 부과 및 고통세 부과) 자백을 얻어낸 후 화형에(화형을 집행하는 사람의 급여를 부과 및 화형도구 사용료 징수) 처한다. 그리고 마녀 용의자가 사망하면 최후에는 전재산 몰수형에 처한다.

결국 애꿎은 사람을 마녀로 몰아서 돈 뜯어내려고 살인을 한 것이다. 그래서 마녀사냥이 마녀사인 것이다. 그리고 마녀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주 타겟은 부잣집 과부였다. 가족은 없고 가진 것이라고는 엄청나게 많은 돈밖에 없는 나이 많은 여자들이 마녀 용의자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보다 상세한 내용은 마녀항목 참조

1.2. 타 지역의 마녀사냥

마녀사냥은 사실 유럽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기록을 보면 상당수의 고대 사회에서 소위 '마법사' 들이 탄압받으며 죽는 이야기가 나오고 이와 같은 악습은 아프리카인도, 파푸아뉴기니의 오지에서는 아직까지 일어나고 있다. 당장 구글신에서 검색만 좀 돌려봐도 마을 주민들에게 몇몇 사람들이 마법사라고 구타받는 비디오가 나돌 정도이니...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경우는 국가에서 나서서 '마법 사용자' 들을 처벌한다. 그딴 게 있을 리는 없고 정적이나 껄끄러운 인사들 제거를 위해 사용된다는 의견이 대체적으로 지배적.

마녀사냥이 이처럼 시대를 초월하는 글로벌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인류학자들은 마녀사냥이 단순히 유럽에서만 일어난 역사적인 이벤트이기 보다는 인간의 집단 폭력성을 배출하는 방식 중 하나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10]


1.3. 마녀사냥이 등장하는 창작물

게임, 영화,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중 마녀사냥으로 희생당하는 사람은 대표적으로 악마성 시리즈리사 부인이 있다. 이 주제의 자세한 사항은 옆의 인물로 들어가 두번째 주석을 참고할 것. 더불어 이 자체를 주제로 삼은 마녀의 속죄라는 에로게가 존재.

진짜 마녀를 찾는 사람은 마녀 항목으로 가자.

2. 인터넷 악습

인터넷 등에서 불특정 다수가 한 사람 혹은 소수를 거세게 몰아붙이는 것을 말한다. 마녀재판이라고도 한다. 상세한 사항은 개인정보 유포죄 항목 참조. 유의어로 인민재판이 있다. 어지간한 인터넷 커뮤니티라면 다 벌어지는 일이다. 디시인사이드 식물갤 정도나 되어야 이것에서 자유로울 정도.

2.1. 오용되는 경우

오용되고 있는 말 중 하나가 마녀사냥이다. 대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인물이 욕을 먹을 때, '마녀사냥하지말라'고 쉴드치는 경우가 있는데.. 가만보면 욕먹을 짓을 해서 욕을 먹는 것인데도 마녀사냥이라는 구실좋은 말로(치트키?) 정당한 비판까지도 무효화시키려는 경우가 (꽤나, 자주, 많이)종종있다. 이럴 때는 '뭐가 마녀사냥이야!'라고 받아치시길.. 물론 그냥 받아치면 진흙탕 싸움이 되니 근거는 착실히 제시하자.. 어디까지나 상대가 논쟁에 협조적일 때 얘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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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계몽주의로 인해 반기독교 감정이 만연했던 19세기 초에는 무려 8백만 명이 마녀사냥으로 죽었다는 주장이 진실처럼 받아들여졌고 아직도 이와 같은 수치를 검증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당시 유럽의 인구를 생각해볼 때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다.
  • [2] 일명 물의 길. 손발을 묶어 물에 던져서 "물에 뜨면 마녀, 빠져 죽으면(...) 일반인" 이었다고 한다. 돌에 묶어서 빠뜨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알다시피 사람은 기본적으로 물에 살짝 뜬다. 그러므로 대다수의 경우는 이런 식으로 물고문 당하고 끌려나와서 화형(...)
  • [3] 일명 불의 길의 경우 달궈놓은 쇠판을 걷게 하여 죽으면 무죄, 살아나면 마녀(...) 이렇게 한 이유는 간단한데 정말로 악마의 종복이라면 자연물도 거부할 터인즉 불에 닿아도 타지 않고 물에 빠져도 익사하지 않으리란 것이었다. 그냥 죽으라는 거잖아 문제는 이런 식으로 따지면 자연물도 거부한다면 화형으로 죽지도 않을 거라는 모순이 생긴다는 건데, 그걸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애초에 마녀사냥 따위를 했을 리가 없다.
  • [4]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책이기 때문에 라틴어-영어 대역판이 미국에서 출판되기도 했다.
  • [5] 유명한 <큰바위 얼굴>, <주홍글씨>의 저자이다.
  • [6] 케플러가 자기 엄마는 외계인과 결혼한 마녀라는 내용의 소설을 썼는데 그걸 진짜로 믿은(...) 사람이 있었다.
  • [7] 하지만 케플러는 자신의 모친이 마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냈고 그 덕분에 그 지역에서 마녀사냥이 주춤해지는 효과가 있기도 했다. 근데 정작 모친은 후유증으로 그만...
  • [8] 이 부분은 좀 더 자세히 후술한다.
  • [9] 다만 교수형에 처한 뒤 시체를 불로 태웠다. 그리고 독일이나 다른 나라는 마녀를 화형으로 사형시켰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마녀는 무조건 화형이라는 인식이 박힌 것일지도...
  • [10] 실제로 '인터넷 악습' 항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단순히 누군가를 불로 태우지 않는다고 해서 마녀사냥이 아닌 것은 아니다. 중국의 홍위병 사태만 생각해봐도 자신이 위협을 느끼는 대상에게 사람들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쉽게 이해가 가능하다. 단지 전근대 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집단 광기가 종교적인 이유로 배출되었던 것이고 현대 사회에서는 이념적인 이유로 배출되는 것이라는 차이만이 있을 뿐...
  • [11] 평범한 사람들이 마녀사냥으로 진짜 마녀가 된 이들이 주로 나온다. 마녀의 능력이 자신을 죽인 고문 도구라 고문에 대한 설명이 자주 나온다. 참고로, 마녀사냥의 배후에는 마왕이 있다는 설정(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의 진짜 저자가 마왕)이다.
  • [12] 에로게인지라 화형이나 고문은 검열삭제(작 중에서는 속죄의 의식으로 표현)로 대체된다.
  • [13] 위의 마녀사냥도 나오기는 하지만 아래의 마녀사냥이 주로 다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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